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218화 (218/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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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앙.

말아 쥔 주먹으로 세게 내리친 탓에 원탁은 불규칙하게 뒤흔들렸다.

탁자에 놓인 찻잔과 집기들이 엎어져, 아무렇게나 뒹굴었다.

주먹으로 원탁을 내리치며 벌떡 일어난 유송절.

“아직이라니. 그게 말이 되느냐? 3일이다. 3일!”

지체된 사일을 입에 올렸다.

금오위 소속의 중랑장中郞將 허가위는 송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장군.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

유송절은 침묵했다.

매우 이성적인 얼굴과 반짝이는 눈빛이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음을 무언으로 말하고 있었다.

유송절은 허가위를 마주보며 심중 중얼거렸다.

‘6위 중 2위가 동원되었고, 거기다 경군과 거경군까지 동원되어 황도 8대문을 엄중히 틀어막고 있다.’

개경 밖으로 빠져나가기 매우 어렵다.

관부에서 발부하는 신표는 철저히 관리되고 있다. 받아가는 이들의 인적 사항을 별도의 서책에 기록하고, 일일이 확인 중이다.

그러니 신표가 허투루 돌려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렇다면!’

유송절은 눈을 반짝였다.

허가위는 유송절을 마주보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

유송절의 기색을 조심스레, 신중하게, 살피고 살폈다.

천둥 벼락이 치는 듯한 불호령과 타박 그리고 추궁 등. 다수의 고성을 예상했었다.

그런데 유송절이 입을 꾹 다물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

허가위는 유송절의 침묵이, 고성을 지르는 것보다 더 자신을 압박하는 것에 내심 숨막혀했다.

‘차라리 고성을 지르며 방방 뛰시는 것이 낫지. 원.’

허가위는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좌불안석이었다.

그 때문에 유송절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유송절의 속내를 읽으려 애썼다.

유송절은 작은 이채를 반짝이며 허가위를 보았다.

일순 시선이 마주쳤다.

허가위는 본능적으로 유송절의 시선을 피해버렸다. 비스듬히 시선을 낮춰, 유송절의 턱을 보았다.

“허 중랑장.”

“네, 장군.”

“그 자는 아직 개경부에 있네.”

“…….”

허가위는 침묵했다.

가지런히 위아래 입술을 붙이고, 귀에 들리는 유송절의 말에 귀 기울였다.

잠시 유송절의 말이 이어졌다.

“…… 곧 거병임을 명심하게. 필시 그 자는 어떡하든지 황도 밖으로 빠져나가려 안달하고 있을 것이네.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장군.”

허가위는 유송절을 힘주어 불렀다.

유송절은 허가위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궁금하다는 기색을 띠었다.

“왜 그리 그 자에게 집착하십니까? 이번 거병만 끝나면…….”

“그 입! 다물게.”

유송절은 크게 고함치며 눈을 부라렸다.

기세가 심상치 않다.

왼쪽 허리춤에 비껴 찬 장군도將軍刀를 당장이라도 빼들 듯하다.

기세에서 눌린 허가위는 몸을 움칫거리며 머릴 숙였다.

“죄송합니다. 장군.”

유송절은 사과하는 허가위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 자는 분명 전라도나 왔던 벽란도로 빠져 나가려 할 것이네. 그러니 해당 두 방면의 성문을 중점적으로 엄히 지키게.”

허가위는 머리를 숙인 채, 귀에 들리는 유송절의 말을 경청했다.

유송절의 당부는 꽤나 길었다.

허가위는 쉬이 머리를 들지 못하고, 머리를 숙인 자세를 상당한 시간 동안 유지했다.

‘젠장!’

힘들었다.

허가위는 자신이 마주한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가 동료들에 비해 현저히 적고, 자신에게서 멀어졌다.

공을 세워야 출세할 수 있음은 불변이다.

그 점을 감안하면, 자신은 동료들보다 상대적으로 매우 불리한 처지에 놓여 있다.

허가위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휘하에 둘 수 있는 병사의 수가 늘어난다.

무신 정권하에서는 수중에 쥔 병사의 수가 곧 권력이며 힘이다.

이의민이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것도, 여타의 다른 장군들에 비해 휘하에 거느린 병력의 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 점을 감안하면 지위의 상승은 곧 권세와 부귀영화로 이어진다.

그런 이유로 무장이라면 다들 지위의 상승을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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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이란 시간이 지났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난 매일 거처를 옮겼다.

내 거처를 알고 있는 이는 혹두와 주형, 두 사람 밖에 없다.

중상을 입은 묵은 별도의 안전한 곳으로 옮겨 의원의 치료를 받게 했다.

주형이 매일 날 차아와 도성 8대문의 상황을 보고하며, 도성 밖으로 빠져나갈 방도에 관해 논의하였다.

혹두는 내가 알아보라 시킨 일로 매우 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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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창가에 있는 허름한 초가에 달린 골방.

낡은 나무 침상과 다수의 금이 간, 크고 작은 틈이 쩍쩍 벌어진 탁자와 의자 그리고 몇몇 초라한 집기.

방에 있는 것은 그것이 다였다.

난 탁자에 앉아 맞은편에 서 있는 주형을 보았다.

“보통 엄중한 것이 아닙니다. 나리. 드나드는 사람들이 소지한 신표를 일일이 확인하는 것은 물론, 나리의 초상화를 들고 드나드는 이들의 얼굴과 일일이 대조해 봅니다. 그리고 소지한 짐을 모두 풀어보고, 수레에 실린 짐들은 일일이 하나씩 창날로 찔러봅니다. 심지어는 수레 밑바닥까지 확인합니다. 게다가…….”

주형의 말에 난 안색을 흐렸다.

경계가 보통 심한 것이 아니다. 주형이 언급한 것이 모두 맞다면 현재로서는 개경 밖으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난 얼굴을 찌푸렸다.

빨리 개경 밖으로 나가고 싶은데. 어떡하든지 최대한 빨리 나주목으로 가고 싶은데.

마음과 달리 직면한 상황이 정반대라, 마음속에서 조바심과 답답함이 일어나, 격렬히 충돌하며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대놓고 치미는 짜증을 내쏟을 수 없어, 난 지그시 어금니를 깨물어 짜증을 눌러 참았다.

주형을 응시하며 서늘한 눈빛을 띠었다.

‘풋.’

주형이 은근히 겁먹고는 내 눈치를 살피는 모습에 심중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풉. 그래 웃자. 웃어.’

현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다.

감정적으로 현실을 대하는 것보다 이성적으로 대하는 것이 내게 이롭다.

그런 이유로 주형의 말이 끝날 때까지 입을 꾹 다물고 침묵했다.

“…….”

이윽고 주형의 말이 끝났다.

난 천천히 입을 때며 눈을 반짝였다.

“혀어…….”

주형을 부르다 멈칫했다.

형아.

나이 어린 동생이 연상의 손위 형을 부르는 친근함이 묻어나는 호칭.

그런데 주형이를 부르려다보니 어감이 영 아니올시다다.

내가 주형이보다 동생이 된 듯한, 내가 아래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좀 그렇다.

주형은 내가 자신을 부르다 만 이유를 짐작하는 듯, 대놓고 웃지는 못하는 까닭에 눈웃음쳤다.

그 사이.

난 손을 말아 주먹 쥔 후 입에 댔다.

“허험.”

낮게 기침한 다음 주형에게 지시했다.

“도성 8대문의 경계가 그렇게 엄중하다면 지금으로서는 빠져나갈 길이 없어.”

“나리. 하지만.”

주형이 말끝을 흐렸다.

혹두에게 들은 말이 있는 눈치다. 안타까워하는 기색을 띠는 것이, 어쩌면 겉 모습과 달리 속으로는 내가 빨리 뒷골목을 뜨는 것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쩝. 누가 저 녀석 속을 알겠어.’

눈치하면 주형이다.

얍삽하게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녀석이라, 좋게 보면 생존력이 남다르고, 나쁘게 보면 자기중심적이다.

“알아봐라.”

“네?”

주형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날 바라보았다.

“황도 개경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최소 수십만 여 명이 넘는다. 그들이 먹고 쓰며 소비하는 양곡이나 물품들은 항시 원활하게 도성으로 들어와야 한다. 그런데 지금 도성 8대문이 그리 엄중하다면 양곡이나 물품이 도성으로 들어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자연 양곡과 물품이 부족해질 것이고, 사고자 하는 사람에 비해 공급이 딸리니. 지금쯤이면 시전에서 모든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을 것이다.”

침착하게 도성이 돌아가고 있을 상황을 입에 올렸다.

“그렇긴 합니다만.”

주형은 내 말이 맞다고 거들며 고개를 까닥였다.

“분명히 도성 상인이나 중간 거간꾼들 중에서 8대문의 수문장과 손잡고, 이참에 폭리를 취하고자 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 자들은 수문장과 그렇고 그런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것이니.”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나리. 알아보고 그들을 통해 도성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알아보겠습니다.”

“서둘러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나리.”

“그만 나가봐.”

“예, 그럼.”

주형이 머릴 숙였다 들었다.

난 뒤돌아서며 문을 향해 걸어가는 주형을 쳐다보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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