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216화 (216/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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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해 왈.

“수군이 애들 장난인 줄 아십니까?

크게 화냈다.

조규가 수군에 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백지라는 것에, 황산해는 진한 꺼림과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는 듯 불쾌감을 피력했다.

어렵사리 자신이 나서서 황산해를 달랬다.

“나주목에 있는 군병들 모두 수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서혜님을 통해 그들을 회유, 배에 태우십시오.”

황산해는 그리 말하며 쏙 발을 뺐다.

서풍은 황산해가 직접 나서서 처리해 달라 부탁했다.

“본시 휘하에 있던 군병들이 아닙니까? 그러니 황 장군께서 나서서 말 한 마디만 하시면 다들 알아서 움직일 것이 아닙니까?”

“제 휘하에 있는 군병들이 아닙니다. 제 맘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서풍은 황산해의 답변에 의아해했다.

휘하 군병이 아니라니,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서풍은 그리 생각했다.

“서풍님. 저는 그들에 대한 지휘권을 나주 목사이신 이민호님께 위임 받았을 뿐입니다. 그들은 제 휘하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나주 목사이신 이민호님께 속해 있습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이민호님은 출정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경주해 오셨습니다. 수군 양성도 그 분이 직접 챙기셨음은 물론…….”

황산해는 이민호가 수군을 어떻게 양성했는지, 다른 것을 다 떠나, 수군으로서 한 사람의 몫을 할 수 있게 되는 데에는 적잖은 시일이 걸림을 강조했다.

서풍은 이민호를 칭찬하는 듯한 황산해의 말에 내심 불쾌해 하며, 여동생 서혜에게 부탁했다.

서혜가 군병을 움직이려 하자 오용섭과 이웅이 병부를 요구하였다.

“군병을 움직이시려면 나리의 명이 계셔야 합니다. 둘째 마님. 지금처럼 나리의 부재중에는 나리의 관인이 찍힌 명령서가 없이는 군병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명령서가 어렵다면, 나리께서 소지하신 발병부發兵符가 있어야 합니다.”

서혜는 오용섭과 이웅의 강력한 반발에 군병을 움직이지 못했다.

서풍이 할 수 없이 황산해에게 그것을 알리며 말하기를.

“우리가 해전을 할 이유가 없지 않소. 우린 바다에서 싸우려는 것이 아니라, 타이라노 번의 하바카 포구에 내려…… 육지에서 싸우는 것이니 해전은…… 저번 출정에도 해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내 들었소만.”

황산해는 상당한 고집을 피웠다.

“호위 선단은 있어야 합니다.”

서풍이 다시금 많은 재물을 건네며 설득에 설득을 거듭하자, 결국 황산해는 받아들이고 말았다.

‘하긴. 저번 출정에서 해전은 없었으니.’

좋은 게 좋다고.

이번 출정에서도 아마 해전은 없을 것이다. 저번 출정에서도 해전에 대한 위협이나 낌새 같은 것이 없으니깐 말이다.

자신도 굳이 서풍과 함께 승선하여 출정할 필요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항로를 누구보다 잘 아니.

함께 가서 적당히 나누어 줄 전리품들도 챙기고, 따로 서풍이 준 일종의 고용 대가라고 할 수 있는 재물도 챙기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황산해는 그만 좋게 생각해버렸다.

그의 머릿속에는 서풍의 이번 출정으로 이민호가 얼마나 분노할지,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에 대한 불안이나 염려와 같은 상념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자신의 수중에 뭐가 얼마나 떨어질지 그것만 생각했다.

황산해는 무신 정권하에서의 여느 무신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적당히 재물을 챙기고, 승급을 위한 공을 다투는 알게 모르게 부패한 무신 정군의 실질적인 기반이 되는 무장들.

그 범주에서 황산해는 벗어나지 못했다.

서풍은 재물로서 황산해의 마음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는 욕심이란 악심惡心을 이끌어내며 이런 저런 우연곡절을 겪었다.

그런 연후에야 간신히 83척의 배를 바다에 띄울 수 있었다.

@

한편 포구.

널따란 포구에는 일단의 남녀노소가 모여 웅성거렸다.

남녀노소들은 포구 여기저기에 나뉘어 서서, 머리 높이 손을 들렀다.

휘, 휙.

힘차게 양쪽으로 손을 흔들며 차츰 시야에서 멀어져가는 83척의 배를 배웅했다.

그리 오래지 않아 시야에서 배가 완전히 다 사라졌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다들 불안이라는 검정을 알게 모르게 내비쳤다.

83척의 배에 승선한 선부, 군병.

포구에 서 있는 남녀노소는 그들의 가족이었다.

서혜는 포구가 한 눈에 들어오는 언덕에 서서 대해로 나가는 선단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좌우엔 두 시녀 달래와 분이가 서 있었다.

“작은 마님.”

우측에 서 있는 분이가 서혜를 돌아보았다.

“왜?”

서혜는 선단을 바라보며 약간 건성으로 대꾸했다.

달래는 분이와 서혜의 대화에 고갤 돌리며 불안해하는 기색을 띠었다.

“마님. 혹 목사 나으리께서 돌아오시면.”

말끝을 흐렸다.

서혜는 달래의 말에 밋밋하게 양쪽으로 몸을 움직이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

‘째가.’

분이는 눈치 없이 끼어든 달래에게 따가운 눈총을 보냈다.

한편.

서혜는 안색을 흐렸다.

아닌 게 아니라, 이민호가 부쩍 신경 쓰였다.

의도적으로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이민호와 연관이 있는 것은 생각하지도, 돌아보지도 않으려 애썼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가문과 오빠 서풍의 미래를 위한 일이라 강권한 탓에, 자신도 엄연히 서가의 일원이고, 서풍이 피를 나눈 친오빠이기에.

다 같은 가족의 일이다.

그리 생각하며 거리낌 없이 기꺼이 나서, 오라비인 서풍을 도와주었다.

한데.

오용섭과 이웅이 군병을 움직일 수 없다 말하며 병부의 제시를 요구했을 때.

아차했다.

한순간 눈앞이 캄캄해졌었다.

군무軍務!

잊었던 것이 생각나듯, 서혜는 얼굴빛을 흐렸다.

자신이 어떤 일에 깊이 관여하였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병을 움직이는 군무는 관련 관직에 있는 자가 아니면 함부로 관여할 수 없다.

그런데 자신이 그만 관여하고 말았다.

서혜는 가슴이 서늘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짓을 했다는,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에 발을 담그고 말았다는 것을 인식하며 내심 불안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이미 발을 빼기란 늦었고, 그래도 피를 나눈 친오빠이기에 서혜는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짐짓 군무에 관여한 것을 모르는 체 하며 일련의 일을 거침없이 해치워버렸다.

이미 기호지세의 처지라, 행여 있을지 모르는 이민호의 분노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기 위해 이세연에게 그간 공을 들였다.

자신이나 최송이 그리고 조연에 비해 이민호는 유독 이세연에게 관대했다.

마치 무슨 빚을 진 양, 이세연에게는 늘 너그러운 모습과 태도를 견지했다.

그 점을 염두에 두었다.

“혹여 상공께서 노하시면 자네가 나서서 상공의 노기를.”

잘 좀 말해 달라.

이세연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그리 할 것을 서혜에게 무언으로 알렸다.

그것이 불과 이틀 전이다.

서혜는 입을 굳게 다물고 뒤돌아섰다.

“…….”

그러자 분이는 나무라는 시선으로 달래를 쏘아보았다.

“너!”

달래는 분이의 언동에 움칫거리며 돌아서는 서혜를 흘낏거렸다.

뭐라 말하려고 입술을 움직이려 하는데. 그새 다가온 분이가 몸으로 앞을 막아섰다.

양쪽으로 두 팔을 한일지로 벌렸다.

그 바람에 분이의 몸에 걸어가는 서혜가 가려졌다.

“가만히 좀 있어.”

달래는 분이의 타박에 발끈했다.

“내가 뭘. 항상 분이 네가 마님께 이상한 소리를 하고서는 언제나 날.”

평소 가슴에 쌓인 것이 많았던 모양이다.

분이는 의외로 강하게 반발하는 달래의, 평소와는 다른 태도에 잠깐 당황했다.

그 사이.

서혜는 빠른 걸음으로 분이와 달래에게서 멀어졌다.

분이와 달래는 그런 서혜를 돌아보지 않고 서로 티격태격 싸우기 시작했다.

“너 때문이야.”

“아니거든. 다 너 때문이거든.”

분이와 달래는 상대방에게 책임전가하며, 상대방을 탓했다.

말다툼이 이어지며 그와 비례해 분이와 달래의 입에서 침들이 튀었다.

잘하면 곧 서로 머리끄덩이를 움켜쥐고, 쥐 흔들며 대판 싸울 것 같다.

“너!”

“뭐어어어.”

“정말 이럴 거야?”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진짜 이렇게 나올 거지.”

달래는 눈을 치뜨며 뭔가 심상치 않은 기색을 띠었다. 그 때문에 분이는 흠칫거리며 뚫어져라 달래를 마주보았다.

일순간.

휙.

달래가 왼손을 뻗었다.

꽈악.

왼 손아귀가 분이의 오른쪽 가슴에 달린 살덩이를 인정사정없이 움켜쥐었다.

대번에 살덩이가 일그러지며 고통이란 아픔을 낳았다.

“꺄아아악.”

분이는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

그와 거의 동시에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달래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거리낌 없이 달래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으로 끌어당겼다. 더불어 악을 써댔다.

“죽었어.”

달래와 분이는 뒤엉켜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

서혜는 귀에 들리는 다툼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후우.”

분이와 달래가 서로 싸우는 것을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가뜩이나 마음이 심란한데, 두 시녀 분이와 달래까지 자신을 힘들게 한다.

서혜는 시선을 바로 하며 발을 뗐다.

싸우는 분이와 달래를 내팽개치고 빠른 걸음을 내디뎠다. 어제오늘 싸운 것이 아닌 까닭에, 어려서부터 서로 싸우는 것을 봐 왔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서혜가 입은 긴 치맛자락이 땅을 스치며 아련한 소성小聲을 흘렸다.

사락사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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