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245화 (245/247)

<-- 245 회: 9-22 -->

전역은 왜병과 병사들을 운영하는 지휘부의 통제를 벗어나, 살아 움직이는 생물처럼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혼성군과 왜병.

양측의 지휘부는 발등에 불똥이 떨어진 양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안 돼. 병사들을 뒤로 물려.”

박개광은 지휘 체계를 회복하려 하였다.

“상장군. 명령이 먹혀들지 않습니다.”

박개광은 수하 무장의 대답에 기막혀했다.

그와 같은 혼란은 카즈오 번 역시 마찬가지였다.

“뭐가 어쩌고 어째.”

카즈오 이토는 크게 놀라 가로 스미야시 이노무라에게 화급히 명령했다.

“모두 뒤로 물려. 지금 상태로는 싸울 수 없어.”

“도노. 명이 안 먹힙니다. 전령이 전역으로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노무라는 안타까운 어조로 소리쳤다.

“안 돼. 무슨 수를 쓰던 모두 뒤로 물러나라고 해. 빨리.”

“예에.”

이노무라는 대답하면서도 과연 될지, 마음속으로 긴가민가했다.

양측 지휘부의 명령이 먹혀들지 않는 극도의 혼전이 한식경 가까이 이어졌을까?

난데없이.

슈, 슈아아아아아.

길게 이어지는 파공과 함께 다수의 무엇인가가 하늘 높이 날았다.

날개가 달려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이상 땅으로 떨어지는 것은 불변이다.

쨍.

쨍강.

날카로운 울림을 낸 것은 땅에 떨어진 것은 항아리였다.

산산이 깨어지며 담긴 기름이 땅으로 쏟아졌다. 항아리의 마개역할을 하는 천 뭉치가 기름이 쏟아진 땅에 떨어졌다.

화르르르르.

삽시간에 기름에 불이 붙고, 이내 화염이 치솟았다. 화염은 인근에 있는 자들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화염은 왜병과 병사들을 가리지 않았다.

“으아아악.”

“사, 살려줘.”

화염에 당한, 온몸에 불이 붙은 왜병과 병사들이 휘청거리며 사지를 마구 허우적거렸다.

주변에서 싸우던 왜병과 병사들은 그들의 모습에 기겁하며 멀찍이 물러섰다.

“히이이익.”

“물러서.”

그 사이.

하늘에서 항아리들이 계속 떨어졌다.

거기에 더해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화살들이 비 오듯 낙하하기 시작했다.

쏴, 쏴아아아아.

바 오는 듯한 파공이 메아리쳤다.

화살은 살아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것이나 가리지 않았다.

특정 공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꿰뚫었다.

퍼퍼퍼퍼퍽.

병사와 왜병들은 몸에 내리꽂히는 화살에 비명을 지르며 지면에 나뒹굴었다.

“크악.”

“우아아악.”

전장이 이비규환으로 화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편.

카즈오 번이 세운 진지 뒤쪽에서 일단의 군병이 나타났다.

척, 척.

정연하게 오와 열을 맞춰 수천에 이르는 군병들이 움직였다.

겨드랑이에 낀 철창을 오른 손아귀에 움켜쥐고 왼손에는 가슴을 가릴만한 크기의 둥근 구리를 덧댄 방패를 든 장창병대.

장창병대 뒤쪽 열다섯 걸음 남짓 떨어진 곳에서 움직이는 동일한 방패와 검은 든 검병대.

그 뒤를 노궁을 든 군병과 궁을 든 궁병으로 이루어진 혼성궁병대가 따랐다.

기존의 궁보다 사정거리가 짧은 노궁의 특성에 노궁을 든 군병, 노궁병들은 일절 궁사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침착하고 냉철해 보여, 평소에 훈련에 매우 공들였음이 한 눈에 드러났다.

기존의 활을 소지한 궁병들은 걸으면서 왼손에 쥔 활의 시위에, 허리춤에 맨 전통에서 연방 화살을 꺼내 시위에 걸었다.

궁병들은 걸으며 화살을 잰 시위를 놓았다.

티티티팅.

다수의 화살이 완만하게 굽은 곡선을 그리며 하늘을 향해 상승했다.

슈, 슈, 슈우우우욱.

화살은 하늘 높이 치달았다.

그 모습이 일사불란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한 사람이 활을 쏘듯 질서정연했다.

반복적인 궁사에서 능란한 궁술이 엿보였다.

궁병들의 궁사는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 사이 하늘 높이 치솟은 화살들은 아래를 향해 내리 뻗듯 떨어졌다.

그 사이.

멀찍이 떨어진 혼성궁병대 후미에서는 석포가 연일 하늘로 항아리를 날렸다.

항아리는 무지개가 연상되는 동선을 그리며, 가장 치열한 공방이 오가는 전장 한 가운데로 향했다.

전장 한 가운데.

곳곳에서 화염이 하늘을 찌를 듯 충천했다. 더불어 땅에 떨어지며 인 화염에 당한 병사와 왜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끄아아아악.”

그로 인해 항아리가 떨어지는 곳 주변에서 병사와 왜병들이 멀찍이 물러섰다.

무질서하게 이는 화염들을 병사와 왜병이 기겁하며 피했다.

그로 인해 전역에서 이는 혼란이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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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두두두.

군병들의 좌우를 향해 일단의 기병이 내달렸다.

그들의 질주에서 고려의 기마 전술이 연상되었다.

호태왕.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한민족의 3대 군신 중 한 분으로 서슴없이 뽑은 정복왕이시다.

고구려의 유명한 철갑 중장기병, 개마무사.

그들은 전장에서 적의 선봉과 중앙을 목표로 내달린다. 강력한 추진력과 돌파력으로 적진 깊숙이 파고들어 적진을 좌우로 양단하는 것이 주 임무다.

개마무사들이 그렇게 혼란을 일으키는 사이, 적진 좌우를 우회한 경장 기병이 공격한다.

그렇게 적의 주의가 중앙과 좌우에 집중되는 사이.

궁수들이 적진을 중앙에서 바깥으로 타격하고, 그 틈을 이용해 도끼를 든 도부수와 검을 든 검병들이 적진을 향해 내달린다.

혼란을 틈타 도부수와 검병이 적진으로 스며들어 단병접전에 들어가는 사이, 적진 외곽을 기마병들이 에워싸고 맹공을 가한다.

주의 및 시선 분리, 적 전력의 분산, 의도적으로 일으킨 적진 혼란, 혼란의 극대화를 통한 적 진형의 붕괴, 맹렬한 전면 공격.

이런 단계를 밟으며 특정 시기에 전 전력을 투입, 단숨에 승세를 굳히며 전장 정리에 들어가는 것이 고구려의 공격 전술이자 호태왕의 기본 전쟁 전술이다.

방어에 관한 전술은 전해오지 않는다.

정복왕이라 공격만을 추구한 듯 보이긴 하다. 아니 구태여 방어 전술은 생각할 필요 자체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당시 고구려는 최강! 이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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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성군 후미.

펄럭펄럭.

바람에 나부끼는 다수의 깃발을 앞세운 일단의 군병이 나타났다.

깃발 정중앙에는 황실을 상징하는 용과 봉황이 수놓아진 용봉기가 있었다.

그 뒤를 수만에 이르는 군병들이 따랐다.

신호위 대장군 오병준과 응양군 장군 이만립 등이 이끄는 연합 중앙군.

말을 타고 선두에서 움직이는 오병준, 이만립 등을 위시한 상급 무장들.

그들은 혼성군을 일별한 후, 전장을 바라보았다.

“혼전 중 혼전이로군.”

“저런 혼전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으음.”

“아무래도 왜구들을 움직이는 자가 예사롭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오병준은 이만립이 말에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박개광. 그 사람이 고생이 작심한 것 같네만.”

“그렇겠지요.”

이만립은 오병준의 말에 뜻 모를 작은 미소를 머금었다.

오병준은 오른손을 어깨 높이로 들었다.

그 손짓에 뒤에서 움직이던 중급 무장들 중 한 사람이 뒤돌아보았다.

“정지!”

중급 무장을 외침을 한 하급 무장이 받았다.

“정지!”

하급 무장은 뒤돌아봤다.

오병준의 명령은 차례대로 단계를 거쳐 뒤따르는 군병들에게 전해졌다.

정연하게 멈춰선 군병들을 이만립이 돌아봤다.

“대장군.”

이만립은 오병준을 돌아봤다.

오병준은 그 사이 혼성군과 전장을 둘러봤다.

“대장군.”

이만립이 재차 오병준을 불렀다.

오병준은 이만립을 돌아봤다.

“대장군.”

이만립은 눈짓으로 전장과 혼성군을 가리켰다.

전장으로 치고 들어갈 것이냐? 아니면 혼성군을 들이칠 것이냐?

둘 중 하나를 택해 달라.

그런 속뜻을 담은 눈짓에 오병준은 짤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장군.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아네. 일단 천우위와 감문위를 우리 수중에 넣는 것이 우선이겠지. 그리고 양광도 호족 연합군은 모두 없애게.”

“남김 없이겠지요.”

“…….”

오병준은 입을 다물고 가만히 고갤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장군.”

이만립은 말하며 말머리를 우측으로 당겼다.

히힝.

말은 낮은 울음을 흘리며 옆으로 돌았다.

이만립은 오른손을 들어 예의 중급 무장을 불렀다.

중급 무장은 머리를 숙였다 든 후, 탄 말을 몰아 이만립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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