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206화 (206/247)

<-- 206 회: 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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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꽤 지났다.

전혀 와 보지 않은 생소한 골목을 지나며 줄달음쳤다.

“후욱, 후욱.”

난 숨을 몰아쉬며 뒤돌아보았다.

힐끗.

뒤따라오는 조규영이 시야에 들어왔다.

시선을 바로 하며 난 와락 인상 썼다.

‘지독한 쇠키!’

상당히 멀리까지 뛰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조규영은 포기라는 매우 바람직한 것을 모르는지 끝까지 날 따라붙었다.

‘지, 질린다. 정말. 세상에 뭐 저런 놈이 다 있냐?’

이제 좀 천천히 뛰며 거칠어진 숨을 고르고 싶은데, 조규영 때문에 그러지를 못했다.

이건 끈질겨도 어느 정도지.

‘아무래도 안 되겠어.’

뛰던 것을 서서히 멈추며 조규영을 향해 돌아섰다.

“하악, 학.”

서둘러 심호흡하며 날 따라 뛰던 것을 멈추는 조규영을 보았다.

조규영 역시 숨을 헐떡였다.

잠시 서서 나처럼 심호흡했다.

꽉.

난 검 자루를 쥔 오른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이제 그만 좀 합시다. 끝까지 이리 날 따라와서 뭘 어쩌겠다는 거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언성을 높였다.

조규영은 날 마주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비겁한 자는 응당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험악한 목소리였다.

난 얼굴을 찡그렸다.

“사람하고는. 작전상 후퇴라는 말도 모르시오. 일보 전진을 위한 이보 후퇴란 말이오.”

거리낌 없이 대꾸했다.

“뭐라?”

조규영은 내가 궤변을 늘어놓는다 생각하는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난 귀찮다는 기색을 띠었다.

“그만 돌아가시오. 난 당신과 별다른 감정이 없소. 그리고 아까 당신과 싸웠다면 난 금오위의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꼼짝없이 잡혔을 것이오. 도망치고 싶어서 도망친 것이 아니란 말이오. 그러니 이즘에서 끝냅시다.”

좋은 게 좋다고.

나와 별 감정이 없는, 일면식도 없는, 조금 전에 본 것이 최초의 대면인 조규영과 생사를 두고 싸울 이유가 없다. 그럴 필요 자체를 느끼지 못한다.

“…….”

조규영은 입을 다물고 날 빤히 바라보았다.

“다음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때.”

승부를 뒤로 미루자.

그렇게 조규영에게 말을 건넸다.

그런데…….

조규영은 가타부타 말없이 날 향해 발을 내디뎠다.

슥.

낮은 발걸음 소리를 흘리며 날 향해 다가오는 조규영을 보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끝내.”

아주 진저리가 쳐지는 자다.

무조건 끝까지 승부를 보자고 날 물고 늘어지는 것 같아, 절로 피로를 느꼈다.

다행히 금오위 병사들이 뒤쫓아 오지 않아, 시야에 보이지 않아, 내심 안도했다.

한편.

조규영은 나와 다섯 걸음 남짓한 거리를 두고 섰다.

“승부를!”

감정을 배제한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하며, 손에 쥔 검을 들어올렸다.

눈동자에서 진중한 빛이 번쩍였다.

승부는 보려는 강력한 집착이 엿보이는 눈빛이었다.

스윽.

난 왼손을 들어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정말 피곤한 스타일이로구만.”

어쩔 수 없다.

조규영과 승패를 볼 수밖에.

자세를 낮췄다.

무릎을 구부리고 검을 들어 양손으로 검 자루를 쥐었다.

상단 자세.

조규영은 왼발을 내밀고, 오른 손아귀에 쥔 검을 옆으로 내밀었다.

수평을 취하는 조규영의 자세에서 자연스레 한일자가 머리에 떠올랐다.

스, 슥.

조규영은 예의 자세를 취한 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발바닥을 땅에 착 밀착하고, 땅을 밀듯이 살며시 날 향해 걸어왔다.

시선은 내게 고정되어 움직일 줄 몰랐다.

그런 이유로 본의 아니게 조규영과 시선이 마주치고 말았다.

움칫.

조규영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난 가볍게 몸을 양쪽으로 흔들듯 움직였다.

‘뭐, 뭐야?’

머릿속에서 착각이 떠올랐다.

피 맛을 볼대로 본, 잔뜩 야성에 지배당하는 주릴 대로 주린 한 마리 들개.

내 눈에 보이는 조규영은 그랬다.

줄기줄기.

서늘한 살기라는 이름의 기운을 내뿜고, 지독하리만치 살벌한 눈빛을 띠는 조규영.

아무래도 피깨나 본 자 같다.

전장에서 봤을 듯 한데, 승부욕이 넘쳐도 너무 넘친다.

여느 사람을 압도하는 강한 집착과 같은 승부욕이 한 눈에 들어왔다.

송연한 느낌이 드는 것이, 그야말로 살 떨린다.

‘이거 왜 이래?’

장난이 아니다.

조규영이 격렬한 감정을 표출하는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마구 흩뿌리듯 뿜었다.

츠, 츠으으으읏.

심중 강한 반발심이 일었다.

나도 죽음깨나 보았고, 피도 볼만큼 봤다고 자부한다.

그 놈의 평화유지군인가 뭔가로, 실전 경험을 해 봐야 한다는 중대장 그 인간의 꾐에 빠져 아프간에서 아주 개 고생에다가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질리도록 겪어봤다.

머릿속에서 평화유지군으로 활동했던 기억이 떠올라,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부르르.

나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멀쩡히 나와 나란히 걸어가던 전우가 난데없는 저격에 머리통이 터져 나가지를 않나?

타고 가던 차가 급조폭발물에 폭발하며 사방팔방으로 잔해가 날아가지를 않나?

모처럼 시간이 나, 전우들과 맛있다고 소문난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시내에 있는 레스토랑에 갔다가 배를 채우는데, 난데없이 윈도우 밖에서 마구 총질을 해대지를 않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그런 생사고비를 숱하게 넘겼다.

더 말하면 잔소리 밖에 안 되는 일을 몸으로 직접 체험하며 살아온 난데.

조규영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의 표출이라고 할 기운에 무의식적으로 쫄다니.

‘내가 꿀릴 것이 뭐 있다고. 지레 겁먹어.’

마음을 가다듬으며, 거리낌 없이 다가오는 조규영을 향해 마주 걸어 나갔다.

처, 척.

일부러 발소리를 크게 냈다.

그것이 이상한 듯 조규영이 움직임을 멈추며 움찔거렸다. 눈동자에 경각심이란 감정이 슬며시 배어나왔다.

꽤 신중한 조규영의 모습에, 난 새삼스레 긴장을 느꼈다.

‘이거.’

방심하면 안 될 것 같은데.

‘하긴 뭐.’

응양군의 병력이 2천이다.

2 명의 장군이 각 1천여 명의 병兵을 지위한다.

그 점을 감안하면 조규영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한데, 내심 궁금한 것이 있다.

개인 무력과 병을 지휘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대개의 경우 탁월한 지휘력을 발휘하는 이는 개인 무력이 쳐진다.

반대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개인 무력이 출중한 자는 지휘력이 쳐진다.

개인 무력과 지휘력을 공히 갖춘 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후, 후우.”

난 고르게 숨을 내쉬며 걸음을 멈추고 섰다.

조규영과의 거리는 두세 걸음으로 줄어들었다.

크게 한 번 발돋움 하면 곧바로 상대를 공격할 수 있는 공격권에 들어선다.

지금도 나와 조규영이 손에 쥔 검을 휘두르면, 검은 상대방의 몸에 닿는다.

그런 까닭에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첫 일격이 의외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일초 승부라는 승부의 미학에 바짝 근접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눈으로 쫓을 수 없는 순간의 승부가 나와 조규영의 생사를 결정짓는다.

그리 말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대치 거리다.

“흠.”

낮은 외마디를 흘리며, 난 조규영의 왼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스으으…… 슥.

조규영을 유심히 관찰했다.

검을 쥔 조규영의 오른손.

조규영이 몸을 돌린다면 모를까? 그 전에는 조규영이 오른손에 쥔 검은 뻗는 반경이 한정되어 있다.

난 그 점을 감안했다.

‘왼쪽!’

조규영의 좌측을 집중 공략할 생각이다.

‘날 따라 몸을 돌리면?’

머릿속으로 좌측으로 도는 내게 조규영이 몸을 돌리는 상황을 상상했다.

‘그 즉시.’

반대로 돌아, 조규영의 오른발 발등이나 발목을 노릴 것이다.

강자를 상대하는 데 있어 뭐니 뭐니 해도 발을 놀리기 힘들게 만드는 것이 최고다.

동작과 행동을 느리게 만들고, 부자연스러운 몸짓을 하도록 유도하여,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는 것이 내게 유리하고 이롭다.

발에 이상이 생기면 공수는 자연 흐트러지고, 내 공격에 대한 대응은 느려지고 원활해지지 못한다.

강한 자를 단숨에 죽이거나 없애고자 하는 것은 욕심이며, 욕심은 늘 무리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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