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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22화 (2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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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미니 게임이란 몇몇 희귀 기능을 사용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간단히 정의하자면 이곳에 있는 NPC들이 힘들게 희귀 기능을 사용하니, 유저들도 그 수준은 아니더라도 스킬을 발동하기 위해서는 퀴즈의 정답을 맞춰야한다.

    “무색의 연금술은 날 위한 스킬이었어.”

    설마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할 때 미니 게임 현상이 일어날 줄이야. 월드 세리아를 할 때 가장 개 같은 현상 중 하나가 바로 미니 게임 현상이었다. 전투하기도 바쁜데 무슨 퀴즈를 맞춰야하냐고 원성도 많았다.

    덕분에 계산기를 옆에 두고 게임을 하는 놈도 있었다. 아니, 마법사를 지향하는 유저라면 누구라도 계산기와 친해져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지능에 많은 투자를 했기 때문에 간단한 사칙연산 정도는 0.1초 안에 할 수 있다.

    손이 떨려온다. 어찌 떨리지 않을까. 출구를 찾을 수 없던 미로 속에서 한줄기 광명을 본 것 같은 기분인데.

    무색의 연금술을 쓰느라 마나가 1000이나 사라지기는 했지만, 레벨 업을 할 수 있으니 마나를 늘리는 것쯤이야 간단히 할 수 있다.

    레벨 패널티 덕분에 스탯 포인트를 손해 보면서 찍어야했던 스탯도 레벨 업을 하면 스탯 포인트를 1만 소비하고 찍을 수 있을 거다.

    100 포인트를 손해 보긴 했지만, 놀랍고 만족스러운 결과다. 아니 100포인트를 손해 봤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굉장한 결과였다.

    “빨리 스탯을 찍자.”

    신의 명상법 덕분에 마나는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는 중이지만, 그래도 무색의 연금술을 수련할 만큼 마나가 많지 않다.

    ‘어차피 마나 회복 속도는 신의 명상법 덕분에 충분해.’

    마력은 마나의 총량과 마법 공격력을, 지혜는 마나 회복 속도와 기타 플레이어의 지식 습득 속도를 상승시킨다.

    다른 연금술은 그 연금술을 이해하고, 재료를 연성해야하기 때문에 지혜가 필요했지만. 무색의 연금술은 순수하게 마력으로만 효율이 결정되는 기능이다.

    “근력이랑 체력에 조금 주고, 마력에 몰빵 해야겠다.”

    레벨 패널티를 받지 않기 위해 근력과 체력에 각각 2포인트를 준 후, 나머지 스탯을 전부 마력에 투자했다. 덕분에 내 현재 마력 스탯은 칭호 효과까지 더해 116. 마나는 무려 3320에 육박했다.

    ‘이 정도 마나라면 어지간한 5서클 마법사 수준이겠는데.’

    무색의 연금술을 배운 후 얻은 칭호도 정말 마음에 들었다. 5정도만 되도 평범한 외모는 된다. 다른 사람에게 역겹다는 소리는 듣지 않을 정도는 된다.

    라트가 생각하기에 매력은 스탯 중에서 가장 쓸모가 없었다. 50을 찍어도, 100을 찍어도, 호감을 보일 사람은 호감을 보이고 호감을 보이지 않을 사람은 호감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2d 도트에서 외모가 드러날 리가 있나. 물론 지금은 현실이니까, 실시간으로 잘생겨질 수도 있겠지만. 외모에 관심을 보일 바에야 힘이 필요했다. 스탯이 남아돌아도, 찍을지 고민되는 스탯이 바로 매력이었다.

    스탯 포인트를 빡빡하게 주니 스탯 포인트가 남아 돌리도 없다.

    ‘레벨 업 말고 스탯 포인트를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야 하지만.’

    현재로써는 무리겠지만, 레벨 업을 통해 강해지면 스탯 포인트를 공급할 수단도 있다. 이 수단은 월드 세리아를 플레이한 수 천 만의 유저 중에서 오로지 라트만이 알고 있는 방법이었다.

    ‘그럼 수련 전에 몇 가지만 더 실험해볼까.’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라트는 다시 한 번 나무에 손을 올렸고.

    “만연하라.”

    미소를 지었다.

    2시간 후, 레벨을 2나 올린 라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도 놀라운데, 모든 속성을 연성할 수 있게 된다면 이 힘은 얼마나 강해질까.

    ‘이 사람을 찾아야겠어.’

    잠시 쪽지를 바라보던 라트는 그것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괜히 다른 사람이 이곳에 들어왔다가 쪽지를 봐서 긁어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실험 결과는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한 번의 연금술로 범위 안에 있는 모든 사물을 연성할 수 있다. 물론 마나를 어마어마하게 잡아먹기는 하지만, 이건 레벨 업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그리고 연성을 해놓고 3초 정도 후에 연성 효과가 발휘되게 하는 짓도 가능했다. 이것도 마나를 꽤 잡아먹었지만, 기습으로는 훌륭한 능력이다.

    물론 현재는 나무 밖에 연성할 수 없다. 그럼에도 충분하다. 충분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지. 제작직으로 낙점된 연금술 중에 마법처럼 강력한 힘이 숨어있었는데, 어찌 만족하지 않겠는가.

    지금도 이렇게 만족스러운데 땅이나 철 같은 것도 연성할 수 있게 되면 이 힘은 얼마나 굉장할까?

    “오늘부터 지쳐 쓰러지기 직전까지 노가다 해야지.”

    평소에도 연금술 기능과 검술 기능을 올리는데 소홀이하지 않았으나, 이제 레벨을 올릴 수 있으니 더더욱 의지가 충만해졌다.

    라트는 손을 굳게 쥐었다. 가장 우선 목표는 엘리자넷 공녀를 구하는 것이다. 구할 수 있을 때까지 강해진다.

    ‘해보자고, 친구 구하기.’

    앞으로 2년이라는 안전하고 평안한 시간이 쥐어졌다. 원래대로라면 메인 퀘스트가 시작되고 나서는 약 10년간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없다.

    압도적으로 유리한 스타트. 그리고 수 천 시간을 이 게임에 투자했기에 여러 가지 히든 이벤트를 알고 있는 그의 머리까지 합쳐진다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조건을 충족하면 진엔딩을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개처럼 뒤져서 찾아내주마.’

    라트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

    다시금 한 달이 지났고, 라트의 프로필은 시시각각으로 변해갔다. 레벨 업을 수월하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노가다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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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 연금술사 제스맹의 부탁

    목표 : 제스맹에게 순수한 철 100개 공급. 공급한 순수한 철 : 0/100

    보상 : 경험치(소량), 약간의 용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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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벨 업을 해서 튜토리얼 기간 패널티가 사라진 덕분인지 스승이 무언가를 부탁할 때마다 퀘스트가 떠서 수월하게 레벨을 올릴 수 있었다.

    정확히는 스승의 부탁이라기보다는 라트와 케이네가 바쁜 스승을 도와주기로 합심해서 못마땅해하는 제스맹을 무시하고 반강제로 일을 돕는 중이었다.

    늙은 할아버지가 하루에 3시간자고 남은 시간은 전부 순수한 철을 만드는데 열중하고 있다고 생각해봐라. 제자 입장에서 얼마나 안쓰러운 일이겠어.

    ‘원래 튜토리얼 기간 중에는 퀘스트를 할 수 없겠지?’

    이건 가설일 뿐이다. 튜토리얼 기간 중에는 게임을 플레이할 수 없으니까. 그러나 지금까지는 스승이 부탁을 했음에도 퀘스트가 뜨지 않았다.

    더욱이 엘리자넷 공녀를 구한 일도 튜토리얼 기간이 아니었다면 퀘스트로 분류됐을 거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튜토리얼 기간 중에는 퀘스트를 할 수 없다는 가설은 상당한 신빙성이 있었다.

    “라트! 아직도 다 못했어? 멍 때리지 말고 빨리 연성해!”

    ‘최근 들어 사저가 너무 히스테리를 부리는 거 같아.’

    케이네의 날카로운 소리에 라트는 딴생각을 그만두고 연성진에 손을 댔다. 요 일주일간 케이네가 라트에게 갑자기 신경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 길드에 1년이 넘게 몸을 담고 있었지만,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처음에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지만.

    ‘남자친구가 없어서 외로운가?’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다. 솔직히 성격이 착한 케이네가 히스테리를 부려봤자, 신경질부리는 것 말고 다른 일은 하지 않는다. 육체적으로 때리지도 않고, 정신적인 갈굼도 없다.

    그렇다면 그냥 이해해줘야겠지. 케이네가 지금까지 자신을 얼마나 신경써줬는지 알고 있으니까.

    그래도, 자신 말고 다른 사람한테까지 그러면 케이네의 명성에 해가 될 수도 있기에 라트는 한 마디 충고를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누나.”

    “누나가 아니라 사저!”

    또 이러네? 분명 누나라 부르라고 한 것은 케이네였는데 요새 들어 자꾸 사저라고 부르라고 강요한다. 슬슬 스승님의 후계자로 거듭날 시기이니 나와의 관계도 확실히 정리할 생각인가보다.

    그렇다면 환영이기는 하다. 솔직히 길드 내에서나 외에서나 케이네를 누나라고 호칭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알았어. 그럼, 사저.”

    “나한테 말 걸 시간에 빨리 철이나 만들어. 스승님 바쁘신 거 몰라!”

    “혹시 그날이야? 오늘따라 너무 곤두섰는데. 안 좋으면 가서 좀 쉬어. 내가 사저 몫까지 다할게.”

    “으, 으으! 라트는 바보!”

    갑작스러운 기습에 케이네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더니, 울먹이면서 평소의 톤으로 소리를 지르고는 라트의 공방에서 사라져버렸다.

    “역시 저래야 내 누나, 아니 사저답지.”

    조금 전 날카로운 모습을 던져버리고 평상시 착하고 부드러운 케이네의 모습을 본 라트는 웃음이 새어나오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아. 다른 사람한테는 그러지 말라고 충고하는 걸 잊어버렸다.’

    정확히는 케이네가 갑자기 도망치는 바람에 말을 꺼낼 기회가 없었다. 뭐 상관없나. 케이네가 저런 푼수 끼가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도 그녀의 본질은 귀족이다.

    그것도, 커뮤니티 내에서 백작님이라고 칭송받으며 인기 NPC 투표 내에서 단 한 번도 10위권 내에서 벗어난 적 없는 루브그흐 폰 글란츠 백작의 자녀이며 그의 성격을 많이 물려받은 여자다.

    평민인 라트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처신은 알아서 하겠지.

    “좋아, 끝.”

    순수한 철 100개를 만드는 것을 끝낸 라트는 케이네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날인 거 같은데.’

    분명 몸이 안 좋아서 신경이 날카로운 상황이겠지. 좋아, 말한 대로 사저의 몫까지 만들도록 하자. 순수한 철을 만드는데 드는 마나쯤이야, 신의 명상법과 지혜 스탯 때문에 곧바로 차니까.

    라트는 창고에서 여분의 철을 구해 와서 케이네의 몫의 순수한 철을 만들기 시작했다.

    “으으으.”

    한 편 케이네는 라트가 염려한대로 몸이 좋지 않은 듯,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라트는 바보. 아무리 누나라도 그런 말을 들으면 부끄럽다 말이야.”

    아니, 몸이 안 좋은 게 아니라 단지 조금 전에 라트에게 들은 말로 인해 부끄러움에 물들어 몸서리치는 중이었다. 평소다운 케이네의 모습이다.

    “어떻게 해야 라트한테 미움 받을 수 있을까.”

    지난 일주일동안 라트를 까칠하게 대했음에도 라트는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오히려 케이네를 염려해주었다. 그래서 오늘은 명백한 적의까지 드러냈음에도 돌아온 대답은.

    “그 날이라니, 으으!”

    정말이지 어이가 없는 대답이었다.

    ‘착한 것도 정도가 있지!’

    사실 라트가 착한 게 아니라, 단순히 케이네의 적의를 눈치 채지 못했을 뿐이다.

    적의를 눈치 챘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지난 1년간 본인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케이네가 적의를 드러냈다면 그 이유는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터니까.

    그렇다면 케이네가 라트에게 미움을 받으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말을 들어보면 라트를 딱히 싫어하기는커녕 아직도 동생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은데.

    케이네는 몸부림을 그만두고, 진지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약 이주일 전, 라트가 자꾸 어디론가 사라지기에 제스맹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스승은 당황하면서 알려주려고 하지 않았지만, 케이네는 5일 간의 추궁 끝에 라트가 무색의 연금술을 익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무색의 연금술은 케이네도 알고 있다. 스승이 가르쳐주려고 한 적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재능이 부족하여, 결국 익히지 못했다. 그런데 라트는 그것마저 아무렇지 않게 익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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