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20화 (2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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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그런데 무슨 일로 스승님을 뵙고 온 거야?”

    “비밀.”

    안 그래도 최근 케이네가 자신더러 길드 마스터를 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무색의 연금술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분명 라트가 길드 마스터를 해야 한다며 더더욱 날뛸 게 분명했다.

    “비밀이라니까 더 궁금해지잖아. 알려줘!”

    “비밀이라니까? 다른 사람한테 알려주면 그게 비밀이야?”

    “누나는 남이 아니잖아. 알려줘, 알려줘어어어!”

    그 꼴이 보기 싫어서 비밀이라고 한 것인데, 남의 마음도 몰라주고 케이네는 때를 쓴다. 이럴 때보면 누나가 아니라 그냥 애야, 애.

    “누나 오늘 바쁘지 않아? 이렇고 놀고 있어도 돼? 오늘 시험해볼게 있다고 했잖아.”

    “어? 아~ 맞다, 내 정신 좀 봐! 엘리랑 수다떨다보니까, 시간 가는 줄 몰랐네. 먼저 갈게!”

    라트의 말에 케이네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뛰어가더니, 문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나중에 알려주기다?”

    “빨리 가보기나 해.”

    “너무해!”

    “하아.”

    쫓아내듯 케이네를 보낸 라트는 짙은 한숨을 내쉬었고 그 모습을 쭉 지켜봤던 공녀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웃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우아해서 한순간 시선을 뺏겼지만, 이내 그것을 추태라고 생각했는지 라트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후후후. 너랑 케이네 언니는 진짜 남매 같아.”

    “그러냐.”

    “응. 그것도 친구 같이 허물없는 남매.”

    “친구 같은 누나긴 하지.”

    케이네가 평민 신분인 자신을 진짜 친누나 아니, 어쩌면 친누나 이상으로 허물없이 대해준다는 것에는 이견을 달 수 없다. 단지, 너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귀찮게 해서 문제일 뿐.

    “부러워. 난 친구 같은 혈육도, 친구도 없는데.”

    그녀의 말에는 외로움이 조금 묻어있었다.

    설정상 엘리자넷은 루아타 공작의 무남독녀로 공작의 극진한 관심을 받으며 살아왔지만, 그 여파 때문인지 아카데미에 입학하지도 못하고, 루아타 공작과 가신들에게 교육을 받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다.

    물론 그녀가 바쁜 나날을 보냈다고 해도 사교계에서는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는 어린 귀족들이 많았겠지만. 그들은 그녀가 후에 얻을 권력을 인지하고 콩고물을 얻어먹을 날파리일 뿐. 진짜 친구는 사귀지 못했을 것이다.

    ‘외로웠겠네.’

    지구에서 그녀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온 라트는 그녀의 외로움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렇기에 측은한 시선으로 엘리를 바라보았다.

    “친구는 여기 있잖아.”

    “아참, 이제 한 명 생겼지? 깜빡했어.”

    엘리가 정말로 기쁘다는 듯이 웃자, 라트는 다시 한 번 시선을 빼앗겼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여물지 않은 꽃봉우리라고는 하지만, 그녀는 뭇 남성들의 마음을 충분히 흔들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흑심이 생기지 않는다면 남자가 아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트가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을 부정하는 이유는 그녀가 귀족이기 때문도 있지만.

    “엘리.”

    “응? 왜 불러?”

    라트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엘리를 바라보았다. 어느 한 쪽도 말을 잇지 않는다. 침묵이 방을 뒤덮는다. 모든 것이 멈췄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공기가 얼어붙는다.

    실제로 벽장의 시계추는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교차하는 두 사람의 시간은 확실히 얼어있었다.

    “너, 갑자기 네가 죽을 위기에 처하면 어쩔래.”

    그 고요함을 깬 것은 라트였다.

    “그럴 일이 있겠어. 아버님도 있고, 아버님 아래 가신들도 많고. 그리고 세스라도 있는 걸. 그리고 나도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는다고.”

    “네가 말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고, 네가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가정 하에.”

    “으음.”

    라트의 질문에 엘리는 귀엽게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고민을 했다.

    “그럼 라트가 저번처럼 날 구해주면 되잖아.”

    “내가?”

    “응. 왜, 싫어?”

    뜬금없는, 전혀 생각지도 대답에 라트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입이 막힌다. 숨을 내쉬기가 힘들어.

    ‘엘리는 진짜로 날 친구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라트에게 도움을 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친구, 친구인가. 그 울림이 좋았고, 그렇기에 역겨웠다.

    “네가 죽을 위기에 빠지면 구해주는 게 싫은 거야?”

    “아니, 싫은 게 아니라.”

    싫은 게 아니다. 싫은 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아가씨 슬슬 돌아가실 시간입니다.”

    시녀 한 명의 난입으로 인해 라트의 대답은 이어지지 못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공방에 걸린 시계를 확인한 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루아타 공작과 그의 가신들이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저번 사건 때문에 너무 늦은 시간까지 밖에 있으면 안 되는 처지다.

    “그럼 또 봐, 라트.”

    “어. 멀리는 안 나간다.”

    평소라면 고집을 부려서라도 라트의 대답을 들었겠으나, 아버님과 어머님에게 걱정을 끼칠 수 없다는 기특한 생각을 한 엘리자넷은 라트에게 손을 흔들고 공방에서 나섰다.

    엘리자넷이 나가는 것을 확인한 라트는 공방 문을 닫아버렸다. 조금 전까지 여자 두 명이 있던 공방에 홀로 남겨져, 한적한 느낌을 준다.

    “하하하하하.”

    메마른 웃음소리가 초침소리를 덮었다.

    “나보고 구해달라고 할 줄이야.”

    그런 말이 나올 줄은 꿈에도 상상치 못했다. 만난 지 고작 3~4일 정도 밖에 되지 않은 공녀가, 진심으로 나를 친구로 생각하고 나더러 자신을 구해달라고 할 줄은 진심으로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역겨웠다. 그런 소리를 꺼낸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을 야기한 내가 역겨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겨우 4일만에 정이 든 걸까? 하긴 엘라는 제멋대로이긴 하지만, 심성은 고왔다. 미워할 수 없는 여자다.

    “제기랄.”

    그래서 짜증이 몰려왔다.

    엘리자넷 시르 루아타. 루아타 공작의 무남독녀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는 공녀. 이 정도 신분이라면 엘룬 왕국에서 한 번이라도 플레이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인상착의나 외모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라트는 첫만남 때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는, 엘리자넷 시르 루아타는……. 메인 퀘스트가 시작되자마자 죽는 비운의 희생양이다.

    제아무리 완벽한 자유도가 보장된 월드 세리아라고 해도 유저가 바꾸지 못하는 사건이 몇몇 존재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엘리자넷 공녀의 죽음이다.

    그녀는 메인 퀘스트가 시작되자마자, 하루정도 지나서 암살 집단에 의해 살해당한다. 유저가 귀족 신분으로 시작해서, 그 하루라는 기간 동안 엘리자넷이나 루아타 공작에게 경고를 한다거나 가문의 사병을 이용한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암살자 무리를 막으려고 들 수는 있으나, 이제 막 튜토리얼 기간이 끝난, 레벨 1짜리 캐릭터가 무슨 수로 프로 암살자를 막을 수 있겠는가.

    물론 비공식 에디터를 이용해서 캐릭터 데이터를 뜯어고쳐 암살자를 막을 수는 있다. 또는 스크립트를 뜯어고쳐 엘리자넷을 무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 엘리자넷 공녀를 살리면 게임 화면이 검은색으로 변하고, 잠시 후 물음표 얼굴에 로브를 뒤집어 쓴 수수께끼의 NPC가 ‘더러운 해커’라며 유저를 비난하고 게임이 강제로 종료된다.

    한 마디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엘리자넷 공녀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빌어먹을!”

    분노를 참지 못한 벽을 내리치는 소리가 고요를 메운다.

    가능하다면 그녀를 살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힘이 없다. 공작 가문에게 경고를 해도, 백작 가문의 사병들을 끌고 와도 엘리자넷은 암살당한다.

    그럼 메인 퀘스트를 시작하지 않으면 되고 레벨업을 하면 되잖아? 그런 의문이 생길 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월드 세리아는 유저가 개입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시간대별로 사건이 일어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건의 결과가 나온다.

    자유도를 넘어서 완벽하게 구현된 하나의 세계를 즐길 수 있는 게임, 그렇기에 그 누구도 월드 세리아가 금세기 최고의 게임이라고 칭송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힘이라.”

    결국 엘리자넷을 구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나아가, 메인 퀘스트 중 셀룬의 수도가 정복당한다면 당연히 스승님과 사저가 죽을 수도 있으니 최소한 셀룬이 전쟁에서 승리하게끔 만들어야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해. 내 마음대로 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그 개 같은 신을 이기려면 힘이 필요하지.’

    조금 전 스승님께 언급했던 모리아를 떠올린 라트는 입술을 씹었다.

    “하아, 책이나 읽어보자.”

    자신을 친구라고 여기는 소녀조차 지킬 수 없는 약한 자신의 모습에 한숨이 튀어나왔다. 적어도 튜토리얼 기간 중 레벨 업이라도 할 수 있다면 이런 고민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것이다.

    튜토리얼 기간 중에는 퀘스트도 받을 수 없고, 연성으로 무언가를 제작하거나 NPC 혹은 몬스터를 죽여도 경험치를 얻을 수 없다.

    이런 제약은 2년 후, 메인 퀘스트가 시작되려는 시기에 레벨이 자동으로 2가 되면서 사라진다.

    “쯧.”

    혀를 차며 지하에 있는 비밀 수련장으로 들어온 라트는 주변을 살폈다.

    “음?”

    조금 전에는 정신없이 공방으로 갔기에 수련장 내부를 살피지 못해 이제야 내부를 살피던 라트는 잠시 입을 벌렸다. 지하임에도 불구하고 햇빛과 유사한 느낌을 주는 빛 때문에 사방이 밝다.

    바닥은 온통 흙으로 뒤덮어있고 나무가 몇 그루 심어져있는 것은 물론이오, 연성의 흔적이 없는 목재와 철괴, 그리고 돌이 구석에 배치되어있다.

    그리고 벽과 바닥이 파인 흔적으로 보아, 누군가 수련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스승에게는 제자가 없다. 비공식적으로 누군가를 가르친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건 분명 스승이 만들어놓은 흔적이라는 소리인데.

    “흐음.”

    깊게 고민할 필요 없이, 그냥 자신에게 무색의 연금술을 알려주기 위해 최근까지 연습을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뭐지, 이 찝찝한 기분은.’

    직감이 알려온다. 이 수련장을 사용한 자는 스승이 아닌, 다른 누군가라고. 그렇다면 누가? 스승이 이런 수련장을 제공해줄 정도로 친한 자가 있나.

    ‘아니 그 전에.’

    누가 무색의 연금술을 다룬 거지?

    조금 전까지 해왔던 고민이 무색하게 사라지고, 의문만이 깊게 남아 라트의 머리를 간질였다.

    “모르겠다, 책이나 보자.”

    평상시라면 모를까, 지금은 이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싶지 않았기에 라트는 책상에 앉아 제스맹이 건네준 무색의 연금술의 이론이 적힌 책을 펼쳤다.

    ‘편하긴 하네.’

    전혀 알아먹질 못할 이론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자연스럽게 머리에 흡수된다.

    [스탯 포인트 100을 소모하여 무색의 연금술을 배우시겠습니까?]

    “당연하지.”

    스탯 포인트 100이 뼈아프기는 하지만, 당장은 희귀 기능이 중요하다.

    [‘희귀 특성책 : 무색의 연금술(木)’을 읽었습니다. 희귀 기능 ‘무색의 연금술’이 추가됩니다]

    “좋았어.”

    이 힘을 익힐 수 있다면 강해질 수 있다. 1시간에 거쳐 모든 책장을 넘긴 라트는 눈앞에 나타난 알림창을 보고 손을 쥐며 감격에 젖은 것도 잠시.

    [적색의 루베도, 백색의 알베도, 흑색의 니그레도, 황색의 치트리니타스에 이어 무색의 마그눔 오푸스를 익혀 다섯 연금술을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대륙 유일의 대연금술사 제스맹 기느투스 밖에 이룩하지 못한 업적입니다]

    [튜토리얼 기간 중 놀라운 업적을 이룩하셨습니다. 칭호 ‘에메랄드에 다가선 자’를 획득하셨습니다]

    [특별 보상으로 다량의 Exp와 랜덤 기능팩이 지급되었습니다]

    [레벨이 1을 초과했습니다. 지금부터 경험치를 획득하실 수 있습니다]

    “뭐, 뭔데!”

    갑작스럽게 알림창이 연속해서 나타나는 형상에 그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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