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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사이가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스승의 저런 모습은 처음 봤다. 저런 모습을 보일 정도로 사이가 좋은 것인가?
“여보, 그리고 후작님. 싸움은 그쯤에서 멈추시죠. 은인께서 다리가 아프겠어요.”
“아아. 그렇지.”
공작부인이 익숙한 듯 공작과 제스맹의 싸움을 말리자, 그제야 라트의 존재를 깨달은 공작은 헛기침을 했다.
“이 이야기는 이따가 밤에 술 한 잔 하면서 계속하자고, 제스맹.”
“안 마셔! 네놈이랑 대작하느니, 공방에서 실험을 하나 더 하고 말지!”
“음? 아쉽게 됐구먼. 온기리드 왕국에서 가져온 진귀한 술이 있었는데. 나 혼자 마셔야겠어.”
“하하. 내가 자네를 가장 친한 친구로 여긴다고 말했던가?”
“지금 했구려. 그럼 있다 밤에 보세.”
온기리드 왕국은 노르스 대륙이 아닌, 셰크티 제국이 있는 카르세이나 대륙에 있는 왕국이다.
거기서 만들어진 술은 와인과는 달리 과실을 첨가하지 않은 독한 술로 유명했고 그것에 홀랑 넘어간 제스맹은 오늘 밤 공작과 술을 마시는 것을 일정에 추가했다.
“흠흠. 네가 보상이 필요 없다고 해도, 내 입장 상 딸아이를 구해준 너를 무엇도 주지 않고 보낼 수는 없다. 그러니 내 마음대로 보상을 정하마. 가져와라.”
싸움을 일단락한 공작이 명하자, 가신들이 일어나더니 커다란 상자를 가져왔다. 도대체 무엇을 주려고 저렇게 큰 상자를 가져온 것인가.
저 상자 안에 골드가 가득 들어있다면 족히 만 골드는 넘게 있을 정도의 크기다.
‘겨우 딸을 구해줬다고 만 골드나 받을 일은 아니지.’
라트는 상자 안에 무엇이 있다고 해도 그렇게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상자가 열리자 그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미스릴 40kg다. 이 정도면 만족하느냐?”
조금 입을 벌리고 말았다. 미스릴 40kg라니, 만 골드보다 더욱 가치 있는 물건이지 않은가. 겨우 딸을 구해줬다고 이런 보상을 주겠다고? 터무니없다, 왠지 빚을 쥐어주려고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과분합니다.”
그렇기에 라트는 한 발 물러섰다. 미스릴이 당장 얻을 수 없는 광물이기는 하나,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는 알고 있다. 심지어 미스릴 광맥이 어디에 숨겨져있는 지도 알고 있으니, 그렇게 욕심이 나지는 않았다.
“호오, 탐욕이 보이지 않는군. 연금술사라면 미스릴 같은 희귀 광물에 눈독을 들일만도 한데.”
레벨을 조금만 올리면 무더기로 얻을 자신이 있기에 욕심을 내지 않는 것뿐이다. 지금 당장 미스릴을 얻으면 쓸모가 많겠지만.
“그대가 과분하다고 생각해도 받도록 해라. 엘라제넷은 내 하나 뿐인 딸아이다. 이 정도도 주지 않으면 가신들이 날 비웃을 것이다.”
“받도록 해라, 라트. 저 정도는 로이 놈한테 아무것도 아니니까.”
미스릴 40kg가 아무것도 아니라니. 도대체 공작은 어느 정도로 돈이 많은 것인가. 제스맹까지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빚을 쥐어주려고 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렇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미스릴은 길드에 옮겨주도록 하마. 그리고.”
얼굴에 만연한 미소를 지은 공작은 손뼉을 쳤다.
“조금 늦었지만, 점식식사라도 같이 하지.”
*****
결과적으로 점심식사는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확실히 돈을 듬뿍 쓴 음식인지라, 길드에 있는 아주머니가 해준 음식들보다 훨씬 맛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물론 그만큼 예절에 주의하면서 먹느라 체하는 줄 알았지만.
그리고 밤, 케이네의 만류로 공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하루 종일 방에서 휴식을 취한 라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대로는 안 돼.”
강해져야 한다. 고대의 연금술사가 최전방에서 활약할 수 있었던 답을 찾아내서 강해져야만 했다. 연금술사의 한계를 부숴야만,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
강해진다면 운명이 나를 가지고 노는 게 아니라, 내가 운명을 선택할 수 있을 거다. 그러나 자신의 레벨이 1이라지만, 잡졸 NPC한테 질 정도로 약해서야 절대로 운명을 선택할 수 없다.
그 사실을 알기에 라트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지금쯤이면 제스맹이 공작저로 향하기 위해 공방 밖에서 나왔을 시간이다.
차마 스승의 실험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지금까지 기다렸던 라트는 급히 제스맹이 있을만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왔느냐?”
예상대로 공작과의 약속을 위해 나갈 채비를 하던 제스맹은 라트가 마치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마냥 그를 반겼다.
“지금쯤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제가 어째서 스승님을 찾아왔는지도 알고 계시나요?”
“당연한 걸 묻지 마라. 내가 누구더냐. 유일한 대연금술사가 아니냐.”
그렇게 말하며 제스맹은 길드 뒤편에 있는 정원으로 걸었고, 라트는 군말 없이 그를 따라갔다.
“연금술의 단계는 이해, 분해, 재구축이다. 이 세 가지 단계를 통해 순수한 정수를 뽑아내서, 조합하는 것이야말로 연금술이다.”
정원으로 나온 제스맹은 정원에 있는 울타리를 향해 라트에게 연금술의 원리를 설명한다. 당연히 라트도 그 사실을 알기에 스승의 말에 그저 고개를 주억거릴 뿐, 감히 반론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단계의 극의에 도달하면 이런 것도 가능하다.”
그렇게 말하며 제스맹이 울타리에 손을 댔다.
“변화하여라.”
주문? 연금술은 마법과 달리 주문이 필요 없을 텐데 어째서? 의문을 풀 사이도 없이 그의 손에서 불꽃이 일어나더니, 분명 울타리 밖에 없었던 곳에 문이 생겨났다.
‘뭐, 야.’
상당히 무리한 것처럼 얼굴에 식은땀이 흐르는 중이기는 하지만, 제스맹은 연성진도 없이 연성을 했다.
“무색의 연금술. 고대 연금술사들은 그렇게 불렀다고 하더구나.”
스승은 라트가 어째서 자신을 찾았는지 확실히 파악하고 있었다. 역시 대연금술사라는 호칭은 거저 먹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새로운 힘을 발견한 아이는 두근거림을 참지 못하고 심장을 움켜쥐었다.
“손에 닿은 곳을 이해하고, 분해해서. 재구축하신 거군요.”
이것이 고대의 연금술사가 사용한 연금술인가.
“정답이다.”
터무니없다. 라트는 입을 열지 못하고 희열에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연성진 없이 연성을 하는 것쯤은 기초 연금술 기능만 익혔다면 누구라도 할 수 있다. 다만, 연성진 없이 연성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순수한 정수뿐이라는 게 문제지.
연금술사가 순수한 정수를 뽑아내는 건 들어갈 불순물의 양을 조절해서 새로운 화약이나 금속을 만들어내기 위함도 있지만, 연성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것을 연성진 없이 연성할 수 없기 때문도 있다.
그런데 금속도 아니고 순수한 정수도 아닌 그저 평범한 나무로 만들어진 울타리를 연성하다니.
‘아니지.’
제스맹이 보여준 것은 고작 울타리를 연성한 게 아니다. 그는 지금 자연 그 자체를 연성한 것이다.
사실,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연금술사라면 이런 일을 할 수 있기는 하다. 다만, 시간을 들여 본인이 연성하고자 하는 것의 식을 만들어야한다. 그 식이라는 것이 연성진이고, 그 식을 맞춰 도달할 수 있는 답이 연성이었다.
그런데 연성진없이 자연을 연성하다니. 어찌 그것을 보고 터무니없다고 말하지 않을 소냐.
“왜 아무도 이 연금술을 쓰지 않는 겁니까?”
이 정도 연금술이라면 연금술사가 최전방에서 활약했다는 말도 이해가 갔다. 그러나 어째서 현대의 연금술사들은 이 연금술을 사용하지 않는 것인가. 라트는 스승의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을 바라보았다.
‘분명 리스크가 있어.’
제스맹의 MP는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고작 연금술 한 번에 저렇게 지친 기색을 보이고 있다고? 아니다, 스승의 마력은 아직도 충분히 많다. 그렇다면 어째서 저렇게 지친 것인가.
“이 연금술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어마어마한 계산 능력이 필요하다. 당장 나조차도 지금 머리가 아플 정도로 복잡한 계산을 해야 하지. 나조차도 목(木)속성 외에 다른 것은 연성하지 못한다. 이런 걸 전투에서 사용하려면, 분명 쇼크사로 죽거나 계산이 끝나기 전에 죽는다.”
하긴. 연성진의 보조도 없이 자연을 연성하는 연금술이다. 스승의 말대로, 이 연금술을 사용하려면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계산 능력이 필요하겠지.
“고대 연금술사들은 그 연금술을 어떻게 사용했죠?”
그렇다면 고대의 연금술사들은 무색의 연금술을 어떻게 사용했단 말인가. 그 당시 사람들은 머리가 그만큼 좋았나? 그게 아니라면.
“문헌에 따르면 고대의 연금술사들은 계산력을 보조하는 아티펙트를 사용했다고 하는 구나. 그러나 고대에 일어난 전쟁 때문에 아티펙트는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덕분에 무색의 연금술도 자취를 감췄지.”
‘역시.’
보조를 할 수 있는 아티펙트가 있었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연금술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을 리가 없다.
“그럼 스승님은 어떻게 무색의 연금술을 배우셨습니까?”
“그 부분에 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하자꾸나. 이걸 제대로 쓸 수만 있다면, 주문 없이 마법을 사용하는 셈이다. 내가 가르쳐줄 수 있는 건 목(木)속성 뿐이지만. 배워보겠느냐?”
스승답지 않게 대화의 주제를 곧바로 바꿔버리는 모습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라트는 금세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당장은 무색의 연금술을 배우는 게 먼저다. 대연금술사라고 불리는 제스맹조차 상당히 지친 기색을 보일 정도의 연금술이다. 자신이 과연 다룰 수 있기나 할까?
‘나 지금 망설인건가?
다룰 수 있기나 할까는 무슨. 나에게 망설임은 사치다.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잖아.’
공작저에서 옷을 갈아입는 도중 일어났던 해일이 다시 한 번 라트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했다. 진엔딩을 보지 못해 지구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한들, 최선을 다하고 싶다.
머나먼 미래에 내가 이만큼 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배우고 싶습니다.”
신비로운 새하얀 눈동자에 불길이 일어난다. 그 불길의 이름은 분명 확고한 의지일 것이다.
“연금술사가 강해지고 싶어서 안달을 하다니. 네가 무슨 일을 때문에 그러는지 도통 모르겠구나.”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요.”
투덜거리면서도, 조금의 망설임도, 떨림도 없는 제자의 목소리에 제스맹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네 의지는 알았다. 그러나.”
그러나 뭐? 설마 가르쳐주지 않으려는 건가? 이제까지 가르쳐줄 것처럼 말해놓고? 제스맹이 말을 끌자 청년은 눈을 찌푸렸다.
‘설마 여기까지 말해주고 뺄 생각은 아니시겠지.’
“내일부터 하자꾸나. 지금은 공작과 대작을 하러 가야하니까.”
“아! 예.”
그제야 스승이 공작과 한 약속 때문에 공작저로 향하고 있는 걸, 자신이 붙잡는 바람에 아직 출발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지한 라트는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