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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기-219화 (219/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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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자에 앉아, 모락모락 김이 나는 찻잔을 들어 차를 마시며, 탁자에 놓인 서책의 책장을 넘겼다.

혹두가 급히 알아본 정보를 적어 놓은 책자의 내용을 눈으로 빠르게 훑었다.

“…… 으음.”

입술을 비집고 나지막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예상한 것이 맞았다.

지난 몇 달 동안 사람들의 이목을 비해, 조금씩 최향의 장원으로 일정한 양의 무기와 갑주가 들어갔다.

무기와 갑주는 장인이라 불리는 이들의 손길이 미쳐야 하는 터라, 만드는 기간도 길고 값도 비싸다.

다량으로 사들일 경우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상당한 기간을 주고 조금씩 사들인다면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책장을 넘기며 중얼거렸다.

“아미 오래 전부터 준비해 왔어. 그렇다면.”

거병은 기정사실이다.

이미 모든 결정을 내렸고 마음도 정했을 터.

무엇보다도 관련 정보가 전혀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았다. 작은 낌새라도 있었다면 혹두로 하여금 만들게 한 정보망에 걸렸을 것이다.

얼마나 조심스럽게, 신중하게, 극비리에 일련의 준비를 해 왔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이런 행보를 왜 진작에 알 수 없었을까?”

답답했다.

혹두가 운용하는 정보망이 조금만 더 유능했다면…….

진한 아쉬움을 느꼈다.

팔랑.

책장을 어느 정도 넘기자, 한 내용이 시야에 확 들어왔다. 일순 눈이 나도 모르게 치떠졌다.

“이건!”

뜻밖의 정보가 서책 끝부분에 적혀 있었다.

최향이 확보한, 따르는 군부의 무장들과 조직.

무엇보다도 2군 6위에 속한 중앙군의 8할 가까이 최향의 수중에 들어갔다.

내가 오래 전부터 예상한 대로였다.

그 동안 최충헌이 알게 모르게 장자 최우에게 중앙군을 넘겨주려 했었는데, 아무래도 실패한 듯 보인다.

응양군鷹揚軍, 용호군龍虎軍의 2군.

좌우위左右衛, 신호위神虎衛, 흥위위興威衛, 금오위金吾衛, 천우위千牛衛, 감문위監門衛의 6위.

그 중 용호군, 좌우위는 최충헌의 노력으로 최우의 수중에 들어갔다.

하지만 최향이 거병할 경우 수적으로 열세다.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 중 하나가 최향이 받은 보성백이란 귀족 작위다.

장인인 수춘후가 황실 종친 중 끗발이 상당하다.

현 고종과도 가까운 촌수라, 자칫 황실이 최향의 편에 설 경우 최우가 불리해질 가능성이 높다.

비록 최충헌이 집권하며 고려 황실이 유명무실해지며 왕실로 그 위치가 급전직하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무장들에게 황실은 존엄의 대상이다.

그런 이유로 역대 정권과 권력을 쥔 무신 정권의 집권자들은 어떤 형태로든 황실과 혼인을 통한 혈연관계를 맺으려 혈안이었다.

딸을 황실로 시집보내거나 반대로 황실의 여인을 받아들이는 등.

정략혼이 빈번했었다.

팔랑.

난 책장을 넘기며 얼굴빛을 흐렸다.

“언제지?”

진한 궁금증이 일었다.

그토록 오래 동안 보안을 유지하며 주도면밀하게 준비해왔다면 지금쯤이면 모든 준비가 끝났을 것이다.

남은 것은 언제라는 땐데.

“어쩌면?”

눈을 빛냈다.

유송절이 무리한 행보라고 할 수 있는, 나를 죽이고자 하는 암살 시도가 머리에 떠올랐다.

나와 서가는 최우의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무력 기반이다.

그런데 내가 황도에 들어와 있고, 쥐도 새도 모르게 최충헌과 독대했다.

그 이전에 최충헌의 병세가 매우 위급 중으로 치달았다는 김덕명의 전갈이 최향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유송절.

“그 자가 날 죽이려고 한 것은.”

최향이 병력을 움직이는, 거사일이 가깝다는 것을 은연중에 무언으로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둘러 날 죽이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거사일이 멀다면 굳이 서둘러 날 죽여 이목을 끌 필요는 없으니깐 말이다.

‘그렇다면!’

순간.

“지금!”

가슴이 서늘하다.

현재 최향이 부리는 병사들이 황도 개경을 안팎으로 차단하고 있다.

관부에서 발부한 신표가 없으면 도성 8대문을 그 누구도 드나들 수 없다.

“거사를 치르기에는.”

거병한다면…….

그 소식을 들은 최우가 개경 밖으로 도피할 수 없으며, 밖에서 지원군을 불러들이는 것도 지금은 어렵다.

난데없는 도성 폐쇄에 병사들을 움직이는 것에 의구심을 드러내는 이나, 반발하는 이, 문제를 삼는 이 등은 보나마나 중도 세력이거나 최우의 세력에 속한 이들일 것이다.

최향의 세력에 속한 자들은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적아 구분이 이미 끝났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흠.”

얼굴을 굳혔다.

최우.

그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남동생 최향이 권력을 잡기 위해, 거병을 위해, 몇 달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왔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할 것이다.

“만약 나와 처음 만났을 때 내가 한 말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면.”

가정이다.

당시 난 동생 최향이 거병하여 최우, 그를 죽일 수 있음을 경고했었다.

그 경고를 최우가 잊지 않고 나름 준비했다면, 승산이 아주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것을 망각하고 그 동안 겨우 용호군과 좌우위만 믿고 있다면, 나와 서가만 의지하고 있다면.

“필패야.”

최향은 일련의 준비를 해 두었다.

반면 최우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승패는?

“뻔해.”

최향이 이길 것이다.

그것은 최우의 죽음을 의미한다.

“흐음. 아무리 권력 앞에서는 부자의 정이 없다고는 하지만.”

최충헌에게 생각이 미쳤다.

병중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살아 있다. 아버지가 아닌가? 그리 오래 살지는 못하겠지만, 최향이 노쇠하고 병약한 아버지를 죽일까?

두고두고 화근이 될 형을 죽인데 이어서 아버지마저 죽인다면 최향의 입지가 매우 좁아진다.

도덕성과 정통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유폐 아니면 연금?”

최향이 최충헌을 자택에 가둘 가능성이 크다.

팔랑.

다시 책장을 넘기며 심중 의문을 느꼈다.

“그 동안 어떻게 이 모든 것을 감췄을까?”

궁금하다.

흔히들 극비 정보의 외부 누출 확률은 알고 있는 사람의 제곱에 비례한다고 말한다.

즉 5명이 알고 있다면 정보의 외부 누출 확률은 25%다. 10명이 알고 있다면 확률은 100%가 된다.

“어떻게 그 동안 정보의 외부 유출을 막아왔을까? 으음.”

의구심이 든다.

혹시 나도 모르는 뭔가가, 내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자가 최향의 곁에 있는 것은 아닐까?

난 한참 동안 서책을 보며 현 상황을 유추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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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끼이익.

문이 열리는 기척에 고개를 들어 문을 돌아보았다. 시야에 방으로 들어서는 혹두가 들어왔다.

“나리.”

침울한 목소리.

“응?”

난 어리둥절했다.

걸어오는 혹두에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잠시 뒤, 혹두는 내가 앉은 탁자 너머로 걸어와 서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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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어쩌고 어째에에에!”

난 앉은 의자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며 고성을 질렀다.

머리끝까지 분노가 치민다.

내가 없는 사이에 얼토당토않은 일이 일어났다.

혹두는 예의 침울한 표정으로 내가 나주에 없는 동안 일어난 일련의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83척의 배가 출항했다고 합니다. 이번 일에 둘째 마님과 큰 마님이 적극 나서셔서…….”

혹두가 벽란도의 부향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내게 전했다.

만에 하나를 위해 개경과 벽란도, 남경, 서경 등등.

일련의 곳들에 전서구, 전령 역할을 하는 자들, 일종의 역참이라고 할 수 있는 각 거점들을 마련해 두었었다.

“이, 이익!”

난 어처구니가 없어 양손으로 탁자를 짚으며 머리를 숙였다.

죽이고 싶다!

내가 없는데.

서혜와 최송이가 지들 멋대로 나서서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피땀 흘려 쌓은 것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부들부들.

난 치솟는 분노와 살의에 몸을 경련했다.

혹두는 날 마주보며 설명을 이었다.

“나리. 다행히 군병들은 움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용섭 형님이 이웅과 함께 강력하게 반발했다 합니다.”

내 귀에 혹두의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그간 그 배들을 어떻게 건조했는데. 그런 배들을 내가 없는 사이에 꿀꺽 해! 선부들을 양성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불철주야 몸부림쳤는데.”

까드드득.

이를 갈았다.

분을 이길 수가 없다.

서풍도 서풍이지만 사혜와 최송이에 대한 분노가 더 컸다. 내가 없다면, 내가 죽을 둥 살 등 힘들게 쌓아올린 것을 한 입에 서풍의 입에 털어 넣다니.

여치.

한고조 유방의 정실로 역사에 무측전만큼이나 악명을 남긴 여자.

지금 내 머릿속에 여치가 떠오르는 것이 과연 우연일까?

고개를 들어 혹두를 보았다.

“혹두.”

“네, 나리.”

“오늘밤. 개경 밖으로 나간다.”

“나, 나리.”

혹두는 당황해 어쩔 줄을 몰랐다.

“나리, 지금은 안 됩니다. 주형이가 보고 했을 겁니다. 지금은 무립니다. 빠져나가려고 하셨다가는 무력 충돌이 불가피합니다. 그리되면 즉시 병사들이 몰려들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일이 잘못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혹두는 그것을 언급하며 안 된다고 날 말렸다.

“가야 한다!”

난 강경하게 말하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한참을 혹두와 옥신각신했다.

혹두는 강경하게 날 말렸다.

“안 됩니다! 나리!”

“가야 해. 만약 잘못되면 배도 배지만 선부들을 잃어. 못해도 최소한 1, 500여 명이야. 근해가 아닌 대해를 운항하는 배를 움직일 선부들은 그리 쉽게 양성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난 격한 어조로 소리쳤다.

선부들을 귀중하기 짝이 없는, 소중한 인적 자원이다.

내가 계속 고집을 피우자, 결국 혹두가 두 손을 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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