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213화 (213/247)

<-- 213 회: 8-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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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형님. 나리십니다.”

“나린데요.”

악소배들이 분분히 멈춰 섰다.

왜구들을 진압하는 전쟁 때문에 뒷골목에 있는 사내란 사내는 몽땅 다 고용한 나다.

왜구들과 일대일로 싸웠다가는 죄다 죽어 나자빠질 놈들이기에 다른 용도를 쓰는 한편 고심에, 고심에 거듭해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내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뒷골목 놈들 중 날 모르는 놈은 거의 없다.

있다면 뒷골목 놈이 아니다.

100% 자신한다.

유송절에게 기습받기 전, 불안해하는 묵이에게 태평하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도 따지고 보면 뒷골목 놈들이 죄다 내 얼굴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영문을 몰라 머릿속을 더듬는 사이.

“나리이이이!”

혹두가 엄청 반기는 목소리로 날 부르며 뛰어왔다.

후다닥.

주형, 삽살이를 비롯한 5개구신과 함께 움직이던 수백여 명에 이르는 뒷골목 악소배들은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이민호가 위험하다고 해서 다급히, 눈에 띄는 것을 손에 들고 뛰었는데.

지금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이민호는 태연했다.

얼핏 둘러봐도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악소패들은 무기를 쥔 손을 슬그머니 내렸다.

고개를 좌우로 돌려, 주변에 서 있는 동료들을 보았다.

“멀쩡하신데.”

“그러게나. 말이야.”

“나리. 무사하신 것 같은데.”

“뭐야?”

“아, 씨이. 한창 끗발 올리던 중이었는데. 부르긴 왜 불러.”

“에이. 맛있는 야참 먹다 나왔구만.”

“아우. 진짜. 추월이가 가지 말라고, 같이 있자고 바짓가랑이 잡는 걸 뿌리치고 나왔는데.”

악소배들은 투덜거리며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다.

얼마 전에 이민호가 위험하다는 통문이 삽시간에 온 뒷골목에 돌았다.

그 때문에 다들 하던 일(?)을 멈추고 모여, 다급히 줄달음질 쳤는데.

멀쩡한 이민호?

혹두를 비롯, 5개구신이 왜 자신들을 불러 모았는지 모르겠다.

무슨 똥개 훈련도 아니고 말이야.

쓸데없이 야밤에 통문이나 돌리고.

할 일 없으면 발 닦고 잠이나 자던가?

우 씨이.

악소패들은 내심 그렇게 생각했다.

헛걸음한 것에 노골적으로 기분 나쁘다는 심중을 드러냈다.

찌리리리릿.

악소배들의 시선이 매서운 송곳이 되어 앞에 서 있는 5개구신의 등으로 향했다.

니들.

마음에 안 들어.

그런 감정을 담은 시선이었다.

주형, 삽살이, 길쭉이, 주둥이, 짹짹이.

5개구신은 느낌이 이상해 몸을 미미하게 양쪽으로 흔들었다.

흠칫.

멈칫.

등이 따가워 무심결에 뒤돌아보았다.

순간.

‘어라?’

‘뭐야?’

‘어럽쇼.’

‘재들 왜 저래?’

‘이것들이 어디서 눈을 치떠. 죽을라꼬.’

5 개구신은 수하인 악소패들의 시선에 잠깐 어리둥절했다가 이내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뭐어어어!”

“니들!”

“이것들이 눈. 안 깔아!”

5 개구신은 행여나 수하 악소배들이 들고 일어날까? 심중 매우 꺼렸다.

한두 놈도 아니고. 수백여 명은 되는데.

밑에 아들이 들고 일어나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그런 이유로 흉맹한 표정을 짓고, 은연중에 흉악한 기세를 일으키며, 수하 악소패들을 찍어 누르려 했다.

5개구신의 위협(?)이 보통 험악한 것이 아니라, 수백에 이르는 수하 악소배들은 찍 소리도 하지 못했다.

다들 분분히 머리를 숙여 맨땅을 보거나, 옆으로 돌려 5개구신의 시선을 회피했다.

5개구신과 시선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 속내가, 악소배들이 5 개구신을 무서워한다는 속내가, 확연히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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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이이이!”

“혹두야아아!”

서로를 향해 뛰어가는 나와 혹두.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영화의 절정인 클라이맥스나 대미를 장식하는 라스트신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남녀의 사랑을 주제로 다룬 멜로나 러브 류의 영화에서 남녀가 서로 얼싸안으며 포옹하는 극적인 광경을 생각했다면 대단히 큰 착각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착각하면 정말 곤란해용.

‘내 돈 주우우우우울.’

혹두는 기뻤다.

자신과 뒷골목의 영원한 화수분인 이민호가 무사했다.

눈에 보이는,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멀쩡한 이민호가 그렇게 반갑고 기쁠 수가 없다.

혹두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입가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난 그런 혹두를 향해 뛰어가며 눈을 반짝였다.

‘넌! 죽었어.’

심중 혹두에 대한 살의(?)가 무럭무럭 일어났다.

그런 속내를 감춰야 하기에, 난 엄청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혹두가 내 속내를 알아채면…….

안 돼지.

나와 혹두는 서로를 향해 빠르게 뛰는 터라, 거리가 급속히 줄어들며 가까워졌다.

거의 다 다다랐다.

서로의 얼굴이 한 눈에 보이는 지척이다.

찰나.

“이 개자식아아아아!”

난 기다렸다는 듯이 고성을 지르며 오른손을 번쩍 쳐들었다.

손가락을 손바닥으로 말고, 힘주어 불끈 주먹을 쥐었다.

주먹을 혹두의 얼굴을 향해 벼락이 치듯 힘차게, 날렵하게, 일직선으로 내뻗었다.

쑤아아아아아앙.

주먹이 공기를 자르듯 헤치며 세찬 파공을 흘렸다.

혹두는 느닷없이 주먹을 뻗는 내 모습에 깜짝 놀랐다.

“헉!”

외마디를 삼키며 섰다.

뭔 일이야?

라고 묻는 듯한 몹시 당황하는 혹두의 얼굴.

한순간.

꽝!

우레가 치는 듯한 외줄기 격타음이 울렸다.

“우아아아아아악!”

혹두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날아갔다.

이민호의 주먹에 얼마나 많은 힘이 실렸는지는 모르겠으나, 얼굴을 가격당하는 순간 일어난 충격에 양 발이 땅에서 떼졌다.

찰나지간, 허공에 붕 떠버렸다.

끈 떨어져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연처럼, 부는 바람에 허공에서 좌우로 흩날리는 마른 나뭇잎처럼.

혹두는 그렇게 튕겨지듯 날아갔다.

삽시간에 2미터의 거리를 지난 다음, 맨땅에 곤두박질쳤다.

꽈당탕탕.

혹두는 맨땅을 두어 번 구른 후 사지를 대자로 뻗었다.

의식을 잃은 듯 미동하지 않았다.

난 조금 전 혹두의 얼굴을 가격한 자세를 그대로 유지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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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형을 포함한 5개구신과 수하 악소패들은 혹두가 이민호에게 얼굴을 맞고 날아가는 광경을 보고는 대경실색했다.

너나 할 것 없이 고성을 질러댔다.

히이이이익!”

“혀, 형님!”

“나리!”

이민호의 힘이 엄청나다.

얻어맞은 혹두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민호는 천천히 주먹을 거두며 자세를 풀었다.

“죽일!”

뭔지는 몰라도 나리 이민호가 엄청 화난 것 같다.

주형은 슬그머니 옆으로 돌아섰다.

연방 이민호를 힐끔거리는 시선에서 회피라는 감정이 엿보였다.

삽살이는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몰라 멍한 표정을 지었다.

길쭉이는 뭔가 생각하는지, 이민호를 응시하며 미광을 반짝였다.

주둥이는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나리가 왜 저러셔? 누구 아는 사람 없어.”

말문이 트인 듯 연방 말을 쏟아냈다.

“나리가 왜 저러셔? 누구 아는 사람 없어.”

짹짹이가 주둥이의 말을 받았다.

“저건 아니라고 봐. 아무리 나리가 화나셨다고는 하지만 말도 없이 다짜고짜 저렇게 주먹질을 하시는 건. 좀!”

척 봐도 잘난 척하는 짹짹이였다.

그 사이.

주형이 장내에서 몸을 빼듯 조금씩 뒷걸음쳤다.

슬금슬금.

뒷걸음치면서도 주변에 서 있는 네 동료와 수하 악소패들을 살피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자고로 남자는 눈치지. 암만.’

주형의 눈동자가 바삐 좌우로 또르르 굴렀다.

돌아가는 것이 심상치 않다.

이민호.

그 나리가 혹두 형님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

안다.

힘도 힘이지만, 나리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람을 잘 쳐 죽이는지. 몇 년 전에 있었던 왜구들과의 회전會戰에서 두 눈 똑똑히 보았다.

무지막지한, 얼굴빛 하나 바뀌지 않은 채 태연히 수십여 명의 왜구를 염라대왕에게 가차 없이 보내버린 양반이다.

화척은 소, 돼지를 잡지만. 나리는 사람 잡는 양반이다.

살아 있는 저승사자가 따로 있는 줄 안다면 그건 착각 중의 착각이다.

나리.

저 양반이 저승사자다,

아마 모르긴 해도 염라대왕이 인간 세상에 죽어 마땅한 놈들이 너무 많다고 보낸 저승사자가 바로 나리일 것이다.

돌아가는 분위기가 하 수상한 점을 감안하면, 빨리 몸을 빼는 것이 장수의 지름길일 터.

주형은 조심, 조심.

주변에 있는 이들의 이목에서 슬며시 자신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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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신! 너희들 일루 와!”

난 삽살이를 비롯한 다섯을 쳐다보았다.

흉흉한 눈초리.

다섯 녀석 모두 서열로 따지면 혹두 다음이다.

혹두 아래 서열로 고려 전역의 뒷골목을 움직이는 소위 말하는 실세들이다.

삽살이, 길쭉이, 주둥이, 짹짹이.

네 녀석이 내가 부르자 화들짝 놀라며 급히 서로 돌아보았다.

동료들의 얼굴을 쳐다보며 어떻게 하지?

라고 무언을 주고받는 다섯 놈의 모습에서 당황이란 감정이 여봐라는 듯이 드러났다.

난 그들을 향해 재차 고함쳤다.

“안 오지.”

즉각.

“가, 갑니다. 나으리.”

“가요.”

“좀만요. 나리.”

네 녀석이 황급히 대답하며 날 향해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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