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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5화 (15/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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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자, 마셔.”

    케이네가 바구니에서 포션을 꺼내주자, 라트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 뭐, 포션이야 좋다. 마시면 곧바로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 거니까. 문제는 말이지.

    ‘뭐가 이렇게 많아.’

    바구니 안에 차곡하게 쌓여있는 포션을 보니 인상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다. 포션병의 개수는 대충 봐도 10개를 쉬이 넘어간다. 저걸 다 먹이겠다는 건가?

    ‘거절은, 무리겠고.’

    웃고 있는 케이네의 얼굴을 보니, 거절한다는 선택지는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라트는 한숨을 내쉬며 케이네가 건넨 포션병을 받은 후, 어쩔 수 없다는 듯 그것을 마셨다.

    포션이 입으로 들어가자, 형용할 수 없는 맛이 혀를 타고 흐른다. 그 형용할 수 없는 맛은 일단 제쳐두고. 이 포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우웩! 써!”

    억지로 포션을 전부 들으킨 라트는 목을 움켜쥐면서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특제 체력 포션을 마셨습니다. Hp가 100 상승합니다]

    맛이 없는 것치고, 효과는 확실했지만 그래고 이건 너무 쓰다.

    “흐흐흐흐. 몸에 좋은 약은 당연히 입에 쓰다. 그렇지 않느냐, 케이네?”

    “당연하죠! 헤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내가 포션을 안 만들어본 것도 아니고, 만든 포션을 마셔보기까지 한 몸이다. 정상적인 포션은 쓴맛도 있지만, 그 쓴맛을 가릴만큼 달콤한 맛도 있다.

    그런데 이건, 의도적으로 단맛을 뺀 포션이었다.

    “이건 너무 쓰잖아. 일부러 나 골탕 먹이려고 쓰게 만든 거지.”

    이건 분명히 일부러 이렇게 쓰게 만든 거다. 포션에서 무슨 에스프레소를 두 배 농축시킨 것보다 훨씬 쓴맛이 날 리가 없잖아!

    “그럴 리가 없잖니. 누나가 라트를 위해서 특별히 만든 건데. 자 이것도 마셔.”

    “하아.”

    빌어먹을. 잔소리나 듣고 끝날 줄 알았더니, 잔소리는 안하고 이렇게 고문을 할 줄이야. 케이네의 표정을 본 그녀가 어떻게든 저 포션을 전부 먹일 생각이라는 것을 깨닫고 입술을 씹었다.

    순간 케이네의 입가에 소악마의 미소를 보았으나, 이것이 스승과 그녀를 걱정시킨 인과응보라고 생각하고 얌전히 다음 포션병을 받았다.

    *****

    “입어라.”

    “이걸 입으라고요?”

    제스맹이 건넨 화려한 옷에 라트는 혀를 내둘렀다.

    처음 그의 제자가 되었을 때는 자신이 입을 옷은 자신의 돈으로 샀으나, 그 이후 키가 크면서 샀던 옷이 전부 맞지 않게 되자, 스승과 케이네가 옷을 선물해줬었지.

    그러나 그 옷들은 전부 연금술 실험에 방해되지 않는 굉장히 활동적인 옷이었다. 그런데 지금 제스맹이 내민 옷은 어떤가. 옷에 꽉끼게 보이는 것은 물론이오, 고급 재질로 만든 옷이라 굉장히 화려해보였다.

    그냥 쳐다만 봐도 숨이 막힐 지경이다.

    “공작님을 뵈러 가는데, 아무 옷이나 입을 수는 없잖니. 그래서 일단 아무거나 사왔어.”

    이어지는 케이네의 설명에 라트는 포션을 마시느라 잊고 있던 사실을 상기했다. 조금 후 자신이 만나야하는 남자는 셀룬 왕국에서 왕 다음가는 권력을 가진 자다.

    이 정도 옷은 입어줘야 아니, 오히려 이 정도 옷이라고 해도 그의 앞에서는 초라해보일지도 모른다.

    루아타 공작은 유능했고, 그만큼 화려한 것을 좋아했다. 능력 없는 자가 화려한 것을 좋아한다면 그것은 사치이지만, 능력 있는 자가 화려한 것을 좋아한다면 그것은 정당하다.

    “지금 입으면 되나요?”

    화려한 옷이라고 해도, 무작정 거부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상대의 격을 생각하면, 자신도 그 격에 맞춰야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라. 케이네와 나는 문밖에서 기다릴 터이니 다 입으면 나오면 된다.”

    “에에! 라트, 그거 혼자 입을 수 있겠어?”

    “입을 수 있어.”

    케이네의 걱정은 괜한 걱정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평민 출신이었다면 옷을 어떻게 입는지도 몰랐을 정도로 복잡한 구조를 띄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케이네의 걱정과 달리 라트는 지구에서 살아온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대충이나마 이 옷을 어떻게 입는지 알 수 있었다.

    “진짜, 진짜로?”

    “라트가 꼬마도 아니고. 뭘 그렇게 걱정하느냐. 빨리 나오거라.”

    “아이 참! 잠깐만요 스승님!”

    과년한 처녀 앞에서 옷을 벗을 수 없는 민감한 나이라는 것을 알기에, 제스맹은 케이네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어떨 때는 괴팍하지만, 이럴 때는 한없이 자상한 스승님이다.

    ‘스승 복은 타고 났어.’

    만약 연금술사 캐릭터를 만들지 않았더라면, 아니 커스텀 스킬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제스맹이라는 NPC가 저렇게 매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줄은 영원히 몰랐겠지.

    “문제는 연금술사에 한계가 있다는 건데.”

    옷을 입으면서, 라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연금술사의 한계는 명확하다. 그러나 월드 세리아의 설정상 연금술사도 마법사와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직업이다.

    ‘아. 고대의 연금술사들은 마법사와 같이 최전방에서 싸웠다고 하지 않았던가?’

    심심해서 들여다본 설정집의 한 문구를 떠올린 라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렇게 한계가 명확한 직업인데 고대에는 마법사와 함께 최전방에서 싸웠다니.

    그렇다면 고대의 연금술사들은 연금술사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을 만들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연금술의 끝에 다다른 제스맹은 그 방법을 알고 있지 않을까?

    고민은 점점 커져 해일이 되어 라트의 머릿속을 휩쓸었다. 그러나 옷을 전부 입었기에 그 해일을 감당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공작이다.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오. 옷이 날개기는 하구나.”

    “아니거든요! 라트는 원판도 괜찮은 편이라고요!”

    케이네의 말에 라트는 머쓱하게 웃어버렸다. 그녀가 옹호해주기는 했지만, 자신도 외모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매력 스탯이 낮으니까.’

    평범한 사람의 외모를 매력 스탯으로 표기하자면 3 정도가 된다. 그러니까 현재 매력 스탯이 5인 라트의 외모는 평균보다 뛰어나기는 했지만. 귀족들의 외모와 비교하자면 평범하기 그지 없었다.

    “가시죠. 공작님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지. 가자꾸나.”

    그리고 잠시 후, 라트는 간단한 절차를 거치고서 공작의 앞에 설 수 있었다. 이곳까지 오는 길에 스승이 공작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알려주었기에 라트는 제스맹이 알려준 데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루아타 공작님을 뵙습니다.”

    “일어서라. 나는 지금 딸아이를 구해준 은인의 모습을 보려고 너를 부른거다. 은인은 고개를 조아릴 필요가 없는 법.”

    당당하 목소리가 라트의 청각을 찌르자, 라트는 그의 말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푸른색 머리카락, 그리고 엘리자넷과 똑같은 푸른색 눈동자가 눈에 보였다.

    “더욱이 그 은인이 기느투스 후작의 제자라면 더 말할 것도 없지.”

    화려한 방, 화려한 옷을 입고 화려한 의자에 앉아있었으나, 그것이 허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그의 당당함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순간 안타까움이 들었다. 이렇게 당당하고 사람이나 나는 그가 제정신일적의 모습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공작의 모습은 그가 푸른 귀신이라고 불리게 되는 때 뿐이었다.

    그는 2년 후 메인 퀘스트가 시작될 때쯤…….

    “그대가 내 철없는 딸아이를 구해주었다고요?”

    루아타 공작부인의 옥구슬이 굴러가는 것 같은 목소리에 생각이 끊겼다. 공작부인의 모습을 본 라트는 엘리자넷이 부인을 닮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공녀님이 도망친 것에 호응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정체를 몰랐기에 벌어진 일입니다만.”

    “딸아이의 모습을 몰랐다고? 부족한 자식이나 수도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아이인데.”

    이미 딸아이에게 들었던 사실이나, 공작은 재차 확인을 위해 라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니, 재차 확인할 것도 아니었다. 단지 그가 자신의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았기에 흥미를 느꼈을 뿐이다.

    “소인은 평민 출신으로 1년 전까지 로델세나 성에서 지냈고, 수도에 오고 1년 동안은 부족한 몸인지라 스승님의 밑에서 정신없이 가르침을 받았기에 셀룬 왕국의 물정을 잘 모르옵니다. 이해해주소서.”

    “후후후.”

    라트가 자신을 낮추고 있으나,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셀룬 왕국에서 왕을 제외하면 공작보다 높은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러나 자신을 낮춤에도 그는 위축되지 않고, 조금의 떨림도 없이 자신의 사정을 말했다.

    제스맹에게 미리 라트가 평민 출신이라고 언질을 받지 않았더라면 그의 출신이 몰락 귀족은 아닐까 의심했을 정도다.

    “좋은 제자를 두지 않았는가, 제스맹.”

    공작 이전에 셀룬의 마법사 길드를 통솔하는 대마법사 중 한 명으로써, 라트의 사람됨을 알아본 공작은 제스맹을 향해 부럽다는 시선을 보냈다.

    제스맹이 비록 영지도 없는 명예 후작이지만, 그의 명성과 실력 때문에 평소 제스맹과 루아타 공작은 격식을 차리지 않고 서로를 대했다.

    “말년에 복이지. 부럽냐?”

    “그래 부럽다. 내 앞에도 이런 놈이 빨리 나타나야 할 텐데.”

    루아타 공작은 혀를 차면서 안타깝다는 듯이 라트를 바라보았다. 제스맹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청년은 아르카나의 축복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 점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저 나이에 저만한 마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르카나의 축복까지 받았더라면, 제스맹과 싸워서라도 청년을 빼앗았을 것이다.

    “저희가 개인적으로 보답을 드리고 싶은데. 혹시 원하는 게 있나요?”

    “저는 물질적인 보상은 필요치 않습니다. 게다가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제 탓도 있으니 괘념치 마시옵소서.”

    골드라면 질리도록 많았다. 그리고 여기서 골드가 부족하다고 해도 제스맹에게 부탁하면 골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스승은 물질적인 욕심은 크게 없었지만, 그 명성 덕분에 벌어들이는 돈이 어마어마했으니까.

    “안타깝구나. 네가 아르카나의 축복을 받았더라면, 보답으로 너를 제자로 삼았을 것인데.”

    “뭬야? 이놈이 지금 내 앞에서 제자를 빼앗겠다고 말해?”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너무 흥분하지 말게. 그 나이에 흥분하면 위험해 제스맹.”

    ‘사이가 꽤 좋은 모양이네.’

    제스맹과 루아타 공작이 격식 없는 사이라는 걸 모르는 라트는 신기하다는 듯, 공작과 스승을 바라보았다.

    “아직 너보다는 팔팔하다, 로이!”

    “그래 결혼도 안 했으니, 팔팔할 만도 하겠구먼.”

    “뭐, 뭐가 어째!”

    마치 악우를 대하는 것 같은 스승의 모습에 라트는 고개를 저었다. 공작과 후작의 말다툼에 주변에 있던 가신들도 하나 같이 웃음을 참기 위해 헛기침을 하는 중이다.

    ‘공녀랑 그 여기사는 어디 갔지?’

    둘의 다툼 덕분에 라트는 공작에게서 눈을 때고 주변을 살펴볼 수 있었다. 분명 나중에 보자고 했으니까, 이곳에 있을 줄 알았는데.

    “엘리자넷을 찾으시나요?”

    공작과 후작은 말싸움을 하기 바쁘다.

    그리고 가신들과 케이네는 혹시나 후작과 공작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되어 그들을 주시하느라 라트의 모습을 신경 쓰지 않았으나, 그 모습이 익숙했던 공작부인은 라트의 모습을 주시하고 그에게 말을 걸었다.

    “어, 예. 그렇습니다.”

    “그 아이는 지금 벌을 받고 있는 중이에요. 오늘 하루는 시녀장에게 계속 시달릴 거랍니다. 후후.”

    그런가. 나중에 보자고 당당하게 말하기에 당연히 여기 있을 줄 알았다.

    “네놈은 언제 그 성격을 좀 고칠 테냐! 이 방에 도대체 얼마나 처바른 거야!”

    “그러는 자네는 언제까지 그렇게 돈을 안 쓰고 살 생각인가. 사람이 돈이 있으면 써야 경제가 돌아가지!”

    다시금 다툼을 보니, 이제는 그냥 서로를 물어 뜯는 수준으로 싸움이 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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