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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8화 (8/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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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진지한 물음이라. 스승의 말에 라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섣부른 추측 아니십니까, 스승님? 제가 사저를 뛰어넘으려면 한참 멀었다고요.”

    겸양을 떤 것이 아니라, 실제로 케이네와 자신의 실력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네 발전 속도라면 1년 이내에 케이네를 따라잡을 수 있다.”

    “모르죠, 벽에 막힐 수도 있잖아요.”

    이번에는 겸양이었다. 게임 시스템을 사용하는 자신이 벽에 막힐 리가 없잖은가.

    “네가 그제 뽑아낸 순수한 철이야말로 치트리니타스 학파 연금술사들이 가장 크게 느끼는 벽이다.”

    아, 그게 가장 큰 벽이었나. 라트는 무안한 듯 볼을 긁적였다.

    “케이네조차도 순수한 철을 뽑는 연금술을 배우기까지 3년. 그리고 성공하기까지 1년이 걸렸다.”

    제스맹이 보기에 케이네의 재능은 굉장히 탁월했다. 후대 연금술사 중 선두를 달릴 것은 그녀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눈앞에 있는 소년, 이제는 소년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청년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아무런 기초도 없던 네가 고작 1년 만에 가장 큰 벽을 무너트려놓고 그런 말을 해? 에잉, 양심도 없는 놈.”

    “하하.”

    제스맹이 혀를 차자, 라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1년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길드 마스터 자리는 정중하게 사양할게요.”

    “그러냐.”

    라트의 진지한 대답에 제스맹은 미소를 지었다. 길드 마스터 자리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라트가 저리 말해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결심이 선 것인지, 노인은 서랍 안에서 두꺼운 책을 꺼내들었다.

    “받아라.”

    “무슨 책입니까?”

    이 정도 두께면 책이 아니라 흉기 아닌가? 대학교 전공 서적보다 무려 2배나 두꺼웠다. 그 덕에 무게도 장난이 아니었다. 농담이 아니라, 제스맹이 책을 주었을 때 잠깐 휘청거렸을 정도로 무거웠다.

    “내가 아는 모든 연금술을 종합해 만들 수 있는 것들이 적힌 책이다. 물론 현자의 돌은 제외하고.”

    “예?”

    이런 걸 함부로 줘도 되는 건가? 현자의 돌을 만드는 방법만 안 적혀있다면 제스맹이 세간에 공개하지 않은 수많은 연구물을 만드는 방법도 이 책에 적혀있다는 소리잖아.

    “내 후계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니, 한 가지를 제외하고 내 모든 지식을 준 것이다.”

    “제가 지금 여기 적혀있는 걸 만들 수나 있겠습니까?”

    “루베도의 기본 화약, 알베도의 포션 베이스, 니그레도의 인챈트 스톤, 그리고 치트리니타스의 기본이 되는 순수한 철까지. 이해와 분해를 익혔으니, 남은 건 그 기본을 가지고 재구축 하는 것뿐. 그 단계는 내가 조언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네가 직접 부딪쳐야할 뿐이지.”

    고작 1년 만에 연금술이라는 심오한 학문의 기본 토대를 마스터한 라트를 보고 제스맹은 마음속으로 혀를 찼다. 본인은 인지하는 못하고 있겠지만, 만약 다른 연금술사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질투에 눈이 멀어 라트를 죽이려고 할 것이다.

    “그 책을 보기 전에, 주의를 하나하마.”

    주의?

    “책에 적힌 것은 나의 지식이다. 그러니 그것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항상 참신한 생각을 하도록 해라. 이 책에 있는 것은 연금술이 지금까지 발전한 것을 알려주는 지표일 뿐. 네가 새롭게 발전시킬 기술이 적힌 것은 아니다.”

    연금술은 항상 발전해왔다. 고대에는 그저 금속을 금으로 만드는 학문에서 시작되었으나, 지금은 화약을 이용해 폭탄이나 총을 만들 정도로 진보되었다.

    “네가 연금술의 마지막 단계인 재구축까지 익히고 종전에 없는 새로운 것을 연성할 수 있을 때야말로. 진정한 연금술사가 되는 것이고, 그렇게 해야 네가 원하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다.”

    “명심하겠습니다.”

    스승의 진심어린 주의에 라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연금술이 아무리 발전했다고 해도 마법보다 인식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연금술로 힘을 얻기 위해선, 보다 기술을 발전시켜야한다.

    “책은 잘 보관해두도록 해라. 절대로 잊어버리지 말고.”

    “예!”

    “그럼 따라와라. 너의 공방을 소개해주마.”

    제스맹이 방을 나가자, 라트는 잠시 감격에 젖었다.

    ‘드디어 공방을 받는구나.’

    수련생들도 개인 공방이 아니지만, 10명이서 사용할 수 있는 공방을 지급받는데 자신은 1년 동안 제스맹의 공방을 돌아다니며 수업을 받지 않았던가.

    그도 그럴 것이 라트는 연금술과 관련한 기초가 없었고, 기초가 없는 연금술사에게 공방이 있어봐야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 라트도 그 사실을 알았기에 군말을 하지 않았다.

    “이곳이 너의 공방이다. 기본적인 실험 장치들은 내가 구비해놓았다. 흔한 재료들이야 창고에 가면 있겠지만, 혹시나 필요한 재료가 있으면 루샤에게 부탁하면 구해다줄 것이다. 그럼 나는 가보마.”

    지난 1년동안 라트를 가르치느라 제스맹 본인의 실험은 뒷전에 물러나게 됐다. 이제 라트가 잠시 자신이 필요 없는 단계에 들어섰으니, 제스맹은 밀린 실험을 할 생각에 들떠, 간단한 설명을 마치고 공방에서 나가버렸다.

    “아무튼, 그 연세에 성격은 급하셔.”

    제스맹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사실에 라트는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책부터 봐볼까.”

    [대연금술사 제스맹 바르투스의 모든 정수가 담긴 책을 읽습니다.]

    게임 시스템의 보정 덕분인지 스킬이나 제작에 관련된 책을 굳이 이해하면서 읽을 필요는 없다. 그냥 책장을 넘기면 책에 적혀있는 지식을 언제든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1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4학파의 기본 연금술을 모두 익힐 수 있었다.

    [대연금술사 제스맹 바르투스의 모든 정수가 담긴 책을 전부 읽었습니다. 기능 연금술 지식의 레벨이 20, 기능 기초, 적색, 백색, 흑색, 황색의 연금술의 레벨이 각각 10씩 상승합니다]

    “미친.”

    두꺼운 책이기는 하지만, 굳이 읽을 필요가 없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전부 넘긴 라트는 눈앞에 나타난 알림창을 보고 욕설을 내뱉었다.

    얼마나 굉장한 지식이 담긴 책이기에 겨우 읽는 것만으로 기능 레벨이 이렇게 오른단 말인가.

    “재료는 창고에 있다고 했지? 제작이나 한 번 해볼까.”

    창고로 달려간 라트는 필요한 재료를 전부 인벤토리에 넣고 다시 공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가져온 재료를 연성진이 그려진 책상 위에 쏟아내고 연금술을 사용하려고 하자, 눈앞에 창이 하나 나타났다.

    이 창 안에 적혀있는 것 중 하얀색 글씨로 적혀있는 것은 재료만 있다면 제작할 수 있는 것들이다.

    반대로 빨간색 글씨로 쓰여 있는 것은 아직은 연금술 관련 기능의 레벨이 부족해서 만들 수 없는 것들이었다.

    “보자.”

    우선 가벼운 마음으로 순순한 철을 만든 라트는 그것을 이용해서 사복검을 만들어보기로 결정했다.

    [사복검을 만드시겠습니까? 소모 마나 : 200]

    그러겠다고 생각하자 손에서 불꽃이 튀면서 동시에 순수한 철을 비롯해 몇몇 장비가 사라졌다. 그리고 평소에는 일반적인 검이나, 와이어를 이용해 채찍처럼 사용할 수도 있는 사복검이 책상에 놓여있었다.

    [기능 황색의 연금술 레벨이 1 상승했습니다.]

    무려 마나의 반을 사용했지만, 결과는 좋았다. 게임 시스템의 도움 덕분에 사복검은 실수 없이 만들어졌고, 덕분에 기능 레벨도 올랐다. 이렇게 물건을 연성하다보면 연금술 레벨을 수월하게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어? 잠깐만.”

    이거 분해할 수도 있지 않나?

    [사복검을 분해하시겠습니까? 소모 마나 : 50]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굳이 재료를 소모해서 물건을 만들 필요 없다.

    포션을 만드는 백색의 연금술과 영구적인 인챈트를 부여하는 흑색의 연금술의 레벨은 올릴 수 없겠지만, 이런 식으로 반복 노가다를 하면 적색과 황색의 연금술 기능 레벨은 순식간에 오를 것이다.

    “좋았어!”

    한국인 특유의 강점인 노가다 시스템을 발견한 라트는 명상을 하면서 마나를 채우고 물건을 연성하고 분해하기를 반복하였고.

    [기능 기초 연금술 레벨이 1 상승했습니다]

    [기능 적색의 연금술 레벨이 1 상승했습니다.]

    [기능 황색의 연금술 레벨이 1 상승했습니다.]

    기능 레벨이 올라갔다는 알림창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라트가 찾아온 노가다의 시간에 행복을 느끼고 있는 중 한편에서는 노인과 여성이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관심이 없다고 했다고요?”

    “그렇다는 구나.”

    돌아오는 답변에 케이네는 기쁨과 의심, 질투와 동경. 그리고 걱정이 한곳에 섞인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평민 출신이라서 작위의 대단함을 모르는 게 아닐까요?”

    “그건 아닐 거다.”

    귀족이 평민에게 부조리한 태도를 취하는 것쯤이야 길거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라트가 평민 출신이라고 해도, 귀족 그 중에서도 지위가 높은 백작이 대단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잘 되지 않았느냐? 나는 한시름 놓았다.”

    이제 생각대로 케이네에게 길드 마스터를 넘겨줘도 라트가 아무런 반발도 하지 않을 것이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느냐?”

    “모르겠어요.”

    스승의 물음에 제자는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쁘기도 해요. 그런데 반대로 미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요.”

    케이네가 아무리 착하다고 한들, 그녀는 사람이었다. 특히나 원하지 않는 시집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백작 작위는 그녀에게 굉장히 매력적인 자리였다.

    “저보다 라트가 먼저 스승님의 제자가 됐다면, 제가 두 번째 제자였다면. 분명 라트한테 길드 마스터 자리를 주셨을 거 아니에요.”

    “그렇겠지. 라트의 재능은 케이네 너보다 대단하니까.”

    부정은 하지 않았다. 케이네도 천재이기는 하나, 라트는 그에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신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질투는 없느냐? 역사상 최고의 천재일수도 있는 연금술사를 눈으로 보고 있지 않느냐.”

    “차이가 어느 정도 나야 질투가 생기죠. 물론 질투가 안 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질투보다는 동경이 더 커요. 그리고 제 사제인걸요. 누나가 동생한테 질투를 할 수는 없잖아요.”

    너무 착해서 문제라니까. 당장 이 길드에 있는 사범들이 라트의 발전 속도를 보았다면 거품을 물고 기절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사범들과 접근시키지 않으려고 라트가 길드에 왔던 초창기를 제외하고는, 모든 교육을 자신이 도맡아서 하지 않았던가.

    “차라리 제가 떠나는 건 어떨까요?”

    “뭐?”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제가 그 아이의 앞길을 가로막는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길드 마스터, 나아가 하이 마스터 자리에 올라가서 막대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그 아이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연금술사로 성장할거에요. 스승님도 인정하시죠?”

    “그, 그렇겠지. 그러나 그게 네가 떠나는 것과 무슨 상관이냐.”

    “동생이 가장 뛰어난 연금술사가 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그걸 가로막고 싶지는 않아요.”

    제스맹은 한손으로 머리를 눌렀다. 아 아이는 너무 착해서 문제다. 연금술사라면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을 마다하지 않는 마음도 가지고 있어야하는데.

    “그리고 라트가 완전히 성장한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해요. 과연 연금술을 어디까지 발전시킬 수 있을까요?”

    “그건 나조차도 상상을 못하겠구나.”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케이네는 뼛속까지 연금술사였다. 지구로 치자면, 과학이 어디까지 발전하는지 지켜보고 싶은 과학자의 모습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니까 제가 다른 왕국으로 가서 왕실 고문 연금술사라도 맡는 게…….”

    “하아, 그만.”

    제자가 계속해서 떠난다고 말하자, 제스맹은 그녀의 말을 중지시켰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꾸나. 당장 네가 떠난다고 해도 라트가 길드 마스터를 한다는 보장도 없지 않느냐.”

    “그건, 그렇지만. 제가 설득하면.”

    “그리고 라트는 네가 자신을 아낀다는 것을 아는 녀석이다. 그런데 네 자리를 덥석 채갈 성싶으냐? 차라리 자기가 먼저 떠난다고 할 녀석이다.”

    지난 1년간 라트의 모습을 지켜본 제스맹은 그의 인격이 삐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다시는 그런 생각을 하지마라. 먼저 일어나마.”

    케이네의 공방에서 나온 제스맹은 한숨을 내쉬었다. 라트는 2년 후 이곳을 떠날 것이나, 제스맹은 차마 그 사실을 케이네에게 알리지 못했다.

    만약 이 사실을 알리면 정이 많은 케이네는 라트보고 떠나지 말라고 부탁할 것이다.

    “늙어서 제자 복이 터져서 흥에 겨워했더니, 이런 식으로 대가가 돌아오는 건가.”

    다시 한 번 이어지는 한숨과 함께 대연금술사는 늙은 몸을 이끌고 자신의 공방으로 향했다.

    ============================ 작품 후기 ============================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왔습니다...후...수술도 잘 됐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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