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221화 (221/247)

<-- 221 회: 8-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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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들의 후미에서 두 사람이 소리 없이 떨어져 나왔다.

두 사람의 움직임을 알아챈 자는 선두에서 움직이는 중년인과 두어 명의 장한 밖에 없었다.

대열에서 이탈한 두 사람은 인근에 있는 숲으로 향했다. 곧 숲에 이르러 종적을 감췄다.

얼마 후.

두 사람이 숲을 가로지르며 달음박질쳤다.

“허, 허억.”

주형은 간만에 뛰는 터라, 그리 오래지 않아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그 때문에 죽을상을 지었다.

“나, 나리.”

걸음을 멈추고 앞서 달음박질치는 날 불렀다.

난 멈춰서며 뒤돌아보았다.

“쯧.”

보니 딱이다.

평소 뛰지 않던 주형이 놈이 별안간 뛰니, 금방 숨이 찰 수밖에.

“심호흡 해.”

“네?”

주형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날 보았다.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라고. 배꼽까지 숨을 깊이 마셔. 그리고 뛸 때는 입을 오므리고 빠르게 숨을 쉬도록 해. 그러면 한결 숨이 덜 찰 테니깐.”

“예에.”

대답하는 주형의 뒤에서 보이는 것에 난 흠칫했다. 이내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크게 놀란 표정을 지은 탓에 주형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나리. 왜 그러십니까?”

“…….”

난 입을 다물고 계속 주형의 뒤를 보았다.

주형은 내가 뒤를 보자, 무심코 고개를 뒤돌렸다.

일순.

“허어어어억!”

헛바람을 깊이 삼켰다.

황도 개경에서 화광이 충천했다. 불이 난 것이 틀림없다. 불이 얼마나 크게 났는지, 성 밖임에도 화광이 매우 밝았다.

“나리.”

주형이 목소리를 높이며 날 돌아보았다.

“너무 빨라.”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최향의 움직임이 빨랐다.

아버지 최충헌과 형 최우.

최향도 사람이니 고민하고 번민하며 적잖은 시일을 끌 것이라, 그리 예상했었다.

한데 뜻밖에도 내가 도성을 빠져나온 지금 최향이 거병할 줄이야.

“움직임이 이리 신속하다니.”

내가 아무래도 최향을 얕잡아본 것 같다. 이렇게 신속하게 움직인다면, 최향은 여느 사람과 남다른 면이 있다고 봐야 한다.

결단이 빠르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나리. 도성에서 큰 불이 난 것 같은데요.”

주형이 내게 말을 걸었다.

“가자.”

“네?”

“빨리 한수로 가서 기다리고 있는 지휘선을 타고 나주로 가야 한다. 서둘러.”

주형에게 던지듯 말하고는 뒤돌아섰다.

난 급히 뛰었다.

타다다다.

주형은 뛰는 나와 화광이 충천하는 개경을 번갈아보았다.

“젠장.”

중얼거리며 돌아섰다.

“나리. 같이 가시죠.”

주형이 소리치며 날 향해 뛰어왔다.

난 앞을 보며 부지런히 발을 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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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도 개경의 밤거리를 중무장한 수많은 병졸이 내달렸다.

용호군과 좌우위를 제외한 2군 6위.

응양군, 신호위, 홍위위, 금오위, 천우위, 감문위.

그들이 개경 곳곳을 내달리며 각처로 흩어졌다.

우루루.

그리 오래지 않아 개경 곳곳에서 크고 작은 싸움이 일어났다.

미처 방비하지 못한 용호군과 좌우위에 속한 상장군, 대장군, 중랑장, 낭장, 별장, 산원, 위, 대정 등.

지휘 체계에 속한 이들이 야심한 밤중, 각자의 집에 있다가 일단의 병사에게 습격받았다.

다들 변변히 검을 한 번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가솔들과 함께 죽임을 당했다.

병사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할당된 집에 있는 사람은 주인 내외이건 종이건 가리지 않았다.

닥치는 대로, 눈에 띄는 대로 마구 참살했다.

“크아아아악.”

비명이 그칠 새가 없었다.

옆집이나 인근에 있는 몇몇 집에서 사람들이 놀라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광경과 비명에 기겁했다.

부리나케 뒤돌아서며 각자 나왔던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개경은 공포의 도가니로 치달았다.

황도 개경의 행정과 치안 등.

일련의 업무를 전담하는 개경부는 침묵했다.

일련의 출입문을 모두 굳게 닫고, 사람이 없는 양 쥐 죽은 듯이 고요한 정적 속에 잠겼다.

조정 문무 대소 신료들의 집은 모두 황도 개경에 있다.

최향에게 언질을 받은 이들은 집 대문을 굳게 닫아걸고, 집안 가솔에게 단단히 일렀다.

“날이 밝을 때까지 방밖으로 나와서는 안 된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밖으로 나와서는 안 된다. 밖으로 나오면 그 즉시 죽을 것이니. 살고 싶다면 방 밖으로 결코 나와서는 아니 될 것이야.”

각 대신들의 가솔들은 영문을 몰라 하면서도, 죽는다는 말을 들어, 일찌감치 방문을 꼬옥 걸어 잠그고 잠자리에 들었다.

병사들이 내달리는 소리, 각종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 사람들이 내지르는 고성과 죽어가며 내지르는 비명 등.

다들 밖에서 들리는 온갖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이게 무슨 소리야?”

“으음. 자는데…….”

“여보. 좀 일어나 봐요. 밖에서 나는 소리가 이상해요.”

“왜 그래.”

다들 잠자리를 설쳤다.

운이 나쁜, 당부를 망각한 몇몇 사람이 무슨 일인가 싶어 밖에 나왔다가 공교롭게도 휘말려 죽고 말았다.

온 개경이 밤새 몸살을 앓듯 몹시 소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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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의 장원은 별안간 쳐들어 온 일단의 병사로 인해 최우의 장원에서 일대 혈전이 일어났다.

“누구냐?”

“예가 어느 분 댁인지 알고.”

최우의 장원 대문 좌우에 서 있던 몇몇 가병이 몰려든 병사들을 제지했으나 삽시간에 베임을 당해, 피를 흩뿌리며 죽었다.

“들어가라.”

“그 누구도 살아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야.”

병사들을 지휘하는 대장군 최준문의 명에 병사들은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에에.”

병사들은 힘찬 함성을 지르며 장원 안으로 치고 들어갔다.

“와아아아아.”

그리 오래 되지 않아, 병사들은 자다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온 가병들과 단병접전短兵接戰을 벌렸다.

차차차차창.

최우의 가병들은 쳐들어 온 병사들과 용감무쌍하게 싸우며 분전했다.

하지만 수적으로 열세였고, 개인 훈련도와 무위에서 적잖은 차이가 있었다.

가병들은 무인지경으로 장원을 병사들에게 내주며, 밀리거나 죽임을 당했다.

“크아아악.”

“아아아악.”

최준문은 거침없이 최우의 가병들을 몰아붙이며, 빠르게 가병들의 수를 줄여나갔다.

그에 비례해 주변 땅바닥에 시신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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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 뛰쳐나온 듯, 최우는 침의 차림으로 서서 숨을 헐떡였다.

“허, 헉.”

오른손에 든 검이 천근만근이었다.

최우는 조금 전까지 자고 있었던 거처를 등지고 서서. 툇마루를 힐긋 돌아보았다.

서너 대의 화살을 맞은 아내 정 씨가 엎어져 있었다.

최우는 비통한 심정을 가눌 수 없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분노에 찬 격한 눈빛을 번쩍였다.

정면과 좌우에 서서 대치한 80여 명 남짓의 병사들이 살기를 드러냈다.

빈틈없이 에워싼 탓에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병사들이 서너 겹으로 최우를 둘러싼 탓에, 적잖은 긴박감이 묻어났다.

최우는 심리적인 압박을 받는지 눈빛이 흔들렸다.

정면에 있는 세 겹의 병사들 너머에 다섯 필의 말이 서 있었다.

안장에는 5명의 무장이 앉아, 물끄러미 최우를 주시했다.

가장 앞쪽에, 멋들어진 갑주를 착용한 장년의 무정이 무심한 눈빛을 띠었다.

대장군 최준문.

최우는 거친 숨을 내뱉었다.

“허억, 헉.”

그럴 때마다 가슴과 어깨가 위아래로 들썩였다.

입은 침의 곳곳에는 핏방울이 튈대로 튀어, 어느새 본연의 색깔을 잃었다.

최우는 최준문에게 성난 외침을 내질렀다.

“네 이놈. 최준문.”

오른손에 쥔 검을 들어 최준문을 가리켰다.

“일찍이 아버님이 널 거두어, 그 은혜로서 지금의 네가 있거늘. 감히 향이를 꼬드겨, 형제간에 골육상잔을 부추기다니. 그 죄! 골백번 죽어도 씻지 못할 것이야아아아.”

최우는 성날 대로 성난 모습이었다.

호흡이 원활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심중 이는 분노를 가눌 길이 없어, 무리하게 최준모를 질타했다.

최우는 이 모든 일이 남동생 최향의 결단에 의한 것이라, 믿을 수 없었다.

최향에게 몰려 권력을 탐하려는 최준모, 지윤심, 유송절, 김덕명 등이 공모하여 저지른 변란變亂으로 보았다.

최우는 왼쪽으로 비켜서며, 최준문을 가리킨 검을 조금 더 내뻗었다.

“최준문!”

“…….”

“은혜를 원한으로 갚은 금수보다 못한 놈아. 네기 이러고도 천벌을 받지 않을 줄 않느냐? 아버님이 이 일을 아시면 내 구족이 성치 못할 것이다. 내 기필코 네놈과 네놈을 따르는 자들을…….”

최우는 대성일갈하며 병사들과 네 무장을 둘러보았다.

협박이었다.

날 건드리면 니들은 다 죽어!

최우는 은연중에 그런 속내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병사와 무장들은 최우의 성난 외침에 미미하게 몸을 양쪽으로 흔들었다.

흠칫흠칫.

그들의 얼굴에 진한 불안이 깔리기 시작했다.

최충헌.

당대 고려의 모든 권력을 쥔 집권자.

그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다. 최우의 말마따나 이 일을 최충헌이 알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뻔하지 않는가?

병사들과 네 무장은 심중 이는 두려움이란 감정에 자신들도 모르게 얼굴빛을 흐렸다.

다들 은근 슬쩍 최준문을 힐끔힐끔거렸다.

“훗.”

최준문은 질타하는 최우를 응시하며, 비웃듯 옅은 조소를 머금었다.

“최 부사. 나리. 이번 일이 나나 다른 사람들의 독단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시오이까?”

최우는 최준문의 대꾸에 움찔했다.

최준문은 이 모든 일의 배후에 한 어머니의 배에서 나온 친 남동생 최향이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남동생 최향이 권력을 쥐기 위해 형인 자신과 아버지 최충헌을 제가하려 한다.

최준문은 그런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최우는 망연자실했다.

“그, 그럴 리가 없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망연자실했다. 너무 놀라, 감당하기 버거운 충격에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었다.

최준문을 겨눈 검이 천천히 내려지며, 검첨이 맨땅으로 향했다.

최우는 믿을 수 없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아니야, 아니야. 향이가 어찌.”

얼굴에서 핏기가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동생 최향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내 최향의 얼굴이 사라지고 부친 최충헌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어 이민호의 얼굴이 떠올랐다.

‘당할 겁니다. 준비해두지 않으면 동생인 최향이 부사 어르신을 죽일 것입니다. 권력 앞에 부자父子와 형제의 우애가 얼마나 보잘 것이 없는지, 잘 아실 것이 아닙니까?’

나름 대비한다고 했으나, 하늘이 자신이 아니라 동생 최향의 손을 들어준 것 같다.

이리 전격적으로 치고 들어올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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