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182화 (182/247)

<-- 182 회: 7-9 -->

4 장

파파파파파팍.

쏟아지는 단전의 비가 600여 가병들을 덮쳤다.

“끄아악.”

“우왁.”

“으아아아악.”

단전의 비에 당한 가병들이 단말마에 가까운 비명을 지르며 맨땅바닥으로 나둥그러졌다.

우당탕탕.

기습에 당한 전형적인 광경이었다.

예의 광경은 한둘이 아니었다. 주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600여 타이라노 번의 가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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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에에에!”

이노치는 주변을 둘러보며 안타까움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쒜, 쒜에엑.

귀에 들린 단전이 내리꽂히는 파공에 이노치는 흠칫거렸다.

황황급급히 왼손에 쥔 말고삐를 옆으로 당기며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향해 허공에서 서너 개의 단전이 쏜살같이 떨어지고 있었다.

이노치는 서둘러 왼쪽 허리에 찬 검을 빼들었다.

멈칫.

이노치는 검을 빼들다가 움찔거렸다.

서너 개의 단전이 옆을 스치더니 맨땅에 깊이 박혔다.

퍼퍼퍼퍽.

단전들이 땅이 박히는 다수의 소리가 을씨년스러운 기운을 불러일으켰다.

이노치는 가슴이 서늘했다.

고삐를 옆으로 당기는 탓에 말이 이동했다. 한창 달리던 중이라 방향 전환이 용이했다.

이노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흐으윽.’

조금만 늦었으며 단전에 당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몸이 자신도 모르게 가늘게 떨렸다.

시선을 숙여 안장에 엎드려 있는 번주 류켄을 보았다. 다행히 어디 다친 곳은 없었다.

쒜, 쒜엑.

이노치는 다시금 귀에 들리는 파공에 급히 시선을 높이 들며, 손에 진 검을 힘주어 꽉 쥐었다.

시야에 다시금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두어 개의 단전이 보였다.

이노치는 쥔 검을 머리 높이 들며 휘둘렀다.

가볍게 쳐내는 느낌으로 지척에 이른 단전들을 튕겼다. 단전들은 검날과 부딪치며 잘리거나 튀어나갔다.

맨땅바닥으로 잘린 단전의 파편과 튀어나간 단전이 떨어졌다.

우수수.

한편.

정신없이 뛰다가 단전에 당한 600여 명에 이르는 타이라노 번의 가병은 너나없이 앞으로 꼬꾸라지거나 엎어지는 등.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맨땅을 굴렀다.

“크아아아아악.”

비명이 그칠 새가 없이 연이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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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두두두.

이노치와 600여 가병을 향해 황곤이 이끄는 200여 기병이 좌우에서 내달리며 짓쳐들었다.

황곤은 단전에 당해 혼란에 빠진 가병들을 응시하며 득의라는 감정이 밴 미소를 머금었다.

안장에 걸어둔 기병용 창을 끌러, 오른손에 움켜잡았다.

황곤은 주변으로 고갤 돌리며 고함쳤다.

“기창!”

따르는 수하 기병에게 기창騎槍을 명령했다.

기창은 말을 타고 달리며 창을 쓰는 마상 무예 중 하나이자, 말을 몰며 창을 사용하여 목표물을 찌르는 동작을 지칭하는 말이다.

200여 기병은 일제히 안장에 걸어둔 창을 손에 들었다.

그 사이.

기병과 가병들 사이의 거리가 빠르게 줄어들며 가까워졌다.

황곤은 눈을 반짝이며 타이라노 가의 가병들을 주시했다.

아직 기습당한 혼란에서, 첫 공격인 단전이 준 충격과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들이었다.

황곤은 좌우를 번갈아보며 목청을 높였다.

“투창!”

외침과 함께 손에 움켜쥔 창을 어깨 높이 들었다.

일순.

슈우우우우.

황곤은 손에 쥔 창을 시야에 보이는 타이라노 가의 가병들을 향해 던졌다. 그 뒤를 이어 200여 기병이 너나 할 것 없이 각자 손에 쥔 창을 던졌다.

어느 정도 창을 던지는 시간차는 있으나, 시간차의 간격은 매우 짧아, 거의 동시에 던진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창은 공중을 향해 사선으로 날아갔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타이라노 번의 가병들을 향해 날아가는 창은 그리 오래지 않아 가병들에게 이르러 떨어졌다.

퍼퍼퍼퍼퍼퍼퍽.

가병들은 떨어지는 창에 몸이 꿰뚫리거나, 몸에 박힌 채 맨땅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으아아아악.”

“커어억.”

재차 비명들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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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치는 좌우에서 내달리며, 거의 인근에 이른 기병들을 돌아보았다.

“이익!”

분했다.

뒤따르는 가병들을 통솔하여 혼란을 잠재우고, 짓쳐드는 기병들을 맞아 싸울 채비를 해야 하는데.

이노치는 여전히 의식을 되찾지 못한 류켄을 내려다보았다.

힐끗.

순간.

고민이라는 감정이 가슴속에서 머리를 쳐들었다.

류켄?

600여 가병?

둘 중 하나는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질끈.

이노치는 입술을 악물었다.

‘미안하다.’

죄책감이 일었다.

머릿속에서 섬기던 주군 키노시타의 당부가 떠올랐다.

‘도노를 야스라가로!’

이노치는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눈에 힘주었다.

고개를 돌려 기병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가병들을 보지 않았다.

가병들을 보며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아, 가병들을 버린다는 죄책감에, 도저히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이노치는 이가 부서져라 악물며 앞을 보았다.

뿌득.

고삐를 쥔 왼 손아귀에 힘주며 다리로 말의 배를 걷어찼다.

“하앗!”

고함치며 탄 말에게 달릴 것을 종용했다.

말은 나지막한 울음을 흘리며 말발굽을 바삐 놀렸다. 배 아래 중앙으로 앞뒤 네 말발굽이 모아졌다가, 일순간 앞뒤로 힘차게 뻗어나갔다.

콰두두두.

말을 발굽으로 지면을 파고들듯 강하게 밟았다.

날렵하게 속도를 내며 앞쪽으로 질주하는 말의 움직임에 이노치와 의식을 잃은 류켄은 상당한 진동을 느꼈다.

몸이 심하게 좌우로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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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치에게 버림받은 가병들 중 선두에서 뛰던 가병들과 운이 남달라 단전에 이은 투창으로부터 일신이 온전한 가병들은 크게 놀랐다.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상급자인 이노치가 혼자 살겠다고 자신들을 내버려두고 말을 몰고 달려 나가는 광경을 그들이 보았다.

“이, 이노치 사마.”

“저희들을 버리지 마십시오.”

“함께 데려가 주십시오.”

가병들은 말을 몰아 달리는 이노치를 향해 뛰었다.

후다다닥.

말과 사람의 보폭과 속도는 엄연히 다르고 차이가 나는 터라, 이노치와 자신들 사이에 벌어진 거리를 어쩌지는 못했다.

“이노치 사마아아아아.”

가병들은 목 놓아 시야에서 빠르게 멀어져가는 이노치를 불렀다.

…….

이노치의 대답은 없었다.

고개를 돌려 자신들을 보지 않았다. 다수의 가병이 안타까움과 구원을 청하는 다급함이 어린 외침이 주위로 메아리쳤다.

“이노치 사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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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여 가병들 중 대부분은 단전에 이은 투창 공격에 망신창이가 되었다.

몸에 몇몇 단전이 박힌 채 가병들이 맨땅에 너부러졌다.

역시 동일하게 몸에 몇몇 단전이 박힌 가병들은 숨이 끊어지지 않아,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지면에 뉜 몸을 뒤척거렸다.

“으으으…….”

창에 몸이 꿰뚫린 가병들은 맨땅에 무릎을 꿇고 숨을 헐떡였다.

“하악, 하악.”

핏기가 없는 얼굴에는 고통이란 감정이 물씬 어려 있었다.

그들의 주변에는 투창으로 죽은 가병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600여 명의 가병 중 반 수 이상이 큰 타격을 받아 죽거나 중상을 입었다.

그들이 흘린 붉은 선혈이 주변 맨땅을 붉게 물들였다.

지면은 붉은 비단을 활짝 펼쳐, 깔아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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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곤은 휘하 기병을 이끌고 시야에 보이는 만신창이가 된 타이라노 번의 가병들을 들이쳤다.

어느새 기병들의 손에는 기병용 장검이 쥐어져 있었다.

여느 검을 압도하는 긴 검신이 말이 달리는 속도와 마상이라는 높이가 주는 두 이점에 힘입어 허공을 갈랐다.

쉬, 쉬이이이.

상당한 풍압이 일고, 장검은 쳐 지나가는 좌우에 서 있는 가병들의 목과 몸을 훑었다.

서걱.

장검이 훑고 지나간 가병들의 머리와 몸이 분리되었다.

머리는 허공 높이 떠오르거나, 맥없이 툭 지면으로 떨어져 나뒹굴었다.

기병들은 정면에서 우왕좌왕하는 가병들을 거리낌 없이 말로 들이받았다.

받힌 가병들은 뒤로, 옆으로 튕겨 나갔다.

“으아아아아.”

“크아아악.”

받힌 가병들이 내지르는 고성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기병들은 인정사정없었다.

손속에 일절 정을 남겨두지 않았다. 눈에 띄는 대로, 닥치는 대로 당황과 혼란이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타이라노 번의 가병들을 참살하며 일직선으로 가로질렀다.

칼 도刂자의 형태였다.

황곤은 나란히 교차하며 스치는, 맞은편에서 말을 내달려온 휘하 군병들을 힐긋 돌아보았다.

부 기병장 조돈이 보였다.

황곤은 고함쳤다.

“곧장 하바카로 가라.”

“예에에.”

조돈이 외쳤다.

“조심하십시오. 기병대장님.”

황곤은 슬며시 웃었다

씨익.

가볍게 머리를 까닥이고,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콰두두두두.

기병들은 바람인 양, 삽시간에 타이라노 번의 기병들을 스쳐 지나갔다.

가병들이 모여 있는 곳을 일직선으로 관통해, 눈 깜짝할 사이에 작은 점으로 화했다.

600여 명의 가병 중 태반이 당해, 처참한 지경에 이르렀다.

가병들은 저 멀리 사라져가는 두 무리의 기병을 멍하니 바라보며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심신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자포자기라는 심정에 심신을 모두 빼앗겼다.

다들 반쯤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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