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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9화 (9/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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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다시금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라트는 빠른 속도로 연금술 스택을 쌓아올렸지만, 그는 현 상황이 불만족스러웠다. 확실히 게임 시스템 덕분에 연금술 기능을 빠르게 올리는 건 좋았지만.

    ‘역시 연금술은 직접적인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단 말이야.’

    연금술사가 전투에 나서기 위해선 수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모든 장비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서, 만든 장비에 인챈트도 해야 하고. 더욱이 포션과 폭탄 몇 종류도 구비해놔야, 제대로 된 전투가 가능하다.

    이 정도로 준비를 해놓지 않으면, 다른 직업군보다 못한 활약을 벌일 수밖에 없다.

    ‘하긴, 그러니까 생산직이겠지만.’

    더욱이 가장 큰 문제를 지금이 튜토리얼 기간이라는 거다. 어디까지나 캐릭터의 성장 방향을 결정하는 기간일 뿐이라, 몬스터를 잡거나 장비를 만들어도 경험치가 오르지 않는다.

    “이대로 2년은 더 보내야한다고?”

    지랄 같네. 답답한 마음이 들어, 폭탄을 제조하고 분해하는 것을 멈추고 공방에서 나왔다. 그러자 수련생을 비롯해 사범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뭔 일이래?”

    이렇게까지 분주한 모습을 본 적이 없는 라트는 머리를 긁적였다. 저렇게 많은 재료를 옮겨서 도대체 어디에 쓰려고 하는 걸까.

    “라트! 어때 연성은 해볼 만해?”

    “아직은 조금 어렵네.”

    이미 장비 연성은 물론이오, 그걸 분해까지 하는 처치입니다만. 굳이 그 사실을 케이네에게 알릴 필요는 없다. 괜히 천재성을 그녀에게 알렸다가 또다시 길드 마스터 자리를 권하면 머리가 아플 것이다.

    “그런데 사저, 오늘따라 다들 분주한 거 같은데.”

    “누나라고 부르랬잖아.”

    라트가 자신을 사저라고 부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케이네는 라트의 양쪽 뺨을 사정없이 꼬집었다.

    “아프아아, 누나.”

    “그래 꼭 그렇게 불러.”

    도대체 누나라는 호칭이 뭐가 그렇게 좋은지. 라트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라트는 작년에 스승님께 수업 받느라 길드에서 나오질 못했으니 모를 만도 하겠구나.”

    뺨에서 손을 땐 케이네는 웃음을 지었다. 라트야 작년 이 맘때쯤에는 제스맹에게 호된 가르침을 받고 있었으니, 바깥을 볼 여유는 전혀 없었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일주일 뒤면 국왕 폐하의 생신이란다. 일 년에 두 번뿐인 축제날이지.”

    “헤에. 그래서 다들 뭘 준비하고 있는 건데.”

    “이것저것 노점상에서 팔 것들? 스승님께서 묵인해주시는, 용돈을 벌 수 있는 시기니까. 다들 바쁜 거지.”

    하긴, 연금술사가 돈을 어지간히 잘 번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독립한 연금술사나 길드 마스터뿐이다. 사범들이야 받을 수 있는 돈은 오로지 급료 뿐이고, 수련생들은 숙식을 제외하고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없다.

    그러니까 지금이야말로, 돈을 벌 수 있는 절호의 시기겠지.

    “스승님하고 누나는 궁전으로 들어가야 해, 라트도 같이 갈래? 스승님의 제자라면 자격은 충분할 거야.”

    “아니, 나는 거절.”

    “왜? 누나랑 같이 가서 맛있는 거나 먹고 오자.”

    그 말에 라트는 눈을 찌푸렸다.

    “내가 아무리 평민 출신이라지만, 궁전 예절이 얼마나 빡빡한지는 알고 있어. 아마 숨 막혀서 죽을 걸?”

    게임에서도 그놈의 예절을 지키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데. 실제로는 얼마나 힘들까.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케이네야 원래 귀족 출신이고, 제스맹이야 눈치 볼 것이 없는 위치니까 상관없겠지. 그러나 라트는 일 년 동안 강해지는데 집중하고 있었기에 귀족의 예절을 알 리가 없었다.

    “아참, 그렇겠구나.”

    그런 상태로 궁전에 들어가봐야, 귀족들에게 눈총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케이네도 그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유로 길드를 부탁하겠다, 라트.”

    “스승님? 언제 오셨어요?”

    갑작스러운 제스맹의 등장에 케이네는 깜짝 놀랐지만, 이미 그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안 라트는 그 말이 무슨 뜻이냐는 듯, 노인을 바라보았다.

    “루샤도 축제날에는 휴가를 주고 싶어서 말이다.”

    루샤라면 길드 상점의 카운터를 맡고 있는 여성이다. 길드에서 가장 처음 만난 여성이기도 하고 성격도 싹싹해서 라트가 제스맹과 케이네 다음으로 길드에서 친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축제날이라고 해도 길드는 영업을 해야 해서 말이다. 아니 오히려 축제날이야말로 성수기지.”

    거짓말이다. 축제 때는 길드 상점을 이용할 모험자가 있을 리가 있나. 다들 노점상을 이용해서 먹고, 마시고, 그리고 놀기 바쁘지.

    “그래서 제자를 부려먹으려고 하시는 겁니까?”

    그러나 그 사실을 몰랐던 라트는 고개를 저었다. 한가롭게 연성이나 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초를 칠 줄이야.

    “싫으냐? 그럼 어쩔 수 없구나. 루샤에게 네가 카운터를 맞기 싫다고 해서 휴가를 줄 수 없다고 말할 수밖에.”

    “하면 되잖아요, 하면.”

    그렇게 루샤를 걸고넘어지면 할 말이 없다. 루샤에게도 휴가가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끼고 있었던 라트는 어쩔 수 없이 스승의 제안을 수락했다.

    “잘 생각했다.”

    라트가 제안을 수락하자, 제스맹은 흡족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루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려고 하다가, 다시금 고개를 돌리더니.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자신의 제자를 바라보았다.

    “놀러가고 싶으면 문은 반드시 잠그고 가거라.”

    그 말과 함께 제스맹이 1층으로 내려가자 라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거, 노인네 괴팍한 건 알아줘야 돼.

    “아무튼. 처음부터 축제날에는 길드 상점을 열 생각도 없으셨으면서.”

    케이네도 마찬가지인지 제스맹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라트도 수련생들하고 같이 노점상이라도 내보지 그래?”

    “아니 스승님 말처럼 카운터나 보려고.”

    “에에에? 너무 노력하는 거 아니야? 사람이 놀 때는 놀아야지. 안 그러면 지쳐서 쓰러진다?”

    그렇게 말하면서 미소를 지은 케이네는 라트를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가더니, 궁전에 입고갈 옷을 골라달라고 보챘다.

    ‘누나도 스승님이랑 다를 게 없어!’

    여자 옷, 그것도 드레스 같은 품격있는 옷은 난생 처음 본 라트가 마음속으로 절규한 것은 후문이다.

    *****

    “하암.”

    그리고 일주일 후 다가온 축제날, 라트는 카운터를 보면서 하품을 했다. 지루하다, 지루해. 제스맹과 케이네는 궁전으로 갔고, 길드의 사범과 수련생들은 전부 길거리로 나갔다.

    루샤조차도 휴가다. 길드에 남은 것은 라트 혼자 뿐. 일단 스승의 말대로 카운터를 보고 있었으나, 손님도 없었기에 굉장히 지루했다.

    “무슨 일이라도 안 생기려나.”

    이럴 바에야 공방에서 연금술 기능 레벨이나 검술 기능 레벨을 올리는 게 낫지 않을까?

    ‘좋아, 그렇게 하자.’

    모두가 쉬는 축제날이라지만, 이제 메인 퀘스트까지 2년도 남지 않았다.. 놀 시간이 있을 리가 없지. 라트가 문을 잠그기 위해 카운터에서 일어난 순간 길드의 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온 주인공은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는 소녀였다. 금발에 푸른 눈동자,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미인이다.

    “제법 괜찮은 가게네.”

    길드 상점을 둘러보면서 평을 내리는 것이 왠지 모를 품격이 느껴진다. 저런 품격은 하루이틀가지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분명 소녀는 귀족이었다.

    월드 세리아는 게임이었고, 연애도 할 수 있다. 게임 상에서 호감도 수치는 존재하지 않지만, 숨겨진 시스템으로 존재했다.

    ‘도트라서 연애를 할 마음이 안 들었을 뿐이지.’

    그러나 지금이라면 연애를 할 마음이 충분히 들 정도로 소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아니 당장 이 소녀가 아니라, 케이네도 굉장히 매력적이다.

    ‘당장 연애를 할 마음은 없지만.’

    연애야 일단 강해지고 나서 해도 충분하다. 그 때쯤이면 귀족 영애들도 알아서 달려들 터다. 결정적으로 아직 사랑보다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거기 직원. 괜찮은 평민 옷을 가져다줘.”

    “고객님, 여긴 옷가게가 아닌데요.”

    뭘 사러 왔는지 모르겠지만, 옷가게는 분명 이곳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있었다. 멀지 않은 거리이니, 설명해주면 알아서 가겠지.

    “사정이 있어서 거기까지 못 가. 돈이라면 지불할게.”

    ‘축제를 구경하고 싶어서 도망쳤군.’

    라트는 그제야 소녀가 도망쳤다는 것을 깨닫고, 묘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누군가가 쫓아오리라고 생각하는지 불안한 듯, 창문 밖을 바라보는 걸 보니, 확실하다.

    아마 소녀를 경호하던 수행원들은 지금쯤 난리가 났을 것이 분명했다.

    ‘뭐, 상관없겠지.’

    수행원들이 당황하고 있겠지만, 그건 라트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오히려 아까까지 심심했었는데, 그것이 소녀의 등장으로 상쇄되었으니 감사라도 해야 할 처지다.

    축제를 구경하고 싶어서 도망친 귀족 소녀라, 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상황이지 않은가.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최대한 빨리 부탁해.”

    예이, 예이. 라트는 소녀의 몸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딱 맞는 옷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평범하게 입을 수 있는 펑퍼짐한 옷 정도면 되겠지.

    ‘복잡한 건 연성진이 필요하지만, 옷 정도는 연성진 없이 만들 수 있겠지?’

    괜히 책상에 연성진을 그리면, 나중에 지우기 귀찮아진다는 것을 깨달은 라트는 수납장에서 옷감을 꺼내고는 양손을 가져다댔다. 그러자 새하얀 빛과 함께 옷감은 사라지고, 옷이 만들어졌다.

    “음? 길드 상점 직원이 아니라 연금술사였어?”

    소녀는 라트가 연금술을 사용해서 옷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꽤 놀란 듯, 그를 바라보았다.

    “이런 날에는 직원도 쉬어야죠.”

    “그것도 그러네. 아, 고마워.”

    라트가 건넨 옷을 보고 소녀는 미소를 지었다. 이런 옷을 입으면 수행원들도 당분간 자신을 찾을 수 없으리라고 확신하는 것 같은 표정이다.

    “잠깐 뒤돌아 있어.”

    설마 여기서 갈아입으려는 건가? 라트가 뒤로 돌아서자, 옷을 벗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려왔다.

    그 소리에 라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담한 건지, 겁이 없는 건지. 아무리 귀족이라지만, 이런 곳에서 옷을 벗으면 덮쳐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하는 건가?

    “됐어. 다시 돌아봐.”

    뭐, 나야 덮칠 생각은 없지만. 다른 사람이었다면 충분히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잠시 그 점을 상기시켜줄까,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다.

    “음. 이건 그냥 네가 가져. 그럼 난 이만.”

    잠깐봐도 비쌀 것 같은 새하얀 드레스를 라트에게 건넨 소녀는 길드 밖을 나가기 위해 걸음을 돌렸다.

    “자, 잠깐 돈은!”

    “아.”

    라트의 말에 소녀는 자신이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라트가 들고 있는 드레스를 뺏어 들었다. 그리고 드레스 안에 있는 주머니를 뒤지더니, 이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라트를 바라보았다.

    “너무 급하게 도망쳐 나오느라……. 놓고 왔다.”

    “장난하냐!”

    ============================ 작품 후기 ============================

    비츄형연참해주세요 // 반은 맞고 반은 틀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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