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 회: 8-13 -->
“형님. 형이. 저 자식. 이름 버릴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참에 저 자식 입에서 이름 버리겠다는 말을 들으셔야 합니다.”
“속지 마십시오. 형님. 형이 저놈. 지금 적당히 넘어가려고 머리를 팍 숙인 겁니다.”
네 사내는 동료인 주형을 털도 안 뽑고 잡아먹으려 들었다.
“야아아. 형이. 너 인마. 대가리 굴릴래. 대가리 굴러가는 소리가 내 귀에 다 들려. 짜샤.”
“썩을 놈.”
삽살이를 비롯한 네 사내는 주형을 궁지로 몰았다.
이름이 있다는 것.
자신들과 다르다는 것.
그 두 가지 이유로 주형을 핍박(?)하는 네 사내에게서 쾌재라는 감정이 은근히 배어나왔다.
“어떻게 할 거야? 빨리 대답 안 해에에.”
혹두는 네 사내의 측면 지원(?)에 힘입어 주형에게 고함쳤다.
눈을 부라린 것은 화나 보였다.
이참에 주형의 입에서 이름을 바꾸겠다는 말이 나오길 바라는 혹두였다.
위기!
위기 상황이닷!
주형은 머리를 숙인 채 그와 같은 상념에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어, 어쩌지.’
벗어나긴 벗어나야겠는데. 길이 안 보인다.
주형은 아닌 말로 똥줄이 탔다.
“너어, 인…….”
혹두가 재차 주형에게 말하는 도중.
와당탕.
입구 쪽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혹두와 삽살이를 비롯한 네 사내 그리고 고개를 번쩍 든 주형이 입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뭐야?”
“응?”
주형은 그 사이 심중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휴우우.’
천우신조다.
조금만 늦게 입구에서 소리가 들렸다면.
‘생각만 해도.’
주형은 부지중에 눈을 질끈 내리감았다.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혹두의 성격으로 미루어보아…… 끄, 끔찍하다!
자신이 혹두에게 어떤 일을 당할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써늘해진다.
“묵아아아!”
주형의 귀에 소스라치게 놀라 내지르는 혹두의 외침이 들렸다.
혹두는 뒤늦게 입구에 엎어진 묵이를 알아보았다.
부리나케 몸을 돌려 탁자를 빠져나와, 묵이를 향해 뛰었다.
후다다다.
그 과정에서 발이 몇몇 의자에 걸렸다.
“뭐꼬오오!”
혹두는 짜증이 진하게 배인 외침을 내지르며 발로 걸리는 의자를 걷어찼다.
우당탕탕.
혹두는 쏜살 같이 묵이를 향해 뛰었다.
삽살이를 비롯한 네 사내 역시 혹두를 따라 입구로 뛰었다.
“저, 저런.”
“뭔 일이야?”
“묵이가가 왜에에?”
묵이 누구를 섬기는지 잘 안다.
뒷골목 사람들의 생계를 책이진 이가 이민호다.
이민호에게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다면, 뒷골목 사람들은 손가락을 쭉쭉 빨며 쫄쫄 굶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로 뛰어가는 삽살이를 비롯한 네 사내의 얼굴빛이 무척 흐렸다.
주형은 그새 의자에서 일어나, 뒤늦게 입구로 뛰었다.
후다닥.
한편.
혹두는 입구에 이르자마자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묵아아아아. 묵아아아아. 정신 차려. 정신 차리라고. 인마.”
양손으로 묵이를 바로 눕히고, 머리를 오른손으로 받쳐 들었다.
혹두는 엄청 놀란 목소리로 묵이를 소리쳐 부르며, 왼손으로 묵이의 뺨을 때렸다.
찰싹찰싹.
그 덕분인지 묵이는 의식이 흐릿하게 돌아오는지, 위아래로 눈을 깜빡였다.
“으으으…… 아, 아저…….”
가느다란 신음을 흘렸다.
“그래. 나야. 나라고. 어떻게 된 거냐? 엉?”
혹두는 다급히 물었다.
눈에 보이는 묵이의 얼굴은 핏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창백했다.
창백한 얼굴이 백지장 같았다.
무슨 시신의 얼굴 같아, 혹두는 매우 의아해했다.
그 사이.
묵이의 몸에서는 여전히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입은 옷은 붉게 물들인 것처럼 피에 흠뻑 젖었다. 옷자락 끝에서 쉼 없이 핏방울들이 주루 바닥으로 떨어졌다.
똑, 또옥.
혹두는 묵이에게 고함쳤다.
“묵아! 묵아! 정신 차려. 응.”
묵은 의식이 흐려지는지 힘없이 눈을 두어 번 깜빡거렸다.
“호, 혹두…… 아, 아저…….”
“그래. 나다. 으응. 정신 좀 차려봐.”
“나, 나리…… 위험하…….”
“묵아!”
혹두는 다시금 묵이를 소리쳐 부르며 뺨을 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이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축 떨궜다. 그와 거의 동시에 사지를 힘없이 늘어뜨렸다.
“묵아아아아아!”
혹두는 큰 고성을 질렀다.
이민호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좋은 일보다는 안 좋은 일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혹두는 이민호에게 무슨 엄청난 일이 생겼다고 어림짐작했다.
그 때문에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혹두는 귀에 들리는 삽살이를 비롯한 네 사내와 뒤이어 이른 주형을 돌아보았다.
“어서 의원을 부르고, 애들을 모아.”
“예에에. 형님.”
“알겠습니다.”
삽살이를 비롯한 네 사내와 주형은 동시에 소리쳐 대답했다.
네 사내와 주형은 옆으로 돌아서더니, 급히 주루 밖으로 뛰었다.
6 장
세상 모든 뒷골목이 그렇듯 개경의 뒷골목도 유흥가라 부를 수 있는 사창가를 끼고 형성되었다.
뒷골목의 이들은 가진 것이 없다는 이유로 늘 구박, 멸시, 천대를 받아왔다.
입이 포도청이란 말이 있듯 뒷골목의 이들은 먹고 살기 위해 그 모든 것을 기꺼이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황도로 가면 굶어죽지는 않는데.”
“가면 어떻게든 살 방법이 있겠지.”
“아무렴 여기보다는 낫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고려 전역을 유랑 걸식하던 이들이 살길을 찾아 황도로, 황도로 꾸역꾸역 몰려왔다.
그것이 벌써 몇 년째인지 모른다.
그들은 죄다 개경 뒷골목으로 모여 움막을 치고 거적을 덮었다.
개경의 가장 밑바닥 하층민을 형성하며 하루, 하루를 벌어먹고 살았다.
살기 위해, 살아남고자 범죄의 유혹에 쉽게 빠졌다. 그로인해 개경 뒷골목은 최악의 우범지대가 되었다.
뒷골목의 주인을 자처하는, 지난 몇 년 동안 고려의 모든 뒷골목을 장악하며 밤의 황제라 불러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자가 된 혹두는 밀려드는 유민들로 골머리를 앓았다.
나날이 늘어나는 자금 소요에 그야말로 뺑이를 쳤다.
그런 혹두에게 돈줄인 이민호는 절대 죽어서는 안 되는, 자신이 죽는 그 순간까지 붙잡고 늘어져야 하는 구명줄이었다.
이민호에게서 나오는 돈이 뒷골목의 사람들을 먹여 살리다시피 하는 관계로 이민호의 신상에 이상이 생기는 것에 기겁했다.
“몽땅 다 불러 모아!”
혹두의 명령에 주형과 삽살이를 비롯, 뒷골목 5인방이 부리나케 곳곳으로 흩어져 뒷골목 악소배들을 불러 모았다.
그 수가 기백여 명이 넘어 뒷골목은 매우 소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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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벅터벅.
덧없는, 힘 빠진 걸음으로 터벅터벅 걸었다.
빠드득, 빠득.
뒷골목으로 들어서며 난 연방 이를 갈았다.
“이 죽일!”
혹두.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난다. 그야말로 눈에서 불이 난다.
뒷골목을 위해, 혹두 그 놈에게 그간 베푼 은혜(?)가 얼만데.
유송절이 날 죽이려고 하는 정보를 획득, 내게 알리지 못하다니.
물론 혹두로 하여금 만들게 한 정보 조직이 예의 정보를 알아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정보 획득이 어디 그리 쉬운가?
내가 살던 21세기에서도 정보 관련 기관들이 헛물 키기 일쑨데.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야 있나?
“아암. 그렇고 말고.”
혹두를 단단히 조여야 한다.
굴리고 굴려,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뼈에 새기도록 해줘야 이후 내가 편하다.
다분히 이기적이지만.
히히.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데. 일이 터지기 전에 관련 정보를 알아내는 것이 얼마나 막중한지, 혹두에게 단단히 기억시켜두려면.”
단단히 조져(?)야지.
“훗.”
난 실소했다.
곧 내 눈앞에서 살려달라고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질 혹두를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아주!”
반쯤 죽여 놓으리라.
그러면 정신을 엄청 바짝 차리겠지.
내가 지놈에게 건넨 돈이 얼만데. 아닌 말로 황도 개경 제일의 번화가라 할 수 있는 남대가에 내가 얻어준 점포가 몇 인데.
내가 뒷골목 사람들을 고용하여 일자리를 주는 한편, 먹고 살라고, 배곯지 말라고, 무상으로 건넨 재물이 얼만데.
“내 이 놈의 자슥을 그냥!”
돈 값을 못하는 놈을 그냥 놔두면 안 된다. 돈 값을 하도록 만들어 놔야지.
“손해 볼 수야 있나. 흥흥.”
마음속으로 단단히 혹두를 벼루며 걷는데.
“응?”
난 걸음을 멈추고 어리둥절했다.
다다다다.
다수가 황급히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뒷골목에 무슨 일이라도?”
중얼거리는 내 머릿속에 유송절이 떠올랐다.
‘혹시?’
유송절이 뒷골목이 내 세력이라는 것을 알고 모종의 조치를 취한 것은 아닐까?
황도 개경을 책임진 개경부의 판관 나부랭이가 순검들을 몽땅 다 풀어, 뒷골목을 뒤집어 놓은 것은 아닐까?
혹두를 위시한 뒷골목의 악소배들이 소탕당한 것은 아닐까?
심중 그런 생각이 들어 얼굴빛을 흐렸다.
그 사이.
“빨리. 뛰어.”
“나리가 위험하시다.”
“뒤쳐지는 놈은 나중에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숨이 목구멍에 찰 때까지 무조건 뛰어.”
몇 놈이 앞장서는지는 몰라도, 귀에 익은 외침이 몇 들렸다.
“이 목소리는?”
그 중 한 목소리가 귀에 몹시 익다.
혹두다.
그 외에 몇 년 전에 있었던 왜구들이 양광도에 침습해, 진압하는 전쟁 아닌 전쟁에 함께 참전한 뒷골목에서 5개구신으로 불리는 놈들의 목소리도 들린다.
우뚝.
난 걸음을 멈추고 섰다.
전방과 좌우의 측면인 대각.
세 방향에서 수백여 명은 됨직한 장정들이 나타났다.
우르르.
쏟아지듯 몰려오는 장정들은 하나 같이 우락부락했다.
야심한 시각의 뒷골목은 어두컴컴했다.
갑자기 주위에 있는 골목에서 몰려오는 수백여 명의 장정.
뒷골목 악소패들.
죄다 손에 굵직한 몽둥이와 조악한 죽창 등등.
흉측하기 짝이 없는 온갖 무기를 들었다.
아마 양민이라면, 지금 눈에 보이는 장정들의 모습에 자지러질 것이다.
제자리에서 풀썩 지면에 주저앉거나, 서서 자신도 모르게 바지에 실례(?)를 할 것이 분명하다.
흉흉한 것을 둘째고, 놀라 기겁하는 충격에 충분히 그렇게 할 것이다.
어디 보통 흉악해야지.
“뭐야? 저 자슥들.”
난 중얼거리며 시야에 보이는 악소패들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