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200화 (200/247)

<-- 200 회: 8-1 -->

1 장

아홉 명의 사내는 천으로 이마를 가리며 질끈 머리를 묶었다.

입은 옷은 활동성을 극대화한 전형적인 무인의 복색인 경장 무복이었다.

사내들은 죄다 왼손에 검을 들었다.

은연중에 그들의 눈동자에서 살의를 머금은 빛이 번들거렸다.

강렬한 적의의 표출이라 할 모습들이었다.

“나, 나리.”

묵이 몹시 당황하여 앞뒤를 번갈아보았다.

겁먹은 얼굴로 아홉 사내를 둘러보는 묵은 불안감에 몸을 가늘게 떨었다.

바르르.

난 침착하게 나타난 자들을 번갈아보며, 왼손을 허리춤에 맨 검 자루에 얹었다.

“니들.”

낮은 목소리로 사내들의 정체를 물었다.

“누구냐?”

사내들은 묵묵부답이었다.

“…….”

입을 꾹 다물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모습에서 결코 선의 善意로 날 찾아오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난 얼굴을 딱딱하게 경직하며 임전 자세를 취했다.

언제든지 왼쪽 허리춤에 맨 검을 뺄 준비를 하며 무릎을 구부렸다. 아울러 몸을 최대한 숙여 무게 중심을 지면에 착 붙였다.

신속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다.

그 때.

“이거 실례가 많게 되었소이다. 하하하.”

뒤쪽에서 호방한 웃음이 들렸다.

“나리.”

묵이 날 부르며 뒤돌아섰다.

천천히 뒤돌아서는 내 시야에 세 사내가 양쪽으로 비켜서는 것이 보였다.

당당한 걸음으로 세 사내를 스치는 사내.

“유 장군.”

난 불현듯 외쳤다.

시야에 보이는 자는 몇 번 본 적이 있는 이였다.

유송절.

최향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2군 6위의 중앙군 서열 3뉘라고 할 수 있는 정 4품 장군將軍이다.

장군은 1천여 명 단위로 이루어진 영領을 운용하는 실질적인 지휘관이다.

일테면 부대장이라고 할 수 있다.

“썩을!”

난 우거지상을 지으며 거친 어조로말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오늘 밤 똥 밟은 것 같다.

앞뒤에서 나타난 9명의 사내를 움직인 자가 유송절이라면 길보다는 흉이 많을 것이다.

난 머릿속으로 내가 알고 있는 유송절에 관한 기억을 들췄다.

@

본시 유송절은 최충헌의 심복으로, 후에 최향의 심복으로 변심하였다.

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내가 알기로는 유송절의 가계는 상당한 문벌 귀족 집안이다.

진주를 본관으로 하는 문화 유 씨로 고조부가 추밀원사와 예부상서를 지낸 유언침이다.

증조는 한림학사 유순이고, 조부는 상장군이자 문산군으로 책봉된 유성비이며, 부친은 정 4품 시랑인 유당이다.

조선 태종 1403년.

강천주姜天霔, 김장간金莊侃, 유이柳荑, 김위민金爲民, 박윤영朴允英 등이 주자소에서 동활자 계미자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중 정종 때 문과에 급제한 유이가 유송절의 후손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유송절은 당시 대표적인 문벌 귀족 가문의 자손으로 보인다.

알려지기로는 도방都房에 속한 무신이라 기록되어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문신에 가깝다.

대장군 최준문, 상장군 지윤심, 낭장 김덕명과 매우 긴밀하고 친밀한 사이를 유지하며 최향을 최충헌의 후계자로 강력하게 밀었다.

그에 유송절은 최준문, 지윤심, 김덕명과 함께 최우를 제거하려다 실패, 역으로 당하고 만다.

정권을 장악한 최우는 최준문을 죽였음에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유송절을 남해의 섬으로 유배를 보냄으로서 살려 주었다.

추측컨대 유송절의 가계를 염두에 둔 조치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최향은 형제라는 점 때문에 홍주洪州로 귀양 갔다. 하지만 정권욕을 끝까지 버리지 못하고 결국 난을 일으키고 만다.

그 때 유송절을 비롯한 옛 측근들이 적극 호응하였으나, 안찰사按察使 전의全懿에 의해 추포되어 처형되었다.

기록은 전한다.

@

유송절은 여남은 걸음의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우뚝.

날 마주보며 득의라는 감정이 엿보이는 흐릿한 미소를 짓는 유송절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다.

주먹으로 한 대 후려쳤으면 참 좋겠는데.

쩝.

난 불쾌한 속내를 담아 유송절에게 항의했다.

“이 무슨 무례입니까? 유 장군.”

목청을 높였다.

유송절은 느긋하게 대꾸했다.

“참지정사께서 그대를 좀 보자 하시네.”

말에서 강제성이 물씬 풍겼다.

‘제기랄!’

난 인상을 쓰며 여유만만한 유송절을 응시하며, 은근 슬쩍 주변을 에워싼 9명의 사내를 힐긋거렸다.

뭔가 심상치 않다.

“나리.”

묵은 안절부절못하며, 난 돌아보았다.

“가만히 있어.”

묵에게 말하며 유송절을 쳐다보았다.

“훗.”

유송절은 깔보는 듯 가볍게 실소하더니, 내게 말을 건넸다.

“가시겠소. 아니면 이 자리에서 끝을 보겠소.”

냉정하게 말하는 것이 말을 듣지 않으면 날 죽일 기세다.

“으음.”

곤혹스러워 난 낮은 신음을 흘렸다.

‘어떻게 할까?’

따라가도 운이 나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할 수 있다.

거부하면 이 자리에서 죽임을 당할 것 같긴 한데.

선뜻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

그 사이.

묵이 정신없이 에워싼 사내들과 나 그리고 유송절을 번갈아보았다.

경황이 없는 모습이었다.

잔뜩 겁에 질려 어찌 할 바를 몰랐다. 가시 방석에 앉은 양 좌불안석이 보기에 영 그렇다.

“거절하겠소이다.”

냉담한 목소리로 유송절에게 말하며, 난 허리춤에서 검을 빼들었다.

촤앙.

급히 검집에서 검을 빠져나오는 거친 울림.

“묵아. 옆으로 멀찍이 물러나라.”

소리치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나리!”

묵이 날 보며 마주 소리쳤다.

“…….”

대꾸하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물고 유송절과 에워싼 9 명의 사내를 흘낏거렸다.

긴장감이 일었다.

그에 얼굴을 굳히며 경각심이란 감정을 돋웠다.

유송절을 날 응시하며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어리석은.”

중얼거리며 에워싼 사내들을 돌아보았다. 눈짓으로 날 가리키며 유송절은 고개를 까닥였다.

죽여라!

무언으로 말하는 유송절의 명령에 아홉 사내가 검을 빼들었다.

스, 스렁.

나지막한 울림과 함께 급격히 주변 분위기가 급랭되었다. 그와 더불어 사내들이 몸에서 험악한 기운을 무럭무럭 일으켰다.

“죽고 싶다면야.”

유송절은 싸늘한 안광을 번쩍이며 날 보았다.

“날 암살하고자 하다니.”

지금 상황이 암살 시도임을 난 슬쩍 언급했다.

유송절은 듣지 못한 척, 뒷걸음쳤다.

처, 처억.

난 물러나는 유송절에게 소리쳤다.

“이 무슨 치졸한 짓이오? 유 장군.”

유송절은 냉혹한 외침을 내질렀다.

“죽여라!”

그 말이 신호라도 되는지, 사내들이 일제히 날 향해 달려들었다.

타다닥.

예사롭지 않은 자들이다. 그 누구도 고함이나 기합을 지르지 않았다.

“…….”

입을 한 일자로 굳게 다물고 살심을 머금은 안광을 번득였다.

손에 검을 쥐고 묵묵히 내게 달려드는 사내들.

그들은 사람을 죽여 본 경험이 풍부한 눈치였다.

움직임 깔끔했으며, 날 향해 뛰어오는 자세가 무척 안정적이라, 난 마른침을 삼키고 말았다.

꿀꺽.

흡사 사냥감을 향해 몰려드는 늑대 떼 같다.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무슨 미친!’

최향.

그 자가 어떻게 된 것은 아닐까? 암살이라는 무모하고 어리석은 짓을 할 자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내가 명색이 나주 목사다. 게다가 최우의 사위다. 야심한 시각의 밤거리에서 날 암살하고자 하다니.

최향이 내게 처숙부가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건 아니라는 상념을 지울 수가 없다.

심중 혹두에게 화났다.

‘빌어먹을! 내 이놈의 자식을 그냥!’

누누이 최향을 비롯한 일련의 이들에 대한 감시를 단 한순간도 늦추지 말라,

단단히 엄명을 내려놓았었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지켜보며 조금이라도 이상 동향이 있으면 즉각 내게 보고하라 신신당부해두었다.

한데, 날 죽이려고 하는 암살에 관한 그 어떤 정보도 내게 제공해주지 못했다.

‘젠장!’

마음속으로 크게 고함치며, 난 오른손 손아귀에 쥔 검을 가슴 높이로 들었다.

내게 달려드는 사내들을 주시하며, 막 움직이려는 순간.

“멈추시게. 송절!”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앞쪽, 우측 길.

그 곳에서 몇몇 이들이 황황급급히 뛰어오고 있었다.

유송절과 내게 달려들던 사내들이 외침에 멈칫거리며 섰다.

다들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감이 오지 않는 듯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묵은 외침이 들린 우측 길을 돌아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우.”

손을 들어 가슴을 쓸어내리는 동작이, 속으로 무서워했던 모양이다.

“이!”

유송절은 소리치며 달려오는 이들을 돌아보며 격한 표정을 지었다.

방해꾼들이다.

그에 무척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송절은 시야에 보이는, 가장 앞에서 뛰어오는 사내에 얼굴을 찌푸렸다.

아는 이였다.

난 나타난 이들을 힐긋거리며 심중 영문을 몰라 했다.

‘누구?’

의문에 중얼거리는데.

‘저 자는?’

교정도감을 빈번하게 드나들던 상장군 지윤심이 제일 앞쪽에서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타다다.

뛰는 지윤심을 다섯 명의 무사가 뒤따라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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