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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2화 (1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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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무례한! 당장 아가씨에게 손을 때지 못할까!”

당장은 눈에서 불을 내뿜으며 쫓아오는 시녀들을 따돌리는 게 먼저다. 라트는 소녀가 달리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인파 사이로 사라졌다.

이렇게 많은 인파 사이에서 사람을 구분하는 건 힘들다. 뒤를 바라보자, 허둥지둥하는 시녀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여기서 문제. 이미 차림새가 파악된 이상 시녀들이 이 소녀를 찾는 건 시간문제일터다.

“아저씨, 이거랑, 이거 주세요. 여기 돈이요.”

그렇다면 복장을 숨기면 되지. 시녀들과 거리가 어느 정도 벌어지자, 라트는 노점상에서 황급히 로브 두 벌을 샀다. 그리고 20실버를 주인에게 건네주고 거스름돈도 받지 않은 채 다시금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달려서, 시녀들이 시야에서 아예 보이지 않음을 깨달은 라트는 구입한 소녀에게 로브를 건넸다.

“머리 좋은데?”

라트가 로브를 산 이유를 파악한 소녀는 군말 없이 라트가 준 로브를 입고 머리를 가렸다. 평소에는 나 수상한 사람이오, 하는 차림새였으나 축제날이기에 로브를 입은 이들은 많았으니 딱히 수상하게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별 말씀을.”

라트도 구입한 로브를 착용했다. 그 직후 시녀들이 라트와 소녀를 지나쳤지만, 그 누구도 소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소녀가 입고 있던 옷을 기억하고, 그 차림새와 비슷한 자들만 눈여겨봤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은혜는 반드시 갚을게.”

“은혜라는 거창한 표현까지 쓸 일은 아니라고 보는데.”

그저 약간의 도움을 준 것 뿐. 보상을 바란 일은 아니었다.

“니가 아니었다면 난 분명 그것들한테 잡혀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설교를 들었을 거야. 그러니까 은혜가 맞아.”

뭐, 굳이 그렇게 생각하겠다는데 아니라고 말하기도 그랬다. 라트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 번 찝찝함이 느껴졌으나, 시녀들이 자신을 수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것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소녀를 바라보았다.

“빨리 가자. 이러다가는 눈치 채겠다.”

“응.”

시녀들의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난 소녀는 기분이 좋다는 듯,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축제를 구경했다.

‘여자들은 지치지도 않나?’

노점상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사는 소녀의 모습에 라트는 혀를 내둘렀다. 그 과정 중, 길드의 수련생들이 만든 노점상에도 방문하였으나 로브 덕분인지 라트를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오, 저거 사둘까?”

소녀와 함께 노점상을 돌아다니던 라트의 눈에 어떤 물건이 들어왔다.

“엑? 니 나이에 저걸 사겠다고?”

“뭐 어때.”

소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라트를 바라보았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눈에 들어온 물건을 샀다.

“곧 있으면 불꽃놀이가 시작되겠네.”

그리고 서서히 태양이 질 무렵, 라트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폭죽은 보통 연금술사들이 만드는 것이다. 그것도 루베도 학파에 속한 연금술사들이 특기로 만드는 것이다.

물론 파르스에는 제스맹이 있었고 항상 그가 폭죽을 준비해왔지만, 이번 폭죽은 스승이 아니라 케이네가 만든 폭죽이었다.

‘어떤 폭죽을 만들었을까?’

기대가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스승의 폭죽이야 새해를 맡이하면서 벌어진 축제에서 봤었으나, 케이네가 만든 폭죽은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까.

“싫다. 불꽃놀이가 끝나면 축제도 끝이잖아.”

불꽃놀이가 끝나면 저택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소녀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막상 불꽃놀이가 시작되자 소녀는 입을 다물고 눈을 반짝이면서 그것을 지켜보다가 사람들에 가려 폭죽이 제대로 보이지 않자, 라트를 잡아끌면서 사람이 없는 곳으로 향했다.

“제법이잖아.”

소녀에게 이끌리면서 하늘을 수놓는 폭죽을 보면서 미소를 짓는다. 확실히 자신은 아직 케이네를 따라가려면 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폭죽이다. 라트의 현재 적색의 연금술 기능 레벨로는 이런 폭죽을 만들 수 없다.

“1년 이내에 따라잡을 수 있으려나.”

폭죽이 터지는 소리에 라트의 말소리가 묻힌다. 그가 발전하는 만큼, 케이네도 발전하기 마련이다. 물론 성장속도는 게임 시스템을 등에 업은 라트가 압도적으로 빠르겠지만.

“있잖아.”

한참동안 불꽃놀이를 바라보고 있던 라트는 소녀가 자신의 옷을 잡아당기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내렸다.

“너 진짜 내가 누군지 모르고 날 도와준 거야?”

뜬금없는 물음이다.

“어.”

“진짜로? 사실 내 정체를 알고, 일부러 도와준 게 아니라?”

“망상병이냐.”

“우씨!”

입술을 삐죽 내밀고, 라트를 위협하기 위해 앙증맞은 손을 들어올리는 소녀를 보고 라트는 웃어버렸다. 아, 진짜로 예쁘다. 이 정도로 예쁜 외모라면 분명 네임드 NPC인 게 분명한데. 왜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거지?

“뭐, 조금은 기쁠지도.”

그리고 도대체 소녀의 정체가 뭐기에 이런 말을 하는 걸까. 타이밍을 잡지 못해서 이제까지 누구인지 물어볼 수 없었으나, 지금이라면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망상병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높은 위치에 있는 귀족이니까,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너, 누구…….”

그러나 이번에도 라트는 물음을 끝까지 이어갈 수 없었다. 폭죽 소리에 목소리가 묻힌 것 때문이 아니다. 왠지 등골에 서늘함 감각이 들어서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종전까지 느끼던 찝찝함이 더욱 거세져, 불길함으로 인도한다.

“안 좋은데.”

“뭐가?”

소녀의 말에 대답하지도 않은 채, 라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폭죽을 보고 싶은 갈망에 휩쌓인 소녀에게 이끌리다보니 어느 사이에 인적이 없는 골목까지 와있었다.

거기다가 막다른 골목길이다. 모든 사람들은 폭죽을 보기에 바빴다. 무슨 일이 일어나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이지 않은가.

“따라와, 빨리!”

라트는 재빨리 소녀를 이끌고 사람들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가려고 했으나. 흑색 인영이 그를 가로막았다.

“꼬마야,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는지 물어봐도 되겠니?”

친절한 물음. 그러나 그 안에 감춰진 살기를 감지한 라트는 재빨리 검을 뽑아들었다.

“꼬마라고 불릴 나이는 지난 거 같은데.”

“오, 내 검을 받아 내다니 제법이구나.”

“너, 너 누구야!”

금속과 금속이 만나 잠시 불똥이 튀어 어둠을 밝힌다. 그리고 이어지는 폭죽과 함께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가 웃고 있었다.

사내의 등장에 소녀는 당황했으나, 남자는 소녀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과연. 왜 대단하신 분께서 이런 소년이랑 단 둘이 다니는지 이해를 못했었는데.”

라트는 이를 악물고 다시 한 번 이어지는 검격을 막았다. 겨우 막는 것뿐인데도 손이 저릴 정도다. 스탯 차이가 심하다는 건가.

“그럴 만도 했군.”

어린 소년이 두 번이나 자신의 검을 막자,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상대를 바라보았다. 착실하게 교육을 받아온 자세다. 검술 길드의 수련생, 그것도 촉망받는 유망주인가?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런 짓을!”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엘리자넷 시르 루아타 공녀님, 맞으시죠?”

‘지랄하네.’

남자의 입에서 소녀의 정체가 밝혀지자 라트는 황당하다는 듯 소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덕분에 자신이 왜 그녀의 정체를 몰랐는지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당신을 납치하면, 루아타 공작님께서 저희에게 꽤 많은 돈을 주실 것 같습니다만.”

루아타 공작. 엘룬 왕국의 유일한 공작이자 후에 푸른 귀신이라고 불리는 대마법사다. 세간에서는 그의 권력이 무려 왕과 맞먹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굉장한 권력을 가진 사내다.

그가 왕에게 굉장히 호의적이지 않았더라면, 귀족파 쪽에 어마어마한 힘이 쏠렸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엘리자넷 공녀는 공작의 무남동녀 외동딸임과 동시에…….

“이 미천한 것들이!”

“조용히 하시죠.”

“으극!”

생각은 거기에서 그쳤다. 어둠 속에서 걸어온 또 다른 인영이 마법을 사용하려는 엘리자넷의 목에 칼을 들이댔기 때문이다.

‘셋, 아니 넷.’

엘라자넷을 붙잡고 있는 녀석과 골목길을 막고 있는 놈들은 종합해서 네 명이었다. 그리고 다른 녀석은 몰라도, 라트와 검을 맞대고 있는 녀석은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시발 포션도 챙겨올 걸 그랬나.’

검만 챙겨오지 말고, 포션도 같이 챙겨왔으면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포션을 먹어서 버프를 챙기면 어찌어찌 이길 수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안타깝게도 포션이 없었다.

“우선 너는 죽어줘야겠다.”

이번에도 필사적으로 검을 막은 라트는 입술을 씹었다. 연금술이라는 건 이렇게도 쓸모가 없나? 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힘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약하기 그지 없는 힘이란 말인가!

“잠깐, 걔는 아무 상관도 없어. 그냥 보내줘! 평범한 연금술사 길드 수련생이란 말이야.”

“연금술사 길드 수련생?”

공녀의 말에 남자는 잠시 라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검을 잘 놀리는 녀석이 말입니까?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로……!”

라트는 공녀를 향해 손을 내 뻗어 그 이상 말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괜히 더 말하다가는 붙잡고 있는 놈한테 한 대 맞을 기세였다.

'괜히 나 같은 놈을 변호해주다가 맞을 필요가 없잖아.'

그리고 이것들이 나를 놔줄 가능성은 전무하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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