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235화 (235/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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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형이를 칭찬해주었다.

“별말씀을요.”

주형이 놈.

아주 희희낙락이다.

‘썩을!’

속이 편치 못하다.

남에게 칭찬을 해주는 것이 영 어색하고 넘 불편하다. 군에 있을 때도 후임병 녀석들 칭찬에 인색했던 난데.

아우!

스트레스.

내가 주형이를 보며 표정 관리를 하는 사이.

“나리께서 나주목 사람들을 소개시킨 것이 크게 주효했습니다. 서가, 천우위, 감문위의 혼성군을 지휘하는 상장군上將軍 박개광이 깜빡 속아 넘어갔습니다.”

주형은 현란할 정도로 혀를 놀리며 일련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박개광이 내가 사람들을 소개시킨 것을 두고, 나와 군병들이 급 이동 중이라고 오판했다.

나와 휘하에 있는 군병들이 주민들과 함께 이동 중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듯 하다.

주형이가 내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랬다.

상장군 박개광은 하루 속히 나주목을 점령하기 위해 진군 속도를 올리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주형은 그리 입을 놀렸다.

“아마 근시일 내에 그들이 나주목에 당도할 겁니다.”

불안감이 엿보이는 목소리였다.

주형의 말에 난 눈을 반짝였다.

“지금 당장 황곤에게 가서…….”

주형에게 황곤에게 혼성군의 진군 속도가 높아졌음을 알리고, 바다를 통해 오는 그들과의 속도와 비교해 봐라.

그렇게 내 명을 전하라 했다.

“최대한 그들이 서로 동시에 나주목에 이를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라고 해.”

“예에에. 나리.”

주형은 신이 난 목소리로 대답하며 내게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난 뒤돌아서며 바삐 뛰어가는 주형을 응시하며 한숨을 쉬었다.

“휴.”

힘들다.

정말 힘들다.

이건 아랫놈이 상사인 내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상사인 내가 아랫놈 눈치를 보는 꼴이잖아.

스트레스를 받아도 너무 받는다.

“아, 진짜!”

마음 같아서는 주형을 향해 있는 성질 없는 성질 다 퍼붓고 싶다.

마음껏 질타를 퍼부으며 고래고래 소리치고 싶은데. 그걸 못하니 사람 아주 죽을 것 같다.

“정말 존경스럽다. 존경스러워.”

수천, 수만여 명에 이르는 직원들을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대기업 회장님들이 엄청 대단하게 느껴진다.

뭐 직원 모두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사장이나 임원진들을 움직여, 간접적으로 전 직원을 움직이는 것이지만.

옆으로 돌아서며 오른손을 들어 이마를 쓸어 넘겼다.

“답답해서 원.”

이제까지 사람 부리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긴 했어도 주형이 놈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 정도는 아니었는데.

“확!”

참지 않고 그냥 내가 하고픈 대로 해 버려.

불어오는 바다바람, 해풍을 쐤다.

휘이이이이.

해풍에 이마에 늘어진 몇몇 머리카락이 들리며 나풀거렸다.

성깔대로 못하는 답답함을 견디기가 너무 힘들다.

“젠장.”

왕 짜증이다.

물살이 출렁거리는 바다를 가만히 응시하며 눈을 반짝거렸다.

일련의 수순을 머릿속에서 되짚으며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후후.”

나지막한 실소를 흘렸다.

개경에 있는 최향의 수중에는 용호군, 신호위, 흥위위, 금오위. 이렇게 4개 군이 있다.

“못해도 5천 이상의 대병!”

솔직히 병사들의 숫자만 놓고 보면, 최향이 장악한 4개 군이 고려군 최강인 중앙군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부담스럽다.

질적으로 양적으로 중앙군인 2군 6위는 여타의 군과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슬쩍 웃었다.

“훗.”

전쟁은 병사들의 숫자로 하는 것이 아니다.

병서에 이런 말이 있다.

천시불여지리天時不如地利!

그 말뜻을 헤아려보면.

하늘의 때는 지리만 못하다는 것이다.

전쟁을 함에 있어 아군이 시기에 있어 적보다 유리하다 할지라도, 적이 유리한 지형을 선점하고 있으면 승리할 수 없다.

그 뜻이다.

전쟁에 있어 지형이 얼마나 중요한지 단적으로 말해주는 경구라 할 수 있다.

물살이 출렁이는 망망대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문득 머릿속에서 날 가르친 교관 강석우가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그만 웃고 말았다.

피식.

나와 동기들의 주 임무는 적 후방 깊숙이 침투하여 적에게 대항하는 반군을 훈련시켜 적중을 교란하는 것이다.

그런 나와 내 동기들을 강석우 그 인간이 교육시켰다.

강석우 그 인간 왈.

“살수대첩의 을지문덕 할배께서 엄청 중요한 명언을 남기셨다.”

나를 포함한 훈련받던 동기들 모두 강석우를 보며 초롱초롱 눈을 빛냈었다.

“그것이 무엇이냐?”

“…….”

“바로 전쟁이란 대가리 숫자로 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뭔 소린지 당시에는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었다. 강석우 그 인간은 제 멋에 취해 횡설수설했었으니깐.

난 그렇게 생각했다.

강석우는 그 인간이 말하기를.

“사람들은 전쟁에 대해 엄청난 선입견과 잘못된 편견 그리고 자신들이 전쟁을 안다는 무지에 차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영화나 드라마 또는 뉴스 등. 다양한 시각 매체를 통해 확보한 빈약한 정보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 하는 우를 범한다. 흔히들 전사가라고 하는 역사학자라는 범주에 속하는 자들 역시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지식이란 기반 위에서 전쟁을 본다. 하지만 나처럼 몸으로, 피부로 전쟁을 겪은 군인들은 전쟁을 보는 관점이 그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

“전쟁이란 일종의 요식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본래 전쟁이란 시작하기 전에 모든 것이 다 결정난 것을 확인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한 것이, 예상한 것이 실제 현실과 얼마나 맞아떨어지는지 알고자 하는 일종의 확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런 전쟁에서 소수의 병력으로 대규모의 병력을 상대로 싸우면서 전술로 커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삼국지에 보면 제갈공명은 철저하게 병력의 수를 지형에 기댄 전술로서 커버했다. 일반적인 전술이 아닌 지형에 기댄 전술이다.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제갈공명을 무슨 희대의 천재 내지는 전략가로 본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공명의 관련 부분은 상당 부분 과장이 없잖아 있다.”

나와 동기가 앉은 앞을 강석우가 왔다 갔다 하며 말을 이었다.

지루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졸거나 강아지 하나 입에 물고 빨고 싶은데.

전술 교육 시간이라 그렇게 하지 못했다.

강석우 교관 그 인간이 아주 독하게 군기를 잡는 터라, 당하고 후회하느니. 아예 처음부터 조심하는 것이 상책이다.

쓸데없이 군기 교육대 들락거려봐야, 들락거리는 놈만 불이익을 받는다.

강석우는 지 입으로 말하는 것에 흥이 나 신나게 혀를 놀렸다.

“지형!”

나와 동기들은 강석우의 강조에 눈을 반짝였다.

“바로 주변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것이다. 위대하시고 영명하옵신 우리 을지문덕 할배께서는 너희들을 위해 그 본을 보이시며 무언의 명언을 남기신 것이다.”

“…….”

“소수의 병력으로 다수의 적을 상대로 정면 대결은 절대 하지 마라. 철저히 주변 지형을 이용해라. 지형을 잘만 이용하면 소수로서도 얼마든지 다수를 물리칠 수 있다.”

썩을 인간.

그냥 주변 지형지물을 이용해 적을 상대하라고 말하면 되잖아.

뭔 사설이 그리 길던지.

강석우가 나와 동기들을 가르치던 것을 생각하며 슬며시 미소 지었다.

씨익.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린 그리운 한 때의 기억이다.

“그 인간. 지루하긴 했어도…… 그 인간이 해준 말이 생각나는 걸 보면 참.”

중얼거리며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성을 공격하기 위해 수양제가 우중문 그 딜빵이에게 딸려 보낸 병사의 수가 무려 30만 하고도 5천여 명이었다. 보급이 뭔지도 모르는 그 인간 때문에 병사들은 사실상…… 당시의 정확한 기록이 전하지 않는 관계로 을지문덕 할배가 운용한 병사들의 정확한 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겨우 수만여 명에 불과한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할배는 그 어떤 지원도 없이 몇 십 배에 이르는 우중문이 이끄는 별동대를 가볍게 세상에서 지워버리셨다. 여기에서의 교훈은 병력이 부족하면 지형에 기대 싸우라는 것이다. 지 잘났다고, 지가 무슨 천재 지략가라고 부족한 병력을 전술로 커버하려고 하다가는 그 즉시 골로 간다는 것을 명심해라.”

“…….”

“니들이 생각하는 전술은 적도 생각한다. 적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이 니들보다 더 고급 군사 교육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마라. 인명 살상에 있어 고도로 발달한 현대전 무기들은 어쭙잖은 전술 따윈 가볍게 허공으로 날려버리고도 남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지고 있음을 망각하지 마라. 적 지휘관 손에 무전기가 괜히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베트남전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제 아무리 돈을 처바른 최첨단 무기도 자연을 상대로는 답이 없다! 중요한 것은 지형지물이란 자연을 우군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걸 명심. 도 명심하란 말이다.”

난 시야에 보이는 출렁이는 물살에 흐릿한 작은 미소를 머금었다.

씩.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파란 빛을 띠었고, 하얀 구름들이 두둥실 떠가고 있었다.

“강석우. 그 인간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몰라. 지금도 애들 앞에 두고 횡설수설하고 있으려나.”

궁금하다.

“흠.”

눈을 반짝였다.

“서가, 천우위, 감문위 혼성군은 이것으로 처리됐고. 남은 것은 개경에 있는 최향인데.”

최향의 수중에 응양군과 신호위, 흥위위, 금오위. 4개의 군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어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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