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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0화 (1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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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무심코 반말이 나오고 말았기에  라트는 급히 헛기침을 하고 자신의 말을 정정하려고 했다. 그러나 소녀는 라트가 반말을한 것에 상관없다는 듯, 라트에게 드레스를 넘겼다.

    “뭘 그리 화를 내? 이 옷만 처분해도 몇 배는 받을 수 있잖아. 그럼 난 간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라트는 소녀를 말리지 않았다. 확실히 옷감 몇 개 소비해서 만든 옷의 대가라고 생각하기에, 이 드레스는 굉장히 비쌀 터다.

    ‘처분하기가 귀찮아서 문제지.’

    근처 옷가게로 간다고 해도 과연 이런 옷을 처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귀족들이 사는 곳 근처에 있는 옷가게로 가야 받아주려나? 그런 고민을 하면서 이번에야말로 문을 잠그려고 한 라트는 인상을 찌푸렸다.

    ‘어째 문만 잠그려고 하면 사람이 오는 거 같은데.’

    “네 어서 오세…….”

    인사가 도중에 끊긴다. 문을 열고 들어온 주인공이 조금 전 당당하게 길드를 나선 소녀였기 때문이다.

    “돈 좀 빌려줘. 나중에 갚을게.”

    소녀는 귀족 특유의 당당함을 무기로, 라트에게 손을 내밀었다.

    “제가 뭘 믿고 돈을 빌려드리겠습니까.”

    “뭐? 정녕 내가 누구인지 몰라?”

    “모르겠는데요.”

    미안하지만, 사실이었다. 월드 세리아의 NPC를 머리와 눈 색깔로 구분하던 라트다. 안타깝게도 이런 흔한 색깔 조합의 NPC는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셀룬 왕국의 귀족 한정이라면, 소녀가 누구인지 유추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축제일, 그것도 국왕 폐하의 생신날이다. 다른 나라 귀족들도 왔을 가능성이 높다.

    “세상에. 아무리 평민이라지만, 날 모를 줄이야.”

    소녀는 라트가 자신을 몰라본다는 사실에 충격을 먹었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누구이기에 이런 반응을 하는 것인가. 라트는 혹시나 그녀가 공주님이 아닐까, 잠시 고민해봤으나 고개를 저었다.

    셀룬 왕국의 공주중에서 금색 머리와 녹색 눈동자를 가진 이는 없었다.

    “지금 길드에는 너 혼자 있는 거지?”

    “그렇습니다만.”

    뭐지? 왜 갑자기 귀찮은 일에 휘말릴 것 같은 기분이 들까?

    “그럼 에스코트 좀 해줘.”

    ‘뭔데 이 당돌함은.’

    어느새 소녀의 제안은 돈을 빌려달라는 것에서 에스코트를 해달라는 것으로 바뀌었다. 라트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눈을 크게 떴다.

    귀족들은 다 이런가? 아니야, 당장 케이네만봐도 전혀 이러지 않잖……. 아니지, 케이네도 소녀와 다를 바가 없다. 멋대로 드레스를 골라주라고 때를 쓰지 않았던가.

    “거절한다.”

    “뭐야? 설마 레이디가 혼자 보낼 무례한은 아니겠지. 그러리라고 믿어.”

    무례한? 그래 그게 났겠다. 심심함을 이기지 못하고 수련이나 하려고 했는데 방해받고 싶지는 않았다.

    ‘잠깐만.’

    길드 상점의 문을 닫으려고 했던 이유는 심심해서였다. 물론 수련이 필요하기는 했지만, 이런 날까지 수련하기에는 뭔가 아쉽기는 하지. 케이네의 말처럼 사람이 놀 때는 놀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쓰러지고 만다.

    게다가 소녀를 에스코트한다는 명목 하에서 합법적으로 놀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게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 라트는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따.

    “빨리 와.”

    그녀는 라트가 따라오는 것이 기정사실화 됐다는 듯, 길드 문을 열고 그를 바라보는 중이다.

    “그래, 간다, 가.”

    소녀에게 들리지 않게 탄식을 내뱉은 라트는 혹시나 모를 일을 대비해, 검을 챙겨들고 소녀를 따라 문을 나섰다. 물론 길드 상점 문을 잠그는 일은 잊지 않았다.

    *****

    처음 보는 축제였기에 라트는 고개를 여기저기 돌리면서 주변을 구경하면서도 소녀의 모습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았다. 소녀는 라트보다 훨씬 축제를 구경하는데 정신이 팔려있다.

    아마 라트가 조금만 정신을 놨다면 그녀와 떨어졌을 것이다.

    ‘찝찝한데.’

    분명 왁자지껄 떠드는 목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축제의 한복판이지만, 왠지 모르게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요전에 얻은 기능 때문인가?’

    일주일 전, 밤늦게 검술을 습득하던 라트는 직감이라는 기능을 손에 넣었다. 그 기능 때문에 찝찝함이 느껴지는 걸까? 그러나 주변을 둘러봐도 딱히 미행을 하는 이는 없는 것 같았다.

    “우와! 나 저거 먹고 싶어!”

    소녀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에 찝찝함을 지운 라트는 그녀가 가리키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돼지고기 꼬치구이라니.’

    굉장히 서민적인 음식이고, 투박하게 먹어야하는 음식이다. 예의를 중시하는 귀족이 먹을만한 것은 아니었다.

    “아. 너도 수련생이라서 돈이 없으려나? 곤란하네.”

    그러나 소녀는 그것을 먹으며 축제의 기분을 느끼고 싶은지, 돈이 없다는 사실에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길드의 수련생이 돈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다.

    어쩔 수 없지, 라트는 고개를 저으면서 인벤토리에서 10실버짜리 동전을 10개 꺼냈다.

    “빌려드리는 겁니다.”

    물론 정상적인 수련생이라면 돈이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라트는 돈이 넘쳤다. 에디터를 통해 얻은 천 골드는 아직까지 거의 쓰지 않았고, 더욱이 스승과 사저가 용돈을 주는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뭐야, 귀족 집안 수련생이었어? 아니지, 그럼 나를 모를 리가 없는데? 너 도대체 누구야?”

    “빌릴 겁니까, 말 겁니까.”

    “빌릴 거야!”

    라트의 출신에 의문을 품던 소녀는 그가 실버를 주머니에 넣으려고 하자, 황급히 그것을 빼앗았다. 빌려주는 게 아니라 강탈해가는 느낌이 강했지만, 돈을 꺼낸 건 자신이었다.

    “이것이 서민의 맛인가!”

    “하아.”

    50쿠퍼짜리 꼬치를 물어뜯으면서 즐겁다는 표정을 짓는 소녀를 바라보며, 라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소녀의 행동 때문이 아니라, 이상한 찝찝함이 계속해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맛있어! 서민의 조잡한 맛!”

    ‘어처구니가 없네.’

    귀족처럼 보이는 소녀가 교양을 괘념치 않고 입을 크게 벌려 돼지고기 꼬치를 열심히 물어뜯는 모습이라니.

    월드 세리아를 플레이 한 시간, 그리고 이 세계에서 살아온 시간을 생각해보면 지금 이 소녀의 행동은 도저히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귀족은 확실한데.’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가 입고 왔던 옷은 대부호나 평범한 귀족의 자녀라고 해도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었다.

    ‘옷빨이 아니라, 진짜 예쁜거였어.’

    평범한 옷을 입고 교양 없이 돼지고기 꼬치를 먹어 치우고 있음에도, 그 모습은 굉장히 아름다웠다. 이 사실에 이견을 달 수 있는 존재는 없겠지.

    실제로 거리에 있는 수많은 이들이 소녀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소녀가 돼지고기 꼬치를 거의 먹었을 때쯤, 장신구를 팔고 있는 노점상이 눈에 들어왔다.

    “잠깐만 기다려. 나 저거 사고 올게.”

    은으로 만든 꽃모양 머리핀이 마음에 들었는지, 소녀는 즉시 노점상으로 달려갔다.

    “이거 얼마에요?”

    “3실버입니다, 아가씨.”

    “여기요.”

    3실버라니. 라트는 소녀가 들고 오는 장신구를 보고 눈을 찌푸렸다. 분명 조잡한 은으로 만든 장신구다. 정상적인 가격을 매기자면 1실버가 적당하겠지.

    “명백한 바가지였는데.”

    라트는 어느 사이에 소녀에게 반말을 하고 있었으나, 소녀는 라트의 반말에 뭐라고 하지 않았다. 에스코트를 해주고 있는 중이고, 돈까지 빌려주었으니 반말 정도는 해도 되는 모양이다.

    5쿠퍼 정도면 빵을 살 수 있다. 10실버라면 4인 가족의 한달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돈이다. 그리고 1골드는 평범한 서민은 평생 만질 수 없는 돈이었다.

    명백한 낭비고, 바가지였다. 그것을 알기에 라트는 소녀의 낭비를 지적했으나.

    “상관없잖아. 이런 날에는 바가지여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라고.”

    소녀는 전혀 문제없다는 표정으로 라트를 바라보았다.

    “그러냐.”

    생각해보니까, 지구에서 부모님과 함께 꽃놀이 축제를 갔을 때, 부모님도 소녀와 같은 소리를 했었다.

    ‘축제에서는 기쁜 마음으로 돈을 쓰는 거라고 하셨나?’

    소녀가 부모님과 똑같은 말을 하자, 라트는 그녀를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때, 예뻐?”

    그리고 순식간에 당황에 빠졌다. 소녀가 꽃모양 머리핀을 머리에 달고, 라트에게 가까이 접근했기 때문이다. 희미하지만, 달콤한 냄새가 체향이 코를 간질인다. 깊고 반짝이는 푸른색 눈동자가 라트의 새하얀 눈동자를 응시한다.

    “예쁘네.”

    앞서 말했듯이, 소녀가 아름답다는 건 그 누구도 이견을 달 수 없는 사실이다.

    태어나서 여자에게 이런 칭찬을 해본 적은 처음이라 조금 얼굴이 붉어지려고 하는 것을 간신히 억누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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