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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3화 (13/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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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니가 그런다고 이놈들이 잘도 날 보내주겠다. 그리고.”

    보내줄 리가 없지. 공녀를 납치할 생각이라면 목격자를 만들어둘 리가 없을 터다. 게다가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받을 돈도 있고, 에스코트도 부탁했는데. 내가 잘도 그냥 가겠다.”

    소녀가 시녀들에게 잡히는 걸 방관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찝찝함을 그저 시녀들 때문이라고 치부한 자신도 이런 문제를 일으킨 원인이지 않은가.

    “훌륭하다, 고통 없이 죽여주마!”

    라트의 남다른 기사도에 남자는 눈을 반짝였고 검과 검이 휘둘러져 서로의 존재를 알린다.

    불가루가 날릴 정도로 치열한 공방전이 이어졌으나, 강철과 강철이 부딪치는 소리는 시끄러운 폭죽소리에 묻혀, 그 누구도 이곳을 신경 쓰지 않는 중이다.

    언뜻, 비등한 공방전이 이어졌으나 균형은 삽시간에 깨져버렸다. 라트는 떨리는 팔을 억지로 부여잡고 검을 휘둘렀으나 남자는 그의 공격을 여유롭게 피했고.

    “꺅!”

    소녀의 비명과 함께 라트는 바닥에 쓰러졌다.

    “젠……장.”

    로브가 바닥에 흘러내린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폭죽이 터졌고, 그 불빛에 소년의 배가 피범벅이 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든 일어서서 검을 들어보려고 했지만, 고통 때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노력을 한다고 했는데, 레벨 1의 한계가 이 정도일 줄이야.’

    객관적으로 보자면 이 남자의 실력은 정말로 별 거 없었다. 튜토리얼 기간이 아니어서 레벨업을 할 수 있었다라면, 아니 남은 포인트로 싸우기 전에 스탯을 찍었더라면, 아니 그것도 아니다.

    내가 연금술사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쉽게 당했을까. 고통어린 신음을 참기 위해 라트는 입술을 깨물고,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어이, 아저씨.”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신의 머리를 향해 검을 휘두르려고 하는 남자를 부른다.

    “죽기 전에 무슨 말이라도 남기실 생각이라면 들어주마.”

    “큭큭.”

    죽기 전인가? 남자의 배려아닌 배려에 라트는 웃으면서 조금 전 노점상에서 샀던 나무로 만든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담배 좀 피고 싶은데. 불 좀 빌려줄 수 있어?”

    “별난 놈이로군. 여기 있다.”

    “고마워.”

    남자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성냥에 불을 붙여서 건네주었고, 파이프 담배를 타고 폐로 들어온 연기가 다시금 소녀의 입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후우. 좋네.”

    “몸에도 좋지 않은 걸 그 어린 나이에. 하긴 이제 죽을 테니 상관없나.”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지. 라트는 웃으면서 피가 묻은 손으로 담배를 잡았다.

    “혀, 형님. 저거 보십쇼.”

    그리고 남자의 뒤에 있던 자가, 라트의 손, 정확히는 라트의 팔목을 가리켰다. 로브가 흘러내렸기에 라트의 손목은 노출되어있었고, 그 자리에는 평범하나, 평범하지 않은 팔찌가 있었다.

    “그, 그 팔찌는! 너 그걸 어디서 얻은 거냐!”

    남자는 자신의 부하와 마찬가지로 그 팔찌의 정체를 알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 이거. 우리 스승님이 나한테 준 건데.”

    “스, 스승이라고?”

    저 팔찌, 수수하기는 하지만 고도의 연금술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장식이 새겨져있다. 저 팔찌는 엘룬 왕국 아니,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팔찌다.

    “설마 네 스승이라는 작자가!”

    두 대륙 유일의 대연금술사. 제스맹 기느투스의 제자임을 가리키는 팔찌. 그것을 이런 곳에서 볼 줄이야.

    “스승이라는 작자라니. 댁보다 한참 나이 많은 분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담배 연기가 자욱히 퍼져, 남자와 그의 부하들 머리 위로 올라간다.

    “계획 변경이다. 이놈도 살려간다. 대연금술사이자 후작의 제자다. 이 녀석도 꽤 많은 돈을 부를 수 있을 거야.”

    “누가 누굴 잡아?”

    까불지 말라고, 엑스트라 새끼야. 방심한 순간, 너희의 운명은 여기까지인걸로 결정됐으니까.

    “댁들 너무 방심했어. 후우.”

    다시 한 번 연기를 내뿜고 그 연기에 손을 댔다. 그러자 라트의 손에서 불꽃이 일어나더니. 분명 폭죽 때문에 밝았던 거리가 어둠으로 물들었다.

    “뒤져.”

    [튜토리얼 기간이기 때문에 경험치가 오르지 않습니다]

    살이 뭉개지고,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귓가에 퍼진다. 그리고 벽돌 틈을 파고드는 붉은색 혈화. 그것을 보자, 구역질이 치밀어오른다. 첫 살인, 사람을 죽였다.

    ‘이건, 정당방위야.’

    그래, 정당방위다. 죽이지 않았다면 분명 내가 죽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는 아무런 잘못도 없어.

    “혀, 형님들! 이 새끼가!”

    무거운 바위가 형님들을 짓눌러 죽이자, 그 사실에 분개한 마지막 남은 졸개는 공녀를 내팽개치고 라트에게 달려들었다.

    “늦었어. 후우.”

    [튜토리얼 기간이기 때문에 경험치가 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연기를 내뿜은 라트가 다시 한 번 수명의 연금술을 시전해서 조그마한 폭발을 일으켜 남자의 머리를 터트려버렸으니까.

    “시발.”

    눈앞에서 사람의 머리가 터지는 꼴을 본 라트는 욕설을 내뱉더니, 떨리는 다리를 손으로 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냥 처음부터 이걸 썼으면 이딴 상처는 입지도 않았을 것인데. 다른 사람 앞에서는 이 스킬을 쓰지 않겠다고 존경하는 스승과 약속하는 다짐하는 바람에 이런 사단이 벌어질 줄이야.

    검을 집어넣을 힘도 없었기에 검을 질질 끌고 쓰러진 공녀에게 다가가 피가 묻은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시죠, 공녀님.”

    “으, 응.”

    “에스코트 값으로 방금 본 건 다른 사람한테는 비밀로 해주시길.”

    이제 한계다. 몸이 휘청여서 똑바로 서있을 수가 없다.

    ‘적어도 죽지는 않겠지.’

    공녀를 일으켜 세운 라트는 바닥에 주저앉으려고 했으나.

    “공녀님!”

    등 뒤에서 일어난 충격에 날아가, 벽에 머리를 처박고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괜찮으십니까? 네 이놈 잘도 공녀님을 음해하려고!”

    갑자기 나타난 여성은 검을 뽑아들고, 분노섞인 숨을 내쉬면서 검을 치켜들었다.

    “머, 멈춰 세스라! 이 사람은 날 구해준 사람이라고!”

    아마 소녀가 말리지 않았더라면, 라트는 기절한 사이에 황천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 음심, 죽음으로 보답. 예?”

    “이 바보야! 어떡해 할거야!”

    소녀는 급히 벽에 처박힌 라트에게 다가가더니 출혈이 일어나고 있는 배를 보고 인상을 일그러트렸다.

    “빨리! 세스라! 당장 이 애를 의사에게 데려가! 어서! 당장!”

    출혈이 심하다. 아마, 세스라가 아니었다고 해도, 기절했을 것이다.

    “이 아이가 누구이기에.”

    “지금 애가 누구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이렇게 내버려뒀다고 죽으면, 상처 때문에 장애가 생기면 니가 책임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빨리!”

    “아, 알겠습니다!”

    여기사는 공녀의 명에 따라 급히 라트를 걸쳐 매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달리던 도중, 소년의 팔이 삐져나왔고, 그 팔에 걸린 팔찌를 본 순간. 그녀의 눈에 절망이 깃들었다.

    너무나도 유명한 팔찌가 아닌가. 소년이 어째서 이 팔찌를 끼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후작의 직계 제자라고 함은 귀족과 비슷한 권위를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망했어요!”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깨달은 세스라는 신음을 삼키고 필사적으로 공작 저택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엘리자넷 시르 루아타 공녀는 급히 달려가는 자신의 수호기사 세스라와 그녀의 등에 업힌 라트를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나 때문에.”

    당장이라도 세스라를 따라가고 싶었으나 평생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그녀의 다리를 붙잡았다. 이건 도대체 무슨 감정이지.

    “나 때문에 다쳤어.”

    심장이 떨린다. 불안과 슬픔이 동시에 밀려온다.

    죄책감, 소녀는 단 한 번도 맛본 적 없는 죄책감을 느끼고 몸을 떨었다. 그런데 어째서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걸까?

    ‘받을 돈도 있고, 에스코트도 부탁했는데. 내가 잘도 그냥 가겠다.’

    소녀가 누구인지 끝까지 몰랐던 소년이 보답을 바라지 않고 그녀를 구해주려고 했다. 조금도 도망치려고 하지 않고, 우직하게 등을 보여줬다.

    ‘일어나시죠, 공녀님.’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으로 괴한들을 무찌르고 손을 내민 모습이 떠오른다. 헝클어진 녹색 머리카락, 까무잡잡한 갈색 피부. 그리고 시선을 빼앗는 새하얀 눈동자까지.

    소년의 모습을 떠올리자, 엘라자넷의 얼굴이 잘 익은 사과처럼 붉게 물들었다.

    “미쳤어, 미쳤나봐!”

    아니야, 절대로 아닐 거야. 공녀는 고개를 내저으며 자신의 감정을 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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