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247화 (완결) (247/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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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8.

주치의 아들로서 킵차크한국을 세운 바투가 모스크바를 점령한다.

1239년.

오고타이는 마침내 금을 멸망시킨다.

1240년.

바투가 남러시아의 키예프를 점령, 신성로마제국, 폴란드, 헝가리의 점령을 이어나간다. 이에 유럽은 몽골 제국이라는 공포와 마주하게 된다.

1241년.

마침내 몽골 제국과 유럽이 마주하게 된다. 그와 함께 리그니츠 전투가 그 서막을 연다.

리그니츠 전투의 의미는 남다르다.

알렉산더 대왕 사후, 최초의 아시아와 유럽의 대규모 접촉이었으며 전쟁이었다.

그 사정을 자세히 설명하자면…….

리그니츠 전투의 결과, 엄청난 인명 피해로 도시의 이름이 죽은 자의 도시라는 뜻의 발슈타트로 바뀐다.

칭기즈칸의 손자인 바투는 당시 헝가리 왕 벨라에게 자신은 하늘의 사자라는 한 통의 서신을 보낸다.

오만 무례한 어조로 쓰인 서신은 한 마디로 말해 즉각 항복하라 요구하는 것이었다.

벨라는 15이라는 몽골의 군세가 예사롭지 않아 교황 그레고리 9세에게 원군을 청한다.

그 해 4월 초.

폴란드 슐레지엔 지방의 레그니차와 헝가리 모히에로 둘로 나뉜 몽골군이 들이닥친다.

레그니차와 모히에의 거리는 500km.

4월 19일.

슐레지엔의 영주 하인리히 2세를 중심으로 유럽 각국에서 온, 도합 5만의 군대가 레그니차에서 동남쪽으로 4km 떨어진 발슈타트에 진을 친다.

하인리히는 각국별로 군을 다섯으로 나뉘어 사다리 형태로 배치한다.

첫 전열은 폴란드 농민으로 이루어진 보병대로 몽골군의 기마 공격을 막는 역할이었다.

이열과 삼열은 기사 위주로 일부 농민 보병으로 이루어진 혼성병대였다.

사열과 오열은 승부수라고 할 수 있는 중 장갑기병대였다.

튜턴 기사단, 폴란드 기사단, 보헤미아 기사단을 중심으로 폴란드 정예 병사들로 이루어진 사실상 최강 전력이었다.

하인리히는 오열에 본진을 두었다.

중 장갑기병의 기사는 무게 10kg이 넘는 사슬 갑옷과 투구를 쓰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방패와 3미터의 랜서가 무게를 더했다. 더욱이 탄 말 역시 사슬 갑옷을 입힌 터라, 기동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농민 보병의 경우 장창 위주로 일부 장궁이 가미된, 몽골 기마 군단에 비하면 빈약한 무장이었다.

바투는 그에 맞춰 15만의 기마 군단을 각 3만씩 모두 다섯으로 나누었다.

유럽 연합군을 포위할 의도로 횡대 대형을 갖췄다.

튜턴 기사단을 중심으로 한 기사들은 수적으로는 몽골군에 열세였지만, 몽골 기마의 무장이 빈약함을 비웃었다.

1인당 4, 5마리씩 끌고 다니는 조랑말은 그들이 탄 말에 비하면 정말 볼품이 없었다.

더욱이 자신처럼 판금이나 폴 메일이 아닌 대충 가죽으로 만든 듯한 보잘 것 없는 갑주를 걸쳐 비웃었다.

소지한 무기라고 해봐야 고깃덩이를 잘라먹는 자그마한 단도와 자신들이 가진 장궁에 비하면 애들 장난 같은 궁 밖에 없어 기사들은 은연중에 오만이라는 감정에 빠져버렸다.

유럽 연합군의 첫 전열을 지휘하는 모라비아 변경백의 아들 볼레슬라프.

“공격하라.”

볼레슬라프의 명령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

보병은 석궁을 발사 몽고 기마 군단에 속한 소수의 기병을 죽였다. 이어 랜서로 무장한 기사들이 돌진했다.

경기병인 몽골군과 장갑기병이라고 할 수 있는 기사의 돌격전에서 몽골군은 분명 열세에 놓여 있다.

뜻하지 않은 반전이 일어났다.

바투가 몽골 기마들의 퇴각을 명했고, 그 뒤를 기사들이 추적했다.

그에 몽골 기마들이 도주한다고 판단한 각 전열이 전공 욕심에 제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휘, 통제 체계가 흐트러져 일사불란한 지휘가 불가능해졌다.

몽골 기마들은 유럽 연합군은 널따란 들 한가운데에 유인, 몰아넣고는 소지한 활로 맹공격을 퍼부었다.

말을 달리며 활을 쏘는 몽골 기마 특유의 전술이 그 빛을 발했다.

하늘을 시꺼멓게 덮을 정도로 날아 오른 화살들은 소나기처럼 유럽 연합군에게 쏟아졌다.

각 전열은 화살 세례에 죽어나갔다.

바투는 몽고 기마들에게 화살촉에 독을 발라 놓으라고 미리 명을 내린 탓에 유럽 연합군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만다.

하인리히는 그 광경에 승부수를 띄웠다.

“총공격하라.”

튜턴 기사단, 폴란드 기사단, 보헤미아 기사단이 움직였다.

그런데 급격한 방향 전환, 그러니깐 선회 능력에 있어 유럽 연합군의 기사들은 몽골 기마에 비해 절대적인 열세였다.

몽골 기마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안장에서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타고난 기마병이다.

유럽 연합군의 장군은 사정거리와 관통력이 남다르지만 연사 능력에 문제가 있었다.

연이은 궁사가 몽골군에 비해 모자라도 한참 모자랐다.

몽골군이 10개의 화살을 쏠 동안 유럽 연합군은 채 서너 개의 화살 밖에 쏘지 못했다.

결국 바투가 이끄는 몽골 기마군단이 승리하고 만다.

하인리히의 목은 몽골군의 깃대에 높이 꽂혀 승리를 자축하는 재물로 쓰인다.

바투는 뒤이어 모히에에서 3맘 기마로 6만에 이르는 유럽 연합군을 다시금 격파하고 만다.

하지만 대 칸 오고타이의 사망으로 바투는 유럽 정벌을 포기하고 회군한다.

1258년.

몽케는 서아시아의 압바스 왕조를 멸망시킨다.

1279년.

쿠빌라이는 당시 문물이 가장 발달한 남송을 멸망시키고, 동해에서 남러시아에 이르는 세계사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 제국을 완성한다.

칭기즈칸이 양성한 몽고 기마 군단은 초원에서의 사냥에서 일련의 모든 전술을 만들어냈다.

사방에서 사냥감을 몰아가듯 적군을 조이고, 추호의 사정도 봐주지 않고 저항하는 자들을 죽이고 또 죽였다.

그런 한편 정복지에서 자신들에게 득이 되는 모든 것을 전리품으로 가져온다.

그 중에서 장인과 기술자 등이 포함되어, 몽고의 막강한 국력 신장의 밑거름이 된다.

몽고는 남송의 화약 무기, 지렛대를 이용한 투석기, 성벽을 무너뜨리는 일련의 공성병기 등을 획득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당시 남송에는 세계 최초의 총이 있었다.

화총!

그런 명칭으로 불린 원시적인 총은 대나무 관처럼 금속으로 통을 만들어 쏘는 원시적인 형태로 바퀴가 달린 수레에 거치되어 시험 운용되었다.

4대 칸 툴루이의 아들 몽케 사후 몽골은 거대한 권력 쟁탈에 들어간다.

몽케의 동생 중 둘째인 쿠빌라이와 동생 아릭부케 사이 대 칸 계승을 놓고 첨예한 갈등이 일어난다.

그에 몽케의 동생 중 한 명인 훌라구는 몽골로의 귀환을 포기하고 일한국을 새운다.

이 때 고려의 태자, 훗날 원종이 되는 왕전王倎이 쿠빌라이를 찾아가게 된다.

1259년 고종 46년.

몽케가 죽은 후 아릭부케는 카라코룸과 몽고서부세력, 그러니깐 오이라트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강력하게 칸이 되고자 한다.

쿠빌라이는 훗날 대도라 지칭되는 북경과 몽고 동부 세력의 지원을 받아 동생 아릭부케와 생사를 건 일전 직전까지 간다.

그 시기에 왕전은 우세하다는 평을 받는 아릭부케에게 가지 않고 불리하다고 하는 쿠빌라이에게 간다.

그것은 순전히 당시 쿠빌라이가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일로 쿠빌라이는 왕전에게 깊은 호의를 가지게 되고, 호의는 훗날 아들 충렬왕忠烈王과 원의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 쿠틀룩 켈미쉬忽都魯揭里迷失과의 혼인으로 이어진다.

아울러 원 세조라 불리는 쿠빌라이는 불개토풍不改土風이라 하여 고려의 풍습을 지키고 유지할 수 있도록 약속한다.

원의 속국이 되더라도 고유한 풍습은 계속 이어나가도 된다는 허락이었다.

굴욕적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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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지막한 새벽녘

가장 큰, 여남은 명의 별장이 엄중 호위하는 군막 내부에 이민호를 필두로 박개광, 오병준, 이만립이 초출한 술상이 차려진 원탁에 둘러앉았다.

네 사람은 급히 마련한 의자에 앉아, 저마다 손에 든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 들이켰다.

원탁에서 네다섯 걸음 떨어진 곳에는 맹우, 변재일을 비롯한 무장들이 서 있었다.

“하하하하. 고맙습니다. 그대들이 아니었다면 오늘과 같은 날은 없었을 겁니다.”

나는 박개광, 오병준, 이만립을 둘러보며 고마워했다.

세 사람은 아들 최우가 무난히 권력을 승계하도록, 최충헌이 마련한 안배였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합하.”

“저희들의 공을 이리 치하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합하.”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합하.”

박개광, 오병준, 이만립은 호탕하게 웃으며 내개 충성을 바칠 것을 입에 올렸다.

공에 대한 대가를 달라는, 이제 자신들은 개국 공신이나 마찬가지라는, 속내가 여실히 드러나는 발언이었다.

난 지극히 당연하다는 눈으로 박개광, 오병준, 이만립을 차례대로 돌아보았다.

“내 어찌 세 분의 공을 잊겠습니다. 내가 상신相臣의 자리에 오른 것은 오로지 세 분의 공입니다. 하하하하하하.”

고개를 들며 기쁨에 겨운 호쾌한 대소를 터트렸다.

박개광, 오병준, 이만립.

세 사람은 무척 기꺼워하는 얼굴로 날 보며 연방 술잔을 들이켰다.

술자리는 차츰 무르익어갔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동이 틀 무렵이 되었을 때, 나는 소피를 보러간다고 말하고 군막을 나왔다.

“주군.”

인근에 있었던 듯, 백아셈이 군막을 나온 나에게 다가와 비장한 얼굴 표정을 지었다.

“훗,”

난 가볍게 웃었다.

전날 백아셈이 서풍에 이어 서가를 정리하고 양광도 호족 연합군 5천을 흡수하자고 했었다.

당시 나는 처남매부지간이며 처가라는 이유로 그 제안을 뿌리쳤다.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참으로 위선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고개를 돌려 군막을 보았다.

군막 안에 있는 이들은 내 사람이 아니다. 죽은 최충헌의 측근 중 측근이다.

내 사람으로 만들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미 어느 정도 지위가 있고, 수중에 남 못지않게 쥔 것이 적잖다.

조금 전 자신들이 세운 공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보면 거두기에는 너무 부담스럽다.

무엇보다도 중앙군을 움직일 수 있는 고위 무장들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백아셈이 내게 그랬다.

“주군. 중앙군은 고려 최강입니다. 필히 주군의 수중에 넣으셔야 합니다. 그러자면 현 중앙군의 상층부를 형성하고 있는 고위 무장들의 제거는 불가피합니다.”

천천히 서 있는 백아셈을 향해 돌아섰다. 마주보며 천천히 입을 뗐다.

“자네에게 맡기지.”

“감사합니다.”

백아셈이 머리를 숙였다.

저벅저벅.

난 발을 떼어 백아셈의 오른편을 스쳐 지나가며, 오른손을 들어 백아셈의 우측 어깨에 살짝 얹었다.

“감사는 내가 해야겠지.”

“주군.”

백아셈이 머리를 들어 날 보았다.

끄덕끄덕.

머리를 위아래로 슬며시 움직였다.

“구시대의 잔재는 정리해야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다는 걸 아네. 몹쓸 짓이지만 이후의 일을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네.”

씁쓰름한 미소를 머금었다.

권력權力!

그 속성은 비정이다.

사람이기를 먼저 포기해야 권력을 손에 쥘 수 있는 쟁탈에 나설 수 있다.

권력을 갖고자 하는 욕구에 찬 자는 권력이라는 단 하나만 본다.

그 외에 다른 것은 일절 돌아보지 않는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걸어가며 뒤를 힐끔거렸다. 백아셈이 옆으로 돌아서며 가슴 높이로 손을 들어 까닥이는 것이 보였다.

손사랫짓에 군막 주변에서 미리 대기해 있던 일단의 노궁병과 검병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수가 30여 명이었다.

30여 명의 군병은 신속하며 민첩했다.

기척을 최대한 죽이며 재빨리 군막으로 향했다. 날렵하게 군막 안으로 짓쳐 들어가는 모습이 사전에 단단히 엄명을 받은 눈치다.

시선을 바로 하며 무심히 걸음을 내디뎠다.

저 멀리, 동쪽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

아직 해는 떠오르지 않았지만 산등성이 너머에 있는 해가 뿜는 눈부시고 붉은 아침 햇살이 온 누리를 비췄다.

드넓은 들을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새로운 고려.

몽골제국이란 유사 이래 없었던 막강 그 자체인 엄청난 힘이 고려로 향하는 것을 알기에,

가나긴 항쟁 자체를 없애기 위해, 그들과의 전쟁을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난 많은 피와 죽음을 요구했다.

못할 짓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바를 위해 원 역사를 염두에 두고 나름 최소한으로 역사를 비틀고자 하였다.

묵묵히 걸어가는 내 눈에 차츰 밝아오는 아침 일출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서히 산등성이 위로 떠오르는 아침 해.

새로운 날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새로운 고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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