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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
카즈오 번의 배들은 멀찍이 떨어져 불화살을 연거푸 쏴댔다.
쉬, 쉬, 쉬이익.
불화살들이 굽은 다수의 곡선을 그리며 허공을 날아갔다.
그리 오래지 않아 불화살, 화전火箭들은 밀집해 있는 몇몇 나주목의 배에 내리꽂혔다.
배에는 양광도 호족 연합군에 속한 병사들이 승선해 있었다.
파파파파파파팍.
화전은 갑판과 난간 그리고 승선한 병사와 선부들을 가리지 않았다.
깊이 박히면 활활 타올랐다.
“크아악.”
“꺼어어어억.”
몸에 화전이 박힌 병사와 선부들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져 나뒹굴었다.
그 사이.
다른 배에서는 병사와 선부들이 갑판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물!”
“어서 꺼.”
다급한 외침과 함께 선부들이 갑판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들은 배 곳곳에 박힌 화전의 불이 배에 옮을까? 매우 걱정했다.
화전은 화공을 뜻하는 까닭에 망망대해에서 배가 화마에 당하면 꼼짝없이 물고기 밥 신세라 다들 불안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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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일부 배들은 한 치의 틈도 없이 서로 바짝 밀착하고 있었다.
카즈오 번의 배.
양광도 호족 연합군을 태운 나주목의 배.
두 척의 배는 굉음을 내며 부딪쳤다.
콰앙.
이내 카즈오 번의 왜병들이 난간을 통해 건너편에 있는 나주목의 배로 옮겨 탔다.
나주목의 배 갑판에 껑충껑충 뛰어내린 왜병들은 즉각 단병접전短兵接戰에 들어갔다.
“막아.”
“이놈들.”
배에 탄 병사들이 왜병에게 달려들었고, 곧 무기와 무기가 부딪치는 격렬한 울림이 메아리쳤다.
채, 채, 채앵.
일련의 모든 상황을 지켜본 황산해는 목이 터져라 고함치고 또 고함쳤다.
“모여라. 모여 대형을 갖추란 말이다아아아!”
황산해는 자신이 얼마나 심각하고 중대한 실수를 범했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저 눈에 들어오는 해전 상황에 고함침으로서 답답함을 토로할 뿐이었다.
시야에 카즈오 번의 선단이 나타났을 때부터 판단과 대응이 잘못되었었다는 것을 황산해는 인지하지 못했다.
고려 수군에 속한 장수라는 것이 실로 무색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와 같은 중대한 실책의 이면에는 황산해가 해적들과 싸워본 경험이 전무全無하다는 치명적인 허점이 있다.
황산해는 해적들의 전술에 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체험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초기 대응에 실패하고 말았다.
황산해가 어, 어. 하는 사이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고 말았다.
じん旋風이라는 생소한 전술에 말려들어 어이없게도 패전을 자초하는 악수를 두고 말았다.
해전은 치면 치는 대로, 때리면 때리는 대로 고스란히 당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는 상황으로 진행되었다.
이 모든 상황을 책임져야 하는 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황산해였다.
잘 내린 판단이든, 잘못 내린 판단이든.
그것은 차후의 문제인데.
일단 생각나는 대로 じん란 덫에서 빠져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동은 포기한 채 흩어진 선단들을 모아 대형을 갖추는데 집착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낯선 것을 꺼린다.
그것은 낯선 것을 경계하고 피하려는 본능 때문이다.
체험해보지 못한 생소한 전법戰法이라면 응당 회피했어야 한다.
한데. 황산해는 초기에 시야에 보이는 생소한 전법을 관찰하고 지켜보며 돌아가는 상황의 추이를 보았다.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패착의 원인이었다.
지휘권을 가진 지휘권자가 적절한 조치를 내리지 못하는 사이, 선단을 형성한 각 배들은 움직이지 않고 대기한 채 황산해의 명령만 기다렸다.
마냥 수면에 둥둥 떠 있는 83척.
카즈오 번의 번주 카즈오 이토는 그 사이 통솔하는 선단에 고속 기동을 명했다.
카즈오 번의 선단은 네 무리로 나뉘어 황산해의 선단 사방에서 짓쳐들며 내부 깊숙이 파고들었다.
파고드는 속도가 가히 전광석화였다. 미처 어떻게 할 사이도 없이 그만 중앙을 내주고 말았다.
그 때부터 실질적인 혼란이 시작되었다.
애초에 네 방향에서 카즈오 번의 선단이 나타났을 때, 특정 한 방향에 있는 선단을 선택하여 집중 공격한 후, 외곽으로 빠져나왔어야 했다.
그런 다음 퇴각과 공격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황산해는 그러지 못했다.
퇴각과 공격은 공히 대열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대열을 갖추는 것은 필수다.
대열을 갖추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뿔뿔이 흩어져 항진 航進하다가는 전멸에 준한 타격을 재차 입는다.
공격도 마찬가지다.
보다 효과적으로 적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서는 일사불란한 체계와 움직임이 필수불가결하다.
그러지 않다면 적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없다.
퇴각하고자 한다면 제일 먼저 지휘선이 앞장서서 항진하며 퇴각 방향을 잡아주어야 한다.
그 뒤를 상태가 온전한 전선戰船들이 따라붙어야 하는데. 이는 다시 한 번 적과 일전을 결할 수 있는 전력의 보전 때문이다.
큰 타격을 받아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전선들을 후미로 돌려야 한다.
이유는 뒤쫓는 적의 발목을 잡고, 적이 지체하도록, 선단의 전열을 다시 가다듬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적에게 먹잇감으로 내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적이 후미로 돌린 아 측의 무용지물인 전투불능에 빠진 배들을 공격하는 사이 최대한 거리와 시간을 벌어 선단을 재정비해야 한다.
냉혹한 조치이지만 전쟁을 염두에 두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당하는 후미의 배에 승선한 병사들을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비난 받아 마땅한 조치겠지만 다시 한 번 결전을 하고자 한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전쟁을 하는 지휘관은 감정을 버리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는 까닭에 때로는 무자비한 비난과 질책을 받는다.
중요한 것은 전쟁에서의 승리다!
황산해는 돌이킬 수 없는 몇몇 실책을 범했다.
첫째는 이전의 출항에서 해전이 없었다는 안일함이고, 둘째는 83척에 이르는 선단에 대한 믿음이었다.
이민호가 지난 몇 년 동안 공들인 배들 중 일부이지만 그 전투력이 막강하다 확신하여 자신도 모르게 자만이라는 감정의 늪에 빠졌다.
셋째는 적에 대한 정보의 부재다.
황산해는 혹두에게서 그 어떤 정보도 건네받지 못했다. 그에 적에 관해 아는 바가 전무했고, 그런 상태에서 조우한 카즈오 번의 전법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카즈오 번은 그 시작이 해적인 탓에 해전에 있어 야마토 최강이다.
그런 상태에게 특기라고 할 수 있는 전법을 시행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위와 같은 점을 염두에 두면 황산해는 수군 장수로서 심각한 결격 사유를 가지고 있다.
황산해는 초기에 카즈오 번의 전법 じん을 지켜보는 것에만 주력했다.
전혀 보지도 듣지도 체험해보지도 못한 전법을 우두커니 서서 살피는 실책이었다.
뒤늦게 중앙으로 파고든 카즈오 번의 선단을 보고 황망히 놀라, 어서 빨리 적들을 공격하라는 어이없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뒤늦은 명령은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선단을 형성한 각 배는 우왕좌왕, 허둥지둥거리며 어찌 할 바를 몰랐다.
황산해가 가만히 지켜보고, 뒤늦게 명령을 내린 바람에 전황戰況은 삽시간에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고 말았다.
위기 상황에 몰린 선단은 이내 지리멸렬이라는 현실을 목전에 두었다.
사방에서 나주목의 배들이 미처 손쓸 틈도 없이 분쇄당하고 있었다.
빠르게 배들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화마에 당해 가느다란 검은 연기들을 하늘로 피워 올렸으며, 수면으로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떨어졌다.
한 마디로 말해 주변 해역은 아수라장이었다.
“으아아악!”
“아, 안 돼에에.”
“크허억.”
호족 연합군의 병사들이 내지르는 비명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비명들은 주변 해역으로 아스라이 메아리쳤다.
그 사이.
해역 곳곳에서는 온갖 소리들이 뒤섞인 채 울려 퍼졌다. 비명들은 불과 한 호흡의 시간이 되기도 전에 뒤섞인 소리에 묻혀버렸다.
83척으로 이루어진 선단에 속한 나주목의 배들은 허무하리만치 쉽게, 카즈오 번의 선단이 가하는 맹공에 당해 하나둘씩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카즈오 번의 선단을 형성한 배들은 나주목의 배보다 크기가 작았으나 그 수는 많았다.
무엇보다도 나주목의 배보다 기동력이 빠르고 좌우 선회가 신속했다.
그 광경에서 해적 특유의 면모가 물씬 풍겼다.
차츰 83척에 이르는 선단은 괴멸이란 종착역으로 치달았다.
“이게 무슨!”
황산해의 우측 뒤에 서 있는 서풍은 주위를 돌아보며 망연자실했다.
해전은 없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안중에 두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황산해가 그리 말했고, 선부들 역시 전날의 경험에 비추어 은연중에 동의하며,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호위 선단이 붙긴 했지만.”
“뭐, 호위 선단이 싸울 일은 없을 거야.”
“그냥 만약을 대비한 조치일 뿐이잖아.”
“아, 저번에도 해전은 없었다고. 왜놈들은 별 거 아냐?”
선부, 병사들은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특히 선부들은 자만에 깊이 빠져 있었다.
이민호가 최고 지휘관인 것과 황산해가 최고 지휘관인 것은 엄연히 큰 차이가 있음에도 다들 미처 그 차이를 인지하지 못했다.
“이게 다 무슨 일이란 말이오!”
서풍은 큰 목소리로 소리치며 황산해를 보았다.
“…….”
등을 보이고 선 황산해는 아무 말하지 않고 침묵했다.
“장군. 지금 선단이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산산이 깨어져나가는 광경이 안 보이시오!”
서풍은 재차 황산해에게 소리쳤다.
“…….”
황산해의 침묵이 이어졌다.
얼굴 가득 당황이란 감정을 띄운 황산해의 귀에 서풍의 고함은 들리지 않았다.
주위 상황을 살피며 진한 안타까움이 배인 표정을 지은 황산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황산해는 어쩔 줄을 몰랐다.
머리가 텅 비어버렸고,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주어진 현실에 갈팡질팡 하며 심중 혼란에 자신도 모르게 휘둘렸다.
그 사이.
고래고래 고함치는 서풍의 좌우로 조규와 이정찬이 뛰어왔다.
“주군!”
“빨리 이곳을 벗어나셔야 합니다.”
조규와 이정찬이 다급히 외쳤다.
서풍은 뒤돌아서며 다다른 조규와 이정찬을 마주보았다.
“나더러 지금 도망치란 말이오!”
성난 외침을 질렀다.
“전황이 매우 안 좋습니다. 주군.”
“이미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괴멸지경에 이르렀다.
조규와 이정찬은 그런 판단을 내리고, 서풍에게 이를 알렸다.
행여 서풍이 불의의 죽음을 맞지는 않을까?
조규와 이정찬은 무척 염려했다.
그에 서풍은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려 하였다. 그러자면 타고 있는 지휘선을 돌려야 한다.
“상황을 냉정하게 직시하셔야 합니다.”
“다시 한 번 일전을 결할 기회를 버리실 참이십니까?”
“주군. 정찬의 말이 옳습니다. 이번 일전으로 모든 것을 끝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부디 잠시의 치욕을 참으시고 설욕의 기회를 노리십시오. 이대로 고집을 피우신다면 천추의 한을 남기게 됩니다. 주군.”
조규와 이정찬은 간절한 목소리로 똥고집(?)을 부리는 서풍을 설득하려 애썼다.
서풍은 이성이 남아 있는 타라 조규와 이정찬의 조언을 받아들일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이번 일전으로 모든 것을 끝낼 수는 없는 까닭에.
“으아아아아아아아.”
서풍은 스스로의 분에 겨워 머리를 쳐들었다.
목이 터져라 하늘을 향해 고성을 지르며 심중의 분노를 표출했다.
조규와 이정찬은 그 사이 황산해를 돌아보았다.
“황 장군.”
“어서 이곳을 빠져나갑시다.”
황산해는 조규와 이정찬의 고함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어떡하든 직면한 전황을 돌려보려 안간힘을 썼다. 주변을 돌아보며 목이 터져라 소리치고 또 소리쳤다.
“모이란 말이다. 모여서 대형을 갖춰!”
황산해는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갔다.
주변에 있는 배들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아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83척에 이르는 선단이 반 가까이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배 한 척을 건조하는 데 들어가는 재물이 가히 거만금이다.
벽란도 제일의 상인인 조자개의 부가 없었다면, 염전과 같은 이민호의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몸부림이 없었더라면, 꿈도 꾸지 못할 340여 척에 이르는 배.
그 중 ¼에 해당하는 83척의 배 중 40여 척 이상이 눈 깜짝할 시이에 세상에서 사라져버렸다.
언제 있었느냐는 듯, 지워져버리듯, 종적이 묘연한 배들.
배도 배지만, 그 배에 타고 있었을 선부와 병사들을 생각하면 눈앞이 그저 아득하기만 한 황산해였다.
“어, 어찌!”
황산해는 믿을 수 없다는 강한 현실 부정이 밴 어조로 중얼거리며 망연자실했다.
넋 나간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