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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9화 (19/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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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3일 동안 스승을 찾지 않던 라트가 돌연 스승을 찾아가는 이유는 제스맹이 바쁜 와중에도 자신에게 무색의 연금술을 방도를 강구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전할 말도 있었다. 스승은 앞으로 2년 후 메인 퀘스트, 전쟁이 일어날 것을 안다. 메인 퀘스트가 시작되는 순간 자신은 이곳을 떠나야 한다.

    ‘내가 스승님이라도 말리겠지.’

    제스맹은 라트를 손자처럼 생각한다. 그런데 전쟁의 불길이 타오르는 때 제자가 떠나겠다고 말하면 그는 분명 말리려 들 거다.

    노르스 대륙에서는 전례가 없는 왕국 전쟁이 일어나고, 카르세이나 대륙은 반란군에 의해 불바다가 되는 끔찍한 세계 속으로 손자가 들어가겠다는데, 내버려둘 할아버지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지금부터 밑밥을 깔아놔야 했다.

    “스승님.”

    “오. 왔느냐. 들어와라.”

    노크를 하자, 들어오라는 허락이 떨어진다. 그 말에 라트는 제스맹의 공방을 들어가서 스승에게 인사를 드리려고 했으나.

    “인형?”

    무시무시한 속도로 책을 집필 중인 인형을 보고 스승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놀라운 듯 입을 벌렸다.

    “흐흐, 내가 줬던 책을 꼼꼼히 봤나보구나. 인형을 처음 본 소감이 어떠냐.”

    란제리 룩에 가터벨트를 착용 중인 인형의 외형은 엘프와 비슷해보였다. 본의 아니게 스승의 성적 취향을 발견한 거 같지만, 제스맹은 그 점을 모르는지 자랑스럽게 떠들었다.

    “놀랍네요.”

    “그렇지?”

    인형, 황색의 연금술로 만들 수 있는 병기 중 골렘 다음으로 막강한 병기이자 골렘보다 더욱 섬세한 조종이 가능한 병기다. 골렘이 명령을 이해하고 수행하는 일종의 AI라면, 인형은 모든 조종을 손수 해야 한다.

    “살육병기를 이용해서 책을 쓰실 줄은 몰라서 놀랐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순수한 철을 막힘없이 뽑아내면서, 인형을 조종해서 글을 쓰고 있는 스승님의 머리도 놀랍고요.”

    “놀란 건 그쪽이었느냐? 난 인형을 보고 놀란 줄 알았는데.”

    “당연히 인형을 보고도 놀랐죠. 스승님의 취향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으니까요. 제자는 스승님께서 이런 취향이신 줄 몰랐습니다. 결혼을 안 하신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겠네요.”

    “흠, 흠!”

    그제야 인형의 모습이 라트가 보기에는 부적절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젊었을 적에는 연금술에 미쳐서 결혼 같은 건 생각지도 못했을 뿐이다.”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너도 조금 있으면 성인이고 같은 남자이지 않느냐. 이 정도는 이해해 주거라. 노예를 데리고 다니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느냐.”

    하기야, 스승은 저 연세까지 성처리용 노예를 단 한 번도 둔적이 없는 귀족이다. 동정일지, 아닐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고결하다는 것은 라트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저는 같은 남자이니, 당연히 스승님을 이해할 수 있지만…….”

    라트가 말을 흐리자, 제스맹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몸을 떨었다.

    “사저는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서, 설마! 케이네에게 말할 생각은 아니겠지?”

    “뭐, 일단은요.”

    일단은, 인가. 그렇다면 후에 케이네에게 말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라트라면 모르겠으나 아마 케이네가 이 인형의 모습을 봤다면. 길드 내에 소문이 퍼지는 건 한순간이겠지.

    “후우.”

    그 생각이 들자, 제스맹은 간담이 서늘해져 한숨을 내쉬었다.

    “나중에 사저에게 말할 상황에 닥치면, 그 때 스승님께 미리 경고 드릴게요.”

    “말은 잘하는구나.”

    저 말의 진의는 나중에 이걸 협박꺼리로 쓰겠다는 뜻이다. 라트의 말뜻을 정확히 파악한 제스맹은 인상을 찌푸렸다.

    “최근 들어서 너도 케이네를 닮아가는 걸 알고 있느냐? 스승을 놀리는 게 그렇게 재미있어?”

    “네.”

    제스맹은 누군가를 가르칠 때는 엄격한 스승이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면 한없이 착하고 인자한 할아버지다. 물론 괴팍한 노인네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제자들에게는 괴팍함을 보이면서도 항상 친절했다.

    “으으으! 나는 너랑 케이네 때문에 심장이 가만히 남아나는 날이 없다.”

    제자의 확답에 제스맹은 오한이 들어 몸부림을 쳤다. 그럼에도 순순한 철을 만드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바쁘시군요.”

    “갑자기 일이 산더미처럼 밀려들어서 말이다. 그래서 너에게 무색의 연금술을 가르칠 방법을 생각해봤는데.”

    대화의 주제를 돌리자, 제스맹은 기쁘다는 듯, 그의 말에 대답했다.

    “이미 너의 경지는 뛰어나다. 이론만 습득한다면 혼자서도 무색의 연금술을 배울 수 있을 정도로.”

    “그럼 저 책이?”

    그 이론을 직접 가르쳐주는 게 제스맹의 역할이었으나, 안타깝게도 그에게는 시간이 없다. 그렇다면 인형이 거의 다 쓰고 저 두꺼운 책이 무색의 연금술의 이론이 담긴 책이라는 뜻이다.

    “그래. 음? 왜 그런 눈으로 날 쳐다보느냐.”

    “무색의 연금술은 특성상, 다른 연금술과 달리 레시피가 없죠?”

    “자연을 이해하고 분해해서 재구축하는 것이니 당연히 정해진 레시피가 없지.”

    “그러면 이 책에 쓰여 진 건 이론뿐이라는 뜻인데. 뭐가 이렇게 두꺼워요?”

    요전번 스승이 연금술의 모든 지식을 담았다면서 줬던 책과 동등한 두께에 라트는 몸서리를 쳤다. 그것도 제스맹이 가르칠 수 있는 건 무색의 연금술 중에서도 목속성 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미친 저 책에 쓰인 게 다 이론이라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당연히 그 정도로 복잡하니까 쇼크사를 할 수 있는 거지. 미리 경고하지 않았느냐.”

    “하아.”

    “젊은 놈이 무슨 한숨이냐.”

    한숨이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지. 만약 게임 시스템이 없었더라면 저 이론을 전부 머리에 쑤셔 박을 때까지 얼마나 걸렸을까.

    그리고 제스맹은 자신이 게임 시스템의 은총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도대체 나한테 무슨 기대를 하는 건가.

    “위대하신 스승께서 미천한 제자에게 거시는 기대에 너무 커서요.”

    “넌 알아서 잘할 놈이야. 내가 보증하마. 자, 여기 책이나 받아라.”

    어찌나 책이 무거운지, 책을 받을 때 잠시 몸을 휘청거리고 말았다.

    [‘희귀 특성책 : 무색의 연금술(木)’을 획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자, 이 골렘을 따라가면, 지하에 비밀 수련장이 있을 거다.”

    근처에 있는 쇠막대기로 미니 골렘을 만들어낸 제스맹은 골렘에게 라트를 수련장으로 데려가라고 명령했다.

    “수련장이요?”

    길드 지하에 창고 말고 다른 것도 있었던가? 그리고 왜 수련장으로 데려가려고 하는 거지?

    “그래. 설마 네가 정원에서 검 휘두르듯이 무색의 연금술을 익힐 생각은 아니었겠지?”

    “근처 숲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것도 좋은 생각이나, 사람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서 수련하는 게 더 좋을 것이다.”

    거기까지 말하고, 제스맹은 고개를 돌려 다시 순수한 철을 제련하기 시작했다. 꼬마 골렘이 어서 날 따라오라는 듯, 팔을 까닥인다.

    “잠시 만요, 스승님.”

    이대로 갈 수는 없지. 무색의 연금술을 배우기 위해서 이곳에 오기도 했지만, 하려는 말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온 거니까.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느냐?”

    “제가 2년 후에 떠난다고 했던 말, 기억하시죠?”

    “아. 그래 그랬었지.”

    라트의 물음에 제스맹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2년이라, 라트의 말에 제스맹은 잠시 혀를 찼다. 안타깝게도 공작이 말한 전쟁이 터지는 시기와 라트가 떠나려고 하는 시기가 겹친다.

    “그거 말인데, 한 1~2년 정도 미루는 게 어떻겠느냐?”

    노르스 대륙이 피로 물들 거대한 전란 속에 제자를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한 제스맹은 라트의 예상대로 그를 말리려고 했다.

    “전쟁 때문입니까.”

    “그래. 음? 잠깐, 네가 어떻게!”

    라트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던 제스맹은 이내 경악한 표정으로 제자를 바라보았다. 2년 후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현재로썬 각 나라의 수뇌부 밖에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그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거지.

    “저는 어릴 적에 모리아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대로 내버려두다가는 스승이 자신을 수상하다고 여길 것으로 판단한 라트는 스승의 경악이 끝나기도 전, 생각해뒀던 말을 꺼냈다.

    “뭐, 라고?”

    라트의 말에 스승의 표정이 더더욱 경악으로 물들어간다. 그리고 경악은 어느 사이에 슬픔으로 물들었고, 제스맹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야 이해가 가는구나. 그 어린 나이에 마법의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래서 연금술을 배우기 위해 나를 찾아왔다. 나라면 너의 재능을 충분히 개화시켜줄 것이니까.”

    모리아, 월드 세리아 속에서 살아가는 NPC들에게 이 이름의 파급력은 상상이상으로 굉장하다. 모리아라는 존재는 바로, 이름을 제외한 모든 것을 인간의 기준으로 정의할 수 없는 운명을 권장하는 신의 이름이었으니까.

    “그게 우연이 아니었군.”

    모든 뜻은 인간이 결정하는 것 같지만, 실은 모리아의 의지대로 흘러간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있어, 모리아의 부름을 받았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계시를 받았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모리아의 뜻이라면 말릴 수 없겠구나.”

    “죄송합니다.”

    예상대로 모리아의 이름을 언급하자 스승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라트의 뜻대로 하는 것을 이해해주었다.

    “죄송할 것이 있느냐. 나는 네가 어린 나이에 모리아의 부름을 받았다는 것이 마음에 걸릴 뿐이지. 그만 나가 보거라.”

    “예.”

    “라트.”

    스승의 말에 고개를 숙인 라트가 방에서 나가려고 하자, 제스맹은 황급히 그를 불렀다.

    “길드를 아예 떠나는 것은 아니겠지?”

    “자주 놀러올 생각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메인 퀘스트가 시작된다고 해도, 포탈을 이용해서 언제든지 길드에 돌아올 수 있었다.

    아예 떠날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에 라트는 고개를 끄덕인 후 기다리고 있던 골렘을 따라 지하에 있는 수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설마, 책장을 움직여야 나오는 비밀 수련장이 길드 내에 있을 줄이야.’

    당장이라도 수련장에 틀어박혀 무색의 연금술을 익히고 싶었으나, 아직 자신의 공방에 남아있을 엘리와 케이네를 떠올리고 책만 수련장에 놔둔 후 공방으로 올라갔다.

    공방으로 돌아오자, 예상대로 케이네와 엘리는 아직까지 수다를 떨고 있었다.

    “라트는 딱히 가리는 거 없이 잘 먹는 편이야.”

    “그런가요?”

    대화의 주제가 돌고 돌아서, 이제는 날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는 건가. 스승과 대면하고 지하 수련실까지 같다온 게 약 30분 정도 걸렸으니, 저 여자들은 무려 30분간 논스톱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는 뜻인가.

    ‘무섭다, 무서워.’

    “하아, 나왔어.”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게 무슨 뜻인지 깨달은 라트는 한숨을 내쉬면서 자신의 귀환을 알렸다.

    “왔어? 스승님은 아직도 바쁘셔?”

    “응.”

    다른 것도 아니고 전쟁 준비에 한참이시니 아무리 잘난 스승님이라고 해도 1년은 바쁘게 보내야할 게 분명했다. 1년도 짧게 친 거고, 어쩌면 전쟁 기간까지 합쳐 4~5년 동안 바쁘실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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