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236화 (236/247)

<-- 236 회: 9-13 -->

중얼거리며 머릿속에 내가 생각하는 전술을 떠올렸다.

보다 많은 중앙군을 개경에서 나주목으로 끌어내려 했다. 개경을 텅 비어두고, 최향이 모든 군사를 대동하고 내가 있는 나주목으로 이동하도록 유도할 생각이었다. 아울러 서양헌을 최향에게 합류하게 만들 작정이었다.

그런데 매우 아쉽게도 최향이 천우위와 감문위 밖에 움직이지 않았다.

그로인해 내가 생각한 전술은 사실상 무산되었다.

“젠장맞을!”

내 생각과는 다른 상황 전개에 솔직히 속이 편치 않다.

의도대로 최향이 움직여줬더라면 지금쯤이면 개경은 텅텅 빈다.

나주에서 배로 출항하여 서해를 지나 벽란도에 도착, 그 즉시 개경을 들이치면, 사실상 무주공산으로 텅 빈 개경을 내 수중에 넣을 수 있다.

그런 연후에 황실을 위협, 일종의 위임권을 수중에 넣은 후, 황실을 내세워 최향이 이끄는 중앙군을 뒤흔들면 혼란과 분열이 일어난다.

그렇게 되면 난 수월하게 대권을 손에 쥘 수 있다.

한데, 아쉽게도 지금으로서는 요원하다.

무엇보다도 최향이 개경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 무슨 생각인지 알 수는 없지만 수중에 쥔 4개 군을 움직이지 않았다.

“보다 적극적으로 도발했어야 했나? 으으음.”

옅은 신음을 흘리며 시선을 바로 했다.

지금 바라보는 저 바다 너머에 벽란도가, 벽란도 너머에 황도 개경이 있다.

“최향.”

나직이 중얼거리며 작은 이채를 띠었다.

반짝.

살며시 작은 미소를 머금었다.

‘기다려라. 내가 곧 갈 테니.’

건곤일척의 일전이 날 기다리고 있다.

이 나라 고려를 내가 먹느냐 마느냐 라는 승부가 목전에 다다라 있다.

“썩을!”

정말 일이 사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텅 비어버린 개경.

빈집인데. 그냥 가서 빈집털이 하면 모든 권력이 내 수중으로 들어오는데.

서혜와 서풍을 죽임으로서 서양헌을 자극하여 움직이게 하는 책략은 성공했는데.

“만약을 대비해 혹두 놈에게 별도의 지시를 내린 것이 제발 잘 돼야 할 텐데.”

일이 어떻게 될지 몰라, 개경을 빠져나오기 전에 혹두에게 몇 가지를 지시했었다.

혹두가 그 지시를 잘 수행했는지 모르겠다.

지금 상황에서 혹두가 중요한 키 역할을 해야 하는데.

“휴우우우.”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폭 수정한 전술이 과연 먹혀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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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목을 지척에 둔 봉국군奉國軍.

봉국군은 천령川寧, 죽주竹州, 이천利川, 과천果川의 4개 주와 지평砥平, 용구龍駒, 양근楊根의 3개 현을 거느린 전라도의 핵심이다.

봉국군의 군수는 난데없이 들이닥친 서가, 천우위, 감문위의 혼성군을 맞아 뭐 빠지게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뭐하고 있는 게냐? 어서 소, 돼지, 닭을 잡고. 관내에 있는 술이란 술은 몽땅 다 가져와라.”

“예, 예에에.”

아전과 향리들은 머리 숙여 대답하기 바빴다.

혼성군의 병력이 무려 5천이라, 뒷수발하기가 그야말로 뭐 빠지게 힘들었다.

군 외곽에 군막을 치고 지내면, 그냥 지들끼리 알아서 밥 해 처먹고 주둔하면 참 좋은데.

무려 5천여 명이 한꺼번에 군 내부로 들어와 먹을 거. 잘 곳, 쉴 여흥 등등.

온갖 것을 요구해 아주 죽을 맛이다.

미리 시일을 두고 준비하라 명한 것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5천여 명의 숙식을 당장 해결하라니.

아전과 향리들은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었다.

“우라질!”

“왜 쳐들어와서는.”

다들 알게 모르게 구시렁대며 바삐 움직였다.

개경에서 최향이 거병하여 대권을 장악한 것을 들어 아는 터라, 나주목사인 이민호가 최향에게 죽은 최우의 사위임을 잘 아는 까닭에, 머리를 땅에 닿도록 숙이고 이리 뛰고 저리 뛸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혼성군이 왜 왔는지, 곧 무슨 일이 벌어질지, 볼 보듯 확연해 불만을 겉으로 털어놓을 수 없었다.

“어?”

“여기서 오늘 밤 자라고?”

“여긴 아니지. 안 그러냐?”

“아, 젠장. 뭐 빠지게 걸어왔는데.”

대여섯 명의 병사가 툴툴댔다.

그들에게 배정된 가옥은 금방이라도 오른쪽으로 폭삭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초가였다.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기울어진 각도가 몇 십도도 안 된다. 아닌 말로 왼쪽에서 후! 입김을 불면 그대로 넘어갈 것 같다.

“형님.”

한 군병이 싸리문 바깥에 서 있는 십인장 대문을 돌아봤다.

대문은 문 밖에 서서 초가를 보며 얼굴을 와락 찡그렸다.

“이기!”

성냈다.

본시 최충헌의 가병이었는데, 최향이 반 수 정도의 가병을 6위에 나누어 밀어 넣었다.

나주목 공략군이라고 할 수 있는 혼성군 중 감문위에 난은 반수를 소속시켜 출전하게 하였다.

다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다른 병사들에 비해 알게 모르게 따돌림을 받았다.

차별 역시 있었다.

상당했다.

가병들은 굴러온 돌이라, 기존의 감문위 병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에 다들 불만이 한껏 고조되었다.

속한 혼성군의 병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최향의 사병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자신들은 아니었기에 자연스레 끼리끼리 놀게(?) 되었다.

대문을 돌아본 군병을 비롯, 대여섯 명의 병사가 돌아섰다.

그들은 사립문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오는 대문을 쳐다보며 불만을 토로했다.

“형님. 이건 아니지 말입니다.”

“김 별장 그 세키가 우리를 일부러 여기에 처박아 두려는 겁니다.”

“가서 우리 따집시다. 네에.”

병사들은 성난 표정을 지으며 언성을 높였다.

“…….”

대문은 입을 꾹 다물었다.

‘김 별장 그 세에키가.’

직속 상사라고 할 수 있는 별장 김우평을 생각했다.

옆으로 쭉 찢어진 눈하며 심술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것 같은 놈답게 사람 복장을 아주 뒤집어 놓곤 한다.

대문은 뒤돌아서며 수하 병사들에게 외쳤다.

“다른 놈들은 어떤 거처를 쓰는지 한 번 보자. 우리와 똑같다면 아무 말하지 않겠지만.”

걸음을 내딛으며 다르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속내를 피력했다.

“알겠습니다. 형님.”

“맞습니다. 형님. 다른 놈들도 우리와 같은 거처를 쓴다면 뭐 그냥 넘어가죠.”

“그럴 리는 없겠지만 우리보다 더 나은 거처를 쓰면 확 그냥.”

“일단 대문 형님 말씀처럼 한 번 둘러보자고.”

대여섯 명의 병사는 대문을 따라 사립문 밖을 향해 걸음을 떼었다.

잠시 뒤.

대문은 사립문을 왼편에 두고 걸었다.

대여섯 명의 병사가 뒤따랐다.

그들 일곱 명은 그리 오래지 않아 동일한 감문위 복장을 한 다른 병사들을 볼 수 있었다.

“이!”

“형님!”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예에에.”

다들 눈에 보이는 광경에 거칠게 화냈다.

다른 병사들은 번듯한 초가에다가 마당에 놓인 평상에 빙 둘러 앉았다.

잘 삶은 닭다리를 뜯어 손에 쥐고, 다른 손에 쥔 술잔을 연방 들이키며 아주 호사(?)를 만끽하고 있었다.

대문은 이를 갈며 양손을 힘주어 움켜쥐었다.

으득.

명백했다.

별장 김우평이 자신들이 끈 떨어진 연과 같은 최충헌의 가병인 점을 염두에 두고 오래 동안 휘하에 있었던 다른 병사들과 차별 대우하는 것이다.

“형님. 당장 김 별장에게 가서 항의합시다. 네에.”

“우린 입도 아니랍니까?”

“이대로는 못 참겠습니다. 형님.”

“이게 어디 한두 번 입니까? 화악. 뒤집어엎읍시다. 네에에.”

대여섯 명의 병사가 성냈다.

대문은 잔떨림을 흘렸다.

바르르.

움켜쥔 주먹이 미미하게 양쪽으로 흔들렸다.

‘오냐. 니들이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대문은 머릿속으로 오용섭과 이민호를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나리와 싸운다는 것이 영 마음에 걸렸었는데.’

시뻘건 화광인 양, 대문은 사나운 눈빛을 번쩍였다. 머릿속에서 접촉한 혹두가 떠올랐다.

‘나리께서…….’

자신뿐만 아니라 지난 날 함께 양광도를 침습한 왜구와 싸웠던 최충헌의 가병들을 지휘하는 백인장, 십인장들과 접촉이 있었다.

‘좋아. 아주 좋아.’

대문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오용섭을 생각했다.

‘어차피 이리 된 거.’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대문은 뒤돌아섰다.

홱.

척 봐도 성이 날대로 난 모습이라 대여섯 명의 병사는 일순 움찔거렸다.

대문이 걸어가며 발에 힘주었다.

처, 척.

성난 마음을 내딛는 발걸음에 싣는 모습이라, 대여섯 명의 병사는 조심스레 대문을 뒤따랐다.

“형님. 엄청 열 받으신 것 같지.”

“야, 그럼 열 받지. 열 받겠냐?”

“그나저나 조금 이상한데. 김 별장 그 세키에게 당장이라도 뛰어가실 것 같더니만.”

“쉿!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 그렇지 않아도 개경에서 출발할 때부터 형님 영 아니었다고.”

“하긴. 나주목사 그 양반이 예전에 형님이 모셨던 분이라며.”

“야아. 입 다물어. 누가 들을라.”

대여섯 명의 병사는 걸어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소곤소곤거렸다.

별장 김우평이 그들을 차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한 때지만 이민호와 함께 싸웠다는 점이다.

알게 모르게 행해진 차별은 결국 내부 분열을 가져오고 말았다.

최향은 바보가 아니다.

최준문, 지윤심 등이 최충헌의 가병들을 감문위에 소속시키는 것을 반대했다.

최향 왈.

“감문위의 전력을 강화하자면 어쩔 수 없음이야. 다들 알다시피 감문위의 전력은 6위 중 최하가 아닌가? 물론 자네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변이 생길 수도 있네만, 감문위에 소속시키는 아버님의 가병들은 겨우 반이네. 나머지 반은 6위에 골고루 퍼트려놓았으니 별 문제 없을 것이네.”

최향의 대꾸가 그럴듯해 최준문과 지윤심을 필두로 측근들은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6위에 골고루 배속시키면 극히 소수가 되고, 소수가 내부에서 변을 일으킬만한 역량은 갖추지 못할 것이라 판단했다.

그런 최향의 판단에 일조한 것은 천우위 상장군 박개광, 신호위 대장군 오병준, 응양군 장군 이만립이었다.

그들 3인은 최충헌의 가병이 무려 3천이나 되는 것을 언급하며, 이대로 놔두거나 해체시키는 것은 아깝다 최향에게 진언했다.

그에 최향은 3인의 진언을 받아들여 부친 최충헌의 가병들을 6위에 골고루 흩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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