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214화 (214/247)

<-- 214 회: 8-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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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서 있는 뒷골목 악소패들은 이민호를 향해 걸어가는 네 사람을 지켜보았다.

“나리가 화난 것 같지.”

“응. 엄청 열 받으신 것 같은데.”

“야아. 조심하자. 행여 우리에게 불똥 튈라.”

“아무래도 5개구신이 오늘 날 잡힌 것 같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킥킥.”

“마아. 이럴 때일수록 몸조심해야 해. 괜히 나리 눈 밖에 나지 말고 멀찍이 떨어져 있자. 으응.”

“옳거니.”

“니 말이 맞아.”

“소리, 소문 없이. 알지.”

“두 말하면 입 아프지.”

“그런데 왜 네이야. 다른 하나는 어딜 가고?”

악소패들은 알아듣기 어려운 나지막한 목소리로 서로 소곤소곤거렸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조금씩, 조금씩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소리가 날까?

도주(?)하는 기척이라도 날까?

악소패들은 발바닥을 지면에 착 붙이고, 천천히 빙판을 미끄러지듯 느릿느릿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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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고소를 머금었다.

‘큭.’

뛰어오는 네 녀석 뒤에서 악소배들이 내가 보고 있음에도 뒤로 물러나는 모습이 절로 웃음을 자아냈다.

훤히 내 눈에 보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 웃지 않으려야 웃지 않을 수가 없다.

“눈물 난다. 눈물 나.”

기가 막혀 중얼거렸다.

물러나는 악소배들 틈새로 주형이 놈이 언제 거기까지 갔는지 슬며시 끼어들었다.

내가 신경 쓰이는지, 내 시야를 피해 몸을 숨기려는 것 같아 다소 어이가 없었다.

한 악소배 등 뒤로 움직이는 것이…….

나, 참.

‘근데. 저 자슥이.’

평소 눈치가 남들보다 빠른 것은 알고 있지만, 저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다.

‘넌. 나중에 두고 보자. 응.’

마음속으로 주형을 별렀다.

그 사이.

“나리.”

“나으리.”

네 녀석이 면전에 이르러 다급히 머리 숙였다.

녀석들의 인사를 받으며, 머리를 드는 네 녀석에게 언성을 높였다.

“니들.”

“넵.”

네 녀석이 간결하게 대답했다.

“손에 든 것 내려.”

“예에. 나리.”

네 녀석이 손에 쥔 몽둥이, 작살, 쇠스랑 등. 손에 쥐었던 무기(?)들을 땅에 내려놓았다.

쟁그랑, 쟁그랑.

쇠붙이가 맨땅에 떨어지는 몇몇 소리가 울렸다.

난 험한 인상을 쓰며 네 녀석을 똑바로 보았다.

“누가 니들에게 애들 동원하라고 했어?”

“네?”

“무, 무슨 말씀이신지?”

네 녀석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난 눈을 부라렸다.

“이 자식들아. 지금 시각이 몇이야? 야심한 밤에 한두 놈도 아니고 수백여 명은 될 놈들이 손에 연장을 들고 개경 밤거리를 뛰어다니다가 행여나 개경부 순포들이나 순검들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엉.”

난 밤에 순라를 도는 이들을 언급했다.

“흐윽.”

“그, 그건.”

네 녀석은 내 말에 말을 더듬었다.

내가 왜 화를 내는지 그제야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성질이 나, 난 네 녀석에게 고함쳤다.

“이 개놈의 쇠끼들아. 애들 몽땅 다 개경부 옥에 쳐 넣으려고 작정했어. 애들 죄다 콩밥 먹이기로 작정했냐고?”

네 녀석은 날 빤히 쳐다보았다.

의구심을 띤 얼굴들이었다.

내 말이 뭔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긴, 21세기에서 쓰이는 말이니깐 그럴 법도 하지만.

암튼.

내가 다시 뭐라 말하려는데.

삽살이가 눈치 없이 쓰러진 혹두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저흰 큰 형님이 시키셔서.”

말끝을 흘리는 것이 불안한 모양이다.

주둥이가 삽살이의 말에 뭔가 생각난 듯 눈을 반짝였다.

“맞습니다. 나리. 다 혹두 형님이 시키신겁니다.”

급히 내게 말하며, 몽땅 다 정신을 잃은 의식불명의 혹두에게 뒤집어씌웠다.

주중이 놈.

눈치 하나는 알아줘야겠다.

주둥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늦게 어떻게 돌아가는 사정인지 눈치 챈 길쭉이와 짹짹이가 거의 동시에 말하고 나섰다.

“그렇습니다. 나리. 다 혹두 형님이 시키신겁니다.”

“네에. 확실합니다. 믿어주셔도 됩니다.”

기막혀 고갤 옆으로 돌렸다.

“믿어주셔도 된다고?”

무식한.

길쭉이와 짹짹이 놈.

아마 낫 놓고 기역자로 모를 것이다.

믿어 주십시오. 가 언제부터 믿어주셔도 됩니다. 로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휴우우우.”

절로 한숨이 나온다.

아무리 내가 명령했다고는 하지만 이런 놈들을 데리고 고려 전역의 뒷골목을 먹어치우다니.

새삼 혹두 녀석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흘낏.

네 녀석을 보니.

긴장한 듯 몸을 추켜세우고, 빤히 날 보는 모습이 무슨 젖먹이 애들도 아니고.

“그래. 내가 니들 데리고 뭔 말을 하겠니. 옆으로 찌그러져 있어. 응.”

“네?”

“나리 무슨 말씀이신지?”

네 녀석은 내 말을 못 알아들었다.

복장이 터져서 원.

“옆에 가만히 서 있으라고오오.”

네 녀석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성난 눈초리를 번뜩였다.

“네에에에.”

“넵.”

“네에에.”

무슨 염소 새끼가 우는 것도 아니고 대답하는 것이.

네 녀석이 우측으로 움직였다.

쪼르르.

무슨 어미 닭을 쫓아가는 새끼 병아리도 아니고.

잽싸게 움직여 나란히 서는 모습에서 혹두가 평소 네 녀석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그 일면이 엿보였다.

난 허리를 숙여 땅에 있는 무기 중 한 몽둥이를 손에 집어 들었다.

허리를 펴며 손아귀에 착 붙는 괜찮은 느낌에 난 내심 흡족했다.

“호오.”

느낌이 생각 밖으로 좋다.

몽둥이는 박달나무나 물푸레나무처럼 재질이 튼실한 나무를 공들여 깎아 만든 것 같다.

나는 몽둥이를 오른손에 쥐고, 아직 일어나지 않는 혹두를 향해 돌아섰다.

저벅저벅.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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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이민호를 쳐다보는 네 녀석.

삽살이, 길쭉이, 주둥이, 짹짹이.

그들은 이민호에서 시선을 돌려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야아. 근데. 주형이 자식이 어째 안 보인다.”

“그러게나. 말이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 옆에 서 있었는데.”

“뻔하잖아. 그 자식. 눈치가 어디 보통이야. 여기 남아 있지 않음. 벌써 튄 거지.”

“이 배신자 시키. 내 눈에 띄기만 하면. 확 그냥.”

네 녀석은 낮은 목소리로 대화하며 격한 눈빛을 띠었다.

어느새 종적을 감춰버린 주형.

다들 주형을 입에 올리며 성난 표정을 지었다.

주형은 자신들과 함께 5개구신이라 불리는 동료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동고동락하며 한 솥밥을 먹었다. 지금처럼 저만 살겠다고 도망치는 일이 비일비재였다.

마음 같아서는 확 얼굴 가죽을 벗겨 가지고 거시기 해 버리고 싶지만, 그래도 함께 고생하며 자란 그 놈의 정이라는 것 때문에 차마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했다.

이민호와 인연이 닿아, 뒷골목이 이전보다 풍요로웠다.

거기에 더해 전 고려의 뒷골목이 혹두의 수중에 들어오자, 주형이 놈이 엉뚱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2인자!

혹두의 뒤를 이어 제 놈이 뒷골목의 왕이 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어디까지나 2인자는 다섯이서 공평하게 경쟁을 통해 뽑아야 하는데. 혹두에게 아부하여 은연중에 2인자의 자리를 굳히려했다.

그런 이유로 언제고 기회만 오면 주형을 손봐주려고, 네 녀석 다 내심 벼루고 있었다.

자신들 5개구신 중 한 사람이 혹두의 뒤를 이으며, 개경과 전 고려의 뒷골목 왕이 된다.

자연스레 2인자는 차기 뒷골목의 왕이라, 5개구신 모두 심중 욕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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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혹두의 좌측 머리맡에 이르렀다.

고개를 숙이며 심기 불편한 목소리로 혹두를 불렀다.

“혹두야.”

“…….”

혹두는 침묵했다.

저. 정신 잃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모습이었다.

“좋은 말로 말할 때 얼른 일 나라. 으응.”

좋게 말했다.

“…….”

근데 혹두 이 자식이 끝까지 정신을 잃은 척 한다.

“마!”

발로 의식을 잃고 사지를 대자로 뻗은 혹두를 툭 건드렸다.

“내가 힘 조절했거든. 응. 무슨 말인지 알겠냐?”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옙!”

혹두는 눈을 번쩍 뜨더니, 부리나케 발딱 일어났다.

실로 전광석화 같은 동작이라, 순간 난 할 말을 잃었다.

일어나 선 혹두를 마주보았다.

일어나도 벌써 애저녁에 일어났어야 할 혹두다. 그런데 정신을 잃은 척 하며 시간을 질질 끌었다.

분명히 뭔가가 있다.

눈을 반짝이며 넌지시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물었다.

“혹두야. 너 말이다.”

근데.

혹두가 몸을 흠칫거리며 당황하는 기색을 띠었다.

“…….”

입을 꾹 다물고 은연중에 나와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혹두 놈은 침묵으로 일관하지만, 몸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맞다고 무언으로 내게 말하고 있었다.

순간.

까드득.

화가 치밀어, 나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아울러 혹두를 죽일 듯 쏘아보았다.

혹두는 내 눈치를 살피다가, 쏘아보는 시선에 어쩔 줄을 몰랐다.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 나리.”

혹두는 말을 더듬었다.

얼굴빛이 어둡게 급변하고, 부지중에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뭔가 불길한 것을 느낀 듯 날 빤히 보며 불안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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