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7 회: 8-8 -->
@
잠시 뒤.
‘젠장.’
내 예상이 빗나갔다.
조규영은 움직이지 않았다.
앞만 보는지 왼쪽으로 도는 날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풋. 정중정正中正이냐?’
무협 장르 소설에 보면 나오는 그럴듯한 조규영의 자세에 난 내심 실소했다.
어느 덧 난 조규영의 등과 일직선상에 놓이듯 섰다.
‘어디?’
걸음을 멈추고 서서 잠시 조규영을 보았다. 조규영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 일부러 치고 들어가는 시늉을 하며 의도적으로 기척을 흘렸다.
아니나 다를까?
움찔.
조규영이 잔떨림을 흘리더니 쾌속하게 뒤돌아섰다.
홱
바람이 일듯 매우 빠른 반전이었다.
순간.
철렁.
가슴이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일부러 기척을 내어 시험해 보지 않았더라면, 조규영의 저 수에 말려들어 큰 부상을 입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조규영을 공격하는 것보다 조규영이 뒤돌아서며 날 역습하는 것이 아무래도 더 빠를 것 같다.
‘어디?’
난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씩.
내 의도대로 조규영이 당혹스러운 눈빛을 띠었다.
돌아가는 눈치가 뒤로 도는 반전과 동시에 날 급공急攻할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은연중에 내게 속았다는, 잡쳤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마뜩지 않은 조규영의 얼굴빛.
난 조규영을 향해 검을 내밀었다.
조규영은 날 응시하며 의문이라는 속내를 드러냈다.
천천히 조규영을 향해 걸음을 떼었다.
저벅저벅.
천천히 걸어갔다.
조규영은 내가 걷자, 흠칫하더니 자세를 바꾸었다.
우로 비켜서며 무릎을 구부렸다. 양손으로 잡은 검을 하단으로 늘어드렸다.
그 자세가 복卜 자를 거울에 비친 것과 유사했다.
그 사이.
난 서너 걸음을 내디뎠다.
조규영은 나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눈매가 매서워졌다.
은연중에 얼굴이 경직되었다.
긴장감이 일 법도 한데, 전혀 그런 긴장감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무심한 모습이었다.
한순간.
파앗.
난 입을 굳게 다물고 조규영을 향해 도약했다.
“…….”
한 길 높이로 몸을 띄우며 검을 높이 들었다. 체중과 도약이라는 두 힘을 손아귀에 쥔 검에 실었다.
조규영은 내 도약에 놀라 몸을 흠칫거렸다.
그런 조규영에게 다다라, 힘껏 양손으로 쥔 검을 내리쳤다.
쒝.
검이 일으키는 파공이 예사롭지 않다.
조규영은 가느다란 떨림을 흘렸다.
부르르.
모골이 송연한 느낌이 들고, 뒷머리의 머리카락들이 바짝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싸늘한 기운이 몸을 훑어 내렸다.
조규영은 시선을 들어 공중에서 떨어지는 이민호를 가만히 주시했다.
냉정한 시선이었다.
조규영은 공기를 가르며 풍압을 일으키는 이민호의 검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상황은 길었으나 시간이란 흐름은 짧았다.
조규영은 전광석화와 같은 동작으로, 오른손에 쥔 검을 수평으로 들었다.
까아앙.
나와 조규영의 검이 맞부딪쳤다.
검날에서 다수의 크고 작은 불꽃이 마구 튀었다. 아울러 검신과 검신이 부딪치는 세찬 울림이 주변으로 메아리쳤다.
“우욱.”
조규영은 맞부딪친 충격에 몸을 웅크리듯 낮췄다.
얼굴을 크게 찡그렸다.
양손에 쥔 검, 손목을 거쳐 팔로 충격이 흘러들었다. 그 충격이 금방이라도 숨이 막힐 것 같았다.
호흡이 원활하게 이어지지 않았다. 잠시 끊겼다가 이어지를 두어 번 반복했다.
입에서 ‘헉’ 소리가 나오기 직전이었다.
내리친 단순한 검격에 실린 힘이 보통 억세고 강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이날 이 때까지 다수의 무인과 검을 겨뤄보았지만, 방금 전의 충격과 같은 것은 생전 처음이다.
‘가, 강한 자다!’
조규영은 이민호가 보기보다 강한 무위의 고수임을 인지했다.
등골이 시렸다.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리고, 그 구멍을 통해 싸늘한 한풍이 불어오는 듯한 소름을 느꼈다.
조규영은 힐긋 이민호를 보았다.
이민호는 오만상을 지으며 양손에 쥔 검을 내리누르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이!”
조규영은 이민호가 자신을 마주보며 흐릿한 작은 미소를 짓는 것에 불쾌감을 느꼈다.
자연스레 얼굴이 이지러지며 속이 불편함을 드러냈다.
4 장
끼, 끼이이이이.
내 검이 조규영의 검을 긁었다. 긁히는 검날에서 크고 작은 불꽃이 튀었다 사라졌다.
난 혼신의 모든 힘을 다해 조규영의 검을 내리눌렀다.
조규영의 검이 조금씩 쳐졌다.
힘에 겨운 듯 검을 쥔 조규영의 오른팔이 잔떨림을 흘렸다.
바르르.
조규영의 얼굴에 놀람, 당황 등 다수의 감정이 배는 것이 눈에 보였다.
어금니를 악물고 내리누르는 힘을 배가시켰다.
‘끄으응.’
팔사의 한 수라고 할까?
도약을 이용한 단순한 검격이 조규영에게 먹혀든 것 같다.
단순하면 빠르고 치명적이다!
날 가르친 검도 도장의 사범이 그랬다.
“어설프게 기술을 쓰려고 하지 말고 기초에 충실해. 화려한 기술보다는 단순하지만 빠른…… 그런 검이 치명적이야.”
양손으로 잡은 검에 힘을 더 실으며, 슬쩍 몸을 들어 조규영을 압박했다.
내리누르는 힘이 갑절로 늘어났다.
잡은 승기의 굳히기에 들어갔다.
“크흑.”
더는 견딜 수 없다는 듯, 조규영이 오른 무릎을 땅에 꿇었다.
털썩.
험악한 인상을 쓰는 것이 자존심깨나 상하는 모양이다.
방긋.
난 함빡 소리 없는 미소를 머금었다.
조규영은 내리누르는 힘에 저항하고 있었다.
내가 강한 힘으로 누르는 까닭에, 저항하기 위해 조규영은 혼신의 힘을 다해 수평으로 뉜 검을 밀어 올리려 하였다.
“대, 대단…….”
내리누르는 힘이 강한 탓에 난 제대로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누가 할 소리를.”
조규영은 짧게 대답하며 아직 승부가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는 듯한 무언의 눈빛을 번쩍였다.
난 응시하는 눈초리가 매우 매서웠다.
뭐랄까?
무심함이 배인, 얼음으로 이루어진 검 같다고나 할까?
‘더럽게 차가운 자로군.’
마음 한구석에서 조규영에 대한 진한 꺼림이 일었다.
차갑다는 것은 냉정하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차가운 이성을 유지하는 평정심!
검을 다루는 검사에게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찰나.
“차하앗!”
자칫 길어질 수 있는 지루한 대치를 난 깨뜨려버렸다. 기합을 지르며 검과 함께 몸을 조규영에게 들이대며 거칠게 밀었다.
내심 어금니를 악물었다.
머릿속에서 동남아의 야생 물소가 떠올랐다.
성난 야생 물소는 호랑이도 무서워서 피한다.
앞만 바라보고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것에 있어 코뿔소에 버금가는 동물이 바로 야생 물소다.
“…… 윽!”
조규영이 내 공격에 당황했다.
눈동자에서 뜻밖이라는, 당황이란 감정을 머금은 빛이 흔들렸다.
창졸지간에 몸의 균현이 흔들렸다.
그것이면 내겐 충분했다.
난 몸을 좌로 틀며, 조규영에게 보디체크를 가했다.
콰앙.
겨울 스포츠인 아이스하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보디체크는 의외로 치명적이다.
제대로 받히며 건장한 체구의 사내라고 해도 뒤로 자빠질 수밖에 없다.
당하는 자는 무시할 수 없는 상당한 충격을 받는다.
‘끝났어!’
난 승패가 났다.
마음속으로 그리 여겼다.
@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보디체크가 주는 충격에 조규영은 저항하지 않았다.
느닷없이 가해지는 충격에 사람은 본능적으로 대항하려 한다.
그런데 조규영은 순응하듯 충격을 받아들였다.
쫘아아악.
양발이 지면을 긁으며 조규경은 뒤로 미끄러졌다.
그 광경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머릿속에서 강무한의 외치는 환청이 들렸다.
‘순응전력順應轉力! 항전보력抗戰報力!’
환청에 순간 심장이 덜컥 떨어지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허어어억.’
부지불식간에 강무한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이 뇌리에 떠올랐다.
‘상대가 가하는 힘에 저항하지 마라. 가하는 힘에 순응하고, 그 힘을 돌려 상대에게 되돌려주어라…… 그것이 화경 化勁의 이치다!’
상대의 공격을 물 흘리듯 상대에게 되돌려주는 공방 일체가 바로 화경의 요체다.
머릿속에서 강무한이 내게 화경을 가르쳐 줄 때가 생각났다.
강무한과 나는 옆으로 서서 손등을 착 붙였다.
그 상태에서 상대의 손등을 밀었다.
절대 손등이 떨어지면 안 된다.
손등을 꼭 붙인 채 미는 상대의 힘을 되돌려주는 것을 수련했었다.
충격을 받아들이는 조규영의 모습에 난 그야말로 간담이 서늘했다.
내가 잊고 있던 것을 조규영은 위기의 순간 시의적절하게 구사했다.
‘위험!’
머릿속에서 경광등이 번쩍이듯 강렬한 상념이 번뜩였다. 무의식적으로 양발에 체중을 실으며 힘주었다.
난 굳건하게 섰다.
한편.
조규영이 보디체크로 인한 힘을 옆으로 흘리며 제 자리에서 회전했다.
빙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며, 손에 쥔 검을 날 향해 휘둘렀다.
쉬잇.
나지막한 파공과 함께 검은 날렵하게 휘어진 곡선을 그렸다.
곡선은 내 허리 아래로 치달았다.
그대로 허용했다가는 내 허리 아래가 깨끗하게 잘려나갈 것이기에 서둘러 공중으로 도약했다.
휘익.
한 마리 새처럼 가볍게 뛰어오르며, 왼발로 검을 휘두른 조규영의 머리를 밟았다.
살며시 지르밟듯.
왼발 발가락 부위로 서며 오른발을 흔들듯 내밀었다.
‘답례!’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는 것이 인지사정.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
난 오른발 뒤꿈치로 조규영의 뒤통수를 찼다.
빡.
외마디 소성小聲과 함께 조규영의 머리가 앞으로 숙여졌다.
뒤이어 상체가 숙여졌다.
‘억!’
조규영은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