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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노 요코바시가 야스라가에 입성하고 약 반 시진 남짓 지났을 때 미츠이와 모리나가 번의 가병들이 입성했다.
“류켄은?”
미츠이는 황폐한, 폐허가 되어가는 야스라가 성을 보고는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
그런 한편으로 번주 류켄의 신변을 아노가 확보했는지 궁금했다.
아노는 미츠이의 맞은편에 서서 머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미츠이 사마. 제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놓쳤다!
미츠이는 아노의 말에 크게 실망하며 고성을 질렀다.
“바가아아아!”
옆으로 돌아서며 매우 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울러 손을 아래로 떨치며 애석하다는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아노는 머리를 들어 미츠이를 쳐다보았다.
“저어.”
뭔가 할 말이 있는 뉘앙스의 말에 미츠이는 흠칫거리며 아노를 돌아보았다.
“뭔가?”
“그것이.”
“…….”
아노는 미츠이에게 입성과 함께 파악한 몇 가지를 입에 올렸다.
야스라가 성 창고에 류켄이 은밀히 모아둔 철괴와 은과가 있었다.
그런데 고려군이 야스라가에 입성하며 모조리 다 가져갔다.
자신이 숨어 있다가 고려군이 물러간 다음 모습을 드러낸 몇몇 시녀와 시종을 통해 알아본 바로는 고려군은 하바카로 향했다고 한다.
야스라가에 입성한 고려군은 번과 야스라가 성에 있던 남녀 다수를 끌고 갔으며, 타이라노 번의 본성인 야스라가 성에서 온갖 값진 물품들을 몽땅 다 털어갔다.
아마 지금쯤이면 타고 온 배에 사란들과 짐을 싣고 있을 것이다.
미츠이는 아노의 말에 놀람이라는 감정을 얼굴에 띄웠다.
“당장 하바카로 간다!”
고함치며 옆으로 돌아섰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미츠이에게서 조급함이 진하게 묻어났다.
아노는 미츠이를 뒤따르며 미묘한 얼굴빛을 띠었다.
‘과연…….’
자신이 공연한 것을 말한 것은 아닐까? 라는 우려가 마음속에서 살며시 일었다.
긁어 부스럼.
그 말이 자연스레 머리에 떠올랐다.
미츠이는 걸어가며 격한 감정을 느꼈다.
‘이!’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 놈이 챙기다고 하더니만. 설마 지금 고려군이 타이라노 번에 쳐들어와 싹쓸이 해 갈 줄은 정말 몰랐다.
타이라노 번이 고려에 군사들을 보내 양곡을 비롯, 값진 재물을 약탈해 번을 유지한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듣고 있었다.
내심 고려에서 이를 문제 삼아 왜에 사신을 보내 엄중히 따지며 외교 문제화 하지는 않을까? 염려했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렇게 대규모의 군사를 보내 타이라노 번을 공격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반드시!’
미츠이는 고려군이 가져간 모든 것을 되찾으려 했다.
타이라노 번의 사람들을 확보하여, 철광과 은광에서 일할 노동력으로 삼고자 하였다.
아울러 각종 값진 재물을 전리품으로 챙겨, 섬기는 모리나가 번의 번주 스기모토 모리나가에게 바칠 생각이었다.
무려 1천여 명의 가병이 출전했는데, 타이라노 번의 철광과 은광 외에 뭔가 건지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과 휘하 무장들 그리고 가병들 손에 뭐라고 쥘 수 있다.
미츠이는 사기라는 측면에서 보다 많은 전리품을 획득하려는 욕심을 부렸다.
이민호가 키운 군병들과 일전을 결하면서까지.
미츠이는 고려군이 그리 강하지 않다고 심중 경시했다.
연이은 승전 탓에 자신도 모르게 자만이란 감정의 덫에 한 발을 성큼 내딛고 만 미츠이였다.
5 장
마을을 등지고 족히 백여 대가 넘는 석포가 나란히 일렬로 정렬했다.
한 일자의 장사진.
노인 나식는 긴장의 눈빛을 띠며 앞에 늘어서 있는, 석포를 운용하는 군병들을 둘러보았다.
“정신 똑바로 차리거라. 니들이 실수하면 놈들이 치고 들어온다 아이가. 그라모 우린 다 디지는 기야.”
노인 나식은 현란한 사투리를 쓰며 군병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힐끔.
우측 뒤를 훔쳐보았다.
이민호가 좌우에 묵과 혹두를 거느리고 서 있었다.
신경이 부쩍 쓰이고 긴장감이 무럭무럭 일어, 자신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가는지도 몰랐다.
한 마디로 말해 정신이 거의 없었다.
노인 나식은 얼마 전에 이민호가 측근들에게 크게 화내던 것을 생각하며 내심 마른침을 삼켰다.
끌꺽.
긴장감에 살 떨린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노인 나식은 군병들에게 시선을 돌리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정신 바짝 차리거라 잉. 나리께서 지금 지켜보고 계시다아아.”
군병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
힐끔힐끔.
군병들은 노인 나식과 서 있는 이민호를 흘겨보았다.
죄다 노인 나식처럼 긴장한 티가 역역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자신들은 한 사람의 정병正兵으로 키우며 아주 혹독하게 굴린 장본인이 바로 이민호다.
그런 이유로 다들 이민호라면 자다가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매우 꺼리며 두려워한다.
‘죽겠네.’
노인 나식은 손자뻘이 될 이민호를 훔쳐보며 눈치를 보았다.
나이는 어려도 섬기는 분(?)이다. 게다가 성격이 보통이 아니라, 눈 밖에 나는 순간 큰 곤경을 치를 것은 따 놓은 당상이다.
노인 나식은 은연중에 얼굴을 찡그렸다.
심중 꺼리는 바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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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을 등지고 미츠이와 아노를 비롯한 모리나가 번의 무장들이 섰다.
그들의 뒤와 토성의 성벽에는 모리나가 번의 가병 500여 명이 도열해 있었다.
500여 가병은 눈을 빛내며 곧 있을지도 모르는 교전에 숨죽이며 긴장의 눈빛을 띠었다.
생사를 결정짓는 일전을 앞두고 있는 탓에 심장이 벌렁벌렁거렸다.
미츠이는 야스라가를 비워둘 수 없어, 타이라노 번 곳곳을 점거하기 위해, 가병 500여 명을 대동하고 토성으로 이동해왔다.
무장과 가병들은 처음 마주한, 이제까지 맞붙어 보지 못한 고려군과의 일전에 긴장이란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교전 그 자체가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생사를 다투는 것이라, 긴장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상대에 관해 아는 바가 하나도 없어 심중 불안감이 크게 일었다.
“으음.”
미츠이는 옅은 신음을 흘렸다.
시야에 마을을 등지고 일렬로 정렬한 석포들이 들어왔다. 일순 반개하듯 미츠이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두려움과 꺼림 등.
미츠이는 몇몇 감정이 뒤섞인 작은 미광微光을 띠었다.
좌측 옆에 서 있는 아노가 미츠이를 돌아보았다.
“미츠이 사마. 공격 명령을.”
아노는 공격을 재촉했다.
“아서.”
미츠이는 나지막이 대꾸했다.
아노는 흠칫거리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주변에 서 있는 무장들은 미츠이와 아노의 대화에 움칫거리며 의구심의 얼굴빛을 띠었다.
“미츠이 사마.”
아노가 부르는 음성에 미츠이는 천천히 입을 뗐다.
“서두르지 마라.”
미츠이의 말에서 꺼림칙함이란 감정이 묻어났다.
아노는 영문을 몰라 조심스레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혹여 무슨 염려하시는 바라도 있으십니까?”
조심스레 미츠이의 신색神色을 살폈다.
미츠이는 아노를 슬쩍 쳐다보았다.
“아노.”
“네, 미츠이 사마.”
미츠이는 눈짓으로 석포를 가리켰다.
“저게 뭐지 아느냐?”
“…….”
아노는 입을 다물고 석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처음 보는 것이다.
아노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미츠이를 돌아보았다.
“미츠이 사마.”
“석포라는 것이다.”
“네?”
아노는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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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에는 석포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왜의 성은 해자라 불리는 외곽 방어 시설이 성곽을 두른다.
성 밖보다 성 안쪽에 더 신경을 쓰며, 기본적은 외적을 막기보다는 해당 번의 정치, 경제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이 더 크다.
크게 성을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대개 혼마루本丸, 니노마루二の丸, 산노마루三の丸라 불린다. 그리고 덴슈카쿠 天守閣라 불리는, 3층 내지 5층에 이르는 누각이 성의 중심이다.
예의 덴슈카쿠는 성의 성주 내지는 번주의 거처인 까닭에 대개 공성에서 최우선적으로 점령해야 하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방어해야 하는 요충지다.
그런 탓에 덴슈카쿠로 이어지는 성 내부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방어 시설과 견고한 방어물로 보호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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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츠이는 석포들을 살피며 눈을 반짝였다.
“중국에서 들어온 서책을 본 적이 있다.”
“…….”
아노는 입을 다물고 미츠이를 쳐다보았다.
뒤에 서 있는 무장들 역시 미츠이를 쳐다보며, 이목을 모았다.
미츠이가 하는 말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귀담아들으려 했다.
그 사이.
“내가 본 서책에는 각종 공성 병기가 적혀 있었는데…… 석포는 장거리를 타격하는 병기다. 만약 선봉을 내보낸다면 석포가 있는 곳까지 다다를 동안 무시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을 것이 뻔하다. 상당한 사상자나 중상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미츠이는 석포들 너머에 있는 마을을 바라보았다.
“석포는 단독으로 운용되지 않는다. 궁병이나 보병들이 늘 엄호한다. 그러니 무턱대고 공격할 경우, 나도 예측할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미츠이는 공격을 섣불리 결정할 수 없는 이유를 언급했다.
아노는 석포들을 곁눈질하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미츠이 사마.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아노.”
“예.”
“우리 가병들이 대부분 보병이다. 저 석포들이 있는 곳까지 뛰어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중, 경상자나 사상자가 생길지 예측할 수 있겠느냐?”
“…….”
아노는 미츠이의 물음에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미츠이는 아노를 힐긋거리며 옅은 불안이 배인 눈빛을 띠었다.
“고려군을 지휘하는 자는 만만한 자가 아니다. 나도 아직 석포가 어떤 위력을 발휘하는지 모른다. 그런 석포를 저렇게 다량으로 가져와 정렬해 놓은 것은 우리가 공격할 경우 최우선적으로 석포를 이용하여 우리를 타격하겠다는 의도다.”
미츠이는 말하며 시선을 석포 뒤에 있는 마을로 주었다.
“석포를 엄호하는 궁병이나 보병이 보이지 않는다. 필시 마을에 숨어 있을 것이다. 고려군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석포와 같은 무시할 수 없는 무기를 상대로 어설픈 만용을 부리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짓이다.”
미츠이는 공격이 꺼려짐을 입에 올렸다.
아노는 입을 다문 채 미츠이의 시선을 따라 마을을 보았다.
…….
고요했다.
그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고즈넉하고 을씨년스러운 느낌이 혹 매복이나 그에 준하는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념을 불러일으켰다.
아노는 석포와 마을을 내려다보는 미츠이를 훔쳐보았다.
‘역시.’
대단하다.
아노는 그런 생각에 내심 미소 지었다.
씩.
섬기는 미츠이 시게노부가 달리 전장의 너구리로 불리는 것이 아니다.
‘언제!’
미츠이가 석포를 알고 있다는 것에 아노는 심중 놀라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