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23화 (23/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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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무색의 연금술까지 익혔으면 길드 마스터, 그리고 하이 마스터 자리는 라트에게 돌아가야 해.’

여인은 확고한 표정으로 문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공방에서 순수한 철을 만들고 있을 라트의 모습을 떠올렸다. 진심으로 동생 같은 아이라고 생각한다. 귀여운 아이다.

그러니까 그의 앞길은 좀 더 찬란해야한다. 질투는 하고 있다. 증오도 조금, 하고 있을지 모른다. 라트가 없었더라면 다음 세대 최고의 연금술사 자리는 자신이 차지했을 거니까.

그러나.

케이네는 처음 누나라는 말을 듣고 심장을 떨던 그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기쁘고, 너무 기뻐서, 귀족 체면도 잊어버리고 라트를 끌어안았던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기억이 반전되어, 케이네는 어릴 적을 회상했다.

글란츠 가문에서 케이네는 막내였다. 위로는 오빠가 한 명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오빠는 망나니 중 망나니였다. 오죽하면 영지 내의 사람들이 글란츠 백작의 아이가 아닌 사생아라고 수근 거릴까.

어머니는 자신을 낳고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아니, 무관심을 표방한 자유를 주었다. 아마도 시집을 가기 전까지 네 마음대로 하라는 뜻에서 나온 행동일거다.

엄마의 애정도, 아버지의 애정도, 오빠의 애정도. 가족 중 그 누구도 케이네에게 애정을 주지 않았다. 그런 가족을 위해, 가문을 위해 팔리듯이 시집을 가고 싶지 않아서 여기로 도망쳤다.

“여기로 와서 행복했어.”

할아버지 같은 스승님을 만났고, 자신을 누나라고 호칭해주는 라트를 만났다. 정말로 귀여운 동생이 생긴 것 같아서 너무나도 행복했다.

가문을 위해 희생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라트를 위해서 희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했다. 케이네에게 있어 진짜 가족은 이곳에 있는 스승님과 라트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질투와 증오보다는 동경하고 있었다. 그가 만들어낼 연금술사의 미래를 보고 싶었다. 라트라면, 부족한 나보다 훨씬 연금술을 발전시킬 수 있을 거니까.

“사저.”

그 순간 문이 열렸다. 문밖으로 순수한 철을 한 아름 들고 온 라트의 모습이 보인다. 굉장히 무거울 텐데, 아무렇지 않게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케이네는 입을 벌렸다.

‘역시 남자는 남자구나.’

“사저 몫 만들어서 가져왔어. 여기다 둘까? 아니면 내가 가져갈까.”

누나를 걱정해서 저렇게 내 몫의 철까지 만들어오더니. 착하다, 내 동생. 정말 착한 동생이야. 그러니까.

조금 더 표독스럽게 굴어야한다. 라트에게 미움받아야한다. 라트가 나를 미워해서, 감정을 상하지 않고 길드 마스터 자리를 뺏을 수 있게 해줘야한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

마음을 굳어지고, 케이네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어딜 함부로 들어와. 나가!”

“아, 미안. 노트도 없이 문을 함부로 열었네. 이건 무거우니까 내가 스승님께 가져다드릴게.”

케이네가 화를 내는 게 노크도 없이 갑자기 문을 열어서라고 지레짐작한 라트는 얌전히 사과를 하고는 문을 닫아버렸다.

케이네는 한동안 침음을 삼켜야했다. 혹시나 라트에게 들릴까봐 겁이 나서 감히 한숨을 내쉴 수 없었다.

닫힌 문을 보자, 가슴이 욱신거렸다. 라트에게 상처를 주려고 하는 건 나야.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내 가슴이 아픈 걸까. 가슴이 아파야할 사람은 라트인데.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케이네는 귀족이었기에 시종들에게 보살핌을 받았다. 반면 라트는 고아였고, 진짜로 가족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아이다.

“누나가……. 미안해.”

지금은 깨닫지 못하고 있으나, 분명 케이네의 적의를 깨닫는 순간 라트는 상처받을 거야. 그것을 알기에 마음이 아팠다.

라트가 자신에게 증오의 시선을 보내는 상상을 하자, 종전보다 더욱 가슴이 아파왔다. 양쪽 다 상처받는 방법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라트는 절대로 길드 마스터를 한다고 나서지 않을 거다.

라트의 재능을 파악한 케이네가 장장 3개월 동안 그를 설득해봤으나 돌아오는 건 거부뿐이었다. 그건 누나의 자리라고, 내 자리라고 아니라고 말해주는 착한 아이.

그 착한 아이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는 이러는 수밖에 없다.

사실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로 결심한 것은 한 달 전, 라트가 괴한에게 습격을 받은 것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라트는 제스맹의 두 번째 제자임에도, 자신에게 가려져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정확히는 케이네에게 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모습을 알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다.

그렇기에 수도 내에서도 제스맹과 친분이 있는 몇몇 고위 귀족들을 제외하면 제스맹이 두 번째 제자를 맞이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극히 드물다.

만약 그 괴한들이 라트가 스승님의 두 번째 제자라는 것을 알았으면 감히 그런 식으로 대했을까? 감히 그의 배에 흉터를 남기는 짓을 할 수 있었을까?

‘그랬을 리 없지.’

명예뿐인 후작이라지만, 제스맹은 후작이었고, 셀룬 왕국의 조문 연금술사 자리도 차지하고 있는 그의 입김은 다른 후작보다 강력했다. 게다가 제스맹은 노르스 대륙의 모든 연금술사의 머리 위에선 자가 아닌가.

그런 그의 제자를 함부로 대했다가는 어떤 사단이 일어날 줄은 누구라도 알고 있다. 그러니까 라트가 그렇게 다친 것은 어떻게 보면 자신의 탓도 있었다.

“미안해.”

공허 속 한줄기 사과는 누구를 향한, 누구를 위한 사과인가.

*****

“진짜 그날인가.”

라트는 한숨을 내쉬며 케이네의 방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저가 그렇게 큰 소리를 낼 줄은 몰랐다. 평소에는 방에 찾아가면 활짝 웃어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느라 바빴는데.

“아니면 내가 뭐 잘못했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열심히 생각해봤지만, 딱히 케이네에게 잘못을 한 기억은 없었다. 그럼 왜 저러는 걸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봤음에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중요 NPC의 정보는 대충이나마 꿰고 있지만, 월드 세리아를 플레이하면서 연애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기에 NPC의 심리 상태를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남자로써는 절대로 헤아릴 수 없는 여자의 마음속이다. 라트가 카사노바라면 모를까, 이곳은 물론이오, 지구에서도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 라트에게 케이네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라는 건 드래곤을 잡으라는 것보다 어려운 주문이었다.

“스승님께 상담해볼까.”

제스맹도 독신이기는 하지만, 그의 연륜을 생각하면 케이네가 왜 저런 이상한 행동을 하는지 간파할 수 있을 거다.

그래, 이상한 행동.

케이네가 라트에게 미움을 받기 위해 했던 일련의 모든 행동은 라트에게 있어 이상한 행동으로 치부되는 중이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겠지.”

안 그래도 전쟁 준비 때문에 잠잘 시간도 부족한 스승님께 누를 끼칠 수는 없다고 생각한 라트는 방문을 두드렸다.

“스승님. 저 왔습니다.”

“들어와라.”

문을 열고 공방으로 들어서자, 초췌해 보이는 스승의 모습이 나타나 라트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여기 부탁하셨던 순수한 철이요. 사저 몫까지 가져왔어요.”

“부탁은 무슨. 니들이 반 강제로 하겠다고 한 게 아니더냐. 솔직히 난 너희가 이걸 만들었다는 게 언짢아죽겠다.”

“저희가 안하면 스승님이 혼자 다 하실 일이잖아요. 연세도 있으신데 체력을 좀 염려하세요.”

“나 아직 팔팔하다. 이 몸이 바로 두 대륙 유일한 대연금술사, 제스맹……!”

“빨리 받기나 하세요.”

라트는 스승의 말을 끊고 순수한 철 무더기를 그에게 넘겼다.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소량의 Exp가 지급됩니다.]

“에잉. 한살 먹었다고 이제는 귀여운 맛이 떨어졌어. 예전엔 내가 자뻑하면 받아주는 맛이 있었는데.”

“1년 전에도 이런 상황이면 안받아줬을 겁니다. 반대로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지금이라고 해도 받아줬을 거구요.”

“큭.”

라트의 말에 제스맹은 인상을 구기고 고개를 내렸다. 제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무리를 하고 있었따.

연세가 연세인지라 제스맹의 체력은 젊은 사람보다 좋을 리 없다.

단순히 순수한 철을 만드는 일만 했다면, 제자가 무리하고 있다고 넌지시 뜻을 알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지금 셀룬 왕국에 있는 모든 연금술사 길드를 관리하고 있는 중이다. 평소에는 지부장에게 모든 권리를 위임하나, 이번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루베도 학파에 속한 길드는 대포에 쓸 폭탄과 총에 들어가는 탄약을, 알베도 학파에 속한 길드는 전쟁에 사용할 포션을. 니그레도 학파에 속한 길드는 대장장이가 손잡이를 단 검에 인챈트를.

그리고 치트리니타스 학파는 순수한 철을 연성하고, 아직 순수한 철을 연성하지 못하는 수련생들에게 순수한 철을 지급해 칼날을 연성하라고 지시한다.

모든 작업을 관리하고 감독하기에 스승은 눈을 감을 수도 없을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말년에 무슨 욕심이 있으셔서 전쟁에 관여하신 걸까.’

스승은 전형적인 연금술사의 표본이다. 탐구를 통해 끝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 어떤 연금술사라고 해도, 스승보다 성실한 연금술사가 없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절대로 전쟁에 관여하지 않았을 그가 어째서 전쟁에 관여하는 중인지가 궁금했다.

셀룬 왕국의 엘리트 부대가 강하긴 했지만, 무색의 연금술을 배우기 전에 생각했듯, 스승이 이렇게까지 혼신을 다했다고 하기에는 엘리트 부대의 머릿수가 너무 적었다.

스승이 이 정도까지 혼신을 다하는 중이라면, 최소 2배, 최대 4배는 많은 병사가 연금술로 만들어진 장비를 지급받았을 것이다.

‘그런 부대가 적이라고 생각하니까, 끔찍하다.’

연금술 장비를 지급 받은 자들은 보통 3천 명 가량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적으면 6천, 많으면 12000에 달하는 병사가 연금술 장비를 지급받을 거라는 생각에 라트는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궁금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스승이 피를 토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의 노력을 실험이 아닌, 전쟁에 기울이는지.

“내가 전쟁에 관여하는 이유가 궁금하다는 표정이구나.”

“궁금하지만, 물어보기가 좀 그래요.”

“요놈 보게? 나보고 알아서 대답하라는 뜻이냐?”

“제가 어찌 하늘같은 스승님께 그런 식을 말을 하겠습니까. 저는 단지, 스승님이 안쓰러워 보여요.”

“크흠.”

제자의 걱정 어린 말에 제스맹은 무안하다는 듯 기침을 했다. 그리고 라트가 건네준 순수한 철 무더기를 바라본다.

두 제자에게는 이런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아니, 두 제자가 강제로 일을 빼앗아가지 않았다면 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만든 철로 인해 목숨을 잃을 사람이 도대체 몇 명일까. 그런 생각만하면 등골이 오싹해지고, 소름이 절로 돋았다.

그래서 이 순수한 철은 다른 곳에 쓰고, 그만큼 자신이 새로 만들까 했지만, 케이네가 철썩 같이 자신을 감시했기에 그럴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앉아라. 차라도 한 잔 마시자꾸나. 나도 좀 쉬고.”

“됐어요. 차 마시면서도 인형으로 작업하실 거 다 압니다. 제자는 일어서있는 게 편하니 무리하지 마시고 하시고 싶은 말씀하세요.”

그의 말대로, 지금 순수한 철을 만드는 작업을 멈춘다고 해도 인형을 조종해서 서류 작업을 할 생각이었기에 제스맹은 속으로 뜨끔하고 말았다.

“그럼 그냥 이야기해주마. 왜 전쟁에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관여하는지 궁금한 것이지?”

“예. 연금술을 탐구하는 것만 생각하시는 스승님께서 어째서 전쟁에 관여하는지 제자는 궁금하고, 걱정됩니다.”

라트의 말에 제스맹은 쓰게 웃었다. 어떻게 할까, 사실대로 말해줄까? 사실대로 말해줘서 제자가 상처라도 받으면 어떻게 한다.

그냥 말을 꾸밀까? 아니 말을 꾸미면 저 꼬마는 귀신같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눈치 챌 거다. 라트가 굉장히 감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제스맹은 한숨을 내쉬었다.

거짓말을 해서 제자의 신의를 잃을 바에야 사실대로 말해주기로 하자.

“네가 예전에 강한 연금술사가 되고 싶다고 했지?”

“예.”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강한 연금술사가 되고 싶었다. 정확히는 그 누구보다 강해지는 것이 목적이다.

“나도 말이다, 젊음에 취해 그 어떤 직업보다 강한 연금술사가 되고 싶다는 염원을 꿈꾸던 적이 있었다. 전부 부질없었지만.”

“네? 지금 도, 도대체 뭐라고 하셨습니까?”

스승의 고백에 라트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스승의 흑역사를 비웃지 말아줘서 고맙다. 흐흐흐흐.”

순수한 연금술사라고 생각했던 제스맹에게 이런 과거가 있을 줄이야. 본인조차 흑역사라고 시인할 정도면 더는 할 말이 없다.

“내 귀한 연구 시간마저 포기하고 너를 가르친 것도, 너에게 내 모든 지식을 내린 것도 그 시절이 생각나서였다.”

오래 전의 일을 회상하며 제스맹은 말을 이었다.

“그런데 라트, 너를 보고 있자니, 그 꿈이 자꾸 떠오르더구나. 현자의 돌을 만드는 것보다 먼저 품었던, 내 젊은 시절의 꿈이 떠올라서 잠을 설친 날도 있었다.”

아직 성인도 아닌 꼬마가 연금술을 이용해, 누구보다 강해지고 싶다고 말했다. 부질없는 짓이고,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했으나, 젊은 날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걸 어찌 알았는지. 로이 놈 아니, 루아타 공작이 이 전쟁에서 셀룬 왕국이 압도적인 전력을 보이면 그 누구도 연금술사를 무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나를 꼬시더구나.”

“꼬심에 넘어가신 겁니까?”

“그래. 이렇게 늙었는데도 아직 철이 덜 들었는지, 그 말에 네가 생각나서 내 꿈이 스멀스멀 기억나서 그래서 넘어가고 말았다.”

“결혼을 못하셔서 철이 덜 드신 겁니다.”

“요놈 보게? 감히 하늘같은 스승님께 무슨 망발이더냐.”

라트의 말에 제스맹은 엄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들어 올리더니, 라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울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자가 안쓰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네 탓이 아니다. 젊을 적 꿈에 취한 나의 탓이지. 그러니 너는 너의 방식대로 걸어가라. 나는 내 방식대로 할 것이니까. 스승으로써 부탁이다.”

“……알겠습니다.”

“아, 나가기 전에. 이건 수고비 겸 용돈이다. 케이네는 내가 따로 챙길 것이니 네 마음대로 쓰도록 해라.”

퀘스트 보상 중 하나인 스승의 용돈을 받은 라트는 고개를 숙이고, 제스맹의 공방에서 나왔고, 동시에 그의 얼굴이 분노와 슬픔으로 인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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