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188화 (188/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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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간다.”

다들 기뻐했다.

몇몇 중, 경상자가 있긴 하지만 사망자는 없었다.

이 정도라면 대승 중 대승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다 적잖은 전리품을 챙긴 탓에 고려로 돌아가며 각자의 손에 괘 많은 것을 쥘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전에 오용섭과 이웅, 두 사람과 합류하여 탐라에서 배에 태운 타이라노 번의 사람들을 처분해야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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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근새근.

푹신한 비단 보료에 드러누운 최충헌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머리맡에는 황궁에서 나온 두 어의가 앉아 있었다.

두 어의는 최충헌의 맥을 짚어보고, 눈동자와 안색을 살피며, 배에 귀를 대보는 등.

이리저리 최충헌의 몸 상태를 살폈다.

그 광경을 김덕명과 이규보가 옆에서 지켜보았다.

“어떻소?”

김덕명은 불안한 눈빛을 띠었다.

한 어의가 김덕명을 돌아보며 안타까움에 젖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많이 안 좋으십니다. 혈전증血栓症 증세를 보이십니다.”

“그게 어떤 병이오?”

김덕명이 황급히 물었다.

“손과 얼굴이 마비되고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으며 의식이 흐릿해지는 병입니다.”

이규보가 끼어들 듯 말하고 나섰다.

홱.

김덕명은 이규보를 돌아보며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의술을 아시오?”

말에서 경계심이 엿보였다.

“의서를 몇 권 읽은 적이 있습니다. 김 낭장.”

이규보는 침착하게 대꾸하며 어의를 보았다.

“언제쯤 쾌차하시겠소.”

“지금으로서는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탕약을 달여 드시게 한 연후에 경과를 보는 것이.”

어의는 자신감이 결여된 목소리로 말하며 염려라는 감정을 얼굴에 드리웠다.

예부터 왕을 치료하다 왕이 덜컥 죽어버리면 어의는 있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 써야 한다.

일종의 책임을 지는 것이다.

최충헌은 현 고려왕 고종을 능가하는, 왕의 위에 있는 집권자다.

그런 최충헌이 죽는다면 두 어의 역시 시간차가 있을 뿐, 왕이 죽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처지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 이유로 두 어의는 은연중에 긴장하고 있었다.

이규보는 김덕명을 돌아보았다.

“가족 분들에게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합하께서 최근 쓰러지셨다가 일어나시기를 몇 번 반복하시지 않았소. 그러니 2, 3일 정도 지켜봅시다. 또 아오. 합하께서 벌떡 다시 일어나실지.”

“하긴 그럴 수도 있겠군요.”

“잠시 이곳을 지켜주시오. 내 뒷간을 좀. 허, 험.”

김덕명은 손을 말아 쥐며 입에 댔다.

“알겠습니다. 다녀오시지요.”

이규보는 덤덤하게 대꾸했다.

‘풋!’

뻔하다.

김덕명은 최향에게 최충헌의 몸이 예전과 달리 악화되고 있다고 알리려는 것이다.

몇 분分 후.

김덕명이 나가고, 두 어의가 탕약을 달이기 위해 방을 나갔다.

이규보는 방문을 힐긋 돌아본 후, 최충헌이 누워 있는 침상으로 걸어갔다.

누운 최충헌의 머리맡에 이르러 서며, 이규보는 시선을 돌려 방안을 두리번거렸다.

그런 다음 누워 있는 최충헌의 얼굴 가까이 머리를 숙였다.

“이제 눈을 뜨셔도 될 것 같습니다. 합하.”

최충헌의 감은 눈꺼풀이 슬며시 밀려 올라갔다.

눈꺼풀이 위아래로 서너 번 깜빡임과 동시에 최충헌의 입술을 비집고 가느다란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하악, 하악. 갈 날이 멀지 않았군.”

“합하.”

이규보는 넌지시 낮은 목소리를 흘렸다.

최충헌은 이규보를 돌아보며 오른손을 들었다.

덜덜.

오른손은 경련했다.

“야, 약을. 하악, 학.”

최충헌은 힘겹게 숨을 들이 내쉬었다.

이규보는 안쓰러운 얼굴빛을 띠었다.

“합하. 그 약을 자주 드시면 안 되십니다.”

“이, 이보게. 난. 가, 갈 날이 그리 멀지 않은 사람이야. 하악.”

“하지만 합하. 그 약은 앵속을 주 약재로…… 합하의 남은 생기를 갉아먹는…….”

이규보는 최충헌이 찾는 약이 수명을 단축시킴을 밝혔다.

최충헌은 고집스러웠다.

연방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을 이었다.

“하악, 학. 그 약이 있어 난. 허, 헉. 시간을 벌 수 있소. 내 말 무슨 말인지 아시겠소. 삼흑호.”

“합하.”

이규보는 처연한 얼굴빛을 띠었다.

최충헌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내가 죽으면 필시 형제간에 골육상잔이 일어날 것이오. 하악, 하악. 우. 그 아이가 권력을 잡으면 향이는 살겠지만. 만약 향이가 권력을 잡으면 우 그 아이는 죽소. 하악. 향이는 우와 달리 추호의 인정도 베풀지 않을 것이오. 그 녀석은 권력을 위해서라면 하지 못할 것이…… 쿨럭, 쿨럭.”

최충헌이 머리를 들며 심하게 기침했다.

“합하.”

“어, 어서 약을.”

“네에.”

이규보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세를 바로 하며 누운 최충헌을 향해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들었다.

뒤돌아서려는데.

“사, 삼흑호. 하악.”

최충헌이 불러, 이규보는 뒤돌아섰다.

“예에에. 합하.”

의구심의 눈빛을 띠었다.

“두 어의를.”

“걱정하지 마십시오. 합하. 단단히 입단속을 해 두었으니 경솔한 짓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그들은?”

최충헌은 말을 잇는 것이 어려운 듯 낮은 숨을 몰아쉬었다.

“허, 헉.”

“대기해 있습니다. 제가 나가면서 들여보내겠습니다. 합하.”

“그럼. 수고를.”

“네.”

이규보는 대답하며 다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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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

드륵.

방문이 열리며 머리쓰개를 쓰고 장옷을 입은 대갓집 주인 복색을 한 세 장년인이 들어왔다.

세 장년인은 몇 걸음 내디뎌, 일어나 침상에 앉아 있는 최충헌에게 다가가 섰다.

천천히 방바닥에 한쪽 무릎을 굻으며 오른손을 들어 가슴에 한일자로 붙였다.

머릴 숙이며 동시에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합하께 인사 올립니다.”

최충헌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어여 일어들 나게.”

“네, 합하.”

세 장년인은 몸을 일으켰다.

최충헌은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자신이 이의민을 제거하기 위해 몸을 일으킬 때 생사를 함께 한 옛 부하들이다.

이의민을 제거하고 자신이 고려의 집권자가 되었을 때, 만에 하나의 경우를 대비해 비장의 한 수로서 뒤로 빼돌린 자들이기도 하다.

의도적으로 자신과 거리를 두고 부름이 있을 때까지 은인자중하라 그리 밀명을 내려놓았다.

그것은 후일을 위한 안배였다.

권력의 정점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자신이 언제까지 집권자로 있을지는 자신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모른다.

일이 잘못되어 자신이 내일, 아니 내일 모래 죽을지도 모르는 까닭에, 권력의 정점에 선 자로서 만약을 대비해 늘 한 수를 심중에 품고 있어야 했다.

지금 일어나 선 세 장년인은 최충헌의 마지막을 대비한 한 수였다.

최충헌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래만이네. 자네들을 이리 다시 보게 되는 날이 영원히 오지 않았으면 했는데. 결국 이렇게 자내들을 부르고야 말았네. 미안하네.”

“어인 말씀이십니까? 합하.”

“그 동안 합하의 은혜를 입어 호의호식 하였습니다.”

“명하신 대로 모두 행하겠사오니. 부디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합하.”

세 장년인은 말하며 최충헌을 향해 허리를 깊이 숙였다.

최충헌은 소리 없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씨익.

자신에 대한 충성을 아직도 간직한 세 장년인의 언동에 심중 기꺼운 마음이 들었다.

아울러…….

최충헌은 가슴속에서 이는 씁쓰름한 감정에 낯빛을 흐렸다.

‘어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들을 경계하고자, 아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상황을 연출하는 것을 막고자, 숨기고 숨겨온 마지막 힘을 끄집어내야 한다는 것에 최충헌은 분노를 느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동원 가능한 모든 것을 총동원해 아들 최향을 죽이고 싶지만, 차마 아비로서 그리 할 수 없었다.

‘허허허. 수없이 많은 이들을 죽인 내가, 친동생과 조카마저 베어 죽인 내가 아들 때문에.’

고려 최고의 권력을 쥔 최충헌도 결국에는 한 사람의 아비일 수밖에 없었다.

차마 자신의 손으로 아들을 죽일 수 없어, 이민호라는 칼을 빌려 아들을 처리하려 한다는 것이 서글프기 작이 없어, 말 그대로 눈물이 앞을 가릴 지경이다.

장자 최우.

이 모든 것이 무탈한 권력 승계를 위한 것이다.

자신이 동생 최향을 살려 주라 유언을 남기면 아들 최우는 따를 것이나, 아들 최향은 자신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형 최우를 죽이려 할 것이기에 이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놈, 향아. 이 아비가 말년에 너 때문에 이리 마음고생을 하는 것을 내 알더냐?’

울화가 치밀었다.

차자 최향이 보성백이라는 귀족 작위를 받을 때부터, 알게 모르게 자신의 사람과 세력을 빼 갈 때부터 근심하고 우려했었다.

자신이 일으켜 세운 우봉 최 씨 가문의 백년 아니 천년 영화를 위해서는 조야朝野의 사람들을 아우를 수 있는 장자 최우가 권력을 이어받아야 한다.

피를 봐야 하는 시절이라면 차자 최향에게 권좌를 넘겨주겠으나, 지금은 화합과 통치의 시절이라 장자 최우가 권좌의 주인으로서 합당하다.

최충헌의 얼굴에 진한 안타까움이 배였다.

천천히 입을 열어 세 장년인에게 뭐라 말하기 시작했다.

세 장년인은 몸을 움찔거리며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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