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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1화 (1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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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그치? 이렇게 아리따운 소녀를 에스코트하고 있는 중이니까, 자부심을 가져도 좋아. 헤헤헤.”

    “네이, 네이.”

    라트는 소녀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의 성격을 대충이나마 재단할 수 있었다.

    ‘심성은 곱지만, 자뻑이 심한 여자 귀족.’

    “어, 저건!”

    무언가를 발견한 소녀가 급히 어디론가 뛰어가자 그녀의 모습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따라 달렸다.

    “저게 도박이구나!”

    소녀가 도착한 곳은 축제가 벌어지는 길거리 구석에 놓여있는 도박판이었다.

    ‘홀짝인가?’

    셀룬 왕국에서는 도박이 엄격히 금지되고 있었지만, 축제 한정으로는 민심을 위해서 도박을 허락해주었다. 물론 평소에도 음지에서는 도박이 성행하긴 했지만, 그것은 어느 나라나 똑같으니까.

    “나, 저거 해봐도 되지?”

    “내가 안 된다고 하면 안할 거냐?”

    “절대 아니지.”

    그럴 거면 뭐하러 내 의견을 묻는 것인지. 라트는 한숨을 내쉬었고, 소녀는 도박판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이번 상대는 귀여운 꼬마 아가씨인가?”

    “네. 어떻게 하는 건가요?”

    펑퍼짐하고 눈에 띄지 않는 옷을 입었기 때문인지, 도박꾼은 소녀가 귀족이라는 걸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호갱님이 걸려들었다는 심정으로 웃고 있었다.

    “이 주사위가 홀수가 나올지, 아니면 짝수가 나올지 맞추면 된다. 맞추면 건 액수의 1.5배를 주마.”

    “음. 자, 여기 70실버요.”

    “뭐?”

    걸어봐야 한 10실버나 걸겠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도박꾼은 소녀가 갑자기 거금을 걸어오자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너무 많이 걸었나요?”

    “아니, 아니야. 크흐흐흐.”

    그러나 당황은 잠시였고, 오히려 큰 호갱님의 등장에 너무나 기쁜 듯이 웃고 있었다. 이런 도박판은 대부분 사기성이 짙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저 주사위. 안쪽에 무거운 추가 있어서, 조금의 요령만 이용하면 도박꾼이 원하는 숫자가 나오게 할 수 있었다.

    그 점을 파악한 라트는 잠시 소녀를 말릴까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평민에게 1골드는 굉장히 큰돈이었지만, 귀족에게 1골드는 용돈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

    ‘알아서 하겠지.’

    도박판에서 잃어봐야, 축제가 이런 곳이라는 것을 알거다. 라트는 얌전히 소녀의 모습을 관망하기로 결정했고, 잠시 후 그의 입이 조금 벌어지고 말았다.

    “홀.”

    소녀의 아리따운 입에서 예측이 나왔다. 이걸로 네 번째다.

    첫 번째는 일부러 돈을 잃어주었다. 돈을 딴 소녀는 기쁜 표정으로 다시 1골드 걸었다.

    그래서 이제 돈을 전부 따보실까, 했는데. 이상하게도 주사위가 두 번씩이나 자신이 원하는 숫자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덕분에 1골드는 1골드 50실버로. 그리고 2골드 25실버로 늘어났다. 예상 못한 소녀의 승리에 주변에서는 소녀의 승리를 기원하는 중이었다.

    여기서 다시 홀이 나오면, 그는 파산이다. 그렇기에 도박꾼은 떨리는 손으로 주사위를 굴렸고.

    “말도 안 돼.”

    그의 예상과 달리, 주사위는 무심하게도 3을 가리켰다.

    “3골드 37실버 주세요. 50쿠퍼는 팁으로 드릴게요.”

    “크흑.”

    소녀가 손을 내밀자, 주변에 보는 시선이 많았기에 도박꾼을 침음을 삼키며 돈을 내밀었다.

    “고마워요.”

    소녀는 거침없이 도박꾼의 손에 있는 돈을 빼앗았고.

    “아가씨 대단한데!”

    당연하게도 주변에 있는 구경꾼들, 특히 도박꾼에게 돈을 잃은 자들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여러분, 제가 맥주 한 잔씩 돌릴게요.”

    “오오! 예쁜 아가씨가 마음까지 곱네!”

    “하아.”

    그 모습을 바라보던 라트는 고개를 저었다.

    “이걸로 돈 갚은 거다.”

    구경꾼들에게 맥주를 돌린 소녀가 라트에게 1골드를 내밀자, 그는 인상을 쓰고 소녀를 노려보았다.

    “따라와.”

    라트는 주변에 사람들이 없는 곳까지 간 후, 한숨을 내쉬었다.

    “사기 쳐서 벌은 돈은 받지 않는 주의다만.”

    명백한 사기였다. 설마 마법으로 주사위를 조작할 줄이야. 소녀에게 돈을 잃은 도박꾼 근처에서는 차마 이런 말을 할 수 없었기에 여기까지 온 것이다.

    “역시 알아챘구나.”

    라트의 말에 소녀는 쓰게 웃었다.

    “나중에 정직한 돈으로 가져와.”

    “정직한 돈이라. 나한테는 정직한 돈이 없는데? 전부 아버님이 주시는 돈이야.”

    그게 정직한 돈이지. 네가 번 돈이 아니라고 해도, 네 출신 덕분에 정당하게 받는 돈이잖아. 라트는 잠시 인상을 썼으나, 다음 말을 굳이 이어서 하지는 않았다.

    “하아.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정확히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라트는 자신의 어깨를 잡고 있는 손을 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조용히 따라와라.”

    고개를 돌리자 덩치가 제법 있는 남자 3명이 골목 입구를 막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도박꾼이 흥분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중이다.

    실수다, 말을 하더라도 사람이 있는 곳에서 했어야 했는데. 그 정도 돈을 잃은 도박꾼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이 사람들이 말로만 듣던 깡패야!?”

    “뭐가 그렇게 신기하냐.”

    “신기하지! 책에서나 보던 사람들을 직접 봤는데!”

    위기일발의 상황 속에서도 소녀는 여유롭기 그지없다. 물론 그건 라트도 마찬가지다. 소녀의 말에 웃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이런 곳에서 깡패짓거리나 하고 있는 NPC가 스탯이 아무리 높다고 한들, 자신보다 더 높을 리가 없다. 더욱이 스탯이 더 높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검술을 배웠을 리가 없지.

    그러니까 여유를 부릴 수 있었따.

    ‘어떻게 할까.’

    검을 뽑을까? 그게 아니면 돈을 돌려주라고 할까. 지금 사람을 죽여 봐야, 튜토리얼 기간이기 때문에 경험치를 얻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충돌보다, 화합이 낫지 않을까?

    “이것들이. 우릴 보고 웃어? 뒈지고 싶냐?

    ‘댁을 보고 웃은 게 아니라 애가 하는 말이 웃겨서 웃은 건데.’

    아무래도 화합은 무리인가보다.

    “아저씨들 통구이 되기 싫으면 그냥 가지?”

    남자들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려고 하는 낌새를 보이자 라트는 검을 꺼내려고 했으나, 그것보다 소녀의 행동이 더 빨랐다.

    마법사답게 한 손에 이글거리는 화염구를 들고 있는 모습이 평범한 사람이 보기에는 굉장히 위협적이었고.

    “마, 마법사다!”

    “튀어!”

    역시나 위협이 통했는지, 강도들은 재빨리 도망쳤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그들의 행동은 타당했다. 근접 전투 계열에 어지간히 숙련된 게 아니라면 마법사에게는 뼈도 못 추리고 당하기 마련이니까.

    “꺄하하하! 봤어? 겁먹어서 줄행랑치는 꼴하고는.”

    그 모습에 소녀는 유쾌하다는 듯이 웃었으나, 라트는 인상을 구겼다. 소녀가 지금 시전한 마법은 파이어볼이라는 명칭으로 서민들 사이에서도 굉장히 익숙한 마법이다.

    그러나 익숙한 것과 달리, 파이어볼은 화염계 마법 중에서도 중하급 난이도를 자랑하는 편이다. 언뜻 봐도 자신과 동갑, 혹은 자신보다 어린 소녀가 파이어볼을 쓸 수 있다니.

    ‘금발에 푸른 눈동자. 게다가 마법에 익숙함.’

    어쩐지 굉장히 낯이 익는 설정이다. 그러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중요 NPC라면 줄줄 꿰고 있을 것인데. 이 어린 나이에 이 정도로 마법을 쓸 수 있는 NPC라니. 도대체 누구지?

    “왜 그런 표정을 지어? 혹시 그 아저씨들이 다시 찾아올까봐 겁먹었어?”

    골목길을 빠져나왔음에도 라트의 표정이 일그러져있자, 소녀는 분위기를 환기시킬 생각으로 농담을 던졌다.

    “아니야.”

    ‘그냥 누구인지 물어보면 되잖아.’

    그래, 끙끙거리면서 소녀가 누구인지 생각할 바에야 그냥 당사자한테 물어보는 게 났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라트는 표정을 풀고 소녀에게 이름을 물어보려고 했으나 안타깝게도 라트의 시도는 무산되고 말았다.

    “아가씨!”

    소녀를 드디어 찾았다는 듯, 눈을 반짝이는 시녀가 시야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시녀의 목소리에 반응해서 다른 시녀들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히익! 도, 도망쳐!”

    그 모습을 확인한 소녀는 조금 전 자신이 쫓아낸 양아치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며, 라트의 손을 잡고 곧장 시녀들이 없는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축제날 길거리에서 추격전이라니.’

    얼떨결에 소녀와 함께 달리게 된 라트는 쫓아오는 시녀들과 소녀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이 판타지 소설에서 주로 나올 법한 전개는?

    “아가씨! 당장 거기 서세요!”

    “서라고 하면 서겠어? 난 좀 더 놀고 싶단 말이야!”

    왜 나도 도망쳐야 하는데. 라트는 황망한 눈으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나름대로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는 중이지만, 어린 나이고 게다가 마법사다. 곧 체력이 다할 것이 분명했다.

    체력이 다해 지쳐 쓰러지면, 뒤를 쫓고 있는 여성들에게 잡혀서 끌려갈 것이다.

    ‘이대로 시녀들에게 잡히게 내버려둘까?’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왠지 소녀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이렇게 필사적으로 도망칠 정도로 놀고 싶은 걸 보니 평소에는 놀지도 못하고 마법이다, 예절 교육이다, 하면서 고생하고 있으니까 오늘 정도는 놀고 싶은 거겠지.

    라트에게 있어, 이 세계는 게임에 가깝다. 노가다를 해서 기능 레벨을 올리는 것도 익숙했기에 그다지 지루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소녀는 다를 것이다. 일상이 지루하고, 축제가 즐겁게 보였을 거다.

    고등학교 시절 야자를 끝나고 학원까지 다녀온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져서 잠들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잡히기 싫지?”

    “당연하지! 내가 평소에 얼마나 저것들한테 시달리고 있는 줄 알아? 오늘은 놀 거야! 놀 거라고! 난 자유야!”

    “그럼 잠깐 실례. 소리 지르지 마라.”

    라트는 소녀를 안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이 이쪽을 쳐다보는 중이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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