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국기-181화 (181/247)

<-- 181 회: 7-8 -->

말끝을 흐렸다.

힘들다!

그런 속내가 엿보였다.

그 사이.

타닥.

변재일과 맹우가 돌아서며 뛰어갔다.

난 혹두에게 당부했다.

“필요하다.”

“하지만 나리.”

“그들이 힘들고 매우 어려운 일을 한다는 것은 안다. 그런 만큼 그에 합당한 충분한 대가를 지불할 것이다.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후우우. 일단 애들에게 말해보겠습니다만, 솔직히 자신은 없습니다.”

“알겠다. 그리고.”

슬쩍 화제를 돌렸다.

혹두는 흠칫거리며 날 뚫어지게 보았다.

“확보한 철괴와 은괴 중에…… 뒷골목 사람들 잘 챙겨라.”

“나, 나리.”

혹두는 당혹스러워하며 날 불렀다.

피식.

난 실소하며 옆으로 돌아섰다.

“가지려면 당당하게 가져야 하는 이유를 말하고 정당하게 챙겨. 그리고 데리고 있는 애들. 괜히 공범으로 만들지 마라. 응.”

애들?

난 군병들을 언급했다.

혹두는 손을 들어 머리를 긁적이며 민망해했다.

“죄송합니다.”

난 걸어가며 뒤에 서 있는 혹두를 힐끔거렸다.

‘짜식.’

불현듯 머릿속에 혹두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험악하고 흉악한 인상의 혹두였다. 한데 지금은 돈, 돈 하는 돈벌레였다.

처음과 지금이 도저히 매치되지 않아 내심 작은 고소를 머금었다.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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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치는 실신한 번주 류켄을 안장에 태우고 미친 듯이 말을 몰았다.

두두두.

말이 서서히 밝아오는 새벽길을 일진광풍인 양 스쳐지나갔다.

패잔병 600여 명이 이노치와 류켄을 뒤따랐다.

다다다다.

패전해 달아나는 가병 600은 턱밑까지 차오른 숨에 연방 헉헉대며 뛰고 또 뛰었다.

바짝 추적해오던 아노 요코바시가 이끌던 모리나가 번의 가병 300을 가까스로 뿌리쳤다.

이노치와 가병들은 달아나는 간간이 뒤돌아보았다.

불안해하는 얼굴들.

가병들은 우려하고 있었다.

과연 자신들이 아노가 이끄는 모리나가 번의 가병 300의 추격을 무사히 벗어났는지 긴가민가하는 눈치들이다.

그런 이유로 잠시 쉬지도 못하고 본성인 야스라가로 향했다.

이노치는 뒤따르는 600여 명의 가병을 돌아보았다.

“힘들 내라. 조금만 더 가면 야스라가다.”

이노치는 목청을 돋우며 뒤따르며 뛰는 가병들을 독려하는 한편 사기를 조금이라도 올리려 애썼다.

이미 한 차례 크게 패해, 번주 류켄을 모시고 달아는 터라, 가병들의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

그런 까닭에 이노치는 조금이라도 가병들의 사기를 올려, 한시라도 빨리 야스라가 성에 당도하려 하였다.

또한 야스라가 성에 당도함과 동시에 뒤따라오는 아노가 이끄는 모리나가 번의 가병 300이 공격할 것이기에, 심중 염두에 두었다.

필시 공격이 매우 맹렬할 것이다.

그 공격을 막으려면 지금 자신을 따라오는 600여 가병을 피해 없이 고스란히 보전한 채 야스라가 성으로 입성해야 한다.

600여 가병이 필사적으로 아노가 이끄는 모리나가 번의 가병 300과 맞서 싸워줘야 하기에 사기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이유로 이노치의 머리는 복잡했다.

챙겨야 할 것이, 감안하고 생각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차근차근 준비해왔던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게 떠맡겨진 것이라 심적, 정신적 부담이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이노치의 안색은 매우 어두웠다.

이노치는 고개를 숙여 안장에 엎드려 있는,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한 류켄을 보았다.

“주군…….”

진한 안타까움이 배인 중얼거림이 이노치의 입술 사이를 비집고 새어나왔다.

말이 달리는 중이라 안장에 앉은 이노치와 엎드린 류켄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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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곤은 말머리를 뒤돌렸다.

히힝.

말이 나지막이 울음을 흘리며 돌아섰다.

황곤은 한일자로 늘어서서 장사진을 형성한 기병대를 둘러보았다.

“곧 적이 나타날 것이다. 이미 너희들에게 이른 대로 치고 빠진다. 공격한 즉시 말머리를 돌려 하바카로 향해라. 어쭙잖은 공명심에 어물쩍거리는 놈은 내버려둘 것이다. 그딴 놈은 챙기지 않는다. 알겠느냐?”

“예에에. 기병장님.”

기병들이 일제히 소리쳐 대답했다.

황곤은 말을 몰아 천천히 서 있는 기병들을 스쳐 지나갔다.

“잊지 말고. 명심, 또 명심해라. 우린 신속히 적을 공격한 후 하바카로 향해야 한다는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일단 교전이 벌어지면 교전에 참여한 자들은 모두 다 흥분하게 되어 있다.

흥분하면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백이면 백 가슴속에서 격렬하게 분출하는 감정에 휩싸여, 치솟는 감정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게 된다.

감정적이 되는 것이다.

해당 상태에서는 최선이나 차선의 선택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부분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되어 있다.

그것은 이성이 아닌 감성에 따른 판단을 내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황곤은 서 있는 기병들을 지나치며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주의를 주고 또 주었다.

“재차 말하지만 우린 치고 빠진다. 시간을 버는 것이 우리의 임무임을 잊지 마라!”

“네에에에.”

기병들이 머리를 들며 목청이 찢어져라 크게 외쳤다.

‘도대체 몇 번이나 말하는 거야?’

‘잔소리 좀 고마하세요. 기병장님.’

‘무슨 마누라가 바가지 긁어대는 것도 아니고.’

지겹다는 감정이 기병들의 얼굴에서 진하게 묻어났다.

그런 한편으로 다들 황곤을 쳐다보며 은은한 긴장의 눈빛을 띠었다.

곧 자신들의 목숨을 담보로 적과 일전을 결한다. 긴장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도리어 이상한 일.

기병들은 얼어붙은 듯 경직되어 저마다 마른침을 삼키기 시작했다.

꿀꺽, 꿀꺽.

@

얼마 후.

두두두.

황곤은 귀에 들린 말발굽 소리에 흠칫거리며 뒤돌아보았다.

시야에 울창한 숲에서 빠져나오는 세 기병이 보였다.

세 기병은 야트막한 구릉지를 질주하여, 곧장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촌음寸陰의 시간이 지난 후, 세 기병이 황곤에게 다다랐다.

그 중 선임으로 보이는 한 기병이 황곤에게 머리를 숙이며 오른손을 들어 가슴에 댔다.

군례였다.

예의 기병은 손을 내리며 머리를 바로 했다.

“기병장님.”

“오고 있느냐?”

“네.”

“수고 많았다. 네 자리로 돌아가라.”

“명!”

기병이 대답하며 뒤돌아보았다. 두 동료를 쳐다보며 고개를 까닥였다.

황곤은 세 기병이 말머리를 돌려 대열로 향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서 있는 기병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산개하라.”

“예에.”

기병들이 황곤에게 대답하며 고삐를 옆으로 돌렸다.

“핫.”

거친 발길질로 탄 말의 배를 찼다.

히, 힝.

말들은 낮은 울음을 흘리며 양쪽으로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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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치는 시야가 훤히 트이며, 시야 가득히 들어오는 구릉지에 들뜬 낯빛을 띠었다.

“드디어.”

야스라가에 거의 다 이르렀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빨리.’

야스라가에 서둘러 당도하여 뒤따라 올 아노가 이끄는 모리나가 번의 가병 300을 막을 채비를 갖춰야 한다.

이노치는 마음이 급했다.

그 때문에 시야에 들어오는 구릉지를 좀 더 자세히, 세밀히 살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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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릉지 양쪽.

두 무리로 나뉜, 황곤이 이끄는 200여 기병이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또각, 또각.

말들이 천천히 말발굽을 내밀었다.

완보緩步.

말은 차츰 내딛는 말발굽을 바삐 놀리며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두두.

속보速步.

두 무리로 나뉜 기병들은 말의 속도를 높이며 서서히 질주했다.

콰두두두두.

황곤은 울창한 숲을 빠져나오는 이노치의 좌측에서 한 무리의 기병을 이끌었다.

시야에 보이는 이노치와 뒤따르는 600여 타이라노 번의 가병을 향해 휘하 기병을 휘몰아갔다.

맞은편, 우측에서는 부 기병장인 조돈이 100명의 기병을 대동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씨익.

황곤은 소리 없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한 번 신나게 싸워볼까? 하하하하.’

유쾌했다.

고려에서는 별 볼일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존재였다. 운이 좋아 최충헌의 가병이 되었다.

이후, 이민호를 만나 모든 것이 변했다.

황곤은 신바람이 무엇인지 느끼고, 만끽하고 있었다.

‘우리가 언제까지 니들 왜구에게 당하고만 있을 성 싶더냐?’

울컥했다.

황곤은 시애에 보이는 이노치와 뒤따르는 600여 명의 타이라노 번의 가병을 직시하며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공격하라!”

황곤의 명령에 함께 움직이던 기병들이 일제히 노를 들었다.

다들 얼굴 높이로 노를 비스듬히 들어 올려, 조준하기 시작했다.

일순간.

슈, 슈, 슈아악.

좌우에서 각 100여 명의 기병이 쏴대는 200여 개에 이르는 단전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사선으로 공중을 가르며 하늘 높이 치솟는 단전들은 삽시간에 까마득히 높은 곳에 다다라, 무수히 많은 작은 점으로 화했다.

기병이 소지한 노는 예의 삼연발 노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진 연사로 총 600여 개에 이르는 단전이 하늘을 뒤덮었다.

단전들이 하늘에서 공기를 가르며 지면으로 내리꽂히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쏴아아아아.

화살들이 일으키는 다수의 파공은 매우 세찼다. 마치 바가 오는 듯한 소리가 메아리쳤다.

이노치와 가병들은 귀에 들리는 수백여 개의 파공에 소스라쳤다.

“허억.”

“어, 어.”

이노치와 가병들은 황급히 좌우를 돌아보았다.

시야에 말을 내달리며 노를 쏴대는 기병들이 보였다. 한 바탕 모진 광풍이 불어오는 듯, 기병들의 기세는 대담무쌍했다.

“피해라. 산개에에!”

이노치는 본능적으로 가병들이 입을 피해와 손실을 최대한 줄이려 하였다.

가병들을 돌아보며 목이 쉬어라 외치고 또 외쳤다.

“우와아아아.”

“피해.”

“아, 안 돼에.”

가병들은 겁먹었다.

죄다 보병이었다.

말을 탄 이는 이노치가 유일하다. 그런데 하늘에서 단전들이 내리꽂히고 있었다.

한창 뛰다가 급히 멈춰 선 곳은 구릉지였다.

딱히 몸을 숨길 엄폐물이나 단전을 피할만한 방어물이 없다.

고스란히 내리꽂히는 단전들은 자신들의 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위기 중의 위기였다.

타이라노 번의 가병 600여 명은 한순간에 극심한 혼란에 빠져버렸다.

그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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