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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8화 (18/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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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제스맹이 무색의 연금술을 보여준 지 3일이 지났다. 당장 다음날부터 수련하자고 말을 하던 스승은 무엇이 그리 바쁜지 공작 저택에서 돌아온 직후 길드의 모든 수련생과 사범들을 시켜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덕분에 3일간 스승과 대화는커녕 얼굴조차 보지 못한 라트의 얼굴이 살짝 구겨진 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나왔어.”

“케이네양, 어서 오세요.”

의자에 앉은채 멀찍이 떨어져 라트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던 케이네가 공녀를 반겼다.

엘리자넷은 자신이 한 말을 확실하게 지켰다. 요 3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길드에 놀러온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라트는 현재 인사를 받아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사람이 왔으면 인사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아?”

나도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했겠지만, 미안하게도 지금은 얼굴조차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다. 비커 안에 내용물이 끓는 중이다.

‘앞으로 진짜 조금 남았는데, 이럴 때 등장하다니.’

라트는 조금 귀찮은 것을 느꼈지만, 그것을 내색하지 않고 핀셋으로 약초를 집고 비커 안에 넣을 타이밍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지금!’

“야!”

‘이크.’

케이네가 큰소리를 지른 덕분에 비커 안에 든 액체가 순간 일렁였고, 덕분에 라트는 약초를 집어넣으려고 하는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마치 그가 직접 포션을 만드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게임 시스템을 이용해 포션을 만드는 중이었기에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쉿. 큰소리내면 안 돼. 엘리양.”

“그치만.”

다행스럽게도 라트를 구경하고 있던 케이네가 엘리자넷을 말려주었다.

“움직일 수도 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굉장히 중요한 상황이니까, 잠시만 기다리렴.”

“네. 언니.”

케이네의 말에 공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3일 사이에 케이네는 공녀님을 엘리라는 애칭으로, 엘리자넷은 케이네를 언니라고 부를 정도로 둘의 사이가 친근해졌다.

그런 케이네가 라트의 공방에 있어서 망정이지. 그녀가 없었더라면 모처럼 만들고 있는 포션이 엉망이 됐을 거다.

[포션 제조 완료까지 남은 시간 : 0:00]

[깔끔한 성공! 상태이상 면역 포션 제조에 성공하셨습니다]

[튜토리얼 기간이기 때문에 경험치가 오르지 않습니다]

[기능 백색의 연금술 레벨이 1 상승했습니다.]

‘이제 다 된 건가.’

“하아.”

공녀님이 입을 다물어준 덕분에 예정된 시간에 맞춰 포션 만들기를 끝낸 라트는 한숨을 내쉬면서 기지개를 폈다.

“이게 신중에 신중을 기울여서 만들어야하는 포션이라서 인사를 못했다. 어서와.”

그리고는 공녀님께 늦은 인사를 건넸다.

“성공했구나. 역시 내 동생! 대단해.”

“저게 무슨 포션이기에 그래요, 언니?”

비커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지자, 케이네는 감탄을 자아냈고 엘리자넷은 케이네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라트가 만든 포션은 겉보기에 평범한 포션이나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궁금하지? 후후후. 안 알려줄 거야.”

“에, 언니 너무해요!”

두 여성이 티격태격 하는 사이 라트는 조심스럽게 비커를 들어올려서, 내용물을 포션병에 옮겨 담았다.

“알려주세요. 궁금하단 말이에요!”

“어쩔까나?”

“너도 들어는 봤을 포션이야. 상태이상 면역 포션이라고 하는 건데.”

밀랍을 녹여, 포션병 뚜껑을 단단히 막는 작업까지 끝낸 라트는 케이네의 작태에 한숨을 내쉬면서, 자신이 만든 포션의 정체를 알려주었다.

“뭐?”

그러자 엘리자넷의 몸이 순간 경직되었고.

“라트~ 언니가 엘리 양을 놀려보려고 하는 걸 방해해? 응? 이 입으로 방해한 거야? 이 방정맞은 입이 그랬어?”

“아프으.”

케이네가 라트에게 다가오더니 그의 입을 꼬집었다. 농담이 아니라 아팠다. 무슨 연금술사가 이렇게 손이 매워?

“잘못했지?”

라트는 고개를 격렬히 흔든 덕분에 케이네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성격은 참 좋은데. 사람 놀리는 걸 너무 좋아한다니까.’

자신이야 희생양 포지션이 아니었기에 그녀의 장난에 놀아나는 일이 거의 없었으나, 스승이나 그녀와 친한 사범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상태이상 면역 포션이라면, 알베도 학파 연금술사들도 만들기 어려워하는 포션이잖아!”

정신을 차린 공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 의외로 연금술에 대해서도 박식하다.”

“공작님과 스승님이 친하니까 그래. 적어도 루아타 공작님 파벌에 속한 마법사들은 연금술사를 깔보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존중해줘.”

“호, 그래?”

“응.”

새로운 정보를 얻은 라트는 고개를 주억였다. 루아타 공작이 제정신일 때 어떤 모습이었는지 듣는 것은 언제나 새로웠다.

“아버님 가라사대, 전쟁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건 병사, 그리고 병사들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건 뛰어난 대장장이나 연금술사이니 기본 지식 정도는 배워도 나쁠 것이 없다고 하셨거든.”

“전쟁이라.”

그 말에 라트는 씁쓸하게 웃으며 엘리를 바라보았다. 운명을 모르는 소녀는 당당하게 웃는 중이다. 그러나 과연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된다면 저렇게 웃고 있을 수 있을까?

“근데 너 이렇게 자주 와도 되는 거냐?”

분명 공작 저택에서 마법 수행을 받으며 바쁜 일상을 살아야할 엘리가 요 3일간 계속해서 길드에 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버님하고 가신들이 전부 바쁜 덕분에 자유로운 몸이야. 얼굴도 못 볼 정도라니까. 아, 물론 진짜 자유로운 몸은 아니지만…….”

“알만하다.”

뒷말을 흐리는 엘리의 모습에 라트는 쓰게 웃었다. 공방에는 창문이 없어서 확인할 수 없지만, 길드 앞에서 그녀를 수행해야하는 시녀들과 자신의 등을 걷어찬 여기사가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훤했다.

“신기하네? 요즘 스승님도 굉장히 바쁘신데. 3일 동안 얼굴도 못 봤어.”

“언니도요?”

무엇이 그리도 신기하고 재밌는지, 서로 꺅꺅거리는 케이네와 엘리자넷의 모습을 보던 라트는 한숨을 내쉬면서 포션병을 거치대에 놓았다.

‘슬슬 전쟁 준비를 하는 건가.’

그녀들과 다르게 라트는 제스맹과 루아타 공작이 어째서 그리고 바쁜지 알고 있었다. 메인 퀘스트, 왕국 전쟁까지 앞으로 남은 기간은 2년이다.

명색이 갑작스러운 전쟁이 아니라, 명백한 이유가 있어서 준비해야할 전쟁이다. 지금부터 전쟁 준비를 한다고 해도 빠듯하겠지.

그래서 스승이 3일간, 무색의 연금술을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제스맹을 직접 찾아가지 않았다.

‘엘룬 왕국의 전력은 어마어마했지.’

라트는 월드 세리아를 플레이할 때 주로 카르세이나 대륙에서 게임을 즐겼다. 그러나 가끔 노르스 대륙에서 스타트를 하는 경우가 있었고, 그 때마다 메인 퀘스트를 하면서 셀룬의 병사들이 갖춘 장비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병사 중에서 엘리트 부대들이 일반 등급 무기가 아니라, 특별 등급 무기를 들고 있었지.’

심지어 핸드 캐논을 들고 있는 부대도 있을 정도였다.

그 때는 병사들이 어째서 저런 무기를 들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었으나, 이제는 이해가 갔다. 셀룬 왕국은 연금술사를 대접해주는 왕국이다. 셀룬 왕국을 제외하고 연금술사를 대접해주는 나라는 오로지 제국 뿐.

그러니 다른 왕국에서는 연금술사들에게 협조를 구하지 않았겠지만, 셀룬 왕국은 연금술사 특히나 제스맹이라는 대연금술사에게 전쟁 협조를 구했을 것이다.

‘순수한 철로 만든 무기를 가진 병사들이라니.’

연금술을 몰랐던 때라면 모를까, 지금 생각하니 어이가 없는 일이다. 그것을 만들기 위해 스승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을까.

막말로 연금술사에게 전쟁 전 단 하루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절대로 기사나 마법사를 뛰어넘는 성과를 보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이 허락된다면 어떨까.

1년, 혹은 2년, 혹은 10년. 전쟁 전에 많은 시간이 허락될수록 연금술사의 영향력은 강해질 수밖에 없다.

공작의 말대로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건 병사고, 그 병사에게 상대보다 훨씬 질이 좋은 장비와 공선전에 수월한 대포를 지급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연금술사였으니까.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지.’

그래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다. 라트는 언제나 강한 연금술사가 되기를 바라는 중이니까. 그리고 한편으로는 스승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고사리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처지일 것인데, 제자들에게 피를 묻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인지 케이네와 라트에게는 전쟁 준비를 도우라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범들이야 제스맹과 돈으로 계약한 관계이고, 수련생들은 길드의 자원이나 다름없으니, 어쩔 수 없다지만. 제자인 케이네와 라트를 배려해준 것은 틀림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셀룬 왕국의 몇몇 병사들이 연금술로 만든 장비를 입고 있었지만, 스승이 직접 관여한 것 치고 그 수는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스승님 좀 뵙고 올게.”

슬슬 무색의 연금술을 배우고 싶었다. 그리고 3일이라는 시간이 주워졌다면, 스승은 분명 방도를 강구했을 터.

“다녀와.”

손을 흔드는 케이네를 뒤로하고 라트는 공방을 빠져나갔다.

“우우. 황색은 아직 모르겠지만, 알베도는 라트가 날 한참 넘어섰네.”

라트가 오기 전부터 제스맹의 후계자로 낙점된 케이네는 라트와 마찬가지로 네 학파의 연금술을 두루 공부하고 있었다. 다만, 라트가 순수하게 강해지고 싶어서 그러기를 원한 반면.

그녀는 제스맹의 자리인 하이 마스터를 물려받기 위해 반강제적으로 공부하고 있는 중이었다.

“언니는 저거 못 만들어요?”

케이네의 말에 엘리가 흰색 포션을 가리키며 물었다.

“응. 전문적으로 알베도 학파의 연금술을 배운 사람 중에서도 상태면역 포션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어. 중간 과정도 까다롭고, 완성 직전에 ‘푸른 꿈의 잎사귀’를 넣을 타이밍을 제는 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려운 작업이야.”

“그렇군요.”

케이네가 깔끔하게 인정해버리자, 그녀의 모습에서 질투와 동경을 잠시 스치는 것을 본 엘리는 입을 다물었다.

‘역시 나 같은 거 보다 라트가 스승님의 후계자로 어울리지 않을까.’

“언니 굉장히 부담스러워 보여요.”

“그래? 오늘 화장을 너무 짙게 했나.”

“아니요, 그게 아니라. 무거운 짐을 짊어진 사람 같다고요.”

“아, 응. 그렇게 보일 거야.”

바로 옆에서 그의 빛나는 재능을 보고 있다니 자꾸만 라트와 본인을 비교하고 좌절했다. 라트가 길드 마스터 자리를 사양했다고 하지만, 과연 그 자리에 자신에게 가당키나 한지 최근 고민을 하는 케이네였다.

============================ 작품 후기 ============================

입원 중 썼던 거 올려봤습니다 반 정도 올린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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