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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장
벽란도 외곽.
황도 개경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접한 널따란 분지에 수많은 인마가 운집해 매우 소란스러웠다.
히힝, 푸르르.
사방에서 말이 투레질하며 우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와글와글.
모인 이들은 각기 소 무리로 나뉘어 출발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거기 너무 많이 실었어. 나눠.”
“어이. 빨리 서둘러.”
“곧 출발이야.”
“각 수레 당 5명씩이야. 덜해서도 안 되고 더 해져서도 안 돼. 반드시 지키라고.”
백인장과 십인장들은 사방을 뛰어다니며 출발 준비가 다 되었는지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나 영감은 수레 후미에 있는 일단의 수레를 일일이 돌아다니며 직접 살폈다.
꼼꼼하게.
실린 짐이 무엇인지 그 종류와 어느 정도 짐이 실렸는지 중량을 그리고 짐을 묶은 줄이 아무 이상이 없는지 그 유무 세심히 훑었다.
직접 묶은 줄을 당겨 느슨한지, 바짝 조여 짐을 제대로 고정했는지 그 가부를 세심히 확인했다.
분지 좌측.
“너. 일로 와.”
난 성난 기세로 슬금슬금 뒷걸음치는 혹두에게 걸어갔다.
“나, 나리. 왜 이러십니까? 네에에.”
“그걸 몰라 물어.”
혹두에게 고함치며 우측으로 몸을 돌렸다.
그와 함께 오른손 검지를 들어 앞쪽에 세워져 있는 여남은 개의 수레를 가리켰다.
음머어어어어.
여남은 개의 수레는 소달구지였다.
말이 끌어야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보다 빠르게 개경으로 갈 수 있는데.
달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소가 끄는 달구지라니.
내가 성질이 안 나게 됐냐고?
혹두가 뒷걸음치며 변명했다.
“전들 그걸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말이 부족한 걸 어떻게 합니까? 없는 말이 어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너.”
혹두에게 시선을 돌리며 험악하게 인상 썼다.
“돈 빼돌렸지. 그렇지.”
“무슨!”
혹두는 펄쩍 뛰었다.
천부당만부당하십니다.
내게 그렇게 행동으로 말하는 혹두였다.
“말도 안 됩니다. 나리.”
“아니야.”
의심스럽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넌. 돈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놈이야.”
미심쩍어. 마아.
아니지 의심스러워 이 짜식아.
혹두는 날 쳐다보며 기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억장이 무너진다는 듯 강하게 반박하며 자기변호를 하기 시작했다.
“아닙니다. 진짜 아닙니다. 믿어 주십시오. 나리.”
“못 믿어.”
언성을 높이며 혹두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내가 한 걸음 내딛자 혹두는 두세 걸음 물러났다.
처, 척.
혹두의 얼굴 가득히 꺼리는 빛이 감도는 것이 내가 가까이 오는 것이 싫다는 속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나. 일루와. 일루 오라니깐.”
손을 들어 앞뒤로 흔들었다.
“시, 싫습니다.”
혹두가 대답하며 목청을 높였다.
“너. 자금 내게 목소리를 높인다. 이거지. 응.”
험상궂은 인상을 쓰며 눈썹을 치켜 올렸다.
“헉.”
내 모습에 혹두가 외마디를 삼키더니 황황급급히 뒤돌아섰다.
“어쭈. 도망치겠다고.”
“글쎄. 전 돈을 빼돌린 적이 없다고요.”
혹두가 버럭 고함치며 쏜살같이 뛰기 시작했다.
후다닥.
난 달아나는 혹두를 향해 고성을 질렀다.
“거기 안 서. 이게 죽으려고 누구에게 고함이야. 너. 잡히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혹두를 뒤쫓았다.
틀림없다.
혹두 저 놈.
조자개를 통해 건네준 재물로 수레와 말을 준비하면서 뒤로 얼마간 빼돌린 것이 틀림없다.
재물이 부족했다면 부풀려 더 달라고 할 놈이 바로 혹두다.
그런데 그런 혹두 놈이 재물을 더 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부족한 한도 내에서 수레와 말을 준비하다가 어찌 할 도리가 없어 소달구지를 준비했다?
평상시 혹두의 행태를 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는데. 어디서 누굴 속이려고.
“너 잡히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삥땅을 쳐도 어느 정도지.”
성질이 나. 혹두를 향해 뛰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진짜 아니라고요. 나리 믿어주세요. 저 좀 믿어 주시라고요.”
“믿긴 뭘 믿어. 넌 충분히 뒤로 빼돌리고도 남을 놈이야. 서어어. 안 서면 너어어. 죽여 버린다!”
“서도 보나마나 절 때려죽이시려고 하실 게 뻔한데. 제가 미쳤어요. 서게.”
“서어어어.”
“싫다고요.”
혹두는 날 향해 소리치며 혼신을 다해 발을 놀렸다.
사력을 다해 발을 움직이기 때문인지, 자게바람이 일듯 내달리는 속도는 사뭇 빠르다.
내게 잡히면 어떤 일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지 아는지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해 뛰고 또 뛰었다.
다다다다.
사력을 다해 뛰는 혹두를 뒤쫓는 것이 그리 녹록하지 않다.
혹두를 잠깐 쫓다가 나는 멈춰 섰다.
“나리.”
뒤에서 나 영감이 날 불렀다.
“젠장!”
화가 나지만 마냥 혹두를 뒤쫓을 수는 없어, 결국 나는 뒤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힐끗.
그새 빠르게 거릴 벌리는 혹두를 흘낏거렸다.
“체. 뛰는 거는 하여튼.”
알아줘야 할 것 같다.
찜찜함을 가슴에 안고 난 돌아서서 나 영감에게 걸어갔다.
출발이 코앞이라 머뭇거릴 겨를이 없다.
시간이 금쪽이나 매 한가지라 최대한 빨리 출발 준비를 마쳐야 한다.
힐끔.
소달구지들을 곁눈질했다.
“빌어먹을.”
속이 상당히 쓰리다.
아무래도 배에 태워, 가지고 온 말로 대체해야 할 것 같다.
“나중에 두고 보자. 빠드득.”
이를 갈며 다시금 혹두가 도망친 방향을 돌아봤다. 그새 어디로 내뺐는지 혹두는 보이지 않았다.
“망할 놈의 쇠키.”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욕심(?) 부리는 혹두의 고질병을 아주 단단히 잡아놔야 할 것 같다.
“아. 스트레스.”
혼자말로 중얼거리며 바삐 걸음을 떼었다.
“나리.”
그 사이 나 영감이 재차 날 부르며 오른손을 머리 높이 들었다.
양쪽으로 세차게 흔드는 모습이 뭔가 급한 일이 있는 모양이다. 걷는 속보를 높여, 속보速步를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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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는 기록을 보면 벽란도는 고려 최대의 무역항이었다.
송나라와 매우 활발하게 교역이 이루어지던 고려 전기에 크게 번성하였다고 한다.
그 후에 거란이 크게 일어나 요나라를 새우며 고려와 송과의 교역에 대해 강한 압박을 가했다.
그로인해 고려와 송의 교역이 차츰 뜸해지며 벽란도는 쇠퇴 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른 후 원나라가 들어서며 해상이 아닌 육로로 교역과 교류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그에 벽란도는 큰 타격을 받아 무역항으로서의 기능을 모두 상실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벽란도를 통한 송과 고려의 교역이 얼마나 활발하게 이루어졌는지 관련 기록을 살펴보면.
1012년부터 1278년까지.
약 260여 년 동안 송나라 상인 1만 5천여 명이 120회에 걸쳐 벽란도에 왔다고 한다.
벽란도에서 개경까지의 거리는 대략 30여 리로, 편도의 경우 서너 시간이 걸린다.
벽란도를 거쳐 개경으로 향하는 상인들은 선의문을 통해 도성 안으로 들어가며, 도성 8대문 중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선의문에 크게 감탄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선의문에 관한 일부 기록을 보면 정문은 이중이었고, 성문 위에는 커다란 누각이 있어 오가는 이들마다 그 위용에 감탄했다는 구절이 남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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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경 선의문.
삼엄하고 엄중한 경계가 펼쳐져 있었다.
일단의 병사들이 손에 병기를 단단히 움켜쥐고 일사불란하게 정렬했다.
일정한 간격과 저마다의 위치에 서 있는 병사들은 모두 경장 갑옷을 입고 있었다.
가죽에 얇은 찰갑을 덧댔고, 동일한 가는 가죽 끈으로 찰갑과 가죽을 꿰맨 형태의 갑옷.
그 갑옷 위에 병사들은 하얀 광목천을 둘렀다. 이마 역시 동일한 하얀 광목천으로 두르고, 뒷머리에서 질끈 묶었다.
일련의 모습은 조의를 표하는 것이었다.
상국 최충헌.
왕을 능가하는 권력과 위세를 떨쳤던 그가 며칠 전에 숨을 거두었다.
다들 뒤에서 수군거렸다.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신분 고하, 빈부 격차를 떠나 죽음은 만인에게 찾아오는 지극히 균등하고 당연하며 공평한 끝이다.
다들 그런 의미가 배인 어조로 말을 주고받았다.
양민들은 최충헌의 죽음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도,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들에게 죽은 최충헌과 새로이 떠오르는 권력자 최향은 잠시 옆에 머물다 가는 사람과 같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바쁜 그들은 정치에는 무관심했다.
본래 궁문과 도성의 문을 지키던 감문위가 출병하게 되어, 임시로 신호위가 궁문과 8대문의 경계를 맡았다.
신호위의 병사들은 몸을 추켜세우고 긴장의 눈빛을 띠었다.
눈동자가 쉴 새 없이 좌우를 오갔다.
주변 돌아가는 눈치를 보는 병사들은 상당히 예민한 모습이었다.
“오늘이 발일이지?”
“응.”
“우리가 지키는 선의문으로 장례 행렬이 도성 밖으로 나가는 게 맞아?”
“왜? 어닌 것 같아?”
“응.”
“그나저나 언제 오는 거야. 꼭두새벽부터 이렇게 대기해 있구만.”
“올 때 되면 오겠지. 뭐. 마음 편하게 가져.”
“체. 잘도 편하게 가지겠다. 상장군부터 대장군, 장군, 중랑장, 낭장, 별장, 산원, 위, 대정 등. 윗사람들이 얼마나 설쳐대는지 원.”
병사들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서로 소곤소곤거렸다.
얼마 후.
선의문 안쪽 저 멀리에서 뿔고둥과 북소리가 아련히 들렸다.
뿌우우우우우우웅.
둥둥둥둥둥.
병사들은 귀에 들리는 소리에 움찔거리며 은근 슬쩍 고개를 선의문 안쪽으로 돌렸다.
“오나 본데.”
“그러게.”
“결국 상국 합하도 죽긴 죽네.”
“사람하곤. 그럼. 상국 합하는 사람도 아닌 줄 알았어.”
“응.”
“쯧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