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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이 쓰이는 눈치들이다.
서풍은 마음이 무거웠다.
‘이민호!’
마음속으로 이민호를 부르며 지그시 어금니를 악물었다.
경쟁자가 떠오르는 아침 일출처럼, 중천을 향해 치솟는 해처럼 승승장구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도 많이 걸렸다.
은연중에 피하려고 했지만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스스로를 이민호와 비교하고 말았다.
경쟁 의식이 밑바탕에 깔려 종종 자신의 마음이 통제력을 잃고 엉뚱한 방향으로 튀곤 했다.
연전연승하며 사람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으며, 그 어떤 지방 호족도 누려보지 못한 민중의 환호를 받았다.
나주와 인근 주현의 민심은 이미 오래전에 이민호를 향했다. 군
부에서는 이민호를 영입하려고 하고, 당대 고려 최고 권력자이자 당대 집권자인 최충헌이 이민호의 뒤를 봐주고 있다.
다음 대 집권자로서 유력시 되는 최충헌의 장자 최우가 이민호의 장인이다.
물론 자신에게도 장인이 되지만, 정실부인의 사위와 첩의 사위는 엄연히 다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이민호는 출새를 위한 모든 기반을 탄탄하게 다 닦아 놓았다.
그 어떤 방해도 통하지 않을, 그 어떤 후유증도 없을, 완벽에 가까운 배경과 조건을 가지고 있다.
이대로 잠시 나주에 있다, 황도 개경으로 가게 된다면…….
장래에 최우의 후계자로서 입지를 다질 것이고, 훗날에는 고려 최고의 권력자가 될 것이 확실하다.
‘음!’
서풍은 부러움과 질투라는 두 감정에 뭐라 단정 짓기 어려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도 이민호처럼 살고 싶다는 작은 충동이자 열망이 마음 한구석에서 서서히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그런 한편으로 이민호가 여동생 서혜의 남편이라는 것을 의식적으로 염두에 두려 노력했다.
마음 대부분의 영역이 이민호에 대한 질투와 경계심으로 그득 채워져, 가끔 자신도 스스로가 통제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늘 감정적이 되곤 한다.
이성이 아닌 감성에 따라 만사를 판단하고 지시하며, 뒤늦게 그것을 깨닫고는 후회하고 반성하며 스스로를 자책하곤 했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잘 고쳐지지 않아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자가 어찌 대업(?)을 이룰 수 있단 말인가?
“후우우.”
서풍은 길게 숨을 내쉬며 힐금 좌측을 뒤돌아보았다.
“조규.”
나지막한 부름에.
“예, 주군.”
조규는 정중히 대답하며 머리를 숙였다 들었다.
양광도 지방 호족들이 각자의 가병을 모아 양광도 연합 호족군을 결성하며 서풍을 수장으로 삼았다.
그와 함께 군신맹약식을 거행하며 서풍을 자신들의 주군으로 받아들였다.
그 과정에서 서양헌이 호족들에게 실로 엄청난 재물과 상당한 이권을 건넸다.
조규는 서풍을 자신의 주군으로 가슴 깊이 받아들였다.
그것은 비단 조규뿐만 아니라 이정찬도 마찬가지였으며, 서가와 연관이 있는 모든 이들이 서풍과 군신맹약식을 통해 주군으로 섬길 것을 천지신명께 맹세했다.
“어떻게 되었나?”
조규는 서풍의 물음에 공손하게 대답했다.
“예, 서혜님을 통해 문한성을 비롯, 몇몇 사람들이 도움을 주기로 약조하였습니다만.”
조규는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돌려 포구에 정박해 있는 선박들을 보았다.
“문제는 배와 선부입니다. 서혜님의 도움에 힘입어 배를 확보한다고 해도 배를 움직일 수 있는 선부들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배와 선부! 둘 다 필요합니다. 더불어 항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황산해를 우리 사람으로 만드셔야 합니다.”
조규는 말을 마치며 서풍을 돌아보았다.
서풍은 조규의 말을 들으며 그 사이 포구를 내려다보았다.
“…….”
입을 꾹 다물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서풍의 귀에 옆에 있는 이정찬이 무심코 흘리는 말이 들렸다.
“부럽습니다. 가능하다면 저 배들을 모두 우리 서가의 것으로 만들면 참 좋겠습니다만.”
포구와 배를 바라보는 이정찬의 마음속에서 갖고 싶다는 소유욕이 일었다.
“우리 서가의 것으로 만든다?”
서풍은 이정찬의 말을 받아 나직이 되뇌며 이정찬을 곁눈질했다.
이정찬은 서풍의 행동과 시선에 일순 당황했다.
“어, 무심코 말한 겁니다. 주군. 마음에 담아두지 마십시오. 저도 모르게 그만.”
“아니.”
서풍은 미광을 반짝였다.
살며시 흐릿한 미소를 짓는 서풍의 얼굴이 마치 잊었던 것이 막 생각났다고 무언으로 말하는 듯 하다.
어딘가 모르게 송연한 느낌을 주는 서풍이었다.
이정찬은 낯선 서풍의 모습에 당황이라는 감정을 거두지 못했다.
조규는 그 사이 서풍과 이정찬을 돌아보며 의구심이 밴 눈빛을 띠었다.
‘무슨?’
서풍의 나직한 되뇜이 무슨 뜻인지 몰라 심중 의문을 품었다.
수하 무장들은 말없이 입을 다물고 양광도 연합 호족군의 최고 수뇌인 서풍, 조규, 이정찬. 이 세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음에 썩 들진 않지만, 세 사람과 자신들은 공동 운명체다.
한 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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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도감敎定都監.
실질적으로 고려의 모든 정치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조당朝堂은 유명무실해진지 오래다.
조당의 역할은 이미 옛적에 교정도감으로 이첩되었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보면 교정도감은 일본의 막부 정치와 매우 유사하다 말할 수 있다.
난 단상 아래에 서서, 단상에 깔린 푹신한 보료에 앉은 최충헌을 올려다보았다.
‘얼마 남지 않았군.’
최충헌은 병색이 완연했다.
안색은 매우 어두웠으며 힘이 없는 듯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미미하게 좌우로 몸이 흔들리는 것이, 차라리 누워 있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
‘곧 죽어도 올곧은 자세로 앉아 측근들과 수하들을 대하겠다!’
자존심이 세긴 센 모양이다.
몸이 정상이 아님에도 자신은 건재하다고 몸으로 말하고 싶은 눈치다.
문득 머릿속에 혹두가 전한, 이규보가 빼돌린 정보가 떠올랐다.
‘나리. 이규보 나리께서 상국 어른이 그리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며…… 앵속으로…….’
난 침착하게 최충헌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들었다.
“합하.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최충헌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미소 지었다.
“어서 오게. 내 병부상서兵部尙書에게 들었네. 이번에도 크게 이겼다면서. 게다가 전리품도 막대하고.”
은근히 내가 바친 은괴를 언급했다.
살며시 웃으며 일부러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띠었다.
“별 것 아닙니다.”
“아니…….”
최충헌은 말하다 말고 흠칫거렸다.
손을 말아 주먹을 쥐더니 머리를 숙였다. 그와 함께 주먹을 입에 대고는 기침하기 시작했다.
“콜록, 콜록.”
“합하.”
난 놀란 목소리로 최충헌을 불렀다.
최충헌은 서너 번 기침했다.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머리를 들며 주먹을 쥔 손을 펴, 내게 내밀었다.
“괜찮네. 고뿔이 들어 그런 것뿐일세. 곧 여름인데. 낮으로는 날이 좋으나 아침저녁으로 살살하다보니. 내 그만 고뿔이 들고 말았네. 그려.”
최충헌은 자신의 몸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감추려했다.
난 내심 눈을 반짝였다.
‘어리석은.’
이규보의 정보가 없었다면 나도 속을 만큼 최충헌의 연기는 감쪽같았다.
“아, 그러셨습니까? 의원은 다녀갔습니까? 합하.”
“어의 두엇이 다녀갔네. 그들이 처방해준 탕약이, 삼키기가 영 고역이더군.”
최충헌은 태연히 말하며 잔미소를 머금었다.
넉넉함이 진하게 묻어나는 모습이라, 난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러셨습니까? 그래도 탕약은 꾸준히 드셔야 합니다. 합하.”
“껄껄. 걱정해주어 고맙네. 그렇지 않아도 내 일간 자네에게 사람을 보내, 은밀히 황도로 오라 할 생각이었네. 아무튼 잘 왔네.”
“네에?”
놀란 척했다.
최충헌은 여유가 엿보이는 얼굴로 날 보며, 손을 들어 앞뒤로 흔들었다.
“이리 가까이 오게.”
“합하!”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긴히 할 말이 있어 그러네. 허니, 어서.”
최충헌은 조급한 낯빛을 띠었다.
난 의도적으로 기이하다는 가색을 띠며 발을 떼어, 앉은 최충헌에게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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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
난 앉은 최충헌의 왼편에 섰다.
“귀를.”
최충헌이 귀엣말을 하려는 듯 채근했다.
“네.”
대답하며 얼굴을 왼쪽으로 돌리며, 우측 귀를 내밀었다.
최충헌은 내 귀를 향해 얼굴을 내밀고는, 소곤소곤 나직이 귀엣말을 하기 시작했다.
“…….”
난 흠칫거리며 당황이라는 감정을 얼굴에 띄웠다.
‘이 작자가.’
가슴에서 화라는 감정이 일었다.
죽는 순간까지, 명이 다하는 끝까지, 제 집안과 후대를 챙겼다.
그것이 난 구역질이 나도록 화가 나고 또 난다.
최충헌의 입에서 나라에 대한 걱정이나 당부는 단 한 마디로 나오지 않았다.
새로운 고려의 집권자 최우를 중심으로 하는 신 권력 체계에 대한 걱정과 우려.
우봉 최 씨 가문 내부에서 일어날지도 모르는 분란을 염려하며 내게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최우의 사위로서, 신하로서, 충심을 다해 죽는 그 순간까지 사심 없이 섬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