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194화 (19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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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조자개가 앉은 원탁에는 다리가 부러질 듯한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자, 들게.”

조자개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며 놓인 술병을 들었다.

“아, 네.”

난 대답하며 잔을 들었다.

조자개가 내가 쥔 잔을 채웠다. 이어, 내가 술병을 받아들고 조자개가 든 잔을 채웠다.

술병을 놓으며 조자개가 잔을 입을 가져가는 것을 쳐다보았다.

“하하하하. 이번에 왜에서…… 은괴를.”

좋아라. 했다.

‘큭큭큭.’

난 웃으며 잔을 입으로 가져가 몇 모금 마셨다.

“장인어른께 그 동안 도움 받은 것이 적잖은데. 저만 입을 싹 닦을 수야 없지요.”

반쯤 술이 남은 잔을 원탁에 내려놓았다.

“하하하하하. 그런가?”

조자개는 호방하게 웃으며 머리를 젖혀 단숨에 잔을 비웠다.

난 술병을 다시 들어, 조자개가 입에서 떼어 내려놓은 잔을 채웠다.

‘크크. 그간 곳간에서 곶감을 빼먹듯 야금야금 재물을 받아 챙겼으니. 최소한의 생색이라도 내야지. 그래야 염치가 있는 사람이지. 흐흐흐…….’

마냥 받기만 하는 것과 간간이 받은 것을 조금이라도 돌려주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조자개는 내심 기분이 좋을 것이다.

내가 건넨 9 개의 궤짝에 담긴 은괴의 값어치는 매우 크니깐.

아닌 말로 기와집 수십여 채는 충분히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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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조자개가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정담을 나눴다.

어느 정도 술자리와 대화가 무르익었다. 판단되었을 때, 넌지시 조자개에게 중원의 동향을 물었다.

특히 몽골의 동향을 집중 언급했다.

지난 몇 해 동안 시간이 있을 때마다 조자개에게 몽골과 중원의 동향을 파악해 알려 달라 부탁해 두었었다.

조자개는 내 물음에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금은 그리 오래 갈 것 같지가 않네. 몽고는 최근 호라즘이라는 천축 방면으로 대규모 원정을 갔다고 하네.”

“남송은 어떻습니까?”

“남송은 그리 큰 변화는 없네. 황제는 여전히 향락에 빠져 있고 조정은 끼리끼리 이합집산離合集散을 반복하며 제 배 불리기에 급급하네.”

“일반 백성들은 어떻습니까?”

“예전과 별반 다른 점은 없네. 여전히 세상이 평화로운 줄 알고 각자의 생업에…… 양자강 유역의 개발로 과거 북송 때보다 풍요로우니. 응당 그럴 만도 하지만.”

“군부는?”

난 눈을 반짝였다.

악비.

그가 진회에게 죽은 이후 송의 군부는 사실상 주인 없은 무주공산이 되어 이렇다 할 군사력을 완비하지 못했다.

훅.

입김을 불면 그 즉시 팍 꺼져버릴 촛불 같았지만, 그래도 혹시 걸출한 무장이 있을지 몰라 조자개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알아본 바로는 다들 불만이 매우 많네. 문치로 인해 무신에 대한 푸대접이 너무 심하네, 게다가 악비의 죽음으로 인해 남송 조정에 대한 감정도 안 좋고.”

“반란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던가요?”

내 말에 조자개가 흠칫하며 날 뚫어져라 보았다.

“자네 혹시?”

내가 뭔가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눈치였다.

씩.

난 웃으며 대꾸했다.

“장인어른이 생각하시는 그런 것 때문에 말한 것이 아닙니다. 혹시라도 악비의 죽음으로 인해 남송의 군부 내부에서 반 황실이나 반 조정…… 어떤 형태로든 반동적인 움직임이 있을 수 있다. 그리 생각합니다.”

조자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긴 하네만. 다들 불만을 토로하는 수준이지. 실질적으로 들고 일어나려는 것 같지는 않네. 군부 일각에서 몽골과 손을 잡고 남북에서 금을 압박, 금을 멸하자는 말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네.”

“그렇기도 하겠군요.”

난 고개를 까닥이며 시선을 살며시 숙여 앉은 원탁을 보았다.

조자개는 날 응시하며 걱정스러운 얼굴빛을 띠었다.

“난 우리 고려가…… 상계에서 알게 모르게 나도는 말 중에…… 조만간 참지정사가 군병을 움직일지도 모른다는…….”

“네에에.”

난 놀란 기색을 띠었다.

“뭘 그리 놀라는가? 참지정사의 입장에서는, 최근 합하를 대신해 최근 교정도감에서…… 최 부사의 행보는 상국 합하께서 힘을 실어주시려는 의도가 아니면…… 그걸 모를 사람이 있을 것 같은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누구나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일세.…… 비단 우리 상계만 하더라도 지금 참지정사와 추밀부사를 놓고 어느 쪽에 줄을 대야 할지 말들이 많네.”

“으음.”

난 옅은 신음을 흘렸다.

조자개는 날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중원과 북방의 동향이 내 보기에는 심상치 않네. 몽고가 전례 없이 막강한 힘을 과시하고 있네. 우리 고려가 금과 사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언제고 강성해진 몽고가 우리 고려로 쳐들어올지도 모르네. 그 전에 참정정사와 추밀 부사 두 형제의 갈등이 잘 마무리 되어야 하네. 서로 손을 잡던지, 어느 한 사람이 집권하든지, 양단간에 빨리 결판이 나야 한다. 나는 그리 생각하네. 하루라도 빨리 힘을 모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지 않으면 과거 거란의 장수 소손녕이 30십만 대군을 휘몰아 왔을 때처럼…….”

조자개는 불안한 얼굴빛을 띠었다.

내 부탁으로 중원과 북방을 살피면서 눈이 조금 뜨인 모양이다.

속으로 미소 지으며 넌지시 백아셈을 입에 올렸다.

“…… 뒤를.”

눈을 반짝여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무언으로 알렸다.

조자개는 움찔했다.

뭔가 느낌이 이상한 듯 신중하게 물었다.

“그리 중요한 일인가?”

난 입을 다물고 묵묵히 머리를 까닥였다.

“…….”

“알겠네. 자네가 그리 말하니. 내 그 사람이 하고자 하는 일의 뒤를 봐줌세.”

“감사합니다. 장인어른.”

“무슨 소리. 자네의 일이 곧 내일이고, 우리 집안의 일 아닌가? 그나저나 연이에게서 아직 태기가 없던데.”

조자개의 말에 난 움찔했다.

난감한, 다소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외손자를 기대하는 조자개에게 뭐라 할 말이 없어 멀쑥해졌다.

“사람하곤.”

조자개는 잔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상술과 이재에 밝은 이들과 왜어, 한어, 몽고어 등…… 언어에 밝은 이들 그리고…….”

난 화제를 돌려, 다수의 사람이 필요함을 입에 올렸다.

묵에게 맡기기에는 일도 많고, 묵이 아직 나이와 경험이 얕아 도움이 필요했다.

조자개는 슬며시 웃었다.

“그러지 않아도 내 자네가 준 책을 읽고 그 동안 나름 준비해 둔 것이 있네.”

난 살며시 마주 웃었다.

씨익.

조자개가 해상 무역을 염두에 두고 그 동안 나름 채비를 해 온 모양이다.

‘하긴 내가 배를 그리 대량으로 건조하는 것을 알면서도 말없이 지금까지 계속 자금을 대 주었으니. 그나저나 조자개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준다면 일이 보다 수월해지겠군.’

난 눈을 반짝이며 조자개에게 넌지시 몇 가지를 더 부탁했다.

“장인어른.”

조자개는 내 부탁을 듣고는 흠칫거리더니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허허허.”

조금은 허탈함이 배인 낮은 웃음을 흘렸다. 내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기에는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다.

난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 주변에 사람이 너무 없습니다. 그렇다고 믿을 수 없는 자들을 곁에 둘 수도 없고, 그 자들 사이에 참지정사가 세작을 심으려…….”

“그럴 수도 있겠네. 그려. 그리되면 아니 되지. 알겠네. 내 한 번 힘써봄세.”

“감사합니다. 장인어른.”

난 머리를 숙였다.

“아닐세. 어서 머리를 들게. 자네나 나나 추밀부사와 한 배를 탄 처지가 아니던가?”

머리를 들어 조자개를 쳐다보며 굳건한 표정을 지었다.

“다음 대 교정도감의 주인은 개경에 있는 장인이 될 것이 확실합니다.”

내 말에 조자개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 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걱정하지 말고. 밤이 늦었으니 이만 거처로 가서 쉬시게.”

“거듭 감사합니다. 장인어른.”

“별소리를 다 하네. 처갓집에 온 사위를 위해 그 정도도 못해준대서야 어디 장인 체면이 서겠는가? 하하하하.”

조자개는 고개를 살며시 들며 쾌활하게 웃었다.

난 웃는 조자개를 응시하며, 심중 이는 가책에 안색을 흐렸다.

‘미안합니다. 당신을 이리 이용해서.’

마음이 무겁다.

최송이, 서혜, 이세연, 조연.

네 여인 중 내가 마음을 준 여인은 없다. 모두 필요와 이익을 위해 거두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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