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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6화 (6/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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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밤, 어둠의 축복을 받은 것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잠드는 고요한 때다. 아니, 이런 중이병스러운 생각을 하려던 게 아니었다. 라트는 고개를 붕붕 젓더니 다시금 창밖을 내다보았다.

    창밖으로는 지구에서는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풍경이 보였다. 전등조차 없어 어둠으로 물든 도시. 그리고 그 위에는 수많은 별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예쁘네.”

    지구는 매연 때문에 몇몇 장소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많은 별을 볼 수 없다. 그래서 별들이 수놓아진 하늘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그렇게 수분을 보낸 라트는 정신을 차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알림창은 진엔딩을 보면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진엔딩을 볼 수 있는 방법은 모른다. 힌트조차도 없다.

    ‘한 가지 힌트가 있기는 하지만, 무용지물이란 말이야.’

    딱 한 번, 제작사 측에서 진엔딩을 볼 수 있는 힌트를 주긴 했었다. 그런데 그 힌트가 너무나도 애매모호했다.

    어떤 조건을 만족한 상태로 클리어하면 된다니. 당장 어떤 NPC가 죽고 사는지만 따져도 경우의 수가 적게는 수십 만, 많게는 수백 만 가지는 나뉘는 메인 퀘스트에서 어떤 조건을 만족하라고 하면 잘도 네 그러믑죠, 하고 알아처먹겠다.

    “젠장. 그냥 여기서 살아야 하나.”

    생각해보면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게임 속에서 살아가다니, 게임 판타지 소설을 읽어오던 세대라면 한 번쯤은 꿈꾸던 상황이 아니던가.

    그러나 라트는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사람은 원래 살던 곳에서 살아야한다. 괜히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다.

    지금도 그래, 공방에서의 난리가 끝난 이후 제스맹을 따라 사범들을 만났다.

    그 후 제스맹은 바쁘다는 듯 유유자적 사라졌고, 사범 중 한 명이 길드 건물의 지리를 알려주었다, 그 다음에는 저녁 식사를 먹은 후 앞으로 생활하는 방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별 거 아닌 것 같았지만, 사범들의 얼굴과 이름 그리고 건물의 지리를 외우느라 바쁘게 돌아다녔다. 거기에 제스맹의 팔찌 때문인지 수련생들이 라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아서 더더욱 피로가 쌓였다.

    사범이 자신의 옆에 있지 않았더라면, 몇몇은 질투에 미쳐 날뛰었을 것이 분명했다.

    여하튼 그렇게 바쁜 하루를 보냈음에도 집이 아니기 때문인지 잠이 오지 않아서, 이렇게 밤하늘을 내다보는 중이었다.

    물론 이것도 금방 익숙해지겠지. 컴퓨터와 스마트폰, 콘솔 게임기에 대한 그리움도 이곳에서 살다보면 차츰 사라질 것이다.

    ‘그렇지만 역시 돌아가고 싶어.’

    나중에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지구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해야 할 것은 최대한 강해지는 거다. 어떤 조건인지는 모르나 그 조건을 만족하고 메인 퀘스트를 깨기 위해서. 적어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메인 퀘스트를 깨기 위해서는.

    나아가 이 세계에서 살아가려면 힘이 필요했다.

    이 세계는 지구와는 다르게 물리적인 힘이 숭배 받는 세계다. 강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압도적으로 강하면 권력조차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왕조차도 드래곤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거겠지.

    문제는 이 라트라는 캐릭터 아니, 내 몸뚱이는 평범한 방법으로는 강해지기 어렵다는 거다. 하필이면 트롤 캐릭터를 만들 때 이런 시련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 또 짜증나네.”

    우선 재능과 영향력의 밸런스가 엉망이다. 검사로 절대로 대성하지 못할 재능, 마법사였다면 대성했을 재능이다. 그러나 마법사로 가자니, 영향력이 문제였다.

    그야말로 연금술사에 걸맞다고 할 수 있는 재능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생산직은 전투에 나서는 직업이 아니다. 오죽하면 생산직들이 메인 퀘스트를 깨는 방식이 직접 나서서 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쪽에 물품을 대는 것일까.

    “우선 할 수 있는데 까지는 해봐야지.”

    그러나 벌써부터 절망해서는 안 되지. 연금술과 검사가 합쳐져 상상도 못할 효과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트롤 캐릭터가 아니야. 나는 지금 새로운 가능성에 몸을 맡긴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내일 아침에 일찍 나가서, 입을 옷이랑 쓸 만한 검부터 사와야겠다.”

    마음이 가벼워진 덕분인지 잘 수 있다는 예감이 든 라트는 침대에 몸을 맡겼다. 지구의 침대보다 딱딱한 감촉에 조금 불쾌하기는 했으나, 예감은 어긋남 없이 확실히 적중하여 소년은 잠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그 후 며칠이 지났다. 입을 옷과 검을 산 소년은 저녁까지 제스맹에게서 교육을 받았고 밤에는 검술을 단련했다. 메인 퀘스트 때까지는 레벨이 오르지 않고, 훈련을 통해서는 스탯이 오르지는 않았지만, 기능과 스킬 레벨은 꾸준히 올라갔다.

    그리고 태양이 창공을 머무는 오후. 라트는 며칠동안 제스맹에게 연금술사의 역사에 듣고 있었다. 자신이 배우는 기술의 근본을 알아야 더욱 빠르게 발전할 수 있다는 그의 확고한 이론 때문이었다.

    “마법사도 학파가 나뉘는 것처럼 연금술사도 4개의 학파로 나뉘어있다.”

    제스맹은 약속대로 본인이 직접 시간을 내서 라트를 가르쳐주었다. 물론 그가 바쁠 때는 사범에게 교육을 맡겼지만, 다른 수련생들과 같이 수업을 받는 것은 철저하게 금했다.

    그도 갑작스럽게 두 번째 제제가 된 라트에게 쏟아지는 질투의 시선을 알고 있었던 거다.

    “네 학파의 이름은 각각 적색의 루베도, 백색의 알베도, 흑색의 니그레도, 황색의 치트리니타스라고 한다.”

    마법사도 각자 사용하는 원소에 따라서 학파를 나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연금술사도 학파가 나뉠 줄은 몰랐던 라트는 그의 설명을 유심히 들었다.

    “적색의 루베도는. 하아. 루베도를 설명하기 전에 이런 말하기는 뭐하지만, 몇몇 마법사가 연금술사를 깔본다는 건 알고 있겠지?”

    “네.”

    어찌 모를까. 라트 본인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는데. 똑같이 마력을 쓰면서도 몬스터를 상대할 때나 전쟁에서 압도적인 힘을 뽐내는 마법사와 달리 연금술사는 장비와 포션을 만들고 인챈트하는 것 말고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적색의 루베도는 마법사의 그런 시선 때문에 생긴 학파다. 그들은 화약을 제조하고, 제조한 화약으로 폭탄을 만들어 언젠가, 마법보다 더 위력적인 폭탄을 만드는 걸 갈구하지.”

    아무리 좋게 봐줘도, 마법사에게 시기와 질투를 느끼고 만들어진 학파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만든 대포 때문에 월드 세리아의 공성전의 판도가 뒤바뀌었으니, 그 영향력은 적지 않았다.

    “그리고 백색의 알베도에 속한 연금술사들은 흔히 연금술사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포션을 만드는 일을 한다.”

    포션을 만드는 학파도 따로 있을 줄이야.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엘릭서를 만드는 거다.”

    엘릭서, 고대의 정수 혹은 신의 눈물이라고 불리는 포션으로 그걸 마시는 것만으로 스탯이 올라간다. 효과가 좋은 것들은 스탯이 아닌, 재능을 올려주기도 하는 미친 포션이다.

    물론 그만큼 입수가 까다로워서 당장 엘릭서를 얻을 수 있는 위치를 알고 있지만, 그것을 얻기는 불가능했다.

    “다음은 흑색의 니그레도. 이들은 장비에 고유한 힘을 부여하는 자들이다. 흔히 그 연금술을 인챈트라고 말하지.”

    인챈트는 마법사가 감히 연금술사를 따라갈 수 없는 영역이었다. 마법으로는 일시적으로 무기에 효과를 부여할 수 있을 뿐이지만, 연금술사의 인챈트는 무기가 파괴되지 않은 이상 영원히 지속된다.

    그래서 인챈트가 깃든 무기를 필요로 하는 귀족들은 연금술사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황색의 치트리니타스. 내가 몸을 담고 있는 학파이자, 모든 연금술사가 뿌리를 두고 있는 학파이며 동시에 나에게 연금술을 배우고 있는 너의 학파이기도 하다.”

    잠깐만, 뭐가 남았지? 폭탄, 포션, 인챈트 말고 연금술사의 분야가 더 남아있나?

    “치트리니타스의 영역은 조합과 제작이다. 고도의 정밀함이 집약된 무기인 핸드 캐논부터 혹은 골렘 마도 병기를 제작하기도 하고, 기존의 금속들을 이용해 저번에 봤던 액체 금속 같은 새로운 재료를 연성하기 위해 노력하지.”

    라트는 제스맹이 모든 연금술사의 뿌리가 치트리니타스에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조합과 제작, 단순하지만 모든 연금술의 시작이지 않은가.

    “치트리니타스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모든 연금술사의 꿈인 현자의 돌을 만드는 것이다.”

    [제스맹의 설명을 모두 들었습니다. 연금술 지식 기능이 추가됩니다]

    드디어 연금술사의 역사에 관한 공부가 끝났나. 새로운 기능이 추가된 것을 확인한 라트는 제스맹을 바라보았다.

    “스승님은 이미 목표를 이루셨네요.”

    치트리니타스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모든 연금술사의 꿈인 현자의 돌을 연성한 연금술사가 눈앞에 있다는 것에 새삼스럽게도 감탄하고 말았다.

    “아니다.”

    “네?”

    이건 무슨 소린가. 그가 현자의 돌을 만든 것은 설정에도 명시되어있었다. 때문에 드래곤이 직접 인간에게 모습을 보였을 정도로 큰 일이 벌어졌는데.

    “확실히 나는 현자의 돌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왕국에서 지원해진 막대한 자원 덕분이었지, 내 마력을 이용해서 현자의 돌을 만든 게 아니야. 용께서도 그 점을 알고 내가 만든 현자의 돌을 부순 것이다.”

    ‘어쩐지.’

    하긴 액체 금속도 거의 완성했으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단계가 아니라는 것 때문에 공개하지 않는 노인네인데.

    제스맹의 성격에 완성한 현자의 돌을 왕에게 보여준 게 아니라, 현자의 돌을 만드는 과정부터 보여준 것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긴 했다. 그런데 이런 숨겨진 일화가 있을 줄이야.

    “순수하게 내 힘만으로 현자의 돌을 완성한다. 그것이 내 인생의 목표이니라.”

    당당하게 말하면서도, 그 말이 너무나 멀게 느껴지는 것은 착각 일까?

    “자. 궁금한 것이나, 이해가 안 되는 게 있다면 물어보아라.”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잠깐뿐이었고, 제스맹은 새로운 제자가 혹시나 궁금한 점이 있을까 물어보았다.

    “이 길드에서는 조합과 제작 밖에 배우지 못하나요?”

    “물론 나정도 되는 연금술사는 네가 원한다면 학파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연금술을 가르쳐줄 수 있다. 혹시 다른 학파의 연금술을 배우고 싶으냐?”

    본래 이 캐릭터는, 무기에 인챈트를 바르고 포션으로 능력치를 상승시킨 후 싸우는 컨셉으로 만들었다. 그러니까 인챈트와 포션은 필수적으로 배워야한다.

    그리고 제스맹이 앞서 말한 루베도 학파의 폭탄과 치트리니타스 학파의 골렘도 끌렸다.

    “전부 배우고 싶습니다.”

    제스맹은 황당한 표정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일생 한 가지 학파의 길만 걸어도 성공할 수 있을까 의문인데. 모든 학파의 연금술을 배우고 싶다고 말하는 소년의 모습에 당돌함을 넘어서 어이가 없어진 까닭이다.

    그러나 소년의 표정은 어린 아이의 치기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확고했다.

    “그러고 보니, 너의 연금술에 감탄하여, 연금술을 배우려고 하는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구나.”

    필시 이유가 있어서 저런 말을 하는거 겠지.

    “그러니까 지금 물어보도록 하마. 어째서 연금술을 배우려고 하느냐.”

    “저는 강해져야 합니다.”

    소년은 강해지는 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 강해져야한다고 확고히 말했다.

    “강해져야 한다? 그럼 마법을 배우는 게 훨씬 낫지 않느냐? 어린 나이에 마력도 제법있으니 마법을 배워도 대성할 수 있을 텐데.”

    “마법에는 재능이 없어요.”

    “흐음.”

    어린 나이임에도 자신이 마법에 재능이 없다고 선언한 소년을 보고 제스맹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소년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느꼈는지, 딱히 반문하지는 않고 진중하게 소년을 바라볼 뿐이다.

    “왜 강해지는데 집착하는 것이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진엔딩을 보고, 지구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해져야한다.

    “해야 할 일이 있다? 부모님의 복수라도 할 생각이냐?”

    “아닙니다. 부모님은 병사하셨습니다.”

    제스맹이 전형적인 사연을 묻자, 라트는 쓰게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3년 후, 저는 해야 할 일을 위해 이곳을 떠날 겁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는 누구보다 강한 연금술사가 되어야 합니다. 아니 그 누구보다 강해져야 합니다.”

    누구보다 강한 연금술사인가?

    “너, 바보더냐?”

    소년의 말에 노인은 웃어버렸다. 그런 건 불가능하다. 연금술은 권력 혹은 재산 같은 힘이 아닌, 단순한 힘을 얻기 위한 학문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노인의 말에도 소년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강한 힘을 가진 연금술사라. 과거에도 그런 목표를 가진 연금술사가 있었고, 현재도 그런 바보천치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끝은 마법과 신법을 보며 결국 절망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런 바보 같은 목표에 다시금 도전하려는 어린 새싹을 보고 노인은 다시 한 번 웃어버렸다.

    “나쁘지 않은 목표로군. 흐흐흐흐흐. 그래 어린놈이 그 정도 패기는 있어야지.”

    그 끝이 어떻게 된다고 해도, 당장은 나쁘지 않은 목표였다. 젊음에게만 허락된 패기가 깃든 눈동자였다.

    “검을 사온 이유는 분명 연금술로 몸을 보조하고, 검으로 싸우려는 거겠지?”

    “그렇습니다.”

    제스맹은 소년이 며칠 전 검을 사온 것을 눈여겨보았다. 그 때는 단지 검사를 막연히 동경해서 그런 줄 알고 있었는데. 동경 같은 어줍지 않은 것이 아닌, 확고한 목표 때문이었다.

    “네 목표에 도달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연금술로는 마법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전투 계열과 연금술을 병행한 이들이 과거에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끝이 절망이라는 것도 노인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노인은 그에게 헛된 희망을 심어주었다. 소년의 눈에 담긴 것이 패기뿐만 아니라, 간절한 염원도 함께한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간절함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정도로 허락하지 않다. 연금술, 그것도 모든 학파의 연금술을 배우면서 검까지 배울 수 있을 정도로 비범함을 갖추고 있을지는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

    “이 시간부로 역사 공부는 끝났다. 지금부터 진짜 연금술을 가르쳐주마.”

    단순히 소년이 가진 연금술에 흥미가 끌려 자신의 말을 어기고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제는 소년의 확고한 목표에 흥미를 느끼고 그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연금술을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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