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196화 (196/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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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여인은 손을 들어 입을 가리며 실소했다.

“호호.”

“엉뚱하셔.”

“나리께 가서 사위 분은 바람기가 없으셨다고 말씀드리자.”

“응.”

“난 지금도 가슴 떨려. 진짜 사위 분이 시중을 받아들이면 어쩌나 했어.”

“어쩌긴 뭘 어째. 잉첩이 되어 죽을 때까지 섬기면 돼지.”

“기집애. 너 그러다 조연 아가씨에게 맞아 죽어. 응.”

“체.”

“됐어. 애들아. 그만 나리께 가서 말씀드리자.”

“응,”

네 여인은 말을 주고받으며 옆으로 돌아섰다.

기실 조자개는 이민호가 바람기가 있어, 딸 조연과의 잠자리가 소홀한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그 때문에 넌지시 이민호의 바람기 여부를 확인해 보려고 네 여종을 들이민 것이다.

이민호가 넘어갔으며 조자개가 심중 매우 서운해 했을 것이다.

딸을 시집보낸 아비의 가장 큰 걱정 중에 하나가 행여 사위가 바람을 피워 딸이 눈물을 흘리며 아파하지나 않을까? 라는 우려다.

그 점에 있어 이민호는 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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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악. 나리이이이.”

내게 잡힌 묵이 비명을 질렀다.

“네가 뛰어봐야 인마. 내 손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난 묵에게 고함치며 좌측 귓가로 손을 뻗었다.

척.

귓가 구레나룻을 힘껏 잡아 올리며 눈을 부릅떴다.

“결국 잡힐 게. 뛰긴.”

난 화난 표정을 지으며 비명을 지르는 묵을 노려보았다.

그 사이.

“나리이이이. 아파요. 아프다고요.”

묵은 양손으로 구레나룻을 잡은 내 오른손을 붙잡았다.

아프다는 것이 한 눈에 보이는 고통스러운 얼굴이었다. 쩔쩔매는 것이 내가 과하게 손을 쓴 것은 아니지 모르겠다. 하지만 날 감시하는 못된 버릇(?)은 이번 참에 단단히 고쳐놔야 한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내가 밖에서 하는…… 흠흠.…… 몽땅 다 네 마누라 귀에 들어갈 것이니.

네 마누라가 동시에 내게 강짜를 부리면.

‘으으…… 끄, 끔찍해!’

난 험악한 인상을 쓰며 묵이를 압박했다.

“누구야? 누구냐고?”

묵이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체념한 듯 대답했다.

“크, 큰 마님이오. 큰 마님이 나리께서 혹시라도 왜국 여자를 침상에 들이실지 모른다고 잘 지켜보고 나중에 보고 하라고.”

예상대로다.

과연 최송이답다.

“와아아아.”

난 어이가 없어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기막혀했다.

가슴속에서 배신감이란 감정이 무럭무럭 일었다.

철썩 같이 믿고 있던 묵이 녀석이 언제 최송이에게 넘어갔는지 모르겠다.

머리에 조금 전 상황이 떠올랐다.

‘뭣 모르고 네 여종의 시중을 받았더라면.’

눈앞이 캄캄하다.

최송이가 그 사실을 혼자 알고 날 닦달할 리 없다.

자고로 초록은 동색이라고 틀림없이 서혜, 조연, 이세연에게 말해 자신 편으로 끌어들일 것이다.

세상 어느 여자가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것을 좋아할까?

네 여자가 똘똘 뭉쳐 날 맹렬히 공격할 것은 자명하다.

그럼…….

‘지, 지저스!’

날 둥글게 에워싸고 네 여자가 눈에 핏발을 세우고서 날 말로 잡아 죽이려는 광경이 선명하게 머리에 떠올랐다.

말로 죽이겠다고,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맹렬히 날 쏘아붙일 것이다.

남자는 말로는 여자를 절대 이길 수 없다.

세상 모든 남자들 중 말로 여자를 이기는 자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나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부르르.

묵이의 구레나룻을 잡은 오른손에 절로 힘이 팍팍 들어갔다.

“아아아악. 나리이이!”

묵이 뾰족한 외침을 내지르며 머리를 높이 들려했다.

“이 죽일!

난 묵을 쳐다보며 흉흉한 인상을 지었다.

“배신자야.”

“나, 나리. 잘못 했어요. 잘못했으니깐. 손을 좀 놔주세요.”

묵은 사정했다.

“어림없어. 마! 날 배신하고 감히 큰 마님에게 붙어. 너. 오늘 아주 곡소리가 나게 만들어줄 테니깐.”

흉맹하게 인상 썼다.

제 놈도 남자면서 감히 배신을 때려.

그 동안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자고로 배신자의 종말은 처참해야 한다. 그래야 배신에 대한 경종을 올릴 수 있다.

배신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일벌백계로 똑똑히 가르쳐 주고 보여주어야 한다.

난 인정사정없이 묵의 구레나룻을 무작스레 힘껏 잡아당겼다.

왼쪽으로 돌아서며 성큼성큼 큰 보폭으로 발을 내디뎠다. 묵이 녀석이 아파 죽겠다고 고래고래 소리쳤지만 난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아악. 아픕니다. 나리. 아프다고요. 제 발로 걸어갈 테니. 좀 놔주세요. 네에에.”

“시끄러. 배신자의 말은 안 들어.”

“나리이이.”

“빨랑 따라오기나 해.”

난 연방 비명을 지르는 묵의 구레나릇을 잡아당기며 바삐 걸었다.

오늘 애 하나 잡자

아주 곡소리가 오지게 나도록 잡고 또 잡자.

배신에 대한 처절한 응징이 필요한 시점이다.

난 묵을 힐끗거리며 고성을 질렀다.

“넌. 오늘 죽었어.”

“나리이이이이.”

묵이 겁에 질려 길게 외쳤다.

외침은 주위로 메아리쳤다. 밤이 깊어 상당히 멀리까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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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했던 300여 척이 넘는 배가 돌아왔다.

다친 이는 있어도 죽은 이는 단 한 사람도 없다.

포구에 마중 나온 이들은 가장이, 오빠가, 남동생이, 연인이 죽지 않은 것은 크게 감사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이게 다 부처님 덕분입니다. 아미타불.”

불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답게 너나없이 부처와 관세음보살을 찾았다.

배가 닻을 내리고 포구에 정박하자, 포구와 배 사이에 잔교棧橋가 놓였다.

터엉.

잔교가 놓이며 위아래로 출렁거렸다.

잠시 후.

배에서 군병들이 잔교를 지나 포구에 내려섰다.

물경 300여 척이 넘는 배에서 포구에 쏟아낸 3천여 명의 군병이 모두 포구에 내리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민호로부터 지휘권을 위임받은 오용섭과 이웅은 군병들과 가족들이 상봉할 수 있게끔 배려했다.

일다경의 시간이 군병들에게 주어졌다.

웅성웅성.

와글와글.

포구는 군병들과 사람들이 뒤섞여 매우 북적였으며 시끌벅적했다.

여간 소란스러운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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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서풍은 최측근인 이정찬, 조규, 갑주를 걸친 몇몇 무장들을 대동하고 포구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들이 탄 말이 가볍게 투레질하며 낮은 울음을 흘렸다.

푸르르.

포구에서 연출되는 군병들과 가족들이 해후하는 일련의 광경을 지켜보는 모습들이 어딘가 모르게 심각한 느낌을 주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포구가 한 눈에 내려다보아는 언덕이라 조망에는 그만이었다.

“…….”

서풍은 안장에 앉아 침묵으로 일관했다.

얼굴은 무표정했으며 눈동자는 심유하게 착 가라앉아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길이 없는 모습이었다.

이정찬과 조규는 서풍의 좌우에서 포구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대단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배와 선부에 그리 돈을 쏟아 붓더니.”

이정찬은 경탄이라는 옅은 감정을 내뱉었다.

내려다보는 포구를 그득 메운 듯한 수백여 척의 선박은 일대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저 선박들이 대단하긴 합니다만. 그보다 먼 타국에 출정하였음에도 사망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 저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일전에 왜구들과 몇 차례 싸워 연승한 경험이 있다고는 하지만.”

조규의 말에서 불신과 부정 그리고 긍정이라는 다소 복잡한 감정이 엿보였다.

이정찬과 조규의 뒤에 있는, 역시나 안장에 앉은 무장들은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그들끼리 낮은 목소리로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정말 연전연승이군.”

“난 솔직히 부럽네. 이공 같은 사람을 상관으로 한 번 모시고 싶어.”

“어이. 그런 말 말라고. 우리 양광도 연합 호족군의 최고 지휘관指揮官은 누가 뭐라고 해도 서가의 차자이신 서풍님이라고.”

“사람하곤. 누가 그걸 모르는가?”

“쩝. 서풍님이 아직 실전 경험이 없으시다는 것이 난 마음에 걸리네. 게다가 대규모의 병력이 격돌하는 회전會戰 경험도 전무하시고 말이야.”

“한 가지가 빠졌어. 서풍님의 곁에는 책사나 군사가 없어. 난 그게 더 마음에 걸린다고.”

수하 무장들은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앞에 있는 서풍을 바라보았다.

힐긋.

힐끔.

수하 무장들은 서풍의 등 뒤 좌우에 있는 이정찬과 조규를 흘낏거렸다.

행여나 자신들이 주고받는 말을 듣지나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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