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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4화 (1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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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크윽.”

정신을 차리자 앞과 뒤, 배와 등에서 고통을 느낀 소년이 인상을 찌푸린다. 그리고 턱을 젖혀 아래를 바라보자, 분명 칼에 꿰뚫렸을 배는 붕대가 감아져있었다.

“출혈이, 없잖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배를 살짝 만져보니, 생각보다 크게 아프지도 않았다. 분명 두 달은 요양해야했을 상처였는데, 이렇게 아물 줄이야. 사제에게 치료라도 받은 건가?

놀라움도 잠시, 정신을 차린 라트가 주변을 살펴본다. 바닥에 깔린 붉은색 카펫, 베이지색 벽. 그리고 고급스러운 장식까지. 수도에 이런 사택을 가지고 있는 귀족은 많지 않다.

‘공작저인가.’

공녀님을 지키다가 이 꼴이 났으니, 당연히 공작저로 실려왔을 것이다. 그런데 나 어째서 기절했더라?

‘여자 목소리가 들리고, 기절했던 것 같은데.’

갑작스러운 충격에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기절해버렸다. 그래도 살아있는 것을 보니, 목소리의 주인공이 강도 일당과 한패는 아니었다는 뜻이리라.

“일어났어?”

바로 그 때, 닫혀있던 문이 열리더니 엘리자넷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녀는 라트가 일어났다는 사실에 안도한 표정을 지으며 방으로 들어왔다.

그 얼굴에는 수많은 의문이 묻어있었으나, 그가 직접 알려주는 게 아니라면 어떤 것도 묻지 않기로 다짐했으니 어제 밤 보여준 그 힘에 대해 물어볼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엘리자넷을 뒤따라 또 다른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머리에 보라색 눈동자. 이름이 세스라였던가?’

몽롱해져가는 정신 속에서 분명 그런 이름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죄송합니다!”

“아하.”

그리고 곧바로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구하는 세스라의 목소리에 라트는 곧바로 상황을 깨달았다. 저 목소리, 분명 어제 자신을 기절시킨 목소리였다.

내가 공녀를 노리는 강도인줄 알고, 앞뒤고려하지 않고 자신을 날려버린 것이다.

“됐어. 공녀님이 갑자기 사라졌으니, 너도 많이 놀랐겠지. 이해해.”

솔직히 말하면 짜증이 안 나는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살았으니까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위기에 빠진 아가씨를 구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구해줘서 고마워.”

지구에서도 보기 드문 미녀 두 명이 감사의 표시로 고개를 숙이자, 라트는 무안한 듯 볼을 긁적였다.

“고개 좀 들어주시겠습니까, 공녀님?”

무안함을 감추기 위해서 엘리자넷 공녀에게 황급히 말을 걸었으나, 그의 말에 엘리자넷은 고개를 들면서 웃어버렸다.

“됐어. 이제 와서 존대는 무슨. 우리 친구하자.”

“어찌 평민인 제가 고귀하신 공녀님과…….”

“후작님의 제자라는 것만으로도 자격은 충분해. 그리고 목숨 걸고 날 지켜줬잖아. 기느투스 후작님의 제자가 아니었더라도, 심지어 평민이 아니라 노예라도 친구라고 생각했을 거야.”

라트는 공녀를 바라보았다. 친구인가? 귀족과 친분을 쌓아두면 나중에 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혹시 나 때문에 죽을 뻔해서 내가 싫어졌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럼 존대는 그만둬. 소름 돋을 거 같아.”

공녀는 라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 손을 잡는다면 그녀와 친구가 되는 것이겠지. 라트는 잠시 망설이다가, 공녀의 눈이 슬퍼지는 것을 발견하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정식으로 소개할게. 엘리자넷 시르 루아타, 엘리라고 불러도 돼.”

그러자 엘리자넷은 밝게 웃으면서 자신을 소개했다. 선뜻 자신을 애칭으로 불러도 괜찮다는 것을 보면, 그녀가 진심으로 라트를 친구로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라트. 성은 없어.”

소년과 소녀는 마주잡은 손은 흔들었다. 그리고 공녀와 그녀의 수호기사가 눈치 채지 못하게, 라트는 슬픈 눈으로 공녀를 바라보았다.

“나 몇 시간이나 쓰러져있던 거야?”

그것은 아주 잠깐이었고, 쏟아지는 햇살이 볼을 간질이자 라트는 엘리자넷에게 시간을 물었다. 낮인 것을 보니 적어도 하루쯤은 기절해있다는 뜻일 터.

“정확히 16시간 정도 기절해있었어.”

16시간이라. 그럼 축제 2일째, 점심시간이라는 소리다.

“스승님하고 사저가 슬슬 돌아올 시간이네. 입구까지 데려다줘.”

괜히 다쳤다는 사실을 알려봐야, 걱정만 사기 때문에 라트는 길드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이내 몸이 휘청거려서 침대에 다시 쓰러졌다.

[Hp가 50% 이상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격한 행동을 하실 수 없습니다]

‘지랄하고 있네, 진짜.’

건강 스탯이 얼마나 낮기 때문에 사제의 신법으로 상처를 치료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그냥 포인트 손해 감수하고 스탯을 좀 찍어?’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메인 퀘스트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포인트 손해를 볼 필요는 없다. 이번 일이 특별했을 뿐, 앞으로 메인 퀘스트가 시작하기 전까지 이런 일이 또 일어나리라는 보장도 없다.

“부축 좀 해줄래? 걷기가 힘들어.”

“그, 아직 돌아가실 수 없습니다.”

“뭐?”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소년이 눈을 부릅뜨고 반협박조로 말한 여기사를 노려보았다. 설마 사건에 연루되었으니까 조사가 필요하다는 헛소리를 지껄일 생각인가.

마음 같아서는 욕설을 내뱉고 싶었으나, 라트의 시선에 여기사가 땀을 흘리자 그녀가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튀어나오려던 욕설을 삼켰다.

“세스라. 이럴 때 그렇게 말하면, 애가 오해하잖아.”

공녀는 세스라의 말주변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라트에게 눈을 돌렸다.

“있잖아, 아버님이…….”

“일어났느냐?”

공녀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첫눈에 괴팍해 보인다고 느낄 수 있는 인상을 가진 노인이 방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스, 스승님!”

제스맹의 등장에 라트는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으나, 그는 그런 소년의 행동에 손을 흔들었다.

“앉아있어라.”

상태는 호전됐다고 하나, 당장은 안정이 필요한 몸이다.

“공녀님께 이야기는 전부 들었다. 그 녀석들 시체는 나와 공작이 전부 처리했으니 걱정하지마라.”

라트는 쓰게 웃어버렸다. 시체라, 무거운 돌에 깔려서 쥐포처럼 찌부러진 것과 머리가 터진 그 시체를 말하는 건가. 누가 치웠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것들을 치우면서 구역질을 좀 했을 게 분명했다.

“고생했다.”

스승의 따뜻한 말 한 마디에 라트는 잡생각을 떨쳐버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친 모습을 보여드리기 싫어서 길드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이미 알고 있었을 줄이야.

‘잠깐만.’

스승이 여기 왔다는 것은 케이네도 자신이 다쳤다는 걸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사저는요?”

“너한테 먹일 포션을 가지고 오는 중이다.”

“그렇습니까.”

역시나. 라트는 예상이 맞아떨어지자 머리를 감쌌다. 조금 있으면 케이네가 잔소리 폭탄을 날릴 것이다. 으, 이래서 들키고 싶지 않았던 건데.

“그리고 네가 포션을 먹으면 공작님이 얼굴을 좀 봤으면 한다는구나. 루아타 공작의 무남독녀를 구해줬으니, 보상을 하고 싶을 거다.”

“그러겠네요.”

‘그래서 못 돌아간다고 한 건가.’

엘리자넷과 세스라를 쳐다보자, 그녀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해줬으면 됐을 것을. 왜 길드로 돌아갈 수 없다고 협박하듯이 말을 해.

“거기 여기사. 잠시 물러나주겠나? 가능하면 공녀님도 같이.”

“네, 알겠습니다. 기느투스 후작님.”

제스맹의 말에 공녀와 제스라는 후작에게 고개를 숙였다.

“나중에 봐.”

그리고 엘라자넷은 소년에게 손을 흔들었고, 제스라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고개를 숙이고 방에서 사라졌다. 두 명이 없어지자, 안 그래도 넓었던 방이 더 넓어진 기분이다.

제스맹은 문을 닫아버리고, 라트의 옆에 앉아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안 무서웠느냐?”

죽지는 않았으나, 어린 나이에 죽음의 공포와 마주한 제자가 안쓰러웠는지 그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조금은요.”

“내 이름을 걸고, 그 개새끼들이 속한 조직을 전부 박살내버리마. 믿어도 좋다.”

그의 손끝에서 평소에는 절대로 볼 수 없는 노후한 분노가 느껴진다. 제스맹은 케이네와 라트를 제자이기 전에 자식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런 분노는 너무나도 당연했고.

“제가 스승님을 안 믿으면 누굴 믿겠습니까.”

부모와 같은 그의 말에 라트는 조금이나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말없이 라트의 머리를 쓰다듬던 중.

“그걸 썼느냐?”

제스맹이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그러면서도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걸 안 썼으면 죽는 건 저였을 겁니다.”

“이해한다. 당연히 그랬어야했어. 널 잃었으면 난 절망했을 거다. 단지.”

거기까지 말한 후작은 문밖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조금 전 방에서 물러난 공녀의 흔적을 찾는 것이겠지. 라트가 수명의 연금술을 쓰는 걸 목도한 엘리자넷 공녀가 그 사실을 공작에게 말한다면.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질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공녀님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빚이 있어서 절대 누구한테 말하지는 않을 거예요.”

스승의 걱정은 타당했으나, 그것이 기우라고 생각한 라트는 웃어버렸다. 그는 공녀는 본 것을 말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아마 시체가 왜 그런 꼴이 났는지에 대해서는, 대충 둘러댔겠지.

“그렇다면 좋겠구나.”

제자의 말이니 믿어도 괜찮다고 생각한 후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불안을 지워버렸다.

“……전 아직 약합니다. 스승님.”

뜬금없는 소리라고 생각할수도 있으나, 힘을 원하는 소년은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지 깨달았기에 뜬금없는 소리가 아닌 타당한 소리였다.

“조급해하지마라. 네 재능은 내가 보장할 수 있다.”

재능인가. 스승의 말에 라트는 이를 갈았다. 제스맹의 말대로 라트의 연금술 재능은 확실히 뛰어나다.

다만, 연금술 재능만 뛰어나다는 것이 문제다.

“제가 연금술이 아니라 마법에 재능이 있었더라면 죽을 뻔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아니, 마법에 재능이 없었다고 해도 근력과 건강의 재능이 10이 됐더라면 그런 개 같은 상황까지 가지 않았을 거다. 고작 잡졸 NPC한테 죽기 직전의 상황까지 몰리다니.

‘월드 세리아를 플레이하는 유저 중에서, 게임 이해도는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내가. 고작 잡졸한테.’

치욕이다, 굉장한 치욕이었다.

“하아.”

“루베도, 알베도, 니그레도, 그리고 치트리니타스까지. 모든 연금술의 기본을 익혔는데도 갑작스런 실전에선 사용도 못했습니다.”

연금술의 문제. 대비를 한 상황에서는 실력을 뽐낼 수 있지만, 대비치 못한 상황에서는 무력하기 그지없다. 더욱이 대비를 했다고 한들, 마법사와 동등한 활약을 펼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조급해하지마라. 넌 지금도 충분히 잘해주고 있다.”

조급한 것인가. 스승의 말에 라트는 입술을 깨물었다. 메인 퀘스트, 왕국 전쟁까지 앞으로 2년 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것을 조급함이라고 말할 수 있나.

물론 스승은 그 사실을 모른다. 그러니까 저렇게 말할 수 있는 거겠지. 그러나 메인 퀘스트가 시작되면 진엔딩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야하는 라트의 입장 상 다급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라트!”

그래서 스승에게 한 마디 더 이으려고 했으나, 케이네의 등장으로 인해 그 시도는 안타깝게도 무산되고 말았다. 바구니에 한가득 포션을 들고 온 케이네의 두 눈은 부어있었고, 물기에 젖어있었다.

‘울었어?’

“이 바보야! 누나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바구니를 바닥에 떨어트린 케이네는 라트에게 달려가 그를 껴안았다. 온기가 느껴진다, 편안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1년 사이에 더욱 풍만해진 가슴에 머리가 파묻히는 바람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미, 미안.”

내가 쓰러졌다는 것에 울어줄 정도로, 나를 가족으로 생각해주는 누나다. 그러니까 음심을 보일 수는 없어서, 라트는 놀란 심장을 진정시키면서 솔직하게 사과했다.

“미안하다고 할 게 아니잖아. 이럴 땐 무서웠다고 해도 된단 말이야!”

소년의 사과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케이네는 그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 좋네. 사랑받는다는 게 느껴져서.’

스승과 사저의 손길에 자신이 굉장히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라트는 스승의 말대로 조급함을 잠시 놓아두고, 따뜻한 온기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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