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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7화 (17/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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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공작저의 꼭대기. 바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방에 앉은 후작과 공작은 맑은 술을 기울이고 있었다.

    “크. 아주 좋군. 이 술 이름이 청주라고 했던가?”

    “그렇다네. 어떤가, 브랜디나 위스키, 그리고 와인하고는 전혀 다른 맛이지?”

    온기리드 왕국의 술은 두 대륙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그 어떤 술과 다른 양상을 보였다. 혹자는 향이 없는 밋밋한 술이라고 칭하기도 했으나, 애주가들 사이에서는 은은한 단맛과 깔끔한 뒷맛으로 호평을 받는 술이었다.

    “깔끔한 게 정말 좋군. 이런 달밤에 마시기는 정말 좋은 술이야.”

    “그렇지?”

    조그마한 술잔에 담긴 술이 달을 담자, 루아타 공작은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나를 부른 이유가 무엇인가.”

    “오랜만에 이렇게 술이나 한 잔 하려고 불렀네.”

    “정말로 그게 끝인가?”

    제스맹은 술잔을 내려놓고 지긋이 공작을 바라보았다.

    “로이. 자네는 중요한 할 말이 있으면 항상 뜸을 들이는 게 문제야.”

    친우의 문제점, 그것은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 순간, 항상 시간을 끈다는 것이다. 물론 타인과 협상을 하는 처지라면 저런 행동에 가산점이 붙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공작과 독대하고 이는 바로, 공작과 허물없이 지내는 친우였다. 타인이 아닌 이에게까지 이렇게 뜸을 들이는 것은 좋지 않은 버릇이었다.

    “역시 자네는 속일 수가 없군.”

    노인의 일침에 공작을 혀를 차더니, 술잔을 내려놓았다.

    “저 밖을 보게 제스맹. 아니, 달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고 저렇게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란 말일세.”

    “즐거운 거 같군 그려.”

    “그래 즐겁겠지. 그래서 두렵다네. 조금 있으면 저들의 웃음은 사라질 거야.”

    “흐음?”

    제스맹이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으로 공작을 바라보았으나, 공작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너무나 안쓰럽다는 듯, 창밖을 바라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눈빛에 담긴 것은 안타까움인가? 그게 아니라면 사죄의 표시인가. 친우가 저렇게 고민하고 있는 모습을 오랜만에 본 제스맹은 그가 꺼낼 말이 굉장히 중요한 사안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걸 보게.”

    축제를 즐기는 서민들에게서 시선을 거둔 공작은 옆에 있는 가죽 주머니에서 광석을 꺼내 노인의 앞에 내밀었다.

    “이건, 순수한 철?”

    광석 모양이기는 하나, 이것은 분명 순수한 철이었다. 대연금술사인 제스맹은 단 번에 그 사실을 알아보고, 광석과 로이를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모양은 보잘것없지만, 꽤 실력이 괜찮은 연금술사가 연성했군. 누구 실력인가? 이 정도로 깨끗한 정수를 뽑아낼 연금술사라면 내가 모를 리가 없을 터인데.”

    “이 철이 연금술사가 연성한 것이 아니라, 광산에서 캔 것이라면 믿겠는가.”

    루아타 공작의 말에 제스맹은 한동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의 두 눈 사이에서 진실을 찾겠다는 듯 지긋이 그를 바라보았다.

    “믿을 수 없네. 그러나.”

    “그러나?”

    “자네가 그리 말한다면 믿을 수 없지만, 믿겠네.”

    “그리 말해주니 고맙군.”

    친우의 말을 믿지 않으면, 누구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 도저히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으나, 친우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어줄 제스맹이었다.

    “크. 술이 쓰군 그래.”

    친우의 아낌없는 신뢰에 루아타 공작은 쓴웃음을 짓더니 내려놓았던 술잔을 들어, 입에 털어 넣었다.

    “이 순수한 철은 ‘주인 없는 산맥’에서 발견했다네.”

    “주인 없는 산맥에서?”

    주인 없는 산맥이라는 소리에 제스맹의 눈썹이 잠시 꿈틀거렸다.

    주인 없는 산맥이란 노르스 대륙의 중앙을 뒤덮고 있는 산맥의 이름으로 산지가 워낙 험악하고 고레벨의 몬스터와 인간과 적대적인 이종족이 살고 있는 곳이다.

    그렇기에 주인 없는 산맥이라는 이름대로, 노르스 대륙에 있는 여섯 왕국 모두 주인 없는 산맥에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았다. 사실상 완벽한 중립지대라고 봐야겠지.

    “그래. 주인 없는 산맥의 광산에서 채굴한 순수한 철일세.”

    이어지는 공작의 말에도 노인은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나, 친우가 허황된 사실을 말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개월 전. 여섯 왕국에서 사람을 뽑아, 주인 없는 산맥으로 정찰대를 보낸 걸 기억하나?”

    “기억하고말고.”

    어찌 기억하지 못하겠는가. 주인 없는 산맥은 수 천년동안 미지의 영역이었기에 그곳에 호기심을 느낀 여섯 왕국이 합심해서 정찰대를 보내지 않았던가.

    “그 정찰대에서 살아서 돌아온 병사가 이 광석을 가져왔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주인 없는 산맥의 광산에서는 순수한 철이 매장된 광산이 있다고 하더군.”

    만약 살아 돌아온 병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순수한 철이 어째서 정돈된 모양새를 하지 않고, 광석 모양을 하고 있는지 납득이 갔다.

    “이게 끝이 아니야. 그들의 말에 따르면 강철이 아닌 새로운 광물도 있었다고 하네.”

    “확실한 게 맞나. 누가 조작을 했을 수도 있잖은가.”

    이건 굉장히 조심스럽게 다가갈 문제였기에 제스맹은 굉장히 신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돌아온 병사의 기억을 모조리 살펴보았네. 100% 진실이야.”

    돌아오는 대답에나 제스맹은 눈을 감쌌다. 친우의 정신 계열 마법 수준은 두 대륙 사이에서도 알아준다. 그렇다면 병사의 기억이 조작됐을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

    “다른 왕국은 이 사실을 알고 있겠지.”

    그 물음에 로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의 말에 따르면, 각 왕국마다 소수의 생존자들이 살아남아 왕국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하아. 아무런 쓸모가 없어서 영토를 정하지 않은 산맥에 그런 광산이 있을 줄이야.”

    순수한 철은 치트리니타스 학파에 속한 연금술사들이 가장 크게 느끼는 벽이었다. 이 순수한 철을 만들 수 있어야, 순수한 철에 불순물을 섞어 일반적인 일반적인 강철보다 훨씬 단단하고 부드러운 금속을 만들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순수한 철이 잠들어있는 광산이 있다? 그렇다고 함은 순수한 철을 만들지 못하는 연금술사들도 강철보다 훨씬 뛰어난 금속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1년 아니, 2년 후쯤 모든 왕국이 주인 없는 산맥의 소유권을 주장할 것이고 전쟁이 일어날 걸세.”

    “바보 같은 짓이야.”

    “그래 맞아, 바보 같은 짓이지. 나도 자네의 말에 공감하네. 그렇지만 제스맹. 만약 셀룬이 그 광산을 손에 얻는다면 어떻게 되겠는지 생각해보게나.”

    친우의 말에 제스맹을 눈을 감았다. 대장장이가 다루는 기본적인 금속보다 연금술사가 만들어내는 금속이 뛰어난 것이야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순수한 철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연금술사는 굉장히 적었고, 그렇기에 병사들은 일반적인 강철로 벼려낸 장비를 지급받았다.

    “전장의 승패는 소드 마스터나 아크 메이지가 가르는 게 아니라 병사가 가르기 마련이네.”

    하지만 만약 모든 병사에게 연금술사가 만든 금속으로 만들어진 장비를 지급할 수 있다면.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군대가 탄생할 것이다.

    “산맥을 얻은 왕국은 노르스 대륙의 제국으로 거듭날 것이야. 어쩌면 셰크티 제국도 넘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단 말일세!”

    그것은 너무나도 큰 꿈이었다. 셰크티 제국이 어떤 국가인가. 노르스 대륙보다 1.5배나 정도 큰 카르세이나 대륙의 80%를 장악한 대제국이 아니던가.

    이런 거대한 꿈은, 한 사람의 꿈이 아닐 터다. 루아타 공작이 원하고, 셀룬의 왕이 원하며, 그의 신하들이 간절히 염원하는 거대한 꿈임이 분명했다.

    “자네가 이리 당당하게 말하는 것을 보니 국왕 폐하께서도 허락하신 일인가보군.”

    친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대답하지 않아도, 제스맹은 쉽사리 국왕께서 이 일에 시발점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전쟁이라니.’

    근 500년간, 전쟁 한 번 일어나지 않은 평화로운 시대가 이어졌다. 그러나 그 균형이 지금 소수의 욕심에 의해 깨지려고 한다. 지배층의 욕심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은 결국 서민들이 아니던가.

    제스맹이 술잔을 깨끗이 비우고 공작을 바라본다.

    “그리고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분명히 부탁할 것이 있다는 뜻이겠지?”

    친우가 자신에게 이런 말을 들려준 이유는 분명 그 이유가 있기 때문일 터다.

    “그대 덕분에 드래곤께 선물을 받아 왕국의 재보가 불어났다지만, 솔직히 말해서 다른 왕국을 이길 자신이 없구려. 연금술사가 조합한 철로 만든 무기가 전장에서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한다는 걸 알고 있지 않나. 이번 한 번만 도와주게.”

    갑작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간청하는 공작의 모습에 제스맹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친우에게 보이는 감정은 절박함이었다. 제국을 꿈꾸기 이전에 주인 없는 산맥을 차지하지 못한다면 전쟁에 패배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주인 없는 산맥을 차지한 나라의 속국이 될 지도 모른다. 우리의 영토를 빼앗길지도 모른다.

    ‘진퇴양난이로다.’

    선수를 치지 않으면 가진 것을 빼앗길 수도 있다. 그러나 선수를 치기 위해서는 결국 전쟁을 일으켜야한다.

    인간은 평화롭게 나누는 방법을 모르니까. 그래서 서로가 반목했고, 그렇기에 수많은 왕국이 생겨나지 않았던가.

    “로이 고개를 들게. 자네는 친우이기 전에 셀룬의 하나 뿐인 공작이야.”

    “일생에 한 번 있을 부탁이네.”

    친우의 말에 따라 고개를 들면서도, 루아타 공작은 힘없는 목소리로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아. 구체적으로 말해보게나.”

    “도와주겠는가?”

    “들어보고 결정하지.”

    “순수한 철을 이용해 만든 검과 창이 필요하네. 손잡이와 창대까지 연성해줄 필요는 없어. 날만 연성해주면 대장장이들한테 달라고 하겠네.”

    “그것만 필요한가.”

    “당연히 아니지. 핸드 캐논과 포션도 필요하네.”

    일반적인 병장기보다 훨씬 강력한 병장기를 바라는 것은 물론이고, 기병에게 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핸드 캐논과 포션까지 제공해달라니.

    “자네, 도둑놈이 다됐군.”

    “물론 무료로 해달라고 하는 건 아닐세. 금액은 국왕폐하께서 직접 지불할 것이네.”

    “담배 좀 피워도 되겠는가?”

    제스맹은 대답도 듣지 않고 품속에서 파이프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제자의 건강이 염려되어, 성인된 이후에 그 연금술을 수련하게끔 했는데. 그런 제안을 한 자신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니.

    ‘어불성실이지.’

    “제스맹!”

    타들어가는 담배와 마찬가지로 속이 타들어 갔는지, 공작은 다시 한 번 대연금술사라고 불리는 친우를 재촉했다.

    “재촉하지 말고, 기다려보게.”

    “자네도 알고시피 연금술사들은 이상할 정도로 천대를 받고 있어. 그러나 이 전쟁에서 연금술사가 만들어낸 장비의 힘을 보여주면, 분명 인식이 바뀔 것이야.”

    분명 재촉하지 말라고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작은 다시 한 번 노인을 재촉했다.

    “인식이 바뀔 거라고?”

    그 말을 들은 제스맹은 담배를 옆으로 치웠다.

    “그렇다네, 생각해보게나. 500년간 전쟁이 없었기에 연금술사들이 과소평가를 받은 것이야. 막상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도움이 되는 이들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마법사? 검사? 궁수? 아니지. 그들은 전쟁을 수행할 뿐이야.”

    공작은 잠시 숨을 내쉬고, 다시금 말을 이어갔다.

    “공성 병기인 대포에 들어가는 폭탄을 만드는 자들. 압도적인 성능을 발휘하는 장비를 만드는 자들. 사제의 신법이 없다고 해도 상처를 낫게 할 수 있는 포션을 만드는 자들! 무기에 영구적인 힘을 불어넣을 수 있는 자들! 연금술사들이야말로, 근본적으로 전쟁을 지배하는 이들이 아닌가!”

    옳은 말이나, 확실히 연금술사의 기술력으로 전쟁의 판도가 뒤바뀔 수 있지.

    ‘강한 연금술사인가.’

    제스맹은 1년 전, 자신을 찾아온 소년의 모습이 떠올렸다. 누구보다 강한 연금술사가 되고 싶다고 말한 것을, 어리석은 꿈이라고 치부해버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조금 동경하고 말았다. 그 바보 같이 우직한 꿈을 이루려고 하는 소년이 너무나도 빛나보여서, 동경해마지 않았다.

    ‘라트가 원하는 강함은 아니지.’

    라트가 원하는 강함은 아니다. 그러나 천대받는 연금술사들의 이미지를 세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수락할 것인가? 아니면 거절할 것인가? 다가온 선택의 순간, 제스맹은 사랑하고 아끼는 제자의 모습이 떠올렸다.

    “이것도 모리아의 뜻인가.”

    그 말을 끝으로, 후작은 고개를 끄덕여 공작에게 승낙의 뜻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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