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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4화 (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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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제스맹 기느투스. 그는 세계 유일의 대연금술사(아크 알케미스트)의 칭호를 받은 연금술사였으며, 천대받는 연금술사 중에서 유일하게 후작의 지위를 얻은 이였다.

    많은 이들이 그를 존경했고, 연금술사를 업신여기는 이들이라도 그를 무시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그의 업적 때문이었다. 모든 연금술사들이 연금술의 끝이라고 칭송하는 현자의 돌을 최초로 연성한 것이 그였으니까.

    그는 셀룬 왕국의 왕과 귀족들이 보는 앞에서 현자의 돌을 연성했으며, 현자의 돌로 쓸모없는 금속류를 철과 금으로 바꾸는 것까지 보여주었다.

    왕과 귀족들은 그가 보이는 기적 앞에 체면조차 잊어버리고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그러나 성에 드래곤이 출현함으로 짧았던 행복은 끝을 맺었다.

    ‘이건 아직 인간이 가질 수 없는 힘이다.’

    드래곤은 완고하게 말하며 현자의 돌을 부쉈고, 제스맹에게 다시는 현자의 돌을 연성하지 말라고 맹세시켰다.

    하지만 드래곤은 그의 업적까지 묻히는 것은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했는지, 제스맹에게 대연금술사의 칭호를 내리고 그가 현자의 돌을 연성했다는 사실을 자신의 이름을 걸고 널리 알리라고 왕에게 명령하였다.

    또한 현자의 돌로 얻을 수 있는 막대한 이득을 보상해줄 수 없지만, 셀룬 왕국을 위해 조그마한 보상을 해주었다고 한다.

    드래곤의 입장에서는 조그마한 보상이었으나, 왕국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큰 보상이었다.

    드래곤의 보물을 얻은 셀룬 왕국의 왕, 오케만 셀룬은 크게 기뻐하며 제스맹에게 후작의 지휘를 줬으며 드래곤의 이름을 걸고 그가 현자의 돌을 만들었다고 온 대륙에 알렸다.

    만약 오케만이 단순히 제스맹이 현자의 돌을 연성했다고만 알렸으면, 모든 나라의 고위층들이 증거를 대라면서 셀룬 왕국에 방문했을 것이다.

    그러나 드래곤의 이름을 대면서 이 사실을 알렸기에 증거가 남지 않았음에도, 어떤 이도 그 사실을 대놓고 부정하지는 못했다.

    드래곤이 보증한 일을 부정하는 건 드래곤의 분노를 몸소 받겠다는 것과 마찬가지고, 그게 미친 짓이라는 건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설정 상 그 미친 짓을 한 사람이 있었다. 연금술사 중 한 명이 질투심에 눈이 멀어 그것도 사람들이 들으라는 식으로 대놓고 제스맹의 업적을 부정한 것이다.

    당연히 드래곤이 그를 직접 찾아와 5년 동안 연금술을 사용할 수 없는 벌을 주고 떠났고 이 이야기는 두 대륙에 널리 퍼졌다.

    라트가 굳이 제국이 아닌 왕국의 수도에 있는 연금술사 길드에 온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물론 길드의 시설은 제국이 더 뛰어나겠지.

    그러나 가르침은 두 대륙에 있는 모든 연금술사 길드 중 이곳이 가장 뛰어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제자요?”

    수련생이 아닌 제자로 들어오라는 말을 들어서인지, 라트는 잠시 당황하고 말았다.

    “그래. 숙식 제공에 100골드도 받지 않으마. 그리고 나, 제스맹 기느투스의 지식도 전수해주지. 어때 이만하면 너한테도 좋은 제안 아니냐?”

    그는 더 이상 괴팍한 노인네가 아니었고,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어린 아이 혹은 탐구해야할 것은 발견한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확실히 그렇기는 한데.”

    “그렇기는 한데? 문제라도 있느냐?”

    딱히 문제될 건 없다. 단지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글 중에서 제스맹의 제자가 되었다는 글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해서 당황한 것뿐이다.

    이곳에 온 이유도 운이 좋으면 제스맹에게 1:1로 강습이나 몇 번 받을 수 있겠지, 하는 믿음 때문이었다.

    제스맹의 제자가 됐다는 글이 커뮤니티에 올라오지 않은 이유는 바로 제스맹은 세간에 단 한 명의 제자만 받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운이 굉장히 좋은데.’

    제스맹의 명성은 어마어마하다. 그의 제자가 되는 것만으로도 라트의 명성이 조금은 올라가겠지. 거기에 그의 제자가 된다면, 길드의 수련생보다 연금술을 더 빨리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라트는 제스맹이 마음이 변할까 싶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전혀 문제없어요.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셔서 잠깐 당황한 거뿐이에요. 꼭 제자로 받아주세요.”

    “그래?”

    제스맹은 소년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놀라지도 않고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소년에게 따라오라고 말한 후, 문 밖으로 나섰다.

    그렇게 10분 정도 걸어서 다시금 어떤 방에 들어서자 수많은 물약과 장치들이 뒤섞여있는 공방을 볼 수 있었다. 조금 전 방은 집무실 비슷한 곳이었고 제스맹의 공방은 이곳인 모양이다.

    공방에 있는 책상에 달린 서랍을 열고 무언가를 열심히 찾던 제스맹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 소년에게 다가왔다.

    “자, 이걸 받으면 넌 오늘부터 내 제자가 되는 거다.”

    제스맹이 건낸 것은 조그마한 반지, 아니 팔찌였다. 너무 작아서 팔에 들어갈 것 같지도 않았지만, 라트는 군말하지 않고 그 팔찌를 받았다.

    “차봐라.”

    “제가 차기에는 너무 작은데요?”

    “그냥 차봐. 설명해주기는 입 아프니까.”

    다시금 괴팍한 노인네로 돌아온 제스맹의 행동에 라트는 두 손가락에 들어갈까 싶은 팔찌를 우겨넣었다.

    “어?”

    그러자 정말 신기하게도 팔찌는 점점 늘어나면서 라트의 손목에 정확히 안치되었다. 금속류 특유의 살을 조이는 느낌도 없다. 마치 천으로 만든 옷같다고 할까?

    [두 대륙의 유일한 대연금술사, 제스맹 기느투스의 두 번째 제자가 되었습니다. 명성이 약간 상승됩니다.]

    그리고 팔찌를 착용하자, 제스맹의 제자가 되었다는 알림창이 나타났다.

    ‘예상은 했지만, 진짜 명성이 올라가네.’

    이 팔찌는 제스맹의 제자라는 증표임과 동시에 이 노인네가 가진 연금 기술의 정수가 담겨있다는 걸 깨달은 라트는 놀랍다는 팔찌를 바라보았다.

    “자, 그럼. 넌 이제 내 제자가 되었으니까, 내가 질문을 해도 되겠지?”

    “네?”

    보통 질문은 제자가 하는 게 아니었어? 스승이 그것도 이제 막 입문한 제자에게 무슨 질문을 하겠다고.

    “방금 네가 선보인 연금술 말이다.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 것이냐.”

    “그게 궁금하셨으면 바로 물어보셨으면 되지 않았나요?”

    제스맹의 질문에 라트는 맥이 빠졌다. 대단한 거라도 물어볼 줄 알았더니 커스텀 스킬에 대해서 물어볼 줄이야. 딱히 비밀도 아니니, 그 때 물어봤어도 대답해줬을 텐데.

    “내가 남한테 연금술 지식을 물어볼 수는 없잖느냐! 제자라면 모를까.”

    “하아.”

    이상한 곳에서 자존심이 강한 노인네다. 이러니까 다른 플레이어들이 제스맹의 제자가 되질 못했지. 어지간한 스킬을 보여준다고 한들, 이미 연금술의 끝을 본 그에게는 흥미로운 스킬이 아니었을 테니까.

    “담배가 몸에 안 좋은 건 아시죠?”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냐. 그래 뭐, 당연히 잘 알고 있지.”

    “그럼 담배를 많이 피면 당연히 일찍 죽겠죠?”

    “그건 너무 억측이지 않느냐? 포션이나 사제의 신법으로 폐를 정화하면 되는데.”

    이게 월드 세리아의 NPC, 아니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인식이다.

    담배는 분명 몸에 해롭다. 그러나 그들은 담배 때문에 더러워진 폐를 정화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담배가 건강에 좋지 않고, 수명에 직결적인 문제를 말미암을 알면서도 담배 때문에 일찍 죽는다는 사실을 부정해버린다.

    아니 그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겠지. 이곳에서 담배라는 기호품은 돈이 있는 자만 필수 있고, 그 정도 돈이 있는 이들은 포션이나, 치료를 받을 돈도 있을 테니까.

    “포션을 먹간, 신법을 받지 않지 않으면 천천히 죽어가는 셈이잖아요.”

    “뭐. 그래 그렇겠지.”

    반대로 라트는 지구에서 살았기에 담배가 수명에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고, 그래서 담배 연기를 수명으로 취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담배 연기를 수명을 취급해서, 수명을 대가로 연금술을 펼치는 겁니다.”

    “수명을 대가로? 호오.”

    제스맹은 라트가 펼친 연금술의 원리를 듣자마자, 그 즉시 담배를 피웠다.

    “그래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는군. 신기할 발상이구나. 이해, 분해, 합성을 완전히 무시하고 수명의 대가를 받아오는 셈인가?”

    그리고 라트가 한 것처럼 담배 연기에 손을 대고 집중하기를 몇 초. 당연하게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라트의 설명을 들었다고 해도, 그의 인식이 순식간에 바뀌지는 않으니까.

    “원리를 알아도, 나는 쓸 수 없는 연금술이군.”

    고개를 저으며 손을 내리고 담배를 끈 노인은 라트를 바라보았다.

    “꼬마 아니, 라트라고 했던가. 연금술에 대해서는 어디까지 알고 있느냐.”

    “전혀 몰라요.”

    “그래. 그럴 줄 알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걸 나한테 보여주지 않았겠지.”

    소년의 대답에 노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운이 좋은 줄 알거라.”

    노인이 보기에 소년은 수명을 대가로 펼친 연금술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모르고 있었다.

    “내가 아닌 다른 연금술사를 찾아갔더라면, 너는 지금쯤 실험체가 됐을 것이다. 스승으로써 첫 번째 명령이다. 그 연금술은 다른 사람 앞에서 사용하지마라.”

    “네.”

    노인이 자못 진지하게 말을 했기에, 라트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스맹의 말마따나 라트가 펼친 연금술을 다른 연금술사가 봤다면 실험체가 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따라 오거라. 오늘부터 네가 지낼 방과 네가 쓸 수 있는 공방, 아니지. 넌 오늘부터 내가 직접 기초부터 알려주도록 하마. 방을 본 이후에는 프로보스트들에게 널 소개해주마.”

    모든 길드는 총 4개의 계급이 존재한다. 첫 번째 수련생. 말 그대로 길드에서 수행을 받는 어린 아이들을 말한다.

    두 번째는 그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는 프로보스트. 지구 식으로 말하자면 선생 혹은 사범이다.

    세 번째는 각 왕국의 수도가 아닌 다른 도시에 있는 길드 건물을 맡고 있는 하이 프로보스트. 지구 식으로 말하자면 지부장이었고 실제로 하이 프로보스트라는 정식 명칭보다는 지부장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스터. 왕국에 속한 길드의 모든 것을 총괄하는 자로 셀룬 연금술사 길드의 마스터는 당연하게도 제스맹이었다.

    “그 후에는 네 사저를 보러가도록 하자구나.”

    “사저요?”

    “그래 네가 두 번째 제자이니, 당연히 첫 번째 제자가 있지 않겠느냐.”

    제스맹이 한 명의 제자만 받는다는 거야, 커뮤니티에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첫 번째 제자를 받기 전 시간대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메인 퀘스트가 시작될 때까지는 플레이를 할 수 없고 행동 방침만 정한 후 시간을 스킵해야 했기 때문에 사실상 플레이어는 제스맹의 제자가 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당연히 첫 번째 제자가 있겠지.

    이런 사실을 제쳐두고 자신을 두 번째 제자라고 했으니까 당연히 첫 번째 제자는 있겠지.

    그러나 그 제자가 여자라는 건 몰라서 반문한 거뿐이다.

    “스승님, 실례하겠습니다.”

    “오. 아무래도 네가 머무를 방보다 사저를 먼저 소개해야하겠구나. 너무 빤히 보지 말거라. 들어와라.”

    라트는 제스맹이 자신에게 경고한 까닭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제스맹의 공방에 들어온 여성이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뽀얀 피부, 은색 머릿결, 그리고 황금색 눈동자까지.

    아마 제스맹이 경고를 하지 않았더라면, 무심코 넋을 놓고 봤을지도 모른다.

    ‘은색에 황금색 눈동자. 어째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월드 세리아가 아무리 재미있는 게임이라고 해도 결국은 2d 도트 게임이다. NPC를 구별하기 위한 제일 중요한 요소는 머리와 눈의 색이었다.

    그리고 라트는 지금 저 눈과 머리 색깔의 조합을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중요한 NPC까지는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단 번에 기억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름대로 이름이 알려져 있고 게임 내에서 몇 번 마주친 NPC라는 건데.

    “어서 와라 케이네. 무슨 용무 때문에 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스승의 말을 먼저 듣도록 해라. 아, 그 전에 서로 인사부터 해야지?”

    내가 무슨 동물도 아니고. 그런 것까지 일일이 말해주지 않아도 하려고 했다. 잠시 너 색깔 조합이 누구의 조합인지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안녕하세요. 라트라고 해요.”

    “눈동자가 신비로운 아이네. 안녕, 난 케이네야.”

    라트가 고개를 숙인 것과 달리, 여성은 가볍게 인사를 하면서 그의 손목에 끼워진 팔찌를 바라보았다.

    “두 번째 제자가 생기신 걸 축하드리옵니다. 스승님.”

    “깜짝 놀라게 해줄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눈치가 빨라서야. 쯧쯧.”

    이제 보니 여성의 손목에도 라트의 팔찌와 같은 팔찌가 있었다.

    “이쪽은 라트, 평민이고 오늘부로 내 두 번째 제자가 된 꼬마다. 그리고 이쪽은 케이네뤼카흐 폰 글란츠. 평민인 너는 잘 모르겠지만, 사라이 왕국…….”

    “그, 글란츠라면!”

    그녀의 풀네임을 들은 라트는 예의없이 스승의 말을 끊어버리고 말았다.

    “사라이 왕국 유일 오러 마스터 루브그흐 폰 글란츠 백작님!?”

    왜 루브그흐 폰 글란츠를 떠올리지 못 했을까.

    평범한 NPC에게는 부여되지 않는 은색 머릿결과 황금색 눈동자의 조합을 가진 백작이자, 사라이 유일의 소드 마스터.

    포스 넘치는 언행과 그에 비례하는 실력 때문에 시라이 왕국을 좋아하는 플레이어들에게 백작님이라고 칭송받는 NPC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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