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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기-204화 (20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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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슨 황당함이란 말인가?

최향, 조규영, 지윤심을 비롯한 장내에 있는 자들은 어이없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고 드러냈다.

양손을 번쩍 든 이민호를 바라보는 그들의 얼굴에는 허무맹랑이라는 감정이 숨김없이 적나라하게 나타났다.

난 유송절을 힐끔거렸다.

‘제기랄!’

아무래도 내 의도를 눈치챈 것 같다. 군병들을 돌아보며 고함치려는 같아 마음이 급했다.

‘어서!’

묵은 비록 죽지는 않았지만 크게 다쳤다. 그 몸으로는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무조건 시간을 벌고 또 벌어야 한다.

그런 이유로 난 최향을 바라보았다.

최향은 기가 차다는 표정과 시선으로 날 마주보았다.

“처숙부님. 그래도 처조카인데. 이리 하실 것 같지는 없지 않습니까?”

말하며 최향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저벅저벅.

나와 최향의 거리는 눈대중으로 보았을 때 대략 열두 걸음 남짓이었다.

최향에게 걸어가자, 불안했던지 지윤심과 몇몇 무장이 재빨리 최향의 곁으로 움직였다.

눈치가 내가 혹여 최향에게 위해를 가하지는 않을까? 꺼리며, 최향을 보호하려는 것 같아, 난 내심 쓴 미소를 머금었다.

한편.

조규영은 날 쳐다보며 얼굴을 이지러뜨렸다.

“이익!”

불쾌감이 조규영의 얼굴을 뒤덮었다.

무인이라 여겼다. 하여, 자신과 검격을 겨룰 기회를 주고자 하였다.

그런데 난데없이 양손을 번쩍 들고는 한다는 말이 투항이라니.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어 조규영은 할 말을 잃었다.

“…….”

가막히지 않는가?

유송절은 이민호가 고의로 시간을 끌려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조금 전에 저 곳에…….”

서둘러 군병들에게 다시금 외치려했다.

그런데 돌연.

다다다.

이민호가 최향을 향해 뛰었다.

“막아!”

“저, 저.”

“주군.”

지윤심을 비롯한 무장들이 당황했다.

“흑.”

최향은 이민호가 말을 걸어와, 막 입을 열어 말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민호가 돌연 자신을 향해 뛰어왔다. 당혹스럽기 짝이 없는 상황이라 최향은 일순 말을 잃었다.

“…….”

그 사이.

“서라!”

조규영이 이민호에게 소리치며 민첩하게 뛰었다.

호위장이었다.

행여 이민호가 최향에게 위해를 가한다면 체면이 말이 아니다.

호위장의 주 소임所任이 무엇인가?

최향을 모든 위험으로부터 지키는 것이 아니던가?

“이, 이이!”

유송절은 크게 화냈다.

흉맹한 표정을 지으며 교묘히 묵이 살아 달아났음을 알리려는 자신의 말을 막는 이민호의 언행에 분노했다.

‘교활한!’

부아가 이만저만 치미는 것이 아니다.

한편.

“막아!”

“나리를 지켜라.”

“어서 죽여!”

무장들과 몇몇 군병이 이민호를 향해 내달렸다.

후다다다다.

장내는 이민호의 움직임으로 인해 매우 소란스러워졌다.

저마다 외치는 소리로 인해 몹시 시끄러웠다.

뭐가 뭐지 모를 정도로 일련의 모든 것이 부산스러워, 장내 외곽에 서 있는 군병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뭐, 뭐야?”

“어떻게 돌아가는 건데?”

“우리도 뛰어가야 하나?”

외곽에 있는 군병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어리벙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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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향과의 거리가 삽시에 대여섯 걸음으로 좁혀졌다.

난 내딛는 오른발에 체중을 싣고, 최향을 향해 도약했다.

휘이이이.

날렵한 한 마리 비표飛豹인 양, 허공에 몸을 띄웠다. 최향을 향해, 날렵하게 공중을 스쳤다.

“어딜!”

“주군, 피하십시오.”

“안 돼!”

지윤심과 몇몇 무장이 날 막으려했다. 하나, 그들의 움직임보다 내 움직임이 빨랐다.

내게 일어났었던 변화!

그 변화에 난 사활을 걸었다.

허공에 징검다리가 있는 양, 양발을 앞뒤로 빠르게 놀렸다

공기의 저항을 몸으로, 얼굴에 닿는 바람을 느꼈다.

창졸지간에 난 안장에 앉아 있는 최향에게 이르렀다.

최향은 매우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

너무 당황하여 말을 잃었다. 입을 쩌억 벌리고는 놀란 심중을 감추지 못하고 얼굴에 다 드러냈다.

허둥지둥거리는 속내가 한 눈에 다 보인다.

최향은 황황급급히 좌로 상체를 틀며, 오른손을 왼쪽 허리춤으로 뻗었다.

비껴 찬 검을 뽑으려는 것이다.

일순.

빠악.

난 최향의 턱을 오른발로 걷어차 올렸다. 둔탁한 울림에 이어 최향이 안장 뒤로 넘어졌다.

순식간에 말 엉덩이를 구르더니, 최향은 딱딱한 지면으로 떨어졌다.

콰당탕.

그 사이.

난 왼발로 안장을 밟으며 꼿꼿하게 섰다.

서둘러야 한다.

멋 부리고 있을 겨를이 없다.

난 몸을 뒤돌리며 회전했다.

휘리익.

그와 함께 양다리를 옆으로 벌렸다.

슈욱.

난 안장에 걸터앉으며, 잽싼 손놀림으로 말고삐를 낚아챘다.

“하아앗!”

우렁찬 외침을 내지르며 발로 말의 배를 찼다.

말은 낭랑한 울음을 흘리더니 앞발을 번쩍 들었다.

껑충 뛰더니 일어나며, 뒷발로 육중한 마신馬身을 지탱했다.

그러더니 앞발로 허공을 허우적거렸다.

내 주변으로 그 사이 조규영과 몇몇 무장이 다가왔다. 지윤심과 유송절 역시 내 곁으로 바짝 다가와 서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두 사람은 눈에 띄는 군병들에게 뭐라 외치며, 손짓으로 날 가리켰다.

뻔할 뻔자다.

보나마나 날 어서, 빨리 죽이라는 거겠지. 뭐.

“차핫!”

난 상체를 말머리에 착 붙이며 발로 말의 배를 세게 찼다.

말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듯, 그 자세에서 앞으로 도약했다.

휘이익.

최향이 타던 말답게, 가히 명마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말은 기막혔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너무나도 멋진 움직임이었다.

말에게 반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절실히 가슴에 와 닿았다.

난 너무 놀라, 너무 감탄해, 말을 잊고 말았다.

한 눈에 반한다!

그 말이 여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 이 순간 나는 느꼈다.

감탄에 이어 갖고 싶다는 강한 소유욕이 일었다.

천마 페가수스Pegasus!

메두사의 피에서 태어났다는 날개달린 말.

지금 내가 탄 말이 바로 페가수스라고 말해도 믿을 지경이다.

‘이, 이놈은!…… 무, 물건이야!’

난 활짝 웃고 말았다.

“하하하하하하.”

주위로 내 웃음이 낭랑하게 메아리쳤다.

3 장

말은 단숨에 몰려오는 몇몇 무장의 머리 위를 스쳤다.

날개가 달린 듯 놀라운 도약력이라 난 감탄한 나머지 말을 잊고 말았다.

‘휘유우우우.’

속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말은 앞발을 지면으로 내밀고, 뒤발을 허공에 두었다.

민첩하게, 흔들림 없이 삽시간에 착지하자마자 곧바로 앞쪽으로 내달렸다.

두두두.

앞쪽에 서 있던 군병들이 내달리는 말을 보고는 놀라, 급급히 양쪽으로 비키며 물러났다.

“피해.”

“받혀.”

“위험해.”

군병들이 놀란 외침을 이구동성으로 내뱉었다.

내가 탄 말이 자신들을 들이받지는 않을까? 다들 겁냈다.

“하하하하.”

나는 군병들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 호쾌하게 다시금 웃었다.

웃음은 낭랑하게 주위로 울려 퍼졌다.

내가 탄 최향의 애마는 군병들을 양쪽으로 가르며 앞으로, 앞으로 내달렸다.

콰두두두,

내딛는 말발굽 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을 수가 없다.

내 눈에 보이는 양쪽으로 비키는 군병들은 마치 물결 같았다.

모세가 만들어냈다는 다분히 작위적인 냄새가 솔솔 풍기는 홍해의 기적을 내가 만드는 듯한 묘한 감흥에, 난 웃고 또 웃었다.

“하하하하하.”

우월적인 위치에 있다는, 내가 군병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이 일종의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일종의 지배욕이라고 나 할까?

채 얼마 되지 않아, 난 겹겹이 에워싼 군병들을 포위망을 뚫고 외곽에 이르렀다.

앞에 있는, 마지막 외곽에 있는 군병들만 돌파하면 장내를 벗어날 수 있다.

시야에 보이는 군병들은 당황해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난 들뜬 기색을 띠었다.

고삐를 움켜쥔 왼 손아귀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연방 발로 탄 말의 배를 차며 속도를 올리라 재촉했다.

“하앗, 핫.”

외마디를 내지르는 내 주변으로 군병들이 몰려왔다. 말이 내달리는 중이라 군병들은 내 좌우로 짓쳐들었다.

휘익.

쉬이이잇.

좌우에서 달려드는 군병들이 날 향해 창을 내지르고, 검을 휘둘렀다.

안장에 앉은 터라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상체 밖에 없었다.

그에 몸을 전후좌우로 움직여, 아무 것도 쥐지 않은 오른손을 이용해 창검을 막고 피했다.

내가 왼쪽에서 내지르는 창을 피해 뒤로 상체를 눕혔을 때다.

순간

‘흑.’

난 당황하고 말았다.

상체를 뒤로 눕힌 내 시야에 조규영이 매우 빠르게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조규영은 단칼에 날 베어 죽이겠다는 듯, 수중에 쥔 검을 머리 높이 치켜들었다.

나와 상당한 거리가 있는 점을 감안하면 검을 휘두른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

내심 흠칫했다.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제기랄.’

조규영은 내게 검을 내던지려는 것이다.

‘나? 아니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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