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201화 (201/247)

<-- 201 회: 8-2 -->

@

잠시 뒤.

지윤심은 서 있는 유송절에게 이르렀다.

“이게 다 무슨 짓인가? 송절. 주군의 허락도 없이 자네 맘대로 이런 일을 벌이다니.”

역정냈다.

유송절은 지윤심이 나타나 방해하는 것에 내심 짜증냈다.

하나, 자신과 오래 동안 긴밀한 사이인 점과 최향을 함께 섬기는 처지라, 겉으로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왜 방해하시는가?”

유송절은 언짢은 속내를 드러냈다.

“이 보시게. 송절. 주군께서 화가 많이 나셨네. 사사로이는 조카사위인데. 자네가 김덕명의 말에 큰일을 치를 것이라 하시며 이리 날 보내셨네. 내 말 무슨 말인지 아시겠는가?”

지윤심은 유송절을 만류했다.

“저 자는 우리의 대업에 크게 방해가 될 자네. 지금 죽이지 않으면 두고두고 화근이 될 게 빤하네.”

유송절은 내게 시선을 주었다.

살의가 그득한 시선이었다. 반드시 날 죽이겠다는 진한 의지가 엿보였다.

‘이런.’

내가 최충헌을 은밀히 독대한 것을 김덕명이 눈치채고 최향에게 알린 모양이다.

다행이라면 유송절이 최향의 명 없이 독단으로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든 것 같아, 내가 현 상황에서 처신만 잘하면 무사히 몸을 뺄 수 있을 듯 하다.

난 긴장이란 감정의 줄을 바짝 잡아당겼다.

한편.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 분의 허락도 없이 이러는 것은 아닐세.”

지윤심은 엄중한 어조로 유송절을 나무랬다.

“자네 몰라!”

유송절은 언성을 높이며 내게 바짝 붙어 선 사내들을 돌아보았다.

날 죽이라고 명령하기 직전이었다.

텁.

지윤심이 황급히 손을 뻗어 유송절의 왼팔을 붙잡았다.

“어허! 송절!”

유송절은 지윤심을 돌아보며 고함쳤다.

“팔 놓으시게.”

성난 표정을 지으며 막 사내들을 향해 이민호를 죽이라 외치려는 순간.

우루루.

일단의 이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말들이 내달리는 말발굽 소리가 뒤를 이었다.

나, 묵, 지윤심, 유송절, 9 명의 사내.

모두들 소리가 들린, 앞쪽 좌측 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둠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일단의 군병.

선두에는 몇몇 무장들이 안장에 앉아 말을 몰았다.

군병들 사이사이로 높이 쳐든 다수의 깃발이 이리저리 휘날렸다.

그 깃발에 난 적잖게 놀랐다.

“금오위!”

깃발들은 시야에 보이는 군병들이 일종의 경찰 역할을 하는 금오위金吾衛임을 무언으로 말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안색이 흐려졌다.

@

고려사高麗史를 보면 성종 14년에 금오위를 정비했다는 기록이 있다.

금오위는 경찰 부대로서 수도인 개경의 치안을 담당한다.

평소 장터, 남대가, 동교東郊의 탄현炭峴 등의 번화가를 정기적으로 순찰하며 황도이자 도성인 개경의 치안 유지 활동을 한다.

기록에 따르면 금오위는 정용精勇으로 이루어진 6영領과 복역 중인 죄수를 감시하는 간수 역할을 하는 역령役領 1영.

도합 7영으로 구성되어 있다.

금오위의 총 군사 수는 대략 7,000여 명이다.

지휘 체계는 상장군 1인, 대장군 1인, 장군 7인, 중랑장 14인, 낭장 35인, 장사 1인, 별장 35인, 녹사 2인, 위 140인, 대정 280여 명으로 되어 있다.

@

고려 중앙군인 2군軍 6위衛 중 하나인 금오위가 아무래도 최향의 수중에 들어간 것 같다.

내 시야에 군병들을 거느리고 위풍당당하게 말을 몰아오는 최향이 보이니.

‘우라질! 이렇게 되면 꼼짝 없이 나는 최향의 수중에 떨어진 셈이 되는 건가?’

안 좋다.

최향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현 상황이 조금이라도 부드럽게 풀렸을 가능성이 있는데. 최향이 나타났음으로서 상황은 최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다분해졌다.

‘망할!’

난 눈을 반짝이며 맹렬히 머리를 돌렸다.

몇몇 가상의 상황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사라졌다. 썩을이다.

운이 좋다면 나는 죽지 않고 최향의 장원에 연금될지 모른다.

한 발 더 나아가 최향은 날 두고 형 최우와 협상하려 할 수도 있다. 보나마나 형 최우로부터 상당한 양보를 얻어내려 할 것이다.

최우의 무남독녀인 최송이가 내 마누라이니. 무남독녀가 과부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최우는 협상에 응할 수밖에 없다.

그도 아니라면 나를 최우를 압박하는 다른 용도로 쓰려할지도 알 수 없다.

그래도 명색이 내가 조카사위인데, 설마 대놓고 죽이기야 할까도 싶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수습하고자 한다면 모든 잘못이 내게 있다고 억지 누명을 덮어씌우려할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불명확하다.

최향이 어떤 조치와 행보를 취할지 지금으로서는 모든 것이 미지수다.

부딪쳐보기 전에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최향의 입장에서는 나와 직면한 상황이 매우 껄끄러울 것이다.

현 상황은 그가 결정한 결과가 아니다. 유송절이 독단으로 만들어낸 상황이다.

‘이런 젠장.’

모든 상황이 잘 마무리되면 좋겠는데…….

이도 저도 아니라면, 내가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최향의 부친 최충헌과 은밀히 독대한 이유와 무슨 말이 오갔는지 대화 내용을 최향이 알고자 할 수도 있다.

권력의 향방에 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사람이 바로 최우와 최향 두 형제다.

요모조모 몇몇 경우의 수를 따져보았지만 내게 유리한 것은 거의 없었다.

난 마른침을 삼켰다.

꿀꺽.

내 생사여탈권이 최향의 수중으로 떨어졌다고 봐야 하는, 참 빌어먹을 상황이다.

“워어어어.”

최향이 내게 가까이 이르러, 탄 말을 세웠다.

그 사이.

최향이 대동한 일단의 군병이 나와 묵이 서 있는 주위로 신속히 흩어졌다.

군병들은 외곽에서 크게 원을 그리며 나와 묵을 에워쌌다.

적의가 느껴지는 다수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난 최향을 바라보았다.

“나리.”

묵이 옆에서 날 불렀다.

“침착하게 행동하고 말해라.”

여전히 최향을 보며 담담하게 묵에게 대꾸했다.

묵은 움칫하며 나와 최향을 번갈아보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히힝.

최향이 탄 말이 낮은 울음을 흘리며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투레질이었다.

“주군.”

“주군.”

유송절과 지윤심은 최향을 향해 돌아섰다.

9 명의 사내 역시 유송절과 지윤심처럼 최향을 향해 몸을 돌렸다.

유송절과 지윤심은 손을 말아 주먹 쥐고는 왼쪽 가슴에 붙였다.

군례였다.

유송절과 지윤심은 최향을 향해 머릴 깊이 숙였다.

9명의 사내는 황급히 맨땅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털썩털썩.

사내들은 유송절, 지윤심과 똑같이 머리를 깊이 숙여 최향에 대한 예를 표시했다.

최향은 날 본 척 만 척했다.

돌아보지 않고, 말머리를 돌려 유송절과 지윤심에게 향했다.

딸까닥딸까닥.

천천히 말을 모는 까닭에 나지막이 말발굽 소리가 울렸다.

최향의 얼굴에 역정이란 감정이 그득했다.

속이 언짢다는 것이 한 눈에 보이는 모습이었다. 심기가 꽤 불편해보였다.

최향이 탄 말이 유송절과 지윤심에게 이르렀다.

“감히!”

안장에 앉은 최향은 머리를 숙인 유송절과 지윤심에게 역정을 있는 그대로 쏟아냈다.

자신의 명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독단적으로 움직인 유송절에 대한 분노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마침 상체를 펴던 유송절과 지윤심은 귀에 들린 최향의 성난 음성에 몸을 움칫거렸다.

“주군…….”

말끝을 흘리는 유송절의 얼굴에 당혹이란 감정이 그득 실렸다.

지윤심은 최향이 분노했다는 것을 알아채고, 조금이라도 분노를 누그러뜨리려하였다.

“그것이 아니오라.”

“닥치게.”

최향은 지윤심에게 언성을 높였다.

엄한 얼굴이었다.

“자네들은 이따 보세.”

최향은 던지듯 가볍게 말하고는 날 향해 말머리를 돌렸다.

@

그 사이.

묵이 내 곁으로 바짝 다가와 섰다.

“나리. 어쩌죠?”

쉴 새 없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내게 말하는 묵이.

난 천천히 말을 몰아오는 최향을 응시하며 묵이에게 대꾸했다.

“침착하라니깐. 지금은 작은 행동 하나가, 말 한 마디가 자칫하면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음이다. 그러니 정신 바짝 차려라.”

묵에게 주의를 주었다.

또각또각.

최향이 탄 말이 나직한 말발굽 소리를 흘리며 거리를 좁혀 왔다.

난 시선을 돌려 지그시 최향을 보았다.

최향은 내게 다가와 말을 세우며, 득의가 엿보이는 미소를 머금었다.

씩.

난 최향을 올려다보며 정중하게 말을 건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처숙부님.”

머리 숙여 인사하며 내가 조카사위임을 상기시켰다.

“훗.”

최향은 안장에 앉아 내게 상체를 내밀었다.

“이리 되어, 자네에게 내가 참 면목이 없게 되었네. 그려. 아랫사람이 과한 짓을 하고 말았어.”

“별말씀을.”

대답하며 머리를 들었다.

유송절과 지윤심을 흘낏거리며 최향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야심한 시각이온데, 어찌 군병들이 이리 몰려온 것입니까?”

뻔할 질문을 건넸다.

나도 알고 최향도 아는,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물음이었다.

“아, 그건 말일세. 혹시 자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우려하여 내가 급히 금오위를 움직였다네.”

“그러셨습니까? 한데 봐 하니. 금오위 같습니다만.”

“맞네.”

최향은 짓궂은 기색을 던지며 제미 있어 했다.

하긴 뭐 장난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는 대화이니 그럴 만도 하다.

“밤이 깊었습니다. 숙부님. 저는 이제 그만 장인어른 댁으로 돌아갈까? 합니다만.”

“그 전에 말일세. 내 자네와 긴요한 얘기를 나눌 게 있어 그러니. 잠시 내 집으로 함께 가세.”

“네?”

난 최향의 말에 의도적으로 금시초문이란 표정을 지었다.

막 최향에게 말하려고 하는데, 최향이 잽싸게 먼저 말을 건넸다.

“비록 일이 참 묘하게 꼬이긴 하였으나, 명색이 내가 자네의 처숙부이지 않는가? 오랜만에 조카사위를 만났는데. 이리 길에서 인사하고 헤어진다면 사람들이 내가 매정하다 할 것이네. 그러니 오늘 밤은 내 집으로 가서 유하시게. 간만에 황도에 온 자네를 이리 그냥 돌려보내는 것은 윗사람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니 말일세.”

“말씀은 고마우시나 저는 시급한 일이 있…….”

난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안장에 앉은 최향이 자세를 고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주 목사를 내 집으로 모시도록 해라.”

“예에에에.”

군병들이 소리쳐 대답하며 날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명백히, 내 의사를 무시한 처사다. 강제로 날 데려가겠다는 의도가 역력했다.

난 급히 묵을 돌아보았다.

“장인어른께 가서 지금 상황을 알려라.”

알아듣기 어려운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나, 나리.”

묵이 몹시 당황하는 표정을 지으며 날 보았다.

난 어찌 할 바를 모르는 묵에게 닦달하듯 눈을 부릅떴다.

“어서 서둘러. 내 목숨이 네 손에 달렸다. 알겠니?”

“네, 네에에.”

상황이 상황인지라 묵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손 신호를 하면 무조건 뛰어라.”

“네, 네에. 나리.”

묵은 대답하며, 눈동자를 굴려 사방을 곁눈질했다.

힐끔힐끔.

난 재빨리 주변을 살피며, 일부러 묵에게 고함쳤다.

“넌. 가서 내가 오늘 밤 숙부님 댁에 묵는다는 것을 장인어른께 알리도록 해라. 어서!”

말끝에 힘주며 손을 들어 사래질했다. 묵에게 보내는 빨리 가라는 손 신호다.

“네에에. 나리.”

묵이 고함치며 옆으로 돌아서자마자 다급히 달음박질쳤다.

후다닥.

뛰는 소리에 최향을 비롯한 이들이 몸을 움찔움찔거렸다.

묵이 별안간 달음박질친 까닭에 잠시 최향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멈칫거리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뒤늦게 다들 달음박질치는 묵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성큼.

그들의 이목을 내게 돌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크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

“숙부님!”

최향을 응시하며 크게 고함쳤다.

최향이 몸을 흠칫거리더니 날 쳐다보았다.

“간만에 조카사위가 댁을 찾는데. 기왕이면 술과 계집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