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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2화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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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아야야. 어?”

    어딘가에 부딪쳤다는 느낌 때문인지 현준은 고통에 신음했다가, 이내 자신의 목소리가 바뀌었다는 놀라고 말았다.

    “우웩, 여긴 어디야.”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러오자 현준은 주변을 살펴보았다. 좀 떨어진 곳에 보이는 큼직한 성벽, 그리고 주변에 있는 허름한 건물들.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있었다.

    “설마.”

    불연 듯 든 예감에 현준은 재빨리 눈에 보이는 우물로 달려가, 급히 물을 뜬 후 자신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허름한 거적때기를 입고 있는 갈색 피부, 녹색 머리카락, 신비로운 백색의 눈동자를 가진 인간.

    “이게 뭐야!”

    물속에 비친 모습은 현준이 아닌, 분명 조금 전 캐릭터 설정을 마친 라트의 모습이었다.

    “거 조용히 좀 해라!”

    우물가에 앉아있던 노인이 현준 아니, 라트에게 윽박을 지르자 주변의 시선이 쏠렸다. 머릿속에 당황으로 물들어있었으나, 소란을 피우면 안 된다는 예감이 들었기에 라트는 곧바로 우물가에서 벗어났다.

    달리는 도중 조금씩이긴 했지만, 현준이 아닌 라트라는 캐릭터의 정보가 머릿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라트, 16세. 부모는 어릴 때 사망. 현재 부모가 남겨준 유산이 떨어져서 거지로 생활 중.’

    머릿속에 입력되는 정보를 외우면서 어느 정도 달리자,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한적한 들판이 펼쳐졌고 라트는 주저하지 않고 그곳에 앉았다.

    ‘정리해보자.’

    지금 자신의 몸은 현준이 아닌, 조금 전 만든 라트의 몸이다. 그렇다면 이곳은 월드 세리아의 세계인가?. 조금 정신을 가다듬고 주변을 살피자, 이곳이 셀룬 왕국의 변방에 있는 로델세나 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도트로 만들어진 것만 보다가, 이렇게 현실적인 모습으로 보니 그 위용이 차원이 다르기는 했다.

    “어쩌다가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캐릭터의 행동 방침을 정하려고 할 때, 누군가 자신을 모니터 쪽으로 밀었다. 그리고 당연히 모니터랑 부딪칠 줄 알았지만, 모니터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들고 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이곳이다.

    ‘꿈?’

    그래 꿈일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볼을 꼬집어봤지만.

    “아프잖아.”

    당연하게도 고통이 느껴졌다. 물론 꿈이라고 해도 고통이 느껴질 수는 있지만, 이렇게까지 리얼한 감각이 드는 것을 보면 꿈은 아니다.

    [월드 세리아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플레이어 라트.]

    “무, 뭐야?”

    흔히 보던 알림창이다. 그러나 흔히 보던 알림창과는 달랐다. 지금까지 모니터를 통해서만 보던 알림창이 눈앞에 나타나자, 라트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지금부터 튜토리얼을 시작하겠습니다.]

    “튜토리얼은 같은 소리하지 말고, 날 내보내줘!”

    라트의 말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로 이런 곳에 왔으니까. 게임을 즐기려는 생각으로 이런 캐릭터를 만들었지, 이 캐릭터로 사는 것은 고려조차 해보지 않았다.

    [월드 세리아를 클리어하시면 나가실 수 있습니다.]

    “클리어? 월드 세리아는 엔딩이 없는 게임인데 무슨 클리어!”

    [진엔딩을 보시면 됩니다.]

    그 알림창을 본 순간, 라트는 맥이 빠진 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얼굴을 감쌌다. 진엔딩. 그것을 보기위해서 수많은 시간을 투자했지만, 단서조차 잡지 못했는데 진엔딩을 보라고?

    “불가능한 소리하지 마.”

    [불가능이 아닙니다.]

    절망에 빠진 자신을 위로하는 것 같은 알림창을 본 라트는 잠시 머리를 긁적이다가, 불현 듯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지금 내 말에 대답하고 있는 거지?”

    분명 튜토리얼만 간단하게 알려주고 사라지던 알림창이 자신의 말에 대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습니다.]

    “넌 누구야.”

    [튜토리얼의 안내를 맡고 있는 ‘요정’입니다.]

    요정 같은 소리하네. 라트는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알림창을 바라보았다.

    [사실입니다.]

    “그래, 요정이라고 치고. 날 여기에 오게 한 이유가 뭐야.”

    [저도 모릅니다. 단지 플레이어가 진엔딩을 보면 지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로 보낸 놈들이 아니라, 단순히 내 안내를 맡고 있는 역할이라는 건가.

    “지랄도 아주 그냥.”

    [욕설은 나쁜 겁니다.]

    알림창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라트는 욕설을 내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편안하게 게임이나 즐기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 게임 속에 들어왔다는 사실이 조금은 실감이 갔기 때문이다.

    “진엔딩을 볼 수 있는 힌트라도 좀 줘.”

    [죄송합니다. 저도 모릅니다.]

    “어떻게 알림창이라는 게 도움을 못 주냐.”

    진엔딩을 보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그 진엔딩을 볼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다. 과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날 이곳에 보낸 놈들은 누구인가. 목적은 도대체 뭐지?

    오만가지 생각이 라트의 머릿속을 스쳐간다.

    [튜토리얼을 시작하겠습니다. 정보라고 생각하시면 정보창이 뜹니다.]

    라트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알림창은 하던 일을 하기 위해서 튜토리얼을 안내했다.

    “그냥 스킵. 어떻게 해야 할지 대충은 알겠어.”

    [튜토리얼을 스킵하시겠습니까?]

    “어.”

    정보라고 생각하면 정보창이 뜨는 거라면, 대충 다른 창들도 어떻게 띄우는지 예상이 갔다. 라트가 월드 세리아를 해온 시간은 한 두 시간이 아니다.

    플레이한 실제 시간만 따져도 10개월이 넘어가는 시간을 투자했으니, 알림창보다 게임 내 정보를 더 잘 알고 있으면 알고 있지, 모르지는 않으리라고 확신했다.

    [게임과 달리 메인 퀘스트가 시작되기 전까지 시간 스킵이 안 됩니다. 3년 동안 최대한 강해지시길 바랍니다. 그럼 행운을 빌겠습니다.]

    확신 취소.

    “잠깐만, 야, 야!”

    시간이 스킵 되지 않는다니, 그런 건 전혀 몰랐다고! 라트는 목에 핏대가 세워질 정도로 알림창을 불렀으나, 알림창은 나타나지 않았다.

    “빌어먹을!”

    그래서 진엔딩을 보려는 유저들은 대부분 메인 퀘스트 직전까지 캐릭터의 행동 방침을 정해놓고, 시간을 스킵해서 필요한 스킬이 뜨기를 기도했다.

    필요한 스킬이 안 떴다면, 당연히 다시 로드하고 시간을 스킵하기를 반복. 무조건 자신이 원하는 스킬이 뜰 때까지 기다리는 게 일방적인 플레이 방식인데.

    그 시간 스킵도 할 수 없으니, 얌전히 3년 동안 메인 퀘스트가 일어나길 기다려야 하는 처지에 놓인 거다.

    “왜 하필 이런 트롤 캐릭터를 만들고 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난 거냐고!”

    차라리 검사나, 마법사 같이 어느 정도 공략법을 알고 있는 캐릭터였다면 나았을 것을.

    하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생산직, 그것도 그냥 생산직이 아니라 근접 전투를 하려고 만든 생산직인데 이런 일이 일어나? 이거 노린 거지?

    격분하기를 잠시, 마음을 진정시킨 라트는 우선 자신의 정보를 확인했다.

    이름 : 라트

    나이 : 16세

    칭호 : -

    레벨 : Lv 1

    Hp : 50

    Mp : 200

    경험치 : 0%

    재능

    근력 : 6/10, 건강 : 5/10, 민첩 : 5/10, 마력 : 10/10, 지혜 : 10/10, 매력 : 5/10, 행운 : 10/10

    스탯(남은 포인트 : 200)

    근력 : 6, 건강 : 5, 민첩 : 5, 마력 : 10, 지혜 : 10, 매력 : 5

    영향력

    바이올런 : 10/10, 넥스 : 8/10, 아르카나 : 0/10, 홀리 : 0/10, 애니그마 : 10/10

    일반 기능

    양손검(Lv 1 + 근력, 민첩)

    한손검(Lv 1 + 근력, 민첩)

    관찰력(Lv 1 + 지혜, 행운)

    고른 호흡(Lv 1 + 건강)

    속도 상승(Lv 1 + 민첩)

    희귀 기능

    마르쿨의 검술(Lv 1 + 근력, 민첩)  – 필요 기능 : 양손검 or 한손검

    * 공격적인 검술의 끝으로 알려진 검술로 방어를 하는 기술이 거의 없기에 실전된 검술입니다.

    신의 명상법(Lv 1 + 마력, 지혜) – 필요 기능 : 무無

    * 신들의 명상법으로 숨을 쉬는 것만으로 마력이 서서히 회복됩니다. 올바른 자세를 통해 명상을 하면 빠른 속도로 마력이 찹니다.

    초기화(에디터 패널티)

    * 세이브 로드를 할 수 없으며, 한 번 죽으면 캐릭터의 모든 데이터가 삭제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준수한 캐릭터다. 지금이라도 검사로 키울까? 잠시 고민이 들 정도의 기능과 영향력이었다. 문제는 재능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검사로 대성할 수 있는 재능은 아니었다.

    정보창을 내리면서 생각을 정리하던 라트는 정보창에 적혀있는 마지막 줄을 확인하고.

    “씨이바아아알!!”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 큰소리를 내지르며 다시 한 번 격분하고 말았다.

    에디터 패널티가 이 상황에서도 적용되고 있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내가 에디터를 사용하지 않았으면 죽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는 소리? 아니, 세이브 기능을 쓸 수 있었다는 뜻이야?

    “개지랄 좀 하지 마! 내가 미쳤지. 왜 에디터를 사용해가지고!”

    들판의 풀을 뽑고 그것을 밟으면서 광분한다. 처음에는 즐기기 위해서 에디터를 사용해 트롤 캐릭터를 만들었지만, 이내 자신이 왜 그런 멍청한 짓을 저질렀는지, 분노가 치밀었기에 죄가 없는 풀에 화풀이를 하는 것이었다.

    “하아, 하아.”

    그렇게 주변에 있던 잡초를 전부 뽑아서 던지고 엉망진창으로 밟은 후에야 간신히 제정신을 차린 라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일단 진정하자.”

    풀을 아무리 뽑아봐야 이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세이브 로드를 쓸 수 없는건 이미 정해진 상황이고,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현실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후우. 의지는 왜 사라진 거지?”

    분노를 가라앉힌 라트는 스탯 포인트가 200개나 남아있는 상황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도 의지 스탯이 사라지면서, 거기에 투자한 스탯이 돌아온 모양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튜토리얼을 할 걸 그랬다. 때늦은 후회를 하면서, 라트는 의지 스탯이 사라진 이유를 골똘히 생각했다.

    “의지는 내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건가.”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다. 만약 이 가설이 맞는다면 게임 시스템이 자신을 능력적으로는 강하게 만들어줄 수는 있어도, 정신적으로는 스스로 성장해야한다는 뜻일 터다.

    “스탯 포인트는 이득이네.”

    이럴 줄 알았으면 의지 스탯을 왕창 올려놓을 걸. 또 다시 후회가 몰려왔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스탯 포인트 200개만해도 어디인가.

    “어디다 사용할까.”

    희귀 기능을 익힐 때도 스탯 포인트가 필요하고 당장 근력이나 건강 스탯을 올리자니, 효율을 생각하면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력이나 지혜를 찍자니, 검사와 연금술사를 종합해서 키울 예정이니 성향에 맞지 않다.

    그렇게 200개의 스탯 포인트의 처분을 고민하던 라트는 결국 정보창을 닫아버렸다. 우선은 보류, 앞으로 사용할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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