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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기-222화 (222/247)

<-- 222 회: 8-23 -->

아직 시일이 있다.

남동생 최향이 이런 일을 저지르지 않을 수도 있다.

천천히 갖춰나가면 된다.

아직 동생 최향이 우려하는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리 여긴 결과가 아무래도 자신의 죽음 같아, 최우는 진하고 진한 허망함을 느꼈다.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며 한탄에 젖은 목소리로 뇌까렸다.

“향아. 내 동생아. 내 진정 권력에 눈이 멀어 이 형을 죽이고자 하느냐?”

비탄에 젖은 최우를, 최준문이 지그시 응시하며 상체를 내밀었다.

최준모는 양손을 안장에 얹으며, 어리석다는 심중을 담아 최우에게 말을 건넸다.

“주군을 원망치 마시오, 최 부사 나리. 이게 다 합하께서 최 부사 나리에게 교정도감을 맡기고자 하신 것에서 시작되었으니 말이오.”

최우는 고개를 숙여 최준문을 바라보았다.

최준문은 승자의 여유가 진하게 묻어나는 표정을 지었다.

“훗훗. 전처럼 있는 듯 없는 듯 권력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소. 이리 형제간에 피를 흘릴 일도 없고, 주군이신 최향님께서 합하의 뒤를 이어 상국의 자리에 오르시면, 설마하니 형인 최 부사 나리와 식솔들을 나 몰라 하였겠소. 아마 모르긴 해도 평생 호의호식하며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도록 남다른 배려를 하셨을 것이오. 그런 복을 제 발로 찬 것은 바로 최 부사 나리시니. 주군을 원망치는 마시구려.”

최준문은 히죽 웃었다.

조롱이었다.

“허허허허.”

최우는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시선을 숙여 땅을 보았다.

‘아버님.’

부친 최충헌을 생각하며, 심중 이는 비애에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왜 아버님이 그 사람을 곁에 두라. 나주로 보내지 말라. 그리 당부하셨는지.’

최우는 자신이 어리석었다. 그리 속으로 자책하며 후회에 후회했다.

이민호.

하나 밖에 없는 외동딸의 남편이자 자신의 사위다. 그런데 질투하고 경계했다.

부친이 자신이 후계를 승계하는 조건으로 내건 탓에 은연중에 상당한 반감을 느꼈다.

몇 년 전 왜구가 양광도에 쳐들어왔었다.

당시 자신은 부친 최충헌의 정예 가병 1천을 이끌고 광주목 공략에 나섰다.

한데 광주목 공성에 실패하며 최양백, 김준을 비롯한 다수의 희생자를 내고 말았다.

참패였다.

당시 이민호가 당도하여 단숨에 전세를 역전시키고 광주목을 탈환했었다.

군사적 역량에 있어 자신이 이민호에게 미치지 못함을 마음 한구석으로 한탄했다.

질투라는 시기심이 본능적으로 일며 경계라는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이민호가 탁월한 지력과 지휘력으로 휘하 군병을 비롯한 이들을 휘어잡는 모습에 심중 강한 꺼림을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이민호와 비교하고 말았다.

이는 거부감이란 정말

그런 감정의 밑바탕에는 자신보다 나이가 어림에도, 자신이 따라갈 수 없는 역량을 가진 것에 대한 열등감과 부러움이 깔려 있었다.

거기에 더해 부친 최충헌이 유달리 이민호를 총애하며 챙기고 아끼는 것에 불만을 품었었다.

그런 결과로 이민호가 나주로 내려가고자 할 때 적극 찬성하며 은근히 힘을 실어주었다.

만약 이민호가 부친 최중헌의 만류대로 개경에 남아 있고, 자신의 곁에 있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최우는 돌이키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린 현실에 깊은 좌절과 비애 그리고 절망이란 세 감정을 맛보았다.

머리를 들어 다시금 밤하늘을 보며 허허로운 눈빛을 띠었다.

그런 초우를 최준문과 네 무장 그리고 병사들이 지켜보았다.

네 무장은 그새 최준문의 곁으로 탄 말을 몰았다.

또각또각.

낮은 말발굽 소리가 울렸다.

네 무장은 최준문의 주변으로 살며시 다가가 서며, 넌지시 말을 붙였다.

“대장군. 저대로 둬도 되겠습니까?”

“속히 처리하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대장군. 이리 시간을 끌 일이 아닙니다.”

“어서 빨리 처리하고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그러니.”

네 무장은 빨리 최우의 명줄을 끊고, 장원을 벗어나자 그리 최준문을 채근했다.

“…….”

최준문은 가지런히 입을 다물고 아무 말하지 않았다.

네 무장은 최준문이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것에 답답해했다.

“대장군.”

“어서 빨리.”

최준문은 네 무장의 채근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서둘지 마라. 합하의 장자이고, 주군의 형님이다. 함부로 대할 사람이 아니다.”

최준문은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내 무장의 채근을 뿌리쳤다.

최우는 한동안 밤하늘을 보더니, 마음을 굳힌 듯 검을 쥔 오른 손아귀에 힘주었다.

꽈아악.

천천히 최준문을 향해 돌아서며 처연한 표정을 지었다.

“하늘이 아우 향이를 선택했으니. 난들 어쩌겠는가? 하나! 지금 이 순간 내가 왜 나주 목사인 내 사위의 말을 흘려들었는지, 사위의 말대로 왜 진작 향이의 목을 치지 않았는지, 땅을 치고 통곡하고픈 마음이야.”

최우는 말을 마치며 살며시 미소 지었다.

삽시간이었다.

오른손에 쥔 검을 들어 목에 대고 망설임 없이 움직인 것은…….

스으으읏.

최우는 거침없이 자신의 목을 우측으로 그어버렸다.

그와 거의 동시에 오른손에 쥔 검이 맨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쨍그랑.

검날에 베인 목의 살갗이 위아래로 벌어지고, 진홍색 선혈이 콸콸 흘러내렸다.

서서히 목이 옆으로 기울고, 그리 오래지 않아 최우의 머리와 목이 분리되었다.

목은 맨땅으로 떨어져 떼굴떼굴 굴렀고, 머리가 없는 몸은 뒤넘어갔다.

머리가 없는 몸은 격렬히 경련했다.

그 사이.

흘러내린 피가 주변 지면으로 퍼져 나가며, 지면을 붉게 물들였다.

네 무장과 병사들은 자진한 최우를 보며,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움찔거렸다.

다들 뜻밖이라는 얼굴 표정을 지으며, 당혹감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 모습에서 놀람이란 감정이 우러났다.

최준문은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안장에 앉은 자세를 고치며, 자진한 최우를 잠시 바라보았다.

잘린 목과 몸.

최준문의 시선에서 허망이라는 감정이 진하게 묻어났다.

“이리 될 수밖에 없었소이다. 그대와 주군께서 형제로 태어나신 것이, 상국 합하의 장자와 차자로 태어난 것을 원망하시구려. 최 부사.”

중얼거리며 왼손에 쥔 말고삐를 왼쪽으로 당겼다.

“시신을 수습해서 주군 댁으로 옮겨라.”

최준문은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예에.”

병사들은 우렁차게 대답했다.

최준문은 그 사이 말머리를 왼쪽으로 돌렸다.

네 무장은 최준문을 뒤따랐다.

병사들은 그 사이 죽은 최우를 향해 몸을 돌렸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완만한 걸음으로 최우에게 다가갔다.

10 장

최충헌의 사저는 최향이 데리고 온 500여 명에 이르는 응양군 병사에 의해 점거되었다.

병사들은 사저 곳곳으로 흩어져, 개미 새끼 한 마리 드나들 수 없을 정도로 엄중한 경계망을 펼쳤다.

사저 안팎은 완벽하게 단절되어 외로운 섬이나 마찬가지였다.

최향의 명이 없는 한 그 누구도 사저를 마음대로 오갈 수 없었다.

뜰.

곳곳에 중무장한 응양군의 병사가 서 있었다.

병사들은 매서운 눈초리로 서 있는 주위를 살폈다.

단지 서 있을 뿐임에도 서릿발 같은 기운이 물신 풍겼다. 척 봐도 정예 중의 정예임을 알 수 있는 모습들이었다.

굳게 쥔 창, 허리춤에 비껴 찬 검, 가벼운 경장의 갑주.

그들은 여느 병가들처럼 평범한 차림이었으나, 왕을 시위하는 2군 중 하나인 응양군 소속답게 강건한 기세를 뽐냈다.

@

최향은 뜰에 서서 부친 최충헌의 거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음!”

갑주들 걸친 여남은 명의 낭장들이 거처를 시위한 광경이 시야에 보였다.

낭장들은 각기 정해진 자리가 있는 듯, 은연중에 규칙적인 간격과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낭장들을 하나의 선으로 잇는다면 하나의 도형이 나타날 것 같았다.

진법陣法이었다.

최향은 낭장들이 진법을 치고 선 것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 때.

드륵.

거처의 문이 열리며 김덕명이 나왔다.

김덕명은 옆으로 돌아서며 문을 닫았다. 그런 후 돌아서다가 최향이 눈에 들어오자 흠칫거렸다.

조심스러우면서도 빠른 동작으로 김덕명은 서 있는 최향에게 걸어가 섰다.

“주군.”

정중히 머리를 숙였다 들었다.

“아버님의 상태는?”

최향은 감정이 배제된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부친의 병세를 물었다.

“안 좋으십니다. 지금 혼수상태이신데. 어의의 말로는 오늘 내일이 고비라 합니다.”

“…….”

최향은 침묵하며 착잡한 얼굴빛을 띠었다.

낳아주고 키워준 아버지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자식으로서 슬픈 마음이 일지 않을 수 없어, 거병한 것에 내심 진한 가책을 느꼈다.

하지만 그 가책을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어, 무표정한 얼굴로 차가운 냉기를 풍겼다.

김덕명은 최향이 침묵하자, 수하된 자로서 눈치가 보여 입을 다물었다.

“…….”

요리조리.

김덕명은 눈동자가 구슬인 양 양쪽으로 돌리며 최향의 신색神色을 살폈다.

최향은 심중에 뭔가 떨치지 못한 것이 있는 듯 고심하고 있었다.

갑작스레.

“나으리!”

뒤에서 누군가가 최향을 부르며 뛰어왔다.

김덕명은 고개를 뒤돌렸다.

뒤이어.

최향이 뒤돌아보았다.

“저, 저어.”

김덕명은 시야에 보이는 광경에 곤혹스러운 기색을 띠었다.

낭장으로 보이는 자가 다섯 명의 병사와 함께 이규보를 질질 끌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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