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187화 (187/247)

<-- 187 회: 7-14 -->

6 장

마을에서 포구로 이어지는 몇몇 길목에서 모리나가 번의 군병들이 쏟아져 나왔다.

미츠이가 이끌던 500여 명의 기병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지나쳐온 마을은 텅텅 비었다.

눈에 띄는 사람이 없었다. 유령 마을 같은 을씨년스러움만이 곳곳에 진하게 배어 있었다.

몇몇 가옥은 전소되어 잿더미가 되었다.

포구 역시 온전치 않았다.

복구에 상당한 시일과 적잖은 비용이 소요될 것이 빤히 눈에 보일 정도로 심하게 손상되어 당분간은 배가 정박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우르르.

쏟아져 나온 모리나가의 가병 500여 명은 망연해했다.

저 멀리.

못해도 7, 80여 장은 되어 보이는 곳에서 수많은 선박이 천천히 대해로 나가고 있었다.

포구에 이르러 선 미츠이는 선박들을 보고는 분에 겨운 고성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

양손을 말아 주먹 쥐며 가슴 높이로 들었다. 그와 함께 머리를 숙이며 자신이 느끼는 분이라는 감정의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격분한 미츠이 시게노부.

곁에 서 있는 아노는 불안한 마음에 급히 미츠이를 돌아보았다.

“미츠이 사마.”

미츠이는 자세를 바로 하며 막 아노를 향해 고개를 돌리려했다.

찰나.

씨이이이이이이이잇.

가느다란 긴 파공이 들렸다.

미츠이와 아노 그리고 주변에 서 있는 모리나가 번의 가신인 다수의 무장과 가병들은 흠칫거렸다.

다들 본능적으로 귀에 들린 파공이 들린 포구 정면을 돌아보았다.

전장을 전전한 다수의 경험이 있는 터라, 귀에 들린 파공에 괘 민감하게 반응했다.

작은 점 같은 것이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속도가 가히 초속이었다.

가까이 다가오는 만큼 크기가 삽시간에 불어나듯 커졌다.

화살!

날아드는 화살에 의해 대해로 나가는 선박들이 찰나 가려졌다.

한순간.

퍽.

외마디 소리가 들렸다.

그와 함께 미츠이 시게노부가 천천히 뒤넘어갔다.

얼굴에는 놀람이란 감정이 확연히 자리 잡았고, 눈동자는 동그랗게 부릅떠졌으며, 믿을 수 없다는 강한 부정이 물신 풍겼다.

화살은 미츠이의 미간에 반 이상 박혔다.

뒷머리로 화살촉이 튀어나왔으며, 꿩 깃털로 장식된 화살 꽁지깃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미츠이는 뒤넘어가며 찢어져라 입을 크게 벌렸다.

벌린 입 안쪽에 있는, 천장에 매달려 있는 살덩어리 목젖이 좌우로 밋밋하게 흔들렸다.

텅.

바닥에 부딪친 미츠이는 충격에 들썩였다.

다시금 바닥으로 떨어지며 사지를 아무렇게나 흐트러뜨렸다.

아노와 무장들은 너나없이 쓰러진 미츠이를 돌아보았다.

가병들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일순.

“미츠이 사마!”

아노의 외침을 필두로 무장들이 고성을 질렀다.

“안 돼에에.”

“미츠이 사마아아아!”

아노의 외침과 무장들이 고성이 울려 퍼지며 잠시 포구를 뒤덮었다.

그 사이.

슈, 슈, 슈우우우우.

무엇인가 날아오는 다수의 옅은 파공이 들렸다.

@

조금 전이었다.

“묵아!”

난 포구를 보며 소리쳤다.

“네에에. 갑니다아아.”

묵이 대답하는 외침이 들렸다.

눈대중으로 내가 서 있는 배의 갑판과 포구 사이의 거리를 재보았다.

‘1장이 보통 3미터 남짓이니깐.’

내가 탄 지휘선과 포구 시이의 거리는 대략 80여 장 정도 될 것 같다.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240미터쯤 된다.

사람의 시야로는 포구에 서 있는 모리나가 번의 무장들과 가병들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아주 작은 막대와 유사하게 보였다.

“훗.”

난 가볍게 실소했다.

‘그냥 가면 섭하지. 선물 하나쯤은 남겨두는 것이 예의겠지. 훗.’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는 사이, 묵이 내 곁에 이르렀다.

“나리.”

묵이 왼쪽에서 들고 온 활을 불쑥 내밀었다.

“화살!”

“여기.”

재빨리 몸을 돌려 활을 챙겨드는 내게, 묵이 두 개의 화살을 내밀었다.

“하나면 돼.”

간략하게 말하며 화살 하나를 집었다.

서둘러 포구를 향해 돌아서며 자세를 잡았다. 왼손에 서가에서 얻은 예의 활을 움켜쥐고,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신경과 감각을 화살촉에 모았다.

반개하듯 눈을 가늘게 뜨며 포구를 바라보았다.

포구를 뒤덮은 모리나가 번의 가병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주변에 서 있는 몇몇 소수의 이들을 돌아보며 뭐라고 말하려는 모습이, 아무래도 고위급 지휘 무장 같아, 가볍게 인사(?)나 할까?

난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실소했다.

‘후후…….’

왼손 엄지를 슬쩍 일직선으로 세워, 노리는 자에 맞췄다. 그와 함께 있는 힘껏 시위를 당겨, 화살에 최대한의 추진력과 관통력을 부여했다.

활과 시위가 휘어지며 원의 형상을 띠었다.

“후, 후우.”

호흡을 가다듬고 목표물에 내 모든 것을 몰입하듯 집중했다.

잠시 호흡을 멈추고 마른침을 삼켰다.

꿀꺽.

나도 사람이라, 긴장감을 아니 느낄 수 없다.

‘나, 참.’

속으로 고소를 머금으며 눈을 빛냈다.

‘천천히.’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가볍게 시위를 놓았다.

툭.

일순.

“아…….”

귀에 묵이의 옅은 탄성이 들렸다.

그 사이.

쑤아아아아아아아아악.

화살이 공기의 저항을 뚫고 하늘을 향해 사선으로 치솟았다.

삽시간에 화살은 작은 점으로 화했다.

난 왼손에 쥔 활을 떨구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우우우.”

내가 할 바는 다했다.

화살이 날아가 목표에 적중하는 것은 하늘의 뜻에 달렸다.

묵이를 향해 돌아서며 활을 내밀었다.

“아, 네에.”

묵이 내가 내민 활을 건네받았다.

난 돌아서며 뒤를 보았다.

백아셈과 황곤을 비롯한 측근들이 날 마주보았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층 갑판 난간에 서 있는 황산해에게 외쳤다.

“시작해.”

“네.”

황산해는 간결하게 대답하며 뒤돌아보았다.

“적색 깃발을 올려라.”

“예에에.”

황산해의 외침에 한 선부가 소리쳐 대답했다.

그리 오래지 않아, 돛에 걸린 붉은 빛을 띤 깃발이 해풍에 펄럭거렸다.

다소 떨어진 한 배에 탄 노인 나식, 나 영감이 깃발을 보았다.

나 영감은 급히 돌아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쏴아아아.”

고함쳤다.

그러자 배 갑판에 늘어놓은 몇몇 석포에 달라붙은 군병들이 바삐 손을 놀렸다.

잠깐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휘, 휘, 휘이익.

석포에서 자그마한 항아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항아리의 크기는 얼추 보면 압력 밥솥과 유사했다. 항아리의 주둥이를 뭉친 천으로 틀어막았는데, 가름에 젖혀진 듯 활활 불타고 있었다.

@

쨍그랑.

포구 바닥에 몇몇 항아리가 떨어지며 산산이 부서졌다.

사방으로 튀는 항아리의 파편과 함께 가득 담긴 기름이 바닥에 쏟아졌다.

삽시간에 쏟아진 기름에 불이 붙었다.

화르르.

불은 이내 화염으로 화하며 인근에 서 있던 모리나가 번의 가병 몇을 한 입에 집어삼켰다.

“으아아악.”

“크아악.”

불길에 휩싸인 몇몇 가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서 있는 자리에서 맴돌았다.

사지를 허우적거리며 몸부림쳤다.

가병들은 채 얼마 되지 않아 바닥으로 넘어졌다.

그들은 온몸을 격렬히 뒤틀며, 온몸으로 고통을 호소했다. 잠시 후 그들은 힘없이 몸과 사지를 늘어뜨리며 움직이지 않았다.

그와 같은 광경이 포구 곳곳에서 벌어졌다.

최고 지휘관인 미츠이 시게노부를 순식간에 잃어버린 아노와 모리나가 번의 무장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지?”

영문을 몰라 했다.

그리 오래지 않아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포구를 휩쓸었다.

대해로 나가는 수백여 척의 배 후미에서 가해진 석포의 화공에 모리나가 번의 가병들은 우왕좌왕하며 속절없이 죽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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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

만족스러워 나는 미소 지었다.

주변에 서 있는 측근들이 우두커니 포구를 바라보았다.

“허.”

“저, 저거.”

측근들은 딱히 이렇다고 말할 수 없는, 몇 가지 감정이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 사이 포구와 배 사이의 거리가 상당히 멀어져 석포를 통한 화공이 멈췄다.

“자아아알 탄다.”

난 시원하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슬그머니 주변에 서 있는 측근들을 흘낏거렸다. 다들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눈치다.

난 돌아서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자아아. 우린 이제 고려로 돌아간다.”

내 외침에 지휘선에 탄 군병들이 오른손을 머리 높이 곧게 들며 환호했다.

“와아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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