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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5화 (5/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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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오, 알고 있구나. 글란츠 백작이 평민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던가?”

    “저희 왕국에서야 유명하겠지만. 셀룬 왕국에서는 글쎄요?”

    당연히 아직은 유명하지 않지. 글란츠 백작이 본격적으로 유명해지는 것은 메인 퀘스트, 왕국 전쟁이 발발한 이후였다.

    사라이 왕국에서 백작은 역전에 역전을 거듭한 왕국의 영웅이었고, 다른 왕국에서는. 음……. 그냥 죽여야 될 놈이지.

    글란츠 백작이 500의 군사로 무려 5배에 달하는 린느탐보프 왕국의 군대를 쓸어버린 ‘붉은색 대지’ 전장은 커뮤니티 내에서 뜨거운 감자 중 하나였다.

    플레이어라는 변수가 있다고 해도, 붉은색 대지에서 린느탐보프 왕국을 이길 수 있게 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물론 이길 수는 있지만, 그 방법을 적어놓은 공략이 A4 용지로 100장이 넘어갔다. 게다가 그 100장 안에 적혀있지 않은 또 다른 변수가 나타났다는 제보가 끊임없이 나타나기도 했고.

    뭐, 그만큼 글란츠 백작이 뛰어난 검술과 군사 응용 능력을 갖춘 것도 사실이지만. 월드 세리아가 굉장히 잘 만든 게임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술집 근처에서 들은 이야기에요.”

    라트는 자신이 굉장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커뮤니티에서 백작님이라고 칭송받는 글란츠 백작이 소개되어서 망정이지.

    만약 악평만 적힌 무능한 귀족의 이름이 호명되었다면, 아 그 돼지 새끼? 식으로 발언했을 것이다. 지구였다면 별 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이곳에서는 귀족 능멸죄로 사형에 처해져도 할 말이 없다.

    “그 나이에 담배에 술까지 마시는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케이네의 눈빛이 조금 날카로워지자, 라트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귀족의 자녀라는데 괜히 밉보여서는 안 된다. 아니, 신분을 고사하고 사저한테 밉보이는 순간 고생길이 훤했다.

    그리고 담배는 폈지만, 술은 못 마시는 것도 사실이었고.

    “정말 아닌 거 같네요.”

    라트의 억울한 표정에서 진실을 읽었는지, 케이네의 눈빛이 조금 온순해졌다.

    “그런 거 같구나.”

    “그런데 스승님. 한 번 단언하신 것을 깨트리신 건 이번이 처음 아니신가요?”

    “끄응. 그렇구나.”

    케이네는 조금의 질투도 걱정도 담겨있지 않은 순수한 질문을 했을 뿐이지만, 그녀의 말에 제스맹은 신음을 삼켰다.

    “그런데 무슨 일로 찾아왔느냐.”

    “어머나. 스승님답지 않게 말을 돌리시네요?”

    “마, 말을 돌린 게 아니라 순수하게 제자의 방문이 궁금해서 그런 거다!”

    “당황하기까지 하시네요. 후후후후.”

    제스맹이 당황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스승과 제자의 관계라기보다는 할아버지와 손녀 같아 보인다. 제스맹이 독신이 아니었다면, 그녀 나이쯤 되는 손녀가 있을 만도 하지.

    “그래요, 그렇다고 해드릴게요.”

    “그렇다고 해드린다니.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반응이 나타나서 찾아 왔습니다.”

    케이네의 말에 손녀의 장난에 놀아나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사라지고 철저한 탐구자의 모습으로 돌아온 제스맹은 눈을 반짝였다.

    “그게 정말이냐?”

    “제가 어찌 감히 하늘같은 스승님께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가보자꾸나. 너도 따라 오너라. 여기서 멍하니 혼자 있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저도요? 그래도 되나요?”

    “뭘 그리 놀라느냐. 너도 이제 내 제자다. 제자가 스승의 연구물을 보는 게 뭐 어때서.”

    보통 제자가 된지 하루밖에 되지 않으면 자세한 정보는 알려주지 않아야 정상이다. 특히나 연금술사나 마법사처럼 학문을 탐구하는 이들은 더더욱 그랬다.

    두 대륙에 또다른 대연금술사는 없고 제작직 캐릭터는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다른 연금술사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라트가 봐왔던 대마법사들은 제자에게도 자신의 연구물을 함부로 보여주지 않았는데.

    “빨리 오렴.”

    ‘연금술사들은 다 이런가?’

    제스맹에 이어 케이네조차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서 따라오라고 손짓했기에 라트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들을 따라 나섰다.

    제스맹의 팔찌(희귀) : 방어력 1상승

    두 대륙 유일 대연금술사 제스맹 기느투스가 만든 팔찌. 연금술 지식이 낮아 상세 정보 확인 불가능.

    ‘이 팔찌가 대단한 게 맞나봐.’

    연금술로 만든 어지간한 물품, 예를 들어 폭탄이나 총이라고 부르기에는 미안한 핸드 캐논 같은 물품은 연금술 지식이 없다고 해도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고작 팔찌 주제에 정보를 확인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을 보면 분명 제스맹의 정수가 담긴 팔찌인 게 분명했다.

    “저기, 글란츠님.”

    문뜩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인지 궁금해진 라트는 들뜬 어린아이처럼 한참이나 앞서서 걷고 있는 제스맹이 아닌, 침착하게 자신의 앞을 걷고 있는 케이네를 불렀다.

    귀족 신분으로도 꽤 오랜 시간 플레이해왔기에 그녀를 레이디라고 호칭하는 게 옳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 호칭은 어디까지나 같은 귀족이 사용할 수 있는 호칭이고. 평민은 평민답게 귀족을 부를 때는 님자를 꼬박꼬박 붙여야했다.

    “케이네 누나라고 부르렴.”

    “네에?”

    이건 무슨 정신 나간 소리야. 평민이 귀족한테 누나라고 부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네가 평민이라고 해도 심지어 평민이 아닌 노예라고 해도, 우리는 스승님의 제자야. 즉 다른 귀족들은 몰라도 너와 나는 같은 신분이란다.”

    케이네는 우리라는 말을 묘하게 강조하면서, 라트에게 동질감을 심어주려고 했다.

    ‘진심인가?’

    농담이라면 질 나쁜 농담이나 다름없었고, 진심이라면 그녀가 어떤 생활을 했기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보통 귀족은 노예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고, 평민은 자신보다 아래라는 개념에 틀어박혀있다.

    특히나 지위가 높고 나이가 어린 귀족일수록 그런 생각이 확고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한편으로는 너는 절대로 생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귀여운 사제기도 하지. 그러니까 자 어서 누나, 라고 불러보렴.”

    ‘이 여자 진심이다.’

    하긴, 글란츠 백작이 평민을 차별했더라면 커뮤니티에서 그렇게 백작님 절 가지세요. 엉엉, 하면서 빨아재끼지도 않았겠지. 그런 아버지의 성격을 닮은 건가?

    “누, 누나.”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입 사이에서 간신히 누나라는 단어를 내뱉은 라트는 얼굴에 약간이지만, 피가 몰렸다. 이건 현준의 반응이 아닌, 순수하게 라트의 기억에서 비롯된 반응이었다.

    외동아들로 태어나, 고아가 된 이후로 단 한 번도 사람들에게 호의를 받아본 적이 없고, 이런 친근한 호칭으로 부른 적이 없었기 때문일까?

    ‘라트의 반응이라고 보기는 애매하지만.’

    아직은 자신과 라트를 타인으로 취급하고 있지만, 라트는 현준이 만든 캐릭터였고 이 몸은 이제 자신의 몸이었다. 그러니까 현준의 반응이 아닌 라트의 반응이라고 해도, 자신의 반응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지 않을까?

    “후후후후, 아주 좋아.”

    그런 라트의 고민따윈 모른다는 듯, 케이네는 정신이 치유된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살면서 누나라고 불리는 날이 올 줄이야. 앞으로도 그렇게 부르렴. 자, 약속.”

    새끼손가락을 내미는 행동이 언뜻 보면 철없는 어른의 모습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케이네는 아무리 나이가 많다고 해도 20살은 넘지 않아보였기에 오히려 그런 모습이 귀엽게 보였다.

    ‘귀여워보여서 혹한 게 아니라, 그냥 약속을 하자고 하니까.’

    머릿속으로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변명을 지껄이면서 라트는 순순히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손가락도 부드럽네.’

    평민, 그것도 고아로 살아왔기 때문인지 굳은살이 베긴 자신의 손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보드라운 감촉이었다.

    “역시 애들은 금방 친해지는 구나. 늙은이는 서러워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제스맹은 제자들이 어째서 자신을 따라오지 않는 것인지 궁금하여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고, 덕분에 서로의 새끼손가락을 겹치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머나, 죄송해요. 난생 처음 누나로 불려서 기쁨이 멈추지 않아서, 스승님을 깜빡했지 뭐에요?”

    “너무하구나, 케이네. 귀여운 사제가 생겼으니 이제 이 늙은이는 쓸모가 없다, 이거냐?”

    그 모습이 영락없이 손녀의 애정을 갈구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었기에 라트는 터지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설마요.”

    그리고 입술을 깨물고 있는 라트의 옆에 있는 케이네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소악마처럼 보인 것은 착각일까?

    “소녀는 스승님께 연금술을 배우러 이곳에 왔는데, 어찌 스승님이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겠사옵니까.”

    손녀의 애정을 갈구하고 있던 할아버지를 그저 연금술 스승으로 대할 줄이야. 소악마처럼 보인 게 절대로 착각이 아니었어. 이거 분명 놀리고 있는 거다.

    실제로 케이네의 말에 치명상을 입었는지, 제스맹은 대연금술사라는 칭호가 무색하게 얼어붙고 말았다.

    “어서 오렴. 그냥 내버려두고 가면 어련히 쫓아오실 거야.”

    노인에게 원하는 반응을 얻었는지, 케이네는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라트의 손을 잡고 제스맹을 지나쳐 걸었다.

    “자, 잠깐만! 나만 빼놓고 가지 말거라!”

    잠시 후 정신이 돌아온 제스맹은 복도에 아무도 남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외롭다는 듯이 소리치면서 사라진 제자들의 뒤를 쫓았다.

    ***

    “보세요, 여기서 이렇게 하면 이런 반응이 나타나요.”

    “흐음. 이건 좀 흥미롭군.”

    공방에 도착한 라트는 그들만의 대화에 빠진 케이네와 제스맹을 내버려두고 공방 내부를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난잡하게 흩어져있는 논문들의 서두에 대연금술사 제스맹 기느투스라고 자랑스럽게 적혀있는 것을 보면 이 공방은 케이네의 공방이 아니라, 제스맹이 사용하는 다른 공방이었다.

    [대연금술사의 정수가 담긴 연구물(3)을 발견했습니다]

    “이게 뭔가요?”

    조용히 공방을 둘러볼 생각이었던 라트는 유리관에 담긴 채 여러 모양으로 변하고 있는 검은색 액체를 보고 의아한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러자 그들만의 대화에 빠져있던 케이네와 제스맹은 그가 발견한 곳을 바라보았다.

    “우와, 우리 사제가 가장 재미있는 연구물을 발견했네?”

    “으음. 설명보단 직접 만져보고 어떤 작용을 하는지 느껴보는 게 훨씬 이해가 빠를 거다.”

    제스맹은 유리관에서 액체를 꺼내서 라트에게 건네주었다.

    ‘수은처럼 생겼네.’

    수은에 중독되면 인체에 치명적이지만, 제스맹도 맨손으로 만졌으니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라트는 두 손을 곱게 모아서 액체를 받았다.

    [대연금술사의 정수가 담긴 연구물(3)을 습득하셨습니다.]

    액체 금속(재료)

    액체로 이루어진 금속. 인체에 흡수될 일은 없기에 중독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연금술을 이용하면 원하는 형태로 만들 수 있다.

    [제스맹의 팔찌(희귀)의 정보를 획득하셨습니다.]

    제스맹의 팔찌(희귀) : 방어력 1상승

    두 대륙 유일 대연금술사 제스맹 기느투스가 만든 팔찌. 현재 실험 단계인 액체 금속으로 만든 팔찌다.

    “액체, 금속?”

    ‘그래서 절대로 팔에 들어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 들어갔었구나.’

    의문이 하나 풀린 라트는 감탄어린 시선으로 팔찌를 바라보았다. 제스맹의 정수가 담긴 팔찌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설마 액체 금속으로 만든 팔찌였을 줄이야.

    “호오.”

    “우와. 스승님이 라트를 제자로 받으신 까닭을 이제 알겠네요.”

    라트가 팔찌를 보면서 감탄하는 사이, 노인과 여성은 라트를 보면서 감탄을 하는 중이었다.

    “잠깐 만지기만 했는데 이게 뭔지 알아낼 줄이야. 그래 이건 액체 금속이란 거다.”

    제스맹은 그렇게 말하는 와중에 라트의 손에 있는 액체에 손을 대자 출렁이던 액체가 순식간에 조그마한 막대기로 변했다.

    “이렇게 연금술을 사용하면 모양을 고정할 수 있다. 게다가 고체가 됐어도 액체의 성질을 조금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강철보다 훨씬 가볍고 유연하며 내구도도 뛰어나지.”

    “헤에.”

    나뭇가지를 손에 쥐고 휘둘러보니, 확실히 이 정도 크기의 철보다 가볍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거 굉장한데요? 왜 이런 게 아직 알려지지 않았죠?”

    월드 세리아에 수많은 시간을 투자했지만, 라트는 단 한 번도 액체 금속이라는 재료를 본 적도, 심지어 들어본 적도 없다. 이런 금속이 상용화됐다면 어마어마한 이슈를 불러일으켰을 게 분명한데.

    “아직 미완성인 물건을 세간에 내보일 수는 없지 않느냐.”

    “이게, 미완성이라고요?”

    도대체 어디가?

    액체의 성질을 유지하면서, 고체로 변화했다. 덕분에 굉장히 가벼웠고, 제스맹의 말대로 강철보다 가볍고 유연하고 내구성도 뛰어나다면, 완성이나 다름없잖아.

    “최종적인 목적은 연금술을 쓸 수 없는 사람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거란다.”

    “아.”

    라트는 이해를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나 연금술사에게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마나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타인이 실험 결과물을 보고 이걸로 충분하다고 아무리 말해도, 자신이 납득하지 않으면 미완성품으로 취급해버리는 거였다.

    “스승님은 으음. 좋게 말하면 자신에게는 굉장히 완고하신 할아버지란다.”

    “좋게 말하면? 그럼 나쁘게 말하면 무엇이냐.”

    “어머나, 정말로 소녀의 말을 들으시겠습니까? 어쩌면 나쁘게 말하는 쪽이 본심일지도 몰라요?”

    또다시 소악마의 미소를 짓는 케이네를 보고, 노인은 마른침을 삼키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왜 굳이 그걸 들으려고 하는 건데.’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물과 말의 공통점, 한 번 쏟아진 건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다.

    “나쁘게 말하면, 이상과 현실에 타협하지 못하고 똥고집 부리는 괴팍한 성격의 노인네, 라고 할 수 있겠네요.”

    노인은 다시 한 번 얼어붙고 말았다. 아니 이번 건 복도에서 얼어붙은 것보다 훨씬 심하다.

    “아, 이번 건 너무 심했나.”

    케이네도 노인의 반응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혀를 살짝 내밀고 웃어버렸다. 뭐, 그 모습이 심히 귀여우니까 제스맹은 정신이 돌아올 때까지 모른 척 하도록 하자.

    ============================ 작품 후기 ============================

    수술 일자는 19일 입니다. 그 이후에는 2~3일 정도는 글을 못 올릴 거 같습니다. 아, 예약으로 올리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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