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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바로 옆에 앉은 사내.
삽살이.
눈썹이 아래로 축 쳐진, 항상 반쯤 얼빠진 얼굴로 다니는 녀석이다. 하지만 그 얼굴에 마음을 놓았다가는 큰일(?) 치른다.
개경에서 날고뛰는 흉악범들치고 삽살이를 모르는 놈은 없다.
한 번 물면 끝까지 놓지 않고 달려드는 악바리 싸움꾼이기 때문이다.
뭐, 가끔은 강도짓도 하지만.
혹두의 맞은편에 앉은 사내.
길쭉이.
얼굴 하관이 길쭉하게 내리뻗은, 개경에서 손이 제일 빠른 소매치기다.
길을 가는 상류층이나 귀족들 품속에서 전대나 전낭을 귀신처럼 꺼내는 놈이다.
일단 길쭉이가 저자에 떴다 하면, 온 저자의 돈과 패물은 몽땅 다 길쭉이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일반 양민들은 쌀과 피륙으로 화폐를 대신하는 터라, 주로 당하는 사람은 부유한 이들이다.
그로인해 순포巡捕들이 제일 신경 쓰는, 아주 싫어하는 녀석이다.
일명 순포들의 요주의 대상이다.
삽살이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내.
주둥이.
입술이 여느 다른 사람보다 크고 두툼하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말발 하나는 끝내주는 놈이다.
기루의 기녀들 기둥서방 노릇을 하며 사는데. 일단 말을 붙였다 하면 죄다 껌뻑 넘어온다.
여자들이 죽네. 사네. 하는 것을 보며 그 짓(?)이 끝내주는 것 같은데.
주둥이 옆에 앉은 사내.
짹짹이.
난장이로 착각할 만큼 키가 엄청 작다.
그런 이유로 누가 키를 가지고 걸고넘어지면 즉시 눈동자가 뒤로 홱 돌아가는 녀석이다.
개경 아니 고려 제일의 도둑놈으로 작은 키를 십분 활용, 새벽이슬 맞으며 골목길을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는 녀석이다.
말하는 것이 쉴 새 없이 짹짹거리는 참새를 닮았다고 해서 다들 짹짹이라 부른다.
네 녀석 다 알고 보면 참 기구한 팔자를 가진 놈들이다.
기근으로 조실부모하고 뒷골목으로 흘러들어, 그간 개차반으로 살아온, 서로 매우 유사한 삶의 굴곡을 거쳐 온 녀석들이다.
그래서 사이가 매우 각별(?)하다.
조실부모한 탓에, 다들 자신이 이름을 모른다.
길가에 차이는 돌멩이마냥 그저 별명으로 불리며 들개처럼 살아왔다.
하지만 불쌍하게 생각했다가는…….
흠흠.
네 녀석 다, 뒷골목을 전전하며 살아가는 소위 말하는 흉악범들이다.
관에서 현상금을 내 건지 오래이지만, 다들 그와 같은 것을 코웃음 치며 뒷골목을 무대로 살아간다.
사람들을 다치게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여차하면 죽이기까지도 한 놈들이라, 혹두가 아니면 그 누구도 네 녀석을 통제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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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형은 성난 표정을 지었다.
“야아아아!”
고함쳤다.
네 사내.
삽살이, 길쭉이, 주둥이, 짹짹이는 움칫거리며 주형을 쳐다봤다.
놀란 얼굴이었다.
“좀 조용히 좀 해라. 응. 큰 형님께서.”
주형은 눈짓으로 그새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는 혹두를 가리켰다.
“형님. 죄송합니다. 제가 밑에 있는 애들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해서 그만. 형님의 심기를 어지럽히고 말았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형님.”
주형은 혹두를 향해 몸을 돌리며 머리를 깊이 숙였다.
그 모습이 자신이 2인자라고 말하며 행세하는 듯 보여, 삽살이를 비롯한 네 동료는 발끈했다.
주형은 머리를 들어 얼굴을 일그러뜨린 혹두에게 마냥 아부를 떨었다.
“형님. 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미욱해서 애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형님. 정말이지.”
심하다!
싶다.
삽살이를 비롯한 네 사내는 주형의 언동에 너나없이 소리쳤다.
“니이.”
“야아, 주혀이이. 누가 누구 밑이라꼬.”
“저 놈아가. 니 오늘 함 죽어 볼래.”
“이기 비싼 고기 놔두고 무신 헛소리를 하노.”
네 사내는 금방이라도 앉은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 주형에게 달려들려했다.
주형은 네 사내, 동료들을 곁눈질했다.
‘이참에.’
확실히 2인자로 자리매김함과 동시에 혹두의 환심을 사려했다.
주형은 짐짓 동료들을 모른 척하며 혹두에게 살살거렸다.
“행님. 마음 푸십시오. 제가 있지 않습니까? 행님.”
딸랑딸랑.
어디선가 방울이 울릴 것 같은 작태를 연출하는 주형의 언행.
주형은 뭔지는 모르지만, 심사가 꼬인 혹두의 맘을 풀어주려 애썼다.
혹두는 그런 주형을 마주보며 기막혀했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한편.
네 사내는 주형의 아부에 눈썹을 치뜨며 성난 표정을 짓다가 혹두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일그러진 얼굴. 그리고 험악하기 그지없는 인상.
삽살이를 비롯, 네 사내는 조심스러운 기색을 띠며 혹두의 안색을 살폈다.
‘이크.’
‘왜 저래?’
뭔가 감이 이상하다.
꼭 이럴 때마다 불길한 뭔가가 터지곤 했었다. 대빵 혹두이 심사가 불편해 보인다.
‘이럴 때는 무조건 조심이 상책이야.’
‘와 저래?’
‘아, 놔. 간만에 즐거운 술자리 분위기를 왜 망쳐.’
‘뭔데. 혹두 형님이 저런 표정을 짓지?’
다들 이유를 몰라 어리벙벙해했다.
홀연.
“야아아아. 이 개 노무 세키야. 내가 왜 기분이 더러운지 알아.”
혹두가 냅다 고성을 질렀다.
입이 크게 벌어지고, 입 안쪽 상부에 매달린 목젖이 양쪽으로 격렬히 흔들렸다.
벌린 입에서 침들이 마구 튀어 나왔다.
느닷없는 혹두의 고성에 주형과 네 사내는 깜짝 놀랐다.
일순간.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리며 움츠렸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지으며 우두커니 혹두를 바라보았다.
“너!”
혹두는 오른손 검지를 들어, 놀라 눈을 치켜뜬 주형을 가리켰다.
“…….”
주형은 놀란 터라 입을 벙긋벙긋거렸다.
혹두가 당장이라도 죽일 듯한 험악한 어조로 소리치며 검지를 내렸다.
“내가 전부터 이름 바꾸라고 했지. 엉. 아니. 그냥 이젠 그 이름 쓰지 마. 알겠어. 이 자식아.”
“…….”
주형은 어리바리한 표정을 지었다.
아닌 밤중에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주형은 절실히 느끼며, 심중 황당이란 감정에 멍하니 혹두를 보았다.
어느 정도 상식적으로 말이지 맞아야 장단이라도 맞추지. 이건 밑도 끝도 없이 다짜고짜 자신에게 화내면, 자신더러 이름을 쓰지 말라니.
뭘 어쩌라고?
주형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혹두를 바라보았다.
말해주세용?
그런 무언을 담은 간절한 눈빛을 반짝이며, 혹두에게 눈빛 공격을 퍼부었다.
초롱초롱.
그 사이.
“맞습니다.”
“주형이 자식 혼자만 이름이 있습니다.”
“역시 큰 형님이십니다.”
“지당하십니다.”
네 사내가 너나 할 것 없이 말하고 나섞다.
죄다 혹두의 편을 들었다.
주형은 돌아가는 분위기에 안절부절못했다.
다들 자신을 무슨 공공의 적인 양 몰아세웠다. 그런 이유로 황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니, 니들…….”
당황해 주형은 말을 더듬거렸다.
혹두는 그 사이 앉은 자리에서 발딱 일어났다.
“이 썩을 놈아. 왜 하필 이름이 형이야. 네 이름을 부를 때마다 내가 널 형으로 부르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잖아.”
주형은 혹두의 외침에 어떻게 된 영문인지 깨달았다.
형아!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나이 어린 애가 친형을 부르는 듯한 어감이 든다.
그러니 혹두가 열 받은 것이다.
예전부터 혹두가 그 점을 거론하며 이름을 바꾸라고 귀찮을 정도로 말하고 또 말했었다.
‘아, 놔아.’
주형은 내심 붉으락푸르락했다.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을 나더러 어쩌라고.’
자신은 혹두나 다른 네 동료와 몇몇 다른 점이 있다.
조실부모하지 않았다.
부모는 먹고 살 길을 찾아 개경으로 흘러들었다가 아사했다.
부모를 잃은 어린 주형은 살기 위해 이리 치고 저리 치이다가 뒷골목으로 흘러들었다.
그런 까닭에 혹두나 다른 네 동료와 달리 이름이 있고,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죽은 부모가 유일하게 남겨준 것이 바로 자신의 이름이다. 그런데 그 이름을 쓰지 말라니.
‘죽어도 못해! 차라리 날 죽여. 죽이라고.’
주형은 마음속으로 고함치며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
그러면서도 시선을 힐끔 들어 혹두의 눈치를 살쳤다.
“왜 말이 없어. 인마.”
혹두가 고함치며 주형을 닦달했다.
주형은 여전히 입을 다문 채 아무 말하지 않았다.
“…….”
날 죽여라.
라고 무언으로 말하듯 시선을 숙였다.
한편.
네 사내는 혹두를 따라 각자 않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떡벌떡.
그들은 기회를 잡은 듯 주형을 향해 소리쳤다.
“너. 인마. 우리는 이름이 없는데.”
“안 그래도 너어.”
“이름 쓰지 마아아.”
“나쁜 놈의 세키.”
공동의 적인 양 주형을 몰아붙였다.
네 사내의 외침에서 질투와 부러움이란 두 감정이 묻어났다.
질시가 확연히 드러나는 모습들이었다.
네 사내는 혹두를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