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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27화 (27/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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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내가 널 여기까지 부른 것은 개인적으로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굉장히 중대한 사태였기 때문에 빚이 남아있다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그에게 부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부탁이십니까.”

    “제스맹에게 듣기로, 네가 연금술사답지 않게 검을 수련한다고 하더군.”

    “그렇습니다.”

    딱히 숨길 일도 아니었기에 라트는 가벼운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색의 연금술 수련이라면 모를까, 검술 수련은 길드에 있는 정원에서 하고 있기 때문에 길드에 속한 수련생과 프로보스트들은 전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실력도 제법 뛰어나다고 들었다.”

    “과찬이십니다. 그저 몸을 지킬 수 있는 미천한 실력입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실전 훈련을 하지 못해서 실력이 늘지 않아 걱정입니다.”

    “흐음. 그래?”

    라트의 말에 공작은 잘됐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본론을 이야기한다.

    “파르스의 방패막이라고 할 수 있는 몬스터들이 히칼 산맥에 있는 폐광을 점거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는데, 실전 훈련을 겸해서 네가 처리해볼 생각이 있나? 해준다면 보상은 충분히 주도록 하마.”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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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아타 공작의 부탁

    목표 : 폐광(?)을 점거한 퇴치. 남은 몬스터 숫자 : 0/84

    보상 : 경험치(중), 금전적 보상(시일이 빠를수록 늘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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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퀘스트라고?’

    튜토리얼 제약이 풀려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퀘스트 창이 뜨지 않았을 것이다. 괜찮은 퀘스트다. 경험치도 중이나 주는 건 물론이고, 무려 루아타 공작의 금전적 보상이다.

    ‘그런데 히칼 산맥에 몬스터가 있던가? 그리고 폐광에 왜 물음표가 붙는데?’

    셀룬 왕국의 수도 파르스의 뒤쪽에 있는 히칼 산맥은 몬스터가 없고 야생동물만 서식하는 산맥으로 유명했다. 그렇기에 라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공작을 바라보았고.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도 좋다. 어떤 질문이라도 답해주마.”

    라트의 시선을 느낀 공작은 그에게 질문을 허락하였다.

    “히칼 산맥은 옛적부터 몬스터가 없는 산맥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몬스터가 어디서.”

    “으음. 그게 말이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 루아타 공작은 턱을 쓰다듬으면서 고민에 빠졌다. 전부 이야기를 해야하나? 어린 나이기는 하나, 눈앞에 있는 청년은 친우의 제자이고 딸아이의 은인이다.

    그런 그를 어떤 정보도 제공해주지 않고, 이용하듯이 부려먹기에는 양심이 찔렸다. 물론 지배자는 언제나 철면피가 두꺼워야했지만, 친우 그리고 딸아이와 관계가 있는 사람에게까지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전쟁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기에는 좀 그랬다. 이 정보를 아는 사람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으니까.

    ‘폐광에 몬스터가 들이닥쳤을 리가 없는데. 철이 있으면 또 모를까. 아, 설마!’

    공작이 고민하는 사이에 나름대로 답이 나온 라트는 입을 ㅇ려었다.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것인데 히칼 산맥에 있다는 폐광이 사실 폐광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정보를 숨긴 철광입니까?”

    라트의 물음에 공작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라트를 응시한다. 제스맹과 엘리가 라트를 천재라고 칭찬하기에 설마 했는데. 그 정도 정보를 가지고 여기까지 유추했다고?

    “제 생각이 맞나보군요. 그렇다면 몬스터들이 철을 쓰기 위해서 그곳을 점거한 것도 이해가 되네요.”

    공작이 침묵을 지키자 라트는 자신이 생각이 맞았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철광을 점거한 몬스터 퇴치를 왜 자신에게 부탁하는지도 깨달았다.

    “전쟁에 사용할 철이 부족하신 상황인 겁니까?”

    잠시, 공작의 표정이 날카롭게 들었다.

    “제스맹에게 들었나?”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우연? 라트의 말에 루아타 공작은 코웃음을 쳤다.

    연금술사라는 것은 수많은 실험을 하며 신중함을 기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정점에선 제스맹의 신중함은 말할 것도 없지.

    그런 그에게서 우연히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친우가 정보를 알려줬다면, 분명 그 이유가 있을 터.

    “네가 제스맹이 전쟁에 관여하게 된 이유렸다?”

    “예.”

    “그렇군.”

    역시나. 루아타 공작은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약 두 달 전 제스맹을 필사적으로 설득 하면서도 그가 분명 전쟁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국왕폐하께 제가 이 정도 했습니다, 하고 보고를 올리려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돌연 친우가 전쟁에 관여하겠다고 말해서 얼마나 놀랐던가.

    그래서 필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새로 들인 제자가 그 이유였나.

    “전쟁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설명하기 편하겠군. 네 말대로다. 히칼 산맥에 있는 폐광은 셀룬이 위기에 처했을 때, 혹은 위급할 경우 다른 왕국 몰래 철을 보급하기 위해서 폐광이라고 소문을 낸 곳이다. 사실은 철이 굉장히 풍부한 광산이지.”

    역시나. 라트는 자신의 말을 시인하는 공작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몬스터 놈들이 철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고 철광을 점거해버렸다.”

    몬스터들도 당연히 철을 이용한다. 몬스터들이 사용하는 무기 중 쇠붙이가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다만 몬스터답게 야금술이 너무 조잡했다.

    “문제는 사정상 폐광이라고 알려진 곳을 몬스터가 점거했다고, 군사를 보낼 수는 없다는 거지. 무력이 뛰어난 가신들도 마찬가지다. 우리 셀룬도 다른 왕국의 동향을 살피는 중인데, 다른 왕국도 분명 그러고 있을 거다. 내 가신, 혹은 국왕 폐하의 기사가 폐광으로 간다면 분명 수상함을 느낄 거야.”

    말을 멈추고 차를 한 모금 마셔 목을 축인 공작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다고 용병을 보낼 수도 없다. 그들이 광산 안에 풍부한 철을 보고 소문이라도 내면 곤란하니까.”

    “이해했습니다. 믿을만하고 알려지지 않았으며 실력이 괜찮은 저를 보내서 몬스터를 퇴치하면 다른 나라의 이목이 끌리지 않겠다고 계산하신 거군요.”

    “바로 그렇다.”

    라트가 어째서 자신을 보내 몬스터를 처리하려고 하는지를 단번에 파악하자 공작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죄송하나.”

    그것도 잠시, 라트의 입에서 죄송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공작의 얼굴이 굳어졌다. 라트를 강제로 그런 곳에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가 거절하면 그걸로 끝. 친우와도 그렇게 약속했다.

    그렇기에 공작은 목이 타는 것 같은 착각과 함께 라트의 입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가죽 갑옷과 검을 좀 빌려주시겠습니까? 검을 가져 오기는 했지만, 그렇게 좋은 검은 아니라서 조금 불안합니다.”

    됐군. 라트의 입에서 수락이 떨어지자, 공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나서야 공작은 분명 라트에게 무장을 챙겨오라고 했음에도 그가 갑옷조차 입지 않은 사실에 의아함을 느꼈다.

    “내가 미스릴은 어찌하고?”

    “실력이 조금 더 늘면 건드려볼 생각이었습니다.”

    아, 과연. 미스릴은 연금술사에게도 굉장히 귀한 재료였다. 그러니 실력을 키우고 나서 연성을 하려는 그의 의도는 매우 적절했기에 공작은 라트의 말을 납득할 수 있었다.

    장비인가. 확실히 좋은 장비를 지급해주면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는 확률이 올라가겠지.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공작은 수정구에 마력을 주입했다.

    -예 공작님, 무슨 일이십니까?-

    “로노에게 내 집무실로 좋은 검과 가죽 갑옷을 가져오라고 알려라.”

    -알겠습니다.-

    “조금 있으면 장비를 가져올 거다.”

    수정구를 통해 가신에게 명령을 내린 루아타 공작은 손을 뻗어 고개를 숙이려고 하는 라트을 막고 책상 서랍에 있는 스크롤 뭉치를 꺼내 라트에게 주었다.

    “그리고 이건 원래 주려고 했던 것이니 가져가거라.”

    “이게 뭡니까?”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스크롤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정확한 효과는 알 수 없다. 강력한 마법 스크롤이라면 혹시나 첩자한테 들킬 수도 있으니 주지 않았을 거고.

    “이건 귀환 스크롤이다. 위급하다 싶을 때 찢으면 바로 이곳으로 귀환할 수 있다. 그리고 이건 광산 근처로 텔레포트를 해줄 수 있는 스크롤. 이건 쉴드 스크롤이다. 혹시나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몬스터가 나타나면 쓰면 된다. 그리고 나머지는 각종 강화 주문이 깃든 주문서다.”

    과연 예상대로 강력한 마법이 깃든 스크롤은 없지만, 이정도면 충분하고도 넘쳤다.

    ‘수도 근처에 레벨이 높은 몬스터가 나타날 리가 없지.’

    포션과 신체 강화 마법이 합쳐진다면 폐광을 점거한 몬스터쯤이야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지 마라. 몬스터 놈들만 처리할 수 있으면 내가 너한테 감사해야할 일이니까.”

    고개를 숙이지 말라니. 자신이 평민인 걸 알 텐데 저러는 건가. 케이네도 그렇고, 엘리도 그렇고. 여기 있는 루아타 공작도 그렇고. 게임 내에서 봤던 귀족들과는 마인드가 많이 달랐다.

    하긴 세 명 모두 평범하게 게임을 하면 절대로 성격을 알 수 없는 NPC이긴 하다.

    케이네는 유저들이 기피하는 연금술사, 특히나 제스맹의 제자가 되지 않는 이상 친해지기 힘들다.

    엘리는 메인 퀘스트가 시작되자마자 죽는다. 셀룬의 최고 마법사인 루아타 공작이 딸의 죽음에 미쳐서, 마력이 폭주하여 마법을 못 쓰게 하려는 경쟁 왕국의 얄팍한 수에 의해서.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다. 아니 정확히는 반쯤 성공했지.

    루아타 공작의 마력은 폭주하지 않았으나, 그는 딸의 죽음 때문에 미치고 말았다.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적을 죽이는 냉혹한 살인자가 되어 대륙의 전장을 휩쓸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적들은 푸른 귀신이라고 칭했고,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공작님. 말씀하신 검과 가죽갑옷을 가져왔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에 루아타 공작의 명령에 따라 가신이 장비를 가져온 모양이다.

    “들어와라. 로노.”

    공작의 말에 그의 집무실에 들어온 로노라고 불린 남자는 라트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이 소년이.”

    “그렇다.”

    “잘 부탁드립니다, 기느투스 후작님의 두 번째 제자님.”

    그의 두 손을 꼭 잡고 고개를 숙이는 모양새가 그들이 지금 얼마나 곤란한 상황에 처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잠시 후 로노가 집무실에서 나가자, 라트는 그가 가져온 아이템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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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칭 : 살아남은 자의 안도  등급 : 희귀

    형태 : 갑옷(가죽)  특수 효과 : 민첩 +14

    인챈트 : -  내구도 :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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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칭 : 죽은 자의 안식  등급 : 희귀

    형태 : 검(연금된 철)  특수 효과 : 근력 + 12

    인챈트 : -  내구도 :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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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나 공작가.’

    이 저택은 어디까지나 수도에서 업무를 보기 위해서 사용하는 저택이고, 공작의 성은 그의 영지에 있다. 그런데 ‘임시 숙소’라고 불러도 좋을 저택에 이런 장비를 갖춰놓고 있을 줄이야.

    ‘이 정도면 희귀 등급 아이템 중 상급이지.’

    “두개 다 굉장히 좋은 장비네요. 감사히 빌려 쓰겠습니다.”

    라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죽갑옷을 장착하고, 검을 칼집에서 살짝 빼내 날을 확인해보았다. 날이 굉장히 날카롭게 서있는 것이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흐음. 그것만 줘도 괜찮겠나? 뭐하면 창고로 가서 몇 가지 더 써도 괜찮은데.”

    공작은 왠지 불안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아예 장비를 전부 맞춰서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

    “아니요.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실전에서 검술은 물론이고, 무색의 연금술도 써볼 생각이었기에 라트는 정중하게 공작의 말을 사양했다.

    “바로 가면 됩니까?”

    “그래. 스크롤을 찢으면 바로 광산 근처로 이동될 거다.”

    “최대한 빨리 좋은 소식을 가져다드리겠습니다.”

    “부탁하마.”

    “예.”

    확고한 대답과 함께 라트는 텔레포트 찢자, 푸른빛이 라트의 곁을 맴돌기 시작했다. 텔레포트 마법을 쓰기 전에 일어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이대로 5초 정도 있으면 광산 근처로 이동되겠지.’

    근거리 이동 마법인 블링크와는 다르게 장거리 텔레포트 마법은 사용하기까지 시간이 꽤 필요했다.

    “아버님, 혹시 제가 여기에 손수건을 떨어트리지 않았, 우왓!”

    그리고 그 5초 사이, 정말 어이없게도 손수건을 떨어트렸던 엘리가 벌컥 방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일어서있던 라트와 부딪쳤고.

    “엘리!”

    그 순간, 텔레포트 마법이 작동되어 공작이 전혀 의도치 않은 상황이 일어났다. 엘리가 라트와 함께 텔레포트 마법으로 이동되고 만 것이다.

    “돌아오면, 야단을 좀 쳐야겠군.”

    딸이 사라진 장소를 보고 공작은 눈을 찌푸렸다. 딱히 딸의 안위를 걱정은 하지 않았다. 몬스터에 당할 정도로 허투루 가르치지는 않았으니까. 그저 예고도 없이 집무실에 들어온 버릇을 고쳐야한다고 마음먹었을 뿐이다.

    ============================ 작품 후기 ============================

    내일이없는오늘님 후원쿠폰 5장, Evillady님 후원쿠폰 1장 감사합니다...원고료 쿠폰 주신 독자님들도 감사해여.

    선작이 갑자기 너무 늘어나서 조금 당황했어요.

    아니 이실직고 하자면...엄청..당황..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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