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205화 (205/247)

<-- 205 회: 8-6 -->

조규영이 노리는 것이 뭘까?

날 노리기에는 흔들림이 많고, 말보다 드러난 면적이 작다.

그에 반해 내가 탄 말은 드러난 면적이 많아, 검으로 맞추기에 매우 용이하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난 서둘러 상체를 바로 하며 왼손에 쥔 말고삐를 오른쪽으로 당겼다.

히힝.

말이 울며 방향을 틀었다.

찰나

쑤아아아아아앙.

강렬한 파공이 들렸다.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찔거렸다. 조규영이 검을 던진 것이 틀림없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며 상체를 바짝 낮췄다.

시야에 날아오는 검이 보인다.

검은 살며시 비치는 햇살인 양 쾌속하게 허공을 스쳤다. 그 뒤에서 조규영이 뛰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여전히 뛰어오고 있었다.

검을 던지는데 그치지 않고, 그 다음 상황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조규영이었다.

‘역시!’

전 응양군 천종장군답다.

심중 절로 경탄이 일었다.

푹.

귀에 검이 살을 뚫고 단숨에 박히는 외마디가 들렸다. 동시에 말이 구슬피 울었다.

히이이이힝.

고통이 배인 울음이었다.

제기랄.

하필이면 말의 우측 엉덩이에 검이 박힐게 뭐람. 그냥 스쳐 지나갈 수도 있잖아.

썩을!

말이 휘청거리며 우측으로 몸을 뉘였다.

엉덩이에 박힌 검이 주는 고통이 깊고 큰 모양이다. 그 바람에 난 안장에서 뛰어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휙.

사뿐하게 지면에 착지했다.

급히 고갤 돌려 말을 보았다.

히힝.

아픔이 배인 구슬픈 울음을 흘리며 말은 네 다리를 허우적거렸다.

상처가 매우 깊고 큰 것 같아 안쓰러웠다.

“세상에 보기 드문 명마 같은데. 쩝.”

내가 달리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기병이나 무장에게 기승하는 말은 또 하나의 자신이다. 그런 까닭에 타는 말을 애지중지한다.

고개를 돌려 조규영을 보았다.

그 사이에도 날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독한 인간!”

여느 사람에 비해 매정한 구석이 많은 것 같다. 말을 저리 만들다니.

“나쁜 놈의 쇠이.”

화가 났다.

흠칫.

난 귀에 들리는 기척에 몸을 가볍게 양쪽으로 흔들듯 움직였다.

타다닥.

주변에서 세 군병이 날 향해 달려드는 기척.

주저할 겨를이 없었다.

시선을 돌려 세 군병을 보았다.

세 군병은 신속했으며 침착했다.

당황하지 않고 재빨리 내 정면과 좌우로 갈라져, 날 치고 들어오려는 움직임이 보기에 그럴 듯 하다.

그로 미루어보아 제법 실전 경험이 있는 것 같다.

여느 군병이라면 ‘너는 저쪽으로 나는 이쪽으로’ 그렇게 서로 소리쳐 손발을 맞출 텐데.

세 군병은 입을 굳게 다물고 움직임에도 손발이 어느 정도 맞아 떨어졌다.

그 모습이 보기에 군병들의 선임내지 고참 군병인 듯 하다.

‘제법.’

흐릿한 고소를 머금으며 조규영을 흘낏거렸다.

시야에 보이는 조규영은 빠르게 거리를 줄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빌어먹을.’

난 고민했다.

세 군병을 상대하는 사이 조규영이 내게 이를 것 같다.

뛰어오는 조규영이 맨손임을 감안하면, 덤비는 세 군병이 쥔 무기 중 하나를 내가 낚아채어 손에 쥔다면, 조규영을 상대하는 것이 한결 수월할 것 같은데.

세 군병이냐?

조규영이냐?

난 두어 호흡의 시간 동안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내심 주저했다.

한편.

“놓쳐서는 안 돼.”

“반드시 잡아야 한다.”

“막아라.”

“도망치게 내버려두지 마라.”

최향, 지윤심, 유송절, 무장들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에 군병들이 날 향해 우르르 몰려왔다.

아무래도 빨리 장내에서 몸을 빼야 할 듯 싶다.

나 혼자서 기백여 명은 충분히 될 군병을 상대할 수는 없다.

사람인 이상 기력과 체력이 바닥날 것이고, 바닥이 나는 동안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내 몸의 경이로운 회복력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최향이 데리고 온 금오위는 6위에 속한 최정예군이다.

여느 다른 군병들과는 받는 훈련의 질과 양이 판이하게 다르다.

병 개개인의 무력도 차이가 난다.

누가 뭐라고 해도 중앙군이 아닌가?

만에 하나 금오위의 포위망에 갇혀 버린다면, 몸을 빼낼 수 없을 정도로 포위망이 촘촘하고 치밀하다면, 나는 꼼짝 없이 최향의 수중에 떨어지고 만다.

조금 전에 최향의 턱을 발로 걷어차 버린 난데.

내가 최향의 수중에 떨어진다면, 아마 모르긴 해도 최향이 날 갈아 마시려들 것이다.

조카사위고 뭐고, 당장 내 목을 날려버리려 달려들 것이다.

금오위의 군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내게 턱을 차이는 볼 상 사나운 꼴을 보였으니.

최향의 자존심이 얼마나 상하겠는가?

보통 남자들도 최향이 당한 것과 똑같은 일을 당한다면 다들 얼굴이 벌게지는데.

잔뜩 열 받아 길길이 뛸 텐데.

생각은 길고 시간은 짧았다!

“죽어.”

“놈!”

세 군병이 그새 지근에 이르러, 각기 쥔 검과 창으로 날 공격했다.

난 몸을 크게 양쪽으로 흔들며, 발을 바삐 놀렸다.

민첩하게 세 군병의 검과 창을 피하며, 내 좌측에서 공격하는 군병을 힐끔거렸다.

오른발에 체중을 싣고 땅을 굳건히 밟았다.

몸을 돌리며 왼발을 사선으로 차올렸다.

휘익.

왼발은 크게 휘어진 곡선을 그리며 허공을 스쳤다.

일순간.

퍼억.

발끝에 둔중한 감촉이 느껴졌다.

걷어차인 군병이 오른쪽으로 패앵 돌더니 지면으로 나가뒹굴었다.

군병의 손아귀에서 지면으로 검이 떨어졌다.

난 잽싼 발놀림으로 떨어지는 검을 공중으로 차 올렸다.

조심스러웠다.

자칫 검날이 발에 닿으면 그 즉시 싹둑이다. 검면에 발이 닿아야 싹둑을 피할 수 있다.

가슴 높이로 떠오른 검을 낚아채는 즉시 재빨리 휘둘렀다.

“크악.”

정면에서 공격하던 군병의 목을 긋고, 민첩하게 우측으로 돌아섰다.

쉬잇.

우측에 있는 군병이 그새 날 향해 꼬나 잡은 창을 내찔렀다.

날 향해 창이 일직선으로 짓쳐들었다.

서둘러 오른발을 사선으로 걷어찼다. 창대가 내 왼쪽으로 튕겼다.

창을 내찌른 군병을 당황했다.

난 당황하는 군병의 가슴으로 파고들며 검을 높이 들었다.

빙글.

오른 손아귀에 쥔 검을 거꾸로 돌렸다. 검첨이 밑으로, 검 자루가 위로 향했다.

송곳으로 내리 찌르듯, 검첨을 당황하는 군병의 목에 박아 넣었다.

“끄륵.”

군병은 가래가 끓는 듯한 소리를 흘리며 비틀거렸다.

지면으로 무릎을 꿇으며 날 올려다보았다. 원망이 가득한 눈동자가 시야 가득히 들어왔다.

‘빌어먹을!’

기분이 엿 같다.

시선을 마주치는 것이 너무나도 부담스럽다.

군병의 목에서 검을 빼며, 그새 지근에 이른 조규영을 향해 돌아섰다.

급히 조규영을 상대할 채비를 갖췄다.

그 사이.

내 왼쪽 지면에 무릎 꿇은 군병이 뒤넘어갔다. 지면에 쓰러지며 목에서 분수처럼 선혈을 콸콸 흘렸다.

주변 지면이 진홍색 선혈로 붉게 물들었다.

그로 말미암아 내 좌 반신으로 죽은 군병의 피가 튀어, 묻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싸울 자세를 갖추는 사이, 조규영이 걸음을 멈추고 서며 소리쳤다.

“검!”

조규영의 시선이 좌우에 서 있는 몇몇 군병에게 향했다.

한 군병이 서둘러 손에 진 검을 조규영에게 던졌다.

휘익.

검은 작은 원을 그리며 회전했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허공을 지나 조규영에게 이르렀다.

조규영은 날렵한 손놀림으로 검을 낚아채며, 날 노려보았다.

매서운 눈빛을 번득이며 진한 적의를 표출했다.

한편.

나는 잠깐 고민했다.

조규영을 상대하려고 자세를 취하는 동안, 주위로 군병들이 떼로 몰려왔다.

꾸역꾸역.

몰려드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조규영과 검격을 주고받으며 격돌하는 사이, 나는 몰려오는 군병들에게 에워싸일 것 같아 꺼려졌다.

그에 조규영과의 일전을 포기하고 뒤돌아섰다.

다다다.

뒤에서 조규영의 성난 외침이 들렸다.

“또 도망치고자 하다니. 그리고도 무인이라 할 수 있는가?”

외침에서 실망이란 감정이 묻어났다.

조규영은 아무래도 뼛속까지 무인인 모양이다.

‘그게 나와 뭔 상관이라고.’

마음속으로 가볍게 조규영의 외침을 무시했다.

자존심을 세워야 할 때와 장소를 가려야지, 지금 승부욕에 불타 조규영과 붙었다가는 흔한 말로 난 골로 가기 십상이다.

‘넌. 떠들어. 난. 안 들음 되지 뭐.’

널널하게 생각하며 뛰는 속도를 최대한 높였다.

보폭을 짧게 잡고,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짧고 빠르게 숨을 들이 내쉬었다.

폐부 깊숙이 다량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죽어라 뛰고 또 뛰었다.

‘허, 허억. 염병! 썩을!’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숨이 차기 시작했다.

고려 시대로 떨어지고 난 이후 간만에 죽을 둥 살 등 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부지런히 헬스클럽이라도 다니는 건데. 죽어라 러닝머신에서 뛰는 건데.

그 놈의 돈이 아까워서.

매일 아침 조깅이라도 부지런히 해 둘 걸.

후회에 후회가 물밀듯이 몰려와 내 가슴을 그득 채웠다.

니이……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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