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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살이 찌푸려지는 광경이었다.
몇 차례 맞은 듯 이규보의 얼굴은 멍투성이였다. 머리에 쓴 머리쓰개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최향은 무심히 낭장, 병사들, 이규보를 응시했다.
잠시 뒤.
낭장과 병사들 그리고 이규보가 이내 최향의 면전에 다다랐다.
병사들은 이규보의 어깨를 눌러, 최향의 발치에 무릎 꿇렸다.
털퍼덕.
이규보는 무릎 꿇은 자세로 최향을 올려다보았다.
“이 무슨 무례이오니까? 참지정사!”
강한 어조로 항의했다.
최향의 눈가가 미미하게 실룩였다.
얼굴에 불쾌감이란 옅은 감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천천히 최향의 입이 열리려는 순간.
“주군.”
김덕명이 최향을 부르며 옆으로 돌아섰다.
“문신입니다. 부디 그간 상국 합하를 지근에서 모신 공을 생각해 주십시오.”
공이 있다.
위협이 되지 않는 글만 읽는 문신이다.
그러니 목숨은 살려두는 것이 어떠냐?
김덕명은 그런 속내를 담아 최향에게 말하며 자비를 구했다.
최향은 이규보를 힐끔 내려다보더니 뒤돌아섰다.
“김 낭장이 알아서 하시오.”
간결한 대꾸에 김덕명은 반색하며, 걸음을 떼는 최향에게 머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주군.”
김덕명은 머리를 들며 낭장과 병사들을 돌아봤다.
“풀어주게.”
“네.”
“그럼.”
낭장과 병사들은 최향의 말을 들은 탓에 대답하며 한 걸음 물러났다.
그들은 뒤돌아섰다.
김덕명은 걸어가는 낭장과 병사들을 일별한 후 이규보를 보았다.
“고생하셨소이다.”
“이 무슨 일이란 말이오. 야심한 시간에 왜에?”
이규보는 일어나며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전혀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다.
김덕명은 착잡한 기색을 띠었다.
“참지정사께서 거병하셨소이다.”
“예에에에.”
이규보는 크게 놀라, 뒤로 넘어갈 듯 비틀거렸다.
아연실색한 모습이었다.
이민호에게서 언질이 있었지만 설마 오늘 밤일 줄이야.
“…….”
이규보는 입을 쩌억 벌렸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은 듯 반쯤 넋 나간 얼굴이었다.
김덕명은 착 내리까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없는 듯 가만히 계시오, 삼흑호. 우리가 나설…….”
살고 싶으면 말없이 가만히 있어라.
그래야 산다.
김덕명은 이규보에게 무언의 언질을 주었다.
얼굴빛이 흐려지는 것이 심중 꽤 번민하는 눈치였다. 은연중에 최충헌이 누워 있을 거처를 흘낏거렸다.
김덕명의 시선에서 뭐라 말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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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바다에 수많은 배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꼬옥 붙인 양손에 듬뿍 담은 수많은 콩을 바다라 불리는 곳에 힘차게 흩뿌려 놓은 듯한 광경이었다.
수많은 배에서 가느다란 다수의 검은 연기가 하늘로 피어올랐다.
활활.
배를 사르는 붉은 화염이 충천했다.
수면에는 온갖 파편과 통을 비롯한 다수의 물품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시신들이 둥둥 떠 다녔다.
그 모든 것은 출렁이는 물살에 밀려 이리저리 힘없이 오갔다.
왜와 고려의 병사들.
그들은 죽어 시신이 되어 주변 수면을 뒤덮었다.
한때 츄코쿠 제일의 해적으로 널리 악명을 떨치다가 미나모토 요리토모의 수하로 들어간 인연으로 지금은 카즈오 번이라 불리는 바다의 망령 모우료우もうりょう.
그들은 여전히 츄코쿠 제일의 선단과 타 번의 추종을 불허하는 막강한 해상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전날 이민호도 그들이 심중 걸려 해전을 염두에 두고 호위선단을 별도로 움직였었다.
카즈오 번의 번주이자 모우료우를 지후하는 장년의 무장 카즈오 이토.
우측에는 류켄이 서 있었다.
이글이글.
류켄은 원한이라는 감정에 사무친 안광을 번득였다.
아내와 아들의 죽음이 머리에 떠오르는 듯 얼굴 가득 격한 감정이 배였다.
한편.
카즈오 이토는 냉철한 눈빛을 띠며 상대하는 양광도 호족 연합군 3천이 탄 83척의 배를 예의주시했다.
회오리처럼 사면에서 치고 들어가 83척으로 이루어진 선단의 중앙을 네 토막으로 쪼갰다.
그 다음 치고 들어간 카즈오 번의 배들을 시계 방향으로 돌려, 닥치는 대로 눈에 띄는 배들을 맹공격했다.
불화살을 중심으로 하공을 구사하고, 갈고리가 달린 밧줄을 던져 배와 배를 붙이고 상대편의 배로 건너가, 해상 근접전을 벌렸다.
じん旋風.
과거 그런 명칭으로 불렸던 공격 전술은 여전히 유효했다. 본연의 위력을 발휘하여, 아직 바다의 망령이 존재함을 과시하며 승기를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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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 콰, 콰아아앙.
배와 배가 충돌하는 굉음이 연이어 들렸다.
카즈오 번의 배는 애초부터 선박과의 충돌을 염두에 두고, 선두 아랫부분에 충각을 붙였다.
귀신 형상으로 조각된 아름드리 굵은 나무 기둥 충각은 거침없이 83척으로 이루어진 선단의 한 배를 측면에서 들이받았다.
쿠아아앙.
받힌 배는 충격에 반대 방향으로 기우뚱거렸다. 그에 배에서 고려 병사들이 중심을 잃고 바다로 떨어졌다.
“으아아아아.”
“어, 어어.”
그들은 몸으로 수면을 때렸다.
첨벙첨벙.
크고 작은 물기둥이 솟구쳤다.
그 사이.
들이받은 카즈오 번의 배와 받힌 고려의 배가 이어지듯 바짝 붙었다.
카즈오 번의 배에서 가병들이 손에 들고 빙빙 돌리던, 갈고리가 달린 밧줄을 고려의 배로 던졌다.
밧줄들은 풀어지며 좌우로 오갔다.
수많은 뱀이 허공을 날아가는 듯한 광경이었다. 갈고리는 이내 고려의 배에 걸렸다.
난간과 돛 등.
가병들은 밧줄을 당겨 팽팽하게 만든 후, 고려의 배를 보다 바짝 끌어당겼다.
그리 오래지 않아, 배와 배 사이가 껑충 뛰어 건널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아랫도리를 훈도시라 불리는 하얀 광목천으로 가린 카즈오 번의 가병들이 호족 연합군이 승선한 배로 건너갔다.
“막아라.”
“어딜 넘어와.”
호족 연합군에 속한 병사들과 카즈오 번의 가병들이 이내 격렬히 맞붙었다.
채채채채챙.
병기가 격렬히 맞부딪치는 울림이 메아리쳤다.
그 사이.
카즈오 번의 배들은 양광도 호족 연합군이 탄 배를 연이어 격파했다.
지휘선에 승선한 황산해는 필사적으로 흩어진 각 배를 지휘 체계 아래로 끌어들이려 하였다.
하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회오리치는 공격 전술은 호족 연합군이 탄 선단을 네 토막으로 나눈 후, 즉각 각개 격파에 들어간 탓에 선단은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황산해는 지휘가 먹혀들지 않는 상황에 분통을 터트렸다.
“이, 이이!”
선단을 구성한 각 배에 승선한 호족 연합군의 병사들과 배를 움직이는 선부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생소한 형태의 공격에 즉각 대응하지 못했다.
모우료우라 불리는 카즈오 번의 배들은 결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격렬히 공격하며 선단을 계속 혼란이란 이름의 늪으로 몰아붙였다.
황산해는 주위를 돌아보며 고함쳤다.
“흩어지지 마라! 모여 대형을 갖춰라!”
고함은 사방으로 울려 퍼졌지만 황산해가 원하는 결과는 없었다.
혼란은 비단 호족 연합군에 속한 병사들만이 겪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선부들이 겪고 있었다.
“어, 어떻게 하지.”
“나도 몰라.”
카즈오 번의 선단들이 중앙에서 바깥으로 오가며 고려 호족 연합군의 선단을 갈라놓은 터라, 호족 연합군의 선단은 허둥지둥거렸다.
황산해 역시 혼란을 겪고 있었으나,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
전혀 맞닥뜨린 적이 없는 생소한 공격 전술에 말 그대로 손 한 번 재대로 쓰지 못하고 당하고 말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아.”
황산해는 치미는 분을 이길 수가 없었다.
마주한 상황은 경험해보지 못한 해상 전술이었다.
수군 장수로서 교육받은 적이, 체해보지 못한 기기묘묘해 보이는 전술에 적절한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거기에 더해, 각 배에는 해전을 치를 수병이 승선하지 않았다.
승선한 양광도 호족 연합군은 해전이 뭔지 하나도 모르는 탓에 죄다 중구난방이었다.
황산해는 일정한 틀에 한정된 해전 전술만을 아는 터라, 해적들을 상대해 본 경험이 일천한 까닭에 사실상 지휘다운 지휘를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